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입니까?”
“어제 저녁...”
“중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보시게. 감히 대인께 무례하지 않은가?”
지켜보던 중의가 태클을 걸고 나왔다.
“무례한 것은 중의십니다.”
윤도가 응수했다.
“뭐라?”
“당신의 진맥이 대인의 이빨이 나는 걸 막았습니다. 그러니 그보다 무례한 짓이 어디 있겠습니까?”
윤도가 눈빛을 세웠다. 강철이라도 뚫을 듯한 시선이었다.
“뭐라? 무슨 근거로 그 따위 망발을?”
“망발 역시 당신에 속하는 말입니다. 대인의 주치의라면 중국에서도 손 꼽히는 중의일진대 이 같은 작태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자가 듣자하니... 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중의가 핏대를 올렸다. 여기는 중국의 상무위원이 머무는 객실. 그것은 곧 여기가 중국 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일. 그걸 믿고 폭주하는 중의였다.
“증거는 이 손입니다.”
윤도가 중의의 손을 낚아챘다.
“아니, 이 자가 정말...”
윤도가 강수를 두자 진 비서가 손짓을 했다. 수행원 둘이 달려와 윤도 팔을 제압했다. 가재는 게 편이다. 그래도 윤도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당신의 이 손... 내 묘방의 냄새가 나거든? 왜 그럴까? 이유는 한 가지야. 당신이 내가 대인에게 준 영약의 일부를 떼어냈기 때문이야. 그 일부 때문에 약효가 모자라 새 이빨이 나지 않은 것이고.”
“뭐라?”
“대인!”
날선 윤도의 시선이 상무위원을 돌아보았다.
“어제 이 중의에게 제 영약을 보여주었습니까? 아닙니까?”
“그, 그건...”
상무위원이 말을 더듬었다. 보여준 것이 틀림없었다.
“보여주고 난 후에 영약을 확인했습니까? 그 전날 먹은 두 개와 표면이 똑 같았습니까?”
“그것까지 확인하지는 않았네만.”
“그 일부가 이 중의에게 있습니다. 이 손에서 나는 냄새가 그 증거입니다.”
“냄새는 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손으로 만졌으니...”
“천만에요. 그 영약은 만지기만 해서는 냄새가 배지 않습니다. 떼고 비비고 부서뜨려야만 냄새가 배죠. 제 말을 못 믿겠으면 대인의 손 냄새를 맡아보십시오.”
“내 손?”
“만져서 배는 냄새라면 대인 손에서 영약 냄새가 날 겁니다. 3일간 영약을 물기 위해 만졌을 테니까요.”
“......”
“부탁드립니다.”
윤도의 목소리는 끝간 데 없이 정중했다. 압도적인 의술 카리스마에 눌린 상무위원이 자기 손 냄새를 맡았다.
흠흠!
“......?”
냄새가 나지 않았다.
“제 말이 맞다면 이 자들을 뿌리쳐 주시겠습니까? 기왕에 벌어진 소란이니 끝을 봐야할 것 같습니다.”
윤도의 턱이 팔을 제압한 수행원들을 가리켰다. 상무위원이 눈짓을 하자 수행원들이 물러섰다. 윤도는 중의의 손을 잡은 채 상무위원에게 다가섰다. 진 비서가 그 앞을 막았다.
“손 냄새를 맡게 해드리려는 것 뿐입니다.”
“비켜드리게.”
윤도 말에 상무위원이 부응했다.
“......!”
윤도 손의 냄새를 맡은 상무위원이 미간을 찡그렸다. 마늘냄새인 듯 고산의 들꽃 냄새인 듯 한 냄새가 아련했던 것이다.
“이제 중의의 손 냄새를 확인해 주십시오.”
윤도가 중의를 밀었다. 중의는 황망해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상무위원이 이미 그 손을 잡은 까닭이었다.
“큼큼!”
상무위원의 코가 두어 번 벌름거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산해경의 영약이었으니 냄새도 남달랐다. 비록 아련했지만 놓칠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쑨 의원?”
상무위원의 눈빛이 도끼날처럼 빛났다.
“당신이 정녕?”
“......”
“내 체면을 망칠 셈이오?”
“대인!”
중의의 눈빛이 속절없이 꺾였다.
“어허!”
한 번 더 호통이 따르자 중의의 실토가 나왔다. 수행원이 그의 객실로 가서 가방을 들고 왔다. 그 안에서 영약의 작은 조각이 나왔다.
“설명해 보시오.”
상무위원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용서하십시오. 새 이빨의 명약이라기에 대인의 안위가 걱정되어 본국에 가서 분석해 볼 생각으로 미량을...”
“안위가 아니라 성분 분석으로 같은 약을 만들려는 생각이었겠지요?”
윤도가 돌직구를 날렸다.
“한의의 말이 사실이오?”
“......”
“허어, 이런 낭패를 봤나? 남의 나라에서 귀인을 만났거늘 그 비방을 시새워해 도둑질하려 하다니...”
“이 일은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한의의 혀에 속지 마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비방이라면 이만한 오차로 이빨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의?”
상무위원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중의는 사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비방이 왜 비방이겠습니까? 치밀한 구성으로 완성한 약재입니다. 비방에서 일부란 새의 칼깃을 잘라내는 것과 같으니 칼깃 잘린 새는 비상할 수 없습니다.”
“이봐, 한의!”
중의가 윤도를 노려보았다.
“대인!”
윤도는 중의를 무시한 채 상무위원을 주목했다.
“뭔가?”
“지금 그 나머지를 물어주십시오. 하늘이 대인께 허락한 묘방이기에 이빨 생성의 완성을 도울 것입니다.”
“지금 말인가?”
“예. 더 늦기 전에...”
윤도의 말은 더 없이 정중했다. 작은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무위원. 어금니의 부분 틀니를 빼내고서 우묵하게 물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윤도와 중의는 칼날 신경전을 펼치며 상무위원을 바라보았다. 윤도의 소망은 새 이빨, 중의의 바람은 No였다. 두 바람이 충돌하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갔다.
30분.60분...
“다 녹은 것 같네만.”
한 시간이 지나자 상무위원이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윤도가 청하자 상무위원이 다시 입을 벌렸다. 이빨이 나는 흔적은 없었다.
“보십시오. 이는 저 한의의 잔꾀에 불과합니다. 그게 진짜 영약이라면 이미 이빨이 났어야했습니다.”
중의가 반격에 나섰다. 상무위원은 손가락을 넣어 잇몸을 확인했다. 잡히는 건 잇몸 뿐이었다.
“한의!”
상무위원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변했다. 윤도에게 나쁜 징조였다.
“아무래도 이빨 건은 우리 중의 말이 맞는 것 같소만?”
“그건...”
“이 일의 시작이 이 회장이니 이 회장에게 따로 묻겠소. 한의는 돌아가시오.”
“대인...”
“내가 어리석었소. 이 나이에 새 이빨이라니...”
“대인...”
“한의를 밖으로 모시고 이 회장에게 핫라인을 연결하도록.”
상무위원이 잘라말했다. 두 수행원이 다가와 윤도의 양팔을 제압했다. 진 비서가 핸드폰 번호를 눌러 상무위원에게 건네주었다.
‘젠장!’
낭패감이 머리를 치고 갔다. 일이 꼬여버렸다. 그것도 단단히 꼬였다. 지금쯤 춘풍을 기대하고 있을 이 회장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시도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일이 될 꼴이었다.
그런데...
“억!”
전화를 넘겨 받은 상무위원이 비명과 함께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대인!”
진 비서가 달려들었다.
“어억!”
상무위원은 턱을 주무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자 벌어진 입에서 혈흔이 밀려나왔다.
“부작용인가 봅니다. 비키세요.”
중의가 다가섰다.
“잠깐...”
상무위원이 손을 내밀었다. 진료를 하려던 중의가 주춤 물러섰다. 상무위원은 쯥쯥 소리를 내보더니 손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
이번에는 반대편 잇몸을 만져보는 상무위원. 한 번 더 피를 내뱉더니 책상의 손거울을 잡아당겼다.
“......?”
입을 벌려본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 어린 아이처럼 윤도를 향해 순한 말 한 마디를 던졌다.
“이빨이 난 거 같소.”
“......?”
<이빨이 난 거 같소.>
그 한 마디로 분위기가 급변했다. 수행원들은 윤도의 팔을 놓았고 윤도는 상무위원에게 다가섰다. 입을 벌리고 확인했다. 보였다. 혈흔 사이로 봉긋 고개를 내민 새 이빨의 흔적들. 몇 번을 봐도 그건 이빨이 분명했다. 영약이 비로소 통한 것이다.
‘아자!’
윤도는 내심 주먹을 쥐고 쾌재를 불렀다.
“대인!”
한 걸음 물러선 윤도가 정식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축하드립니다. 과연 영약의 주인이셨습니다.”
“한의...”
상무위원은 경련하는 손으로 거울을 잡았다. 하얗게 올라온 이빨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상무위원.
“오오오!”
그는 비명 같은 경탄을 터트리며 윤도 손을 잡았다.
“고맙소. 진심으로 고맙소.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명의요, 명의!”
상무위원은 윤도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 뒤에 선 중의 쑨취앤의 얼굴은 지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철심석장(鐵心石腸)’
쑨취앤의 머리를 치고 들어온 단어였다. 쇠 같은 마음에 돌 같은 창자라는 뜻으로, 지조가 강철 같아 흔들림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 쑨취앤은 속절없이 그 단어만을 곱씹어댈 뿐이었다.
**
“채 선생님!”
창가 테이블의 부용이 손을 흔들었다. 호텔 라운지의 레스토랑은 품격이 넘쳤다. 거기 이 회장이 있었다. 윤도의 연락을 받은 부용은 저녁 스케줄을 취소하고 달려왔다. 이 회장도 그랬다.
“채 선생.”
자리에서 일어선 이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마주 잡는 손은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자오후닝 상무위원 비서에게 연락을 받았네. 수고 많았어.”
“한의사로서 환자를 도운 것 뿐입니다.”
“그냥 환자가 아니지 않나? 무려 새 이빨이 난 일이야. 의치도 아니고...”
“아무튼 잘 되어서 다행입니다.”
“대인이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더군. 내일 본국으로 가기 전에 한 턱낸다고 초대까지 했다네. 감이 아주 좋네.”
“예...”
“아버지.”
부용이 슬쩍 눈치를 주었다. 이 회장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서 있는 걸 알았다. 그만큼 엄청난 성과를 이룬 윤도였다.
“어이쿠, 내 정신머리... 앉게. 앉자고.”
이 회장이 윤도에게 자리를 권했다. 부용의 옆이었다.
“대인께서 채 선생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더군. 의술도 의술이지만 신념어린 카리스마에 놀랐다며...”
“별일 아니었는데...”
“지난번 일화는 김 전무에게 들었네만 오늘은 무슨 일이었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흔히 생기는 의심 같은 겁니다.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완전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대략 이해는 가네. 이빨이 난다는 거, 쉽게 믿기 어렵지 않겠나?”
“......”
“대인 말로는 중국에서 난다긴다 하는 중의까지도 채 실장이 혼쭐을 냈다고 하던데?”
“그건 과찬이시고 진료 참견을 하길래 몇 마디 해준 것 뿐입니다.”
“좋아.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태산전자의 의무실장이지.”
이 회장의 표정은 끝간 데 없이 뿌듯했다.
“아버지, 이제 그만하시고 채 선생님 술이라도 한 잔 드리세요. 큰 일 한 분을 모셔놓고...”
다시 부용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놀라서 이러는 거 아니냐? 내 비즈니스에서 미인계니 이간계니 하는 들어봤어도 의술계는 처음이구나. 그러다 보니...”
꼴꼴꼴!
샴페인이 따라졌다. 투명한 황색을 띄는 빛은 저절로 달콤해 보였다. 빛나는 전공 뒤의 한 잔. 술이 백약(百藥)의 으뜸이라는 건 이럴 때를 위한 말이었다.
환상의 혈자리.
환상의 혈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