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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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류수완 씨가 복용하는 탕제입니다.”

약제팀 한약사가 재료를 꺼내놓았다. 약재 공부도 할 겸 폐암 환자의 탕약 체크에 나선 윤도였다.

‘새명단...’

약재들은 복합적이었다. 복합 약재를 쓰는 건 폐암의 내성방지를 위한 조치였다. 어떤 암이건 내성만 잡는다면 치료가능성은 훌쩍 올라갈 수 있었다. 기침과 흉수, 통증을 잡기 위한 처방에 더불어 근본 약재도 보였다.

산삼!

산자고!

두 가지였다. 산삼은 자연산은 아니었다. 산자고는 종창과 악창에 주로 쓰이는 약재였다. 분석을 해보니 퀄리티도 좋았다. 윤도의 산해경 분석 기준으로 ‘中中’이 나왔다. 약재 수급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었다. 현대 약전 기준으로 上中이 되는 것이니 최상급으로 봐도 무방했다.

암 치료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폐암은 여전히 무섭다. 많은 암들 중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도 폐암이었다. 전체 재료 중에서 흠이 있는 건 한 가지 뿐이었다. 약성이 낮았다.

“재료는 이겁니다만... 하자는 절대 없거든요.”

한약사가 원재료를 보여주었다. 품질관리가 잘 된 약재였다. 하지만 한약재의 경우는 눈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약재라고 해도 성분함량이 차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도의 손이 맨 아래 칸 약재를 집어들었다. 그게 약성이 더 좋았다.

“이 약재는 이걸로 대체해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미하고 작은 일. 하지만 치료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침이 그랬다. 혈자리니까 대충 집어넣는다면?

혈자리 안에서 보법과 사법을 아우르며 기혈조화를 이루는 건 천지차이를 낸다. 탕약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이건 구대홍 환자에게 투약하던 탕제...”

골종양의 턍약도 새명단의 약재와 중심은 같았다. 구대홍은 현재 탕약을 먹지 않는 상황. 약재만 확인하고 그냥 두었다. 이 경우에는 탕약 없이 침만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웅황을 보았다. 이미 산해경의 웅황을 확보한 윤도. 비교하고 싶었다. 上품 웅황을 조금 얻은 후에 약제실을 나왔다.

탕제를 처방한 내과과장을 만났다. 신장에 대한 약재를 보강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폐암환자의 발병 원인은 신장. 내과 과장 역시 기전을 이해하기에 수락을 했다. 원래라면 연수생 주제에 탕제 관여는 씨알도 안 먹힐 일. 그러나 병원 차원의 지원을 업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복도로 나왔다. 시범 항암치료의 선봉장이 된 윤도.

이제는 장침을 준비할 타임이었다.

장침!

융단폭격-1

융단폭격-1

“화면 띄웠어요.”

회의실에서 안미란이 컴퓨터를 가리켰다. 류수완과 구대홍의 영상자료와 검사결과를 재확인했다. 한방병원이지만 기본 영상과 이화학적 검사는 서양의학 시스템과 비슷했다. 관련 전문의들을 채용해 협업을 갖춘 것이다.

윤도는 이런 과정이 즐거웠다. 자신의 맥을 영상이나 이화학검사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검사상에서는 아직 암의 전이 소견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안미란이 물었다.

“이 환자들, 전이 의심하지 않았나요?”

“했어요. 그래서 여러 검사를 했는데 발견되지 않았어요.”

“류수완 씨는 신장 쪽 검사, 구대홍은 폐 쪽으로 다시 했으면 합니다. 여기하고 여기를 중점으로요.”

윤도가 영상의 한 지점을 ‘콕’ 짚었다. 맥에서 이상을 보인 자리들이었다.

“선생님?”

“거기 문제가 있는 거 같아요. 암은 아니더라도 병소나 이물 같은 게 있을 것 같습니다.”

“......”

“부탁합니다. MRI도 판독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마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조치할게요.”

안미란의 수첩에 메모가 더해졌다.

“환자들 식사 끝나면 바로 시침할 겁니다.”

윤도가 침통을 꺼냈다. 장침을 살폈다. 점검이다. 마함철로 만들었기에 기성제품보다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다. 소독솜으로 끝을 잡고 튕김을 넣었다.

팅!

손끝을 울리는 활력이 좋았다.

“선생님.”

“네?”

“그 침... 마함철로 만든 거죠?”

“네.”

“어쩐지 달라보여요. 절대고수의 침이라고나 할까요?”

“손에 익다보니 사용하는 거예요. 이거 관리하기 굉장히 까다로워요.”

“감염 우려 때문에요?”

“그건 기본이고 환자가 인체의 일부처럼 느끼게 하려면 말이죠. 침이나 주사, 꺼리는 환자들이 많잖아요. 더구나 장침은...”

“그럼 동의보감에 나오는 것처럼 오매와 마황 같은 다섯 가재 약재에 은그릇에 넣고 하루 종일 끓이기도 하세요?”

“거기 나오는 건 거의 다 해요.”

“와아, 무슨 명의열전에 나오는 도사님 같아요.”

“무슨무슨 도사, 무슨무슨 처사라고 하면 사이비 취급 받으니까 그냥 한의사!”

“그럼 혹시 망침(芒鍼)도 가능하세요?”

안미란의 호기심은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망침!

장침보다도 더 긴 스페셜의 스페셜 침이다. 기인 한의사 기도환과 양주동 이후로 다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윤도 역시 얼떨결에 산모에게 쓴 게 경험의 전부였다.

“딱히 배운 건...”

“그럼 산모에게는요?”

“그거야 응급상황이다 보니...”

“으음... 하기야 선생님 능력이라면 뭐는 못하겠어요? 아마 대나무 만한 침이라도 꽂으실 수 있을 걸요?”

“뭐 환자가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거인국 사람이라면?”

“어휴, 저 겸손...”

안미란의 손은 바삐 움직였다. 윤도의 말이라면 뭐든지 받아 적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걸 뭐하러 다 적어요?”

“그냥요. 저 침 좀 잘 놓고 싶은데 맨날 사고만 치고 있거든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잘 하게 될 거예요.”

“저기... 선생님.”

“네?”

“이따가 침 놓을 때요...”

“말씀하세요.”

“저 동영상 좀 찍으면 안 될까요? 혼자 보면서 연습 좀 하게요.”

“......”

“안 되죠?”

“저작권료 초상권료 다 낼 능력 있어요?”

“......”

“찍으세요. 환자에게 방해만 되지 않도록.”

윤도가 웃으며 말했다.

“염려마세요. 몰카 찍듯이 조심스럽게 찍을 게요. 다른 사람 절대 안 보여주고요.”

안미란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류수완 환자.

해쓱한 표정이다.

한 기업을 호령하는 대표도 암 앞에서는 사기가 꺾였다. 침통을 꺼내며 그의 영상기록을 떠올렸다. 폐 한 쪽에는 흰 눈이 소복이 내려앉았다. 평소에는 병원조차 가지 않던 대표님. 남들 다 하는 종합검진 한 번 받지 않고 사업에 골몰했다. 그 결과 사업은 궤도에 올렸다. 지지부진하던 매출신장은 물론이오, 신약까지 개발하며 주가를 올린 것이다.

최근 들어 몇 번인가 몸살을 느꼈다. 끈적한 피로감도 꽤 오래 갔다.

‘갱년기인가?’

큰 맘 먹고 찾아간 병원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폐암입니다.”

암 판정이 나왔다.

폐암!

몇 가지로 나뉜다.

[선암.]

[편평상피세포암.]

[소세포폐암.]

선암은 비흡연자에게 많고 폐 주변부에 발생한다. 주로 여자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편평상피세포암은 폐 중심부에 생기며 흡연 남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소세포폐암은 조직의 형태가 다르고 악성도가 높은 암이다. 류수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했는데 좌엽과 우엽으로 나뉘는 부분에 들어앉아 수술도 쉽지 않은 형태였다. 사업을 살리는 동안 안타깝게도 폐가 죽어간 것이다.

발병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헛심만 뺀 꼴이 되었다. 추가로 시도된 약물치료도 환자와 잘 맞지 않았다. 그는 한방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떻게 보면 틀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의 제약회사가 한방약 쪽에 두각을 나타내는 까닭이었다.

침통 옆에 웅황 용액을 꺼내놓았다.

산해경의 것으로 잡질을 제거하고 만든 영약이었다. 병원에서 쓰는 응황과의 비교는 병실에 들어오기 전에 끝냈다.

현실의 웅황은 복용할 수도, 환부에 바를 수도 있었다. 중풍에는 법제된 콩술에 섞어 마시고 복부의 덩어리 등에는 고약처럼 개어 환부에 붙이기도 한다.

산해경의 웅황과는 약성 자체가 달랐다. 산해경의 웅황은 몸의 사기를 물리치고 독을 씻어낸다.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삼아 함께 분석한 쑥도 나쁘지 않았다. 웅황 정도는 아니지만 효과가 쏠쏠할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장침을 꺼내 웅황 용액 병에 끝을 적셨다. 침 하나는 쑥 용액에 넣었다. 가지런히 꽂힌 침들이 보기 좋았다.

“격통은 어떠세요?”

준비를 마친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오랜만에 아들이 가르쳐준 핸드폰 게임도 한 걸요.”

환자가 웃었다. 한의사와 환자의 케미는 좋았다.

‘채윤도...’

환자의 혈자리를 복기하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제 시작이야.’

첫 출발은 양지와 중완혈이었다. 안미란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폐암에 웬 양지혈, 중완혈?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윤도가 읽어낸 맥이 그랬다. 인체의 질병이란 기(氣)가 병든 것이다. 기는 삼초에 있다. 양지와 중완은 삼초를 조절하기 위해 필요했다. 원기부터 북돋우려는 생각이었다.

양지에 들어가는 침은 웅황액을 묻혔다. 중완에 들어가는 침은 쑥 용액을 묻혔다. 온 정신을 혈자리에 집중했다. 웅황의 침은 식히고 데우는 역할을 알아서했다. 쑥은 불(火) 기운이라 데우는 역할에 유용했다.

처음 두 번은 재확인이 필요했다. 흔적 뿐인 혈자리기에 확신이 필요했다.

오감이 총동원되었다. 겨우 혈자리를 확보하고 두 침 작용을 비교했다. 웅황의 반응이 빨랐다. 느리지만 쑥도 반응이 먹혔다.

세 번째 침은 백회혈이었다. 양지와 중완을 취했으니 백회혈을 뺄 수 없었다. 이 세 혈은 소위 생명을 지배하는 혈로 불렸다. 하늘의 기운이 인간에게 들어가는 점이자 인간과 천지간이 소통하는 곳인 까닭이었다. 백회혈 침에는 아무 것도 묻히지 않았다.

오직 장침만의 기세로 세 침의 차이를 파악했다. 어쩌면 흔적 뿐인 혈자리. 현미경 단위일 것 같은 혈자리...

다행히 앞선 두 혈자리의 경험에 손가락이 적응되었다. 보통 사람의 10분 1 밖에 안 되는 백회혈자리를 한 방에 장악한 윤도였다. 침을 돌려 쑥과 웅황의 침 반응에 맞춰보았다. 몇 번 시도하자 그들의 작용과 파장이 맞았다.

끄덕!

감을 잡은 윤도가 고개를 움직였다. 그 손이 신장혈과 대장의 혈자리로 옮겨갔다. 동영상을 찍던 안미란에게 또 한 번의 의구심을 안겨주는 혈자리였다.

‘후우!’

대장의 혈자리까지 잡고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초긴장한 덕분에 가운은 땀으로 흠뻑 젖은 후였다.

“선생님.”

자판 커피로 긴장을 풀 때 안미란이 말을 건네 왔다.

“역시 암은 부담스러운가 봐요? 선생님도 긴장을 하네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어요. 혈자리가 굉장히 작은 환자거든요.”

“어머, 그럼 저번에 과장님이 한 말이...”

“나중에 한 번 짚어보세요. 좋은 공부가 될 겁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방금 혈자리들 말이에요.”

안미란은 궁금한 게 많았다. “폐암 환자인데 왜 그런 혈자리를 잡았는지 물으려고요?”

“네...”

“삼초를 수습해 원기부터 넣느라고 양지혈과 중완혈에 침을 넣었습니다. 백회는 한 세트니까 덤으로 자침한 거고요.”

“그럼 신장과 대장 쪽 혈은요?”

“환자의 폐암 원인이 신장 같아서요. 그 길목을 바르게 하려면 신장에서 대장, 대장에서 폐로 가는 기혈을 살려야 하잖아요. 사전조치였습니다.”

“신장검사결과 보셨어요? 아까 검사 내려서 결과는 아직 안 나왔을 텐데?”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런데...”

“제 진맥으로는 그런 거 같아서요.”

“잠깐만요.”

안미란이 엘리베이터로 뛰었다.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윤도는 개의치 않았다. 검사를 부탁한 건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가끔은 확인도 필요한 법이니까. 대학병원의 좋은 장비는 쓰라고 있는 거니까.

“선생님!”

얼마 후에 안미란이 돌아왔다. 그녀는 거의 폭발직전이었다.

“선생님 말이 맞대요. 검사 낸 거 응급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류수완 환자는 신장에서 체내 산도 평형을 유지하는 실질세포 쪽에 미세 괴사 물질이 발견되었고 구대홍 환자 역시 폐에 작은 종양이 생겼대요. 선생님 말이 아니었으면 무시하고 넘어갔을 사이즈지만 비정상 세포인 건 확실하다고 그래요!”

안미란의 말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드세요.”

윤도가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선생님!”

“이제부터 적의 본진에 한 방 먹어야하거든요. 그러니 그렇게 흥분해서는 곤란하죠.”

윤도가 돌아섰다.

“와아, 이건 정말...”

안미란은 채 수습되지 않은 정신줄을 안고 윤도 뒤를 따랐다. 윤도의 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폐와 신장의 연결은 ‘내경’에도 나온다. 폐에 큰 문제가 있다면 비장이나 신장에도 이상이 나오는 게 맞았다. 그 이상(異常)은 꼭 검사수치나 영상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는 한의학의 가치가 높았다. 기는 현대의학으로 체크하기 어려운 대상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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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헙!’

윤도에 앞서 환자의 혈자리를 짚어본 안미란.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윤도 말이 맞았다. 환자의 혈자리가 만져지지 않았다. 취혈이 쉬운 포인트로 옮겨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조과장과 내과과장도 진맥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들은 한참이나 고개를 갸웃거렸었다.

안미란의 재주로는 가늠할 수 없는 혈자리... 그런데 그런 혈자리에 윤도는 시침을 하고 있었다. 아뜩해진 안미란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윤도가 시침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초긴장의 표정이었다. 단 한 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혈자리이기 때문이었다.

본진에 대한 폭격은 손목 위의 태연혈에서 서막을 열었다. 태연혈은 폐의 원혈. 당연히 짚을 수 밖에 없는 혈이었다. 그 다음이 수삼리였다. 종기의 명혈을 어찌 건너뛸 것인가?

뒤를 이어 공최혈, 족삼리, 삼음경맥과 폐수혈, 신수혈까지 장침을 넣었다. 침에는 영약을 묻히지 않았다. 혈자리의 반응을 읽었으니 장침만으로 넘보는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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