소설리스트

49화 (49/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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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되었습니다.”

조 과장의 시침이 끝나자 여자 인턴이 보고를 해왔다. 그녀가 바로 침구과 막내 인턴 안미란이었다.

“마 선생, 송 선생 어디 있나?”

“병실에서 시침하고 있습니다.”

“다들 오라고 해.”

조 과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침구과 수련의들에게 윤도의 시침참관을 명한 것이다.

대학병원에서의 시침!

윤도가 살짝 긴장 모드에 들어갔다.

저벅저벅!

부원장과 조 과장이 앞서 걸었다. 영광스럽게도 윤도가 그 다음이었다. 꼬리에는 수련의들이 붙었다. 수근거림이 윤도 등을 넘어왔다.

“저 친구가 심장마비자들 구한 명의라고?”

첫 마디의 주인공은 2년 차 레지던트 과정을 밟는 송재균이었다. 그는 조 과장의 소개로 인사를 나눌 때부터 마뜩치 않은 인상이었다.

“말이 됩니까? 방송이 부풀린 거지...”

“아니면 돌부리에 양능천을 찔려 아픈 다리가 나은 격일 겁니다.”

수련의들은 일심동체로 윤도의 기적을 평가절하했다. 당연한 텃세였다. 개의치 않았다. 텃세라면, 갈매도의 창승에게서 만리장성급 내공을 쌓은 윤도였다.

“초빙 선생님이 특별히 진맥 좀 보겠습니다.”

침구실의 간호사가 환자에게 동의를 구했다. 환자는 61세의 송순분이었다. 대학병원이기에 지켜야할 절차도 많았다.

보시게.

조 과장이 눈짓을 보냈다. 뒷줄의 윤도가 앞으로 나섰다.

‘채윤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광희대학한방병원에 왔어.

한의대 다닐 때 그렇게 취업하고 싶던 그 한방대학병원.

인턴 응모에서 장렬하게 물 먹은 그 병원...

뒤에는 이 병원의 부원장님과 난다긴다하는 침구전문가가 있고...

그래도 쫄지 마.

넌 그때의 윤도가 아니야.

차분하게... 모든 의식 내려놓고 오직 환자만.

집중 그리고 집중.

알았지, 채윤도?

주기도문처럼 마음을 가라앉힌 윤도가 환자 손목을 잡았다.

“......”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리에 환자의 맥이 들어왔다. 맥을 따라 경락이 펼쳐졌다. 낙맥의 그물도 이어졌다. 임맥을 보고 독맥을 보았다. 오수혈과 원혈, 팔회혈도 나누어 보았다.

‘위장...’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변비...’

병인을 짚어가다 숨을 멈췄다.

“......!”

확인 후에 한 번 더 확인. 진단의 뿌리가 환자의 머리까지 왕복한 후에야 확신을 가졌다. 표면에 드러난 위장과 변비는 페이크였다. 그녀의 진짜 질환은 따로 있었다.

“끝났습니다.”

마침내 윤도가 손을 떼었다.

신침神鍼의 위엄-2

신침神鍼의 위엄-2

“어때요?”

환자가 물었다. 질문을 따라 침구과장과 부원장의 시선이 쏠려왔다. 윤도의 의술이 또 한 번 도마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윤도가 침구과장의 의향을 타진했다. 그가 야전 사령탑이니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말해드리세요.”

침구과장이 허락 사인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눈은 환자의 차트에 가 있었다. 부원장도 그랬다. 그들은 다들 환자 차트가 저장된 진료 PDA를 지참하고 있었다.

“위가 더부룩하시죠? 속도 좀 쓰리고요?”

“네...”

“변비도 심한 편이네요. 한 나흘 변을 보지 못한 거 같은 데요?”

“맞아요. 과장님이 약을 주셨는데도 오늘 아침도 용만 쓰다가 실패...”

환자가 대답했다.

윤도의 진단에 바로 반응한 건 부원장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환자의 기록과 같았다. 진맥만으로 정확하게 짚어내는 윤도였다.

변비.

큰 병 아닌 것 같지만 그 또한 고질병이다. 탈 없고 간편하고 효과 확실한 변비약만 개발해도 재벌이 될지 모른다.

“약은 얼마 동안이나 먹었죠?”

“과장님께 말씀드렸는데... 다른 병원에서 꽤 오래 받아먹었어요. 여기서도 주신 탕약을 일주일 치나 먹었는데 큰 차도가 없어요.”

“제가 침을 한 번 놔드려도 될까요?”

“침도 저번 주에 배하고 다리에 맞고 갔는데...”

“괜찮겠습니까?”

윤도가 침구과장과 부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세요.”

침구과장이 응수했다. 중병이 아니니 지켜보려는 의도 같았다. 환자가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그리고 스스로 배 부위의 옷을 걷었다.

“걷지 않으셔도 됩니다.”

윤도가 환자의 손을 막았다. 그런 다음 침통을 꺼내고 장침 세 개를 뽑아들었다. 그 첫째가 향한 건 얼굴이었다.

“......!”

순간, 침구과장이 흠칫 반응을 했다. 변비와 속쓰림의 혈자리가 아니었다.

“채 선생.”

침구과장이 호칭으로 견제를 날려 왔다. 당신 뭐 착각한 거 아니야? 그런 압박이 담긴 호명이었다. 하지만 부원장이 과장 팔을 잡았다. 그냥 둬보라는 사인이었다.

“부원장님.”

침구과장은 수궁하지 못했다. 유명세를 떨쳤다지만 고작 공보의를 마친 신출내기였다. 그런 그가 검사결과와 다른 시침을 하려하니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잠깐만...’

부원장이 눈짓이 이어졌다. 침구과장은 날숨을 누르며 인내심을 발휘했다.

윤도의 첫 장침은 인당으로 들어갔다. 인당은 좌우 눈썹 안쪽을 잇는 선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차크라라고도 하고 제 3의 눈으로도 부른다. 가지런히 장침을 넣은 윤도가 침끝을 돌려 혈자리를 잡았다. 그만하면 되었다고 생각하자 시침자리를 옮겨갔다. 손바닥이었다. 그 중앙의 노영혈이었다.

“으음...”

침구과장을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이 초짜는 점점 엉뚱한 길로 빠지고 있었다. 마지막 장침은 엄지발가락 위의 혈자리였다. 호침을 놔도 될 것을 굳이 장침이다. 수련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놈. 겉멋만 잔뜩 들었다. 저러다 의료사고라도 내서 된통 당하지. 이제는 한숨에 더해 혀까지 차려던 침구과장, 환자의 얼굴을 보다가 숨을 멈췄다.

‘설마?’

침구과장의 미간이 벼락처럼 일그러졌다. 환자의 얼굴이 부드럽게 펴지고 있었던 것이다.

“......!”

침구과장의 눈이 바삐 차트를 점검했다. 환자의 병명은 위장장애와 변비였다. 그런데 이 초짜 한의사는 엉뚱한 혈자리를 잡았다. 세 혈자리를 놓고 판단한 결과 윤도의 진단은 다른 데 있었다. 그건 우울증에 주로 쓰는 혈자리였다.

우울증!

‘맙소사.’

침구과장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병 뒤에 숨은 병, 그걸 찾아낸 윤도였다. 그러니까 지금 침을 맞은 저 환자가 확인이 되어준다면... 그래준다면 말이다.

시간을 체크한 윤도가 침을 뽑았다. 장침의 기 조화가 인체를 한 바퀴 돌았을 시간이었다. 그냥 뽑은 게 아니라 안의 나쁜 기운을 함께 뽑아냈다. 싸아아, 나쁜 기의 방출이 보였다. 물론 윤도에게만 그랬다.

“어떠세요?”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속이 좀 편한 거 같아요.”

환자 입가 주름이 편안하게 펴졌다. 잔뜩 긴장하던 아까와는 딴판이었다.

“......!”

그 말과 함께 침구과장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의 추측이 맞은 것이다.

“시침을 허락하신 보답으로 이건 보너스입니다.”

다시 장침 하나가 환자의 손바닥 끝 신문혈로 향했다. 침의 각도는 비스듬히 누웠다. 혈자리에 따라 자연스레 바뀌는 각도. 그렇기에 어디든 장침을 쓸 수 있는 윤도였다. 유난히 작은 혈자리를 적중하자 자극이 벼락처럼 출발했다. 자극이 원하는 부위로 달려갔다. 그 도달을 느끼는 순간, 울컥 환자의 혈자리가 움직였다.

“어머!”

환자가 배를 움켜쥐었다.

“아프세요?”

진료를 지원하던 간호사가 물었다.

“아프긴 아픈데... 그 신호예요.”

환자가 얼굴을 붉혔다. 윤도는 개의치 않고 강한 자극을 더했다.

“아이고, 선생님, 저 쌀 것 같아요.”

환자가 애달픈 눈짓을 보내왔다.

“그럼 그대로 다녀오세요.”

윤도가 복도를 가리켰다. 환자는 침을 꽂은 채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렸다.

끝났습니다.

윤도는 침구과장과 부원장을 향해 가벼운 목인사를 전했다.

“대뇌를 잡은 건가?”

침구과장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나왔다.

“예...”

“진맥만으로 알았단 말인가?”

“환자가 불편한 건 속쓰림과 변비였지만 그 시작은 대뇌와 위장 신경축의 부조화였습니다. 그러니 위장과 변비를 치료하는 건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 같아서 원인 쪽을 잡아보았는데 운 좋게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

침구과장은 말문이 막혔다. 수련의들도 일동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위가 아픈 환자... 대부분 위장병을 의심한다. 하지만 윤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울증 같은 게 발생하면 대뇌와 내장 신경 라인이 과잉 작용한다. 위에서 일어난 작은 통증이 확대되어 뇌에 전달되는 것이다. 대뇌는 다시 내장으로 큰 신경 자극을 보낸다. 작은 통증이 큰 통증으로 느껴지는 기전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뇌와 소화기가 쌍방향 신경축으로 연결되었다는 걸 모른다면 진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다고 해서 다 잡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임상경험이 많은 의사도 종종 놓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걸 초짜 한의사가 가려낸 것이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확성으로 보아 우연은 아니었다.

“내가 조 과장 말리길 잘 했지?”

지켜보던 부원장이 웃었다.

“부원장님도 알고 계셨군요?”

“짐작만 했지. 그보다도 판 깔아주고 텃세 부리는 것도 갑질 같아서 말이야.”

그 사이에 환자가 돌아왔다. 환자는 윤도 앞에서 꾸벅 인사를 하며 소리를 높였다.

“아유, 정말 고마워요. 속도 시원하게 뚫리고 변비도 시원하게 뚫렸어요. 내가 똥을 한 바가지나 쌌지 뭐예요.”

똥 한 바가지.

평소와 달리 하나도 역겹지 않았다.

**

환자는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으로 침구실을 나갔다. 윤도를 만나지 않았으면 계속 위장약과 변비약을 오갔을 일이었다. 설령 원인을 아는 의사를 만난다 해도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약 먹어서 좋을 거 뭐가 있을까? 그 모든 것을 원샷에 해결한 윤도였다.

이 환자는 내시경과 혈액검사도 모두 정상이었다. 원인모를 속 쓰림에 변비. 자칫하면 신경성, 혹은 스트레스로 병명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몸이 가뜬해진 환자가 인증을 해주었다. 그녀의 딸 때문이었다. 명문대를 나온 딸이 있었다. 명동에서 액세서리 노점상하는 남자와 눈이 맞았다. 빈부귀천 같은 건 따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 남자가 주폭(酒暴)이라는 사실이었다.

[도박, 주사, 바람기.]

세 가지를 인생 금기로 여기던 환자였기에 딸의 결혼을 반대했다. 딸은 집을 나가 남자와 살았다. 혼인신고도 미루고 아기를 낳았다. 출산을 하자 남자의 술주정이 극에 달했다. 아기를 집어던져 중상을 입혔다. 딸도 얻어맞아 병원신세를 졌다.

이혼을 하게 되었다. 딸은 상처와 아기를 떠안고 친정으로 귀환했다.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았다. 마음의 불안과 짐이 위장근육의 경련을 일으킨 것이다. 환자의 사연이었다.

“과연!”

부원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길로 21일짜리 ‘임시’ 의료진 신분증이 주어졌다. 그래도 침구과장의 표정은 헐렁해지지 않았다. 한 사례로 인정하기에는 의술에 따르는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이었다.

“여긴 채윤도 선생. 한 3주 정도 우리 과에서 주로 임상연수를 하면서 침술을 하게 될 거야.”

회의실에서 조 과장이 스태프와 수련의들에게 정식 인사를 시켰다. 수련의들은 표정은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잡대 한의과 나온 초땡이 한의사의 임상연수. 어떻게 봐도 ‘특혜’나 ‘의문’의 다른 이름이었다.

저벅저벅!

병실 복도에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번에도 침구과장과 부원장이 선두였다.

‘농아... 혹은 언어장애...’

뒤에서 걷는 윤도의 머리 속에 들어온 단어였다. 침구과장의 시침 허락이 떨어진 환자였다. 나이는 열 세 살 이름은 신혜선,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사고로 언어중추를 다쳐 발음에 문제가 생겼다.

우어어어아아!

“거의 언어장애인급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환자를 택한 것일까? 윤도는 침구과장의 속내를 알았다. 열쇠는 아문혈이었다.

<아문혈>

기경팔맥의 하나인 독맥에 속한다. 황제내경에는 음문혈이라 하지만 동의보감에는 아문혈로 나온다. 설횡혈, 혹은 설염혈로도 불린다. 언어장해나 실어증 등에 시침한다. 혀 신경이 나가는 곳으로 혀가 굳은 경우에도 애용한다. 위치는 중뇌 아래의 연수에 가깝다. 자칫 실수하면 연수를 찌를 수 있어 위험한 혈로 분류된다. 그렇기에 한의사에 따라서는 침 놓기를 꺼리거나 혹 놓는다 해도 깊이 넣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윤도의 주무기가 장침이었다. 침구과장은 아문혈에도 자신이 있는지 볼 생각이었다.

“어떠신가?”

벽으로 돌려 앉힌 환자 앞에서 침구과장이 물었다. 말투는 이제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아문혈이다. 거기도 침을 놓을 자신이 있냐고 타진하는 과장이었다.

“진맥을 좀 해도 될까요?”

윤도는 정석대로 나갔다.

“보시게.”

과장의 허락과 함께 여학생의 손목을 잡았다. 신중하게 맥을 감지하고 목의 인영맥으로 옮겨갔다. 혈자리가 나왔다. 아문혈이 맞았다. 아문혈이 녹아버리 듯 눌려 있었다.

“오늘로 2주일 째 침을 맞고 있네. 처음보다 조금 호전됐지만 아직 2주는 더 계획을 잡고 있네만.”

“침을 놓겠습니다.”

“.......?”

침구과장의 눈동자가 멈췄다. 윤도의 주저없음에 놀란 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윤도의 침은 침구과장의 생각을 벗어나버렸다. 아문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윤도의 장침은 목의 천정혈과 팔의 극상혈에만 고이 고이 들어갔다.

“끝났습니다.”

침 끝 미세조절을 마친 윤도가 과장에게 인사를 했다. 과장의 고개가 갸우뚱 기울었다. 지켜보던 수련의들이 수근거렸다.

“아문혈은 손 못 대네?”

“쫄은 거지.”

송재균을 중심으로 한 수련의들의 반응이었다.

“천정혈과 극상혈?”

침구과장은 의아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첫 환자와는 달리 의료정보를 다 알려준 상태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아문혈에 장침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장침은 옆길로 샜다. 임상경험 부족한 초보 한의사의 한계였을까? 과장의 갈등을 읽기라도 한 듯 윤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아문혈은 마지막에 시침하겠습니다.”

“마지막?”

“3일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그럼 3일 차에야 아문혈이란 말인가?”

“맥과 혀가 심장의 부조화를 알려주었습니다. 과장님께서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이고 계신 덕에 하루 이틀만 기혈 조화를 잡아주면 말소리가 좀 나을 것 같습니다. 해서 극상혈로 심맥을 바로 잡고 천정혈로 천기 출입을 자극한 후에야 아문혈을 취할까합니다.”

“채 선생. 심장이라니? 환자는 언어중추에...”

조 과장의 시선이 가파르게 올라왔다.

신침神鍼의 위엄-3

신침神鍼의 위엄-3

“MRI를 말하시는 거라면 거기에는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건 혈자리 문제인데 그게 워낙 미세하니...”

“자신하는가?”

“죄송하지만 발전소와 송전소의 관계입니다. 환자는 지금 혀에 기혈 보충이 필요한데 언어장해의 혈자리 침이나 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송전소 격인 아문혈에 집중 투자를 한다 해도 전력이 강해지지는 않는 것이니 발전소의 용량을 늘여야만...”

“이봐요. 채 선생!”

윤도이 설명에 레지던트 2년차 송재균이 충성신공을 발휘했다. 조 과장이 그를 막았다.

“......”

침구과장은 골똘했다. 오진이 아니라면, 원론에 충실한 진단이기 때문이었다. 윤도는 첫 환자에서도 그랬다. 진료의 기본이다. 그러나 진료현장에서는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원론을 간과할 때가 많았으니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몸의 기전을 우선시하는 한의학에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생각에는...”

이번에도 부원장이 현장정리에 들어갔다.

“채 선생 말대로 해보는 게 어떨까? 어차피 치료 과정이고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니.”

침구과장은 부원장의 말을 거절하지 못했다.

이틀 째 되는 날, 이번에도 윤도의 침술은 첫날과 같았다. 맥을 짚고 천정혈과 극상혈에 장침을 넣었다. 다만 혈자리는 어제보다 조금 전진했고, 침도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내일 뵙겠습니다.”

부원장과 침구과장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잘못 되는 거 아닙니까?”

송재균이 참았던 말을 침구과장에게 전달했다. 레지던트 2년 차. 그러나 S대 의대에 합격하고도 광희한의대를 선택한 그였기에 과장의 신뢰도 컸다.

“......”

“제 생각에는 아문혈에 침을 넣을 자신이 없으니 변죽을 울리는 거 같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여객선 심장마비 사건도 기자들이 만들어낸 과장일 겁니다. 요즘 기자들이 어디 기자입니까? 기레기지.”

“그것도 그럴 수도...”

“저 친구 알고 보니 우리 병원 인턴 모집 때도 떨어진 실력이더군요.”

“......”

“게다가 이틀 차인데 똑 같은 혈자리만 잡았습니다.”

“조금 다르긴 했네.”

“혈자리를 미세하게 옮겼고 어제보다 깊이 넣은 침 말입니까?”

“송 선생도 봤군?”

“그거야 의도라기 보다 어찌 찌르다 보니...”

“의도일까 봐 그러는 걸세.”

“과장님.”

“아문혈만이 언어장해의 유일한 혈자리는 아니라네.”

“그건 과장님께 배웠습니다만...”

“채 선생이 침을 넣은 천정혈도, 극상혈도 아주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

“하루 남았네. 침술 역사에도 환자가 하루를 못 참아 병을 그르친 경우가 많으니 하루만 더 지켜봄세. 부원장님 체면도 있고...”

과장이 고개를 돌렸다.

부원장의 시선은 창 너머에 있었다. 초점에 들어온 건 병원을 나가는 윤도 모습이었다. 부원장은 가만히 윤도의 침술을 복기했다. 무엇보다 주저가 없어 좋았다. 치료에 자신이 없는 한의사는 망설인다. 윤도는 그렇지 않았다. 겸손하지만 침술에는 주저가 없는 사람. 부원장은 그걸 간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람 칭찬하기에 인색한 장백교. 그가 평생 처음으로 추천한 경우였다.

‘내일...’

복도를 걸으며 부원장은 생각했다. 그 내일까지가 좀 지루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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