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265)

“......!”

수련의 휴게실 문을 열던 윤도가 동작을 멈췄다. 그 안의 수련의들 때문이었다. 도종세와 안미란이었다. 밤새 응급실을 돌고 입원 환자들을 돌보느라 고단했는지 둘 다 의자에서 뻗어있었다.

드르릉 푸하.

도종세는 코까지 골았다. 쪽잠 자는 모습을 보니 숭고한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한의사가 되려면 많은 인고가 필요하다. 아버지 일과 함께 한 번 더 경건해졌다.

톡!

가운을 꺼내 입은 윤도가 조심스레 휴게실문을 닫았다.

“안녕하세요?”

윤도의 첫 병실은 제약회사 대표이자 폐암환자 류수완의 입원실이었다.

“오셨습니까?”

류수완이 상체를 세웠다. 윤도가 장침 치료를 하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눈치였다. 인턴 안미란이 황급히 뒤따라 들어섰다.

“죄송해요. 피곤해서 잠시 눈을 감는다는 게.”

빗질조차 못하고 달려온 안미란이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인턴이다. 인턴일 때는 여자인 것을 포기해야 한다더니 한방병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닙니다. 진맥 때문에 좀 일찍 왔어요. 맥이 순할 때...”

“준비해 드릴 게요.”

안미란이 나서 환자의 팔을 걷어주었다. 윤도 혼자 해도 되지만 그냥 두었다. 그녀가 기꺼운 표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계세요. 맥 좀 보겠습니다.”

“네...”

환자의 대답은 담담했다.

“마음 편안히 가지세요.”

폐암.

윤도는 환자의 병명을 머리에서 지웠다. 고전에서 읽은 명언을 참고했다.

‘환자의 병명에 휘둘리지 마라.’

병명은 하나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병은 변할 수도 있다. 드물지만, 말기 암 환자의 암세포가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식품만 먹다보니 나았어요.

-산에서 좋은 공기만 마셨더니 나았어요.

심심치 않게 들은 말들이다. 반대로 멀쩡한 사람이 돌연 적신호를 받기도 하는 게 인체였다.

엊그제까지도 멀쩡했는데...

작년까지는 끄떡없는 사람이었는데...

빈 마음으로 맥을 짚었다. 이른 새벽에 달려온 건 오로지 진맥 때문이었다. 진맥은 새벽의 것이 가장 좋았다. 새벽 시간에는 밤을 건너온 음기가 아직 다 흩어지지 않았고 양기 역시 기동을 하지 않았다. 경맥의 기도 그렇고 낙맥의 기도 평온한 상태다. 다른 기혈 또한 야단을 떨지 않기에 맥을 체크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진맥...

한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가 진장맥이었다. 진장맥은 다섯 가지로 꼽힌다.

[진간맥-맥을 잡을 때 칼날에 닿은 듯 날카로운 맥.]

[진심맥-굴러다니는 율무 알을 만지는 듯 한 맥.]

[진비맥-빠르게 뛰다가 느리게 되는 걸 반복하는 맥.]

[진폐맥-마치 새털을 만지는 듯 한 맥.]

[진신맥-힘 있게 뛰다가 간헐적으로 끊어지는 맥.]

이런 맥이 잡히면 사람은 죽는다.

나아가 양 손목에서 맥이 잡히지 않는 사람도 있다. 걱정할 거 없다. 이는 청빈하고 고고한 사람이다. 드물게 손등과 손바닥 사이의 양계혈에서 맥이 뛰는 사람도 보인다. 이는 호맥이라 하며 질병이 없는 건강한 몸이다. 이외에 무혼맥 등이 있는데 ‘무혼맥’의 경우에는 치료가 불가능했다.

차분하게 경맥을 파악했다. 경맥은 세로 줄기다. 낙맥을 집중했다. 그물처럼 펼쳐지는 가지들이다. 12경맥 차례가 되었다. 흉복부를 지나는 삼음경맥과 족양명경에 주목했다.

환자의 맥은 삭맥이었다. 가슴에 불이 났음을 알려주는 맥이다. 맥박도 거칠어 병세가 얌전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오장의 기혈 부조화...’

폐의 원혈인 태연혈을 시작으로 기본 혈자리 상태를 보았다. 허망한 웃음이 나왔다. 티끌만한 혈자리는 착각이 아니었다. 36문도 기막히게 작았다.

‘좋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기왕에 도전하려는 입장이었으니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신수혈, 폐수혈, 선기혈 등을 중심으로 차분하게 체크해 나갔다. 윤도 감각이 거기서 멈췄다. 신장이었다. 신장의 기혈이 특별히 부조화였다. 폐로 오는 기세가 그랬다.

“차트에서 체온 좀 확인해 주세요.”

윤도가 안미란에게 도움을 청했다.

“38도 정도로 미열인데요.”

“그거 말고 시간대 별 체온요. 입원 기간 전체적으로 해서 12간지식으로 짚어봐 주실래요?”

“예?”

“12간지... 자축인묘진사오미...”

“......”

안미란은 잠시 황당해했지만 윤도의 요청에 따랐다. 결과를 받아든 윤도 표정이 밝아졌다. 환자의 열은 두 포인트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밤 11시-새벽 1시.]

[낮 3시-5시.]

같은 열이라도 오장의 이상에 따라 다르다. 신장의 열은 한밤에 더하고 간장의 열은 새벽에 더한다. 결국 이 환자의 폐암 뿌리는 신장이 출발점이었다.

신장검사결과를 보았다.

의료진은 당연히, 신장검사도 충실히 진행했다. 큰 유의점이 없었다. 신장검사 데이터는 정상 언저리였다. 정상치보다 근사하게 낮을 뿐이었으니 그것으로 질병 추세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다시 진맥으로 역추적을 했다.

“......!”

윤도는 집중했다.

궁상각치우.

고서의 말을 생각했다. 한방은 오행을 중시한다. 궁상각치우도 오행에 속했다. 궁은 비장이오, 상은 폐장이오, 각은 간장, 치는 심장, 우는 신장에 속했다. 옛 명의들은 발음소리로도 질병을 알아냈다. 기역은 간장이오, 니은은 심장, 미음은 비장, 시옷은 폐장, 이응은 신장의 기가 실려나온다.

‘궁상각치우...’

주문처럼 오행의 원리를 더듬으며 오장의 상태를 짚어냈다. 손끝에서 나온 기가 환자의 기와 조화를 이루는 순간 마침내 느낌이 전해왔다.

‘비장... 그리고 간장... 폐...’

암의 히스토리를 알았다. 신장의 약한 기혈이 비장에 영향을 주었다. 그게 간을 지나 폐에 병소를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환자의 발음도 ㅅ과 ㅇ이 조금 약했다.

<신장-비장-간-폐.>

폐암의 히스토리가 나왔다. 신장이 근원인 게 확실했다.

장침 놓을 자리가 좌라락 머리에 그려졌다. 진맥은 그쯤으로 끝냈다.

“가슴 하고 어깨 쪽 아프죠?”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네.”

“다른 애로사항은요?”

“잠을 잘 못 잡니다.”

“일단 가슴과 어깨 통증부터 잡아드리고 불면은 시간차를 두고서 시침해 드릴 게요.”

윤도의 손이 고황 아래의 혈자리를 잡았다. 과연 작았다. 윤도는 정신줄을 바짝 세웠다. 오랜만의 긴장이었다.

일침즉쾌.

손가락 안에 기의 바람이 불었다. 윤도는 그 침을 믿었다. 장침이 혈자리를 확보하자 환자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응?”

환자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몇 번 더 반복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통증이 사라졌어요.”

“네.”

윤도가 웃었다. 그곳은 상체의 격통을 다스리는 명혈. 첫 혈자리 조준은 명중이었다.

“세상에, 어떻게 딱 한 방에?”

윤도를 따라 나온 안미란이 감탄을 터트렸다.

“치료에도 임팩트가 있어야할 거 같아서요. 나 한 번 믿어보세요, 그걸 침으로 보여드린 겁니다.”

“선생님, 너무 멋져요. 어제는 망침 원샷, 오늘은 격통 원샷...”

안미란은 상기된 볼을 감추지 못했다.

“멋지긴요. 그런데 저는 연수생이니 과장님 대하듯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연수생이긴 하지만 아주 특별한 연수생이잖아요.”

“특별?”

“네, 어떤 때는 마치 우리를 연수해주러 온 것 같아요.”

“안 선생님, 머리 좀 빗어야할 것 같네요. 그대로 다니시면 선생님 프라이드가...”

얼굴이 뜨거워진 윤도가 화제를 돌려놓았다.

“어머, 잠깐만요.”

안미란은 간호사 데스크로 뛰어가 엉클어진 머리를 다듬고 돌아왔다.

“죄송해요. 그렇잖아도 막 생긴 얼굴인데...”

“안 선생님이 뭐 어때서요?”

“위로 안 해도 되요. 그래서 제가 미용침에 관심이 많거든요. 동안침, 정안침 말이에요.”

“좋죠. 요즘 그게 돈이 된다면서요?”

“그런데 선생님 침술보고 흔들리고 있어요.”

“왜요?”

“진짜 의술 말이에요. 망침에 장침에... 선생님의 침을 보니 동안침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각자의 신념이죠 뭐. 안 선생님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도 처음에는 저처럼 버벅거렸어요?”

“당연하죠. 저는 더 했어요.”

“진짜요?”

“그럼요. 개인 한의원에 몇 달 있는 동안 얼마나 깨졌게요.”“거기 원장님이 침술 대가셨나봐요?”

“그건 아니고... 열심히 하다 보니 침에 눈을 조금 떴어요.”

“와아!”

대화하는 사이에 두 번째 병실에 닿았다.

**

딸깍!

소방관을 꿈꾸는 청년 구대홍의 병실문을 열었다. 뒤에서 안미란이 물었다.

“선생님, 암 환자 시침이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이에요?”

“네!”

윤도가 답했다. 안미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한 사람의 시범 치료를 맡을 걸로 알았던 안미란이었다. 그런데 그 두 배를 선택한 윤도였다.

청년은 트럭행상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선생님.”

구대홍이 예의를 갖췄다. 조금 피곤해 보이지만 여전히 밝았다.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 아버지도 꾸벅 허리를 숙였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윤도가 물었다.

“저 원래 일찍 일어나요. 쓰리 잡 뛰다 보니 습관이 됐거든요.”

“쓰리 잡?”

“알바 해야 하고, 아빠도 도와야하고, 공무원 시험공부까지...”

구대홍이 얼굴을 붉혔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춘을 살고 있는 청년. 뭐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까? 구대홍의 말에 윤도 볼이 다 화끈거렸다. 오늘만 세 번째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와 인턴들, 그리고 구대홍까지...

세상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이 청년 나이 때의 윤도는 천국에 있었다. 그저 공부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도 마치 지상의 모든 고난을 다 짊어진 듯 살았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구대홍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마음 편안히 가져요. 진맥 좀 하려고요.”

윤도가 말하는 사이에 안미란이 진맥 채비를 갖춰주었다. 침구과장급 대접을 받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맥법은 폐암 환자와 같았다. 앉아서 잡고 서서도 잡았다. 골기(骨氣)의 시작이라는 대저혈부터 천추, 경문혈을 지나 암 병소 부위인 무릎의 혈자리를 빼곡하게 점검했다.

처음에는 왼쪽 무릎 병소만 느껴졌다. 사납고 단단했다. 하지만 연결된 끈을 알게 되었다. 끈은 위로 올라갔다.

‘대장, 신장, 비장, 간, 폐...?’

하나하나 체크하던 윤도가 숨을 멈췄다. 폐였다. 폐엽의 말단에서 전이의 낌새가 감지된 것이다. 골종양의 2차 전이로 심심찮게 대두되는 폐. 역시 그곳이었다.

구대홍의 상태는 류수완과는 반대 경우였다. 골종양의 영향으로 전이를 예상하던 의료진들. 그 우려가 저 먼 상부의 폐에 도달한 것이다.

진맥을 끝내고 복도로 나왔다. 구대홍의 아버지가 따라나왔다.

“선생님.”

주섬주섬 뭔가를 내밀었다.

“좋은 건 못드리고... 제가 특별히 참나무 사다 구운 통닭입니다. 한의사 선생님들이 이런 거 먹을까 걱정되기는 하는데 아무 것도 해드릴 게 없어서...”

“아닙니다. 저 이런 거 없어서 못 먹습니다.”

윤도가 기꺼이 받아들었다. 공연한 실랑이를 벌이면 구대홍의 아버지만 민망할 일임을 아는 까닭이었다.

“어휴, 받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채 선생.”

마혁이 다가왔다. 논문을 쓴다더니 어제 밤도 레지던트실에서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큼큼, 치킨냄새 나는데?”

그가 코를 벌름거렸다.

“얻었는데 드실래요?”

윤도가 장작구이 통닭을 들어보였다. 통닭은 아직 따끈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일찍 나왔다길래 구내식당에 아침 준비해 놓으라고 했는데...

“그럼 가서 통닭이랑 같이 먹어요.”

안미란이 두 남자의 등을 밀었다.

“여깁니다.”

식당에서 손을 흔든 사람은 송재균이었다. 그는 모든 세팅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윤도가 그 위에 장작구이 통닭을 펼쳐놓았다. 통닭은 노릇노릇이라는 단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이거 우리가 오히려 대접 받게 생겼네?”

송재균이 웃었다.

우거지탕 국물에 통닭을 뜯었다. 장작구이 맛은 기가 막혔다. 한 마디는 옆 테이블 간호사들에게 인심을 썼다. 닭다리를 뜯으며 윤도는 생각했다. 이 황홀한 맛처럼 구대홍도 완쾌의 황홀을 맛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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