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265)

병을 고치면 죽는 남자-1

병을 고치면 죽는 남자-1

딸깍!

상담실에 들어섰다. 잠시 불을 켜지 않았다. 대충 가운을 걸치고 차트를 펼쳤다. 두 남자가 나왔다. 둘이 합쳐 11번의 이혼을 한 사람들... 소위 고개숙인 남자들. 바람 빠진 튜브가 어떻게든 채워지지 않는 남자들...

‘마지막...’

윤도는 생각했다. 이 두 환자가 연수생활의 마지막 환자가 될 것 같다고. 그렇기에 두 암 환자처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발기불능>

한방에서는 양위(陽痿)라고도 한다. 무슨 그라가 나오면서 양위의 고민도 많이 해결되었다. 그 덕분에 보양식 시장도 거센 변화가 불어 닥쳤다. 해구신이며 뱀탕, 보신탕 등의 수요가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남자들은 무슨 그라에 만족하지 못했다. 우선 구매 과정이 그랬다. 무슨 그라를 사려면 의사의 진단을 받아야했다. 그 과정이 싫었다.

나 고개 숙인 남자요.

그 말은, 같은 남자 의사에게 하기 싫은 사람도 많았다. 그 자존심은 약국에서 또 한 번 결정타를 받는다. 아무래도 다른 약 받을 때보다 편치 않았다. 혹 눈치 없는 약사가 약 이름을 말할 때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도 많았다.

그걸 노린 짝퉁들이 활개를 쳤다.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구한 약들이 정품과 같을 리 없었다. 부작용 뉴스를 들으면 겁이 났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무슨 그라를 먹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심장질환이었다. 그러다 보니 최고의 방책으로 회춘이 꼽혔다. 약 없이 홀로 설 수 있는 법. 발기불능의 사유야 하고 많지만 갱년기나 심신쇠약, 노화 등의 원인도 많은 까닭이었다.

‘한참 때는 연타로 더블 헤더 등판도 가능했는데...’

‘구장에 따라 하루 대여섯 번도 등판도 가능했는데...’

그 왕성하던 회춘을 꿈꾸는 사람은 의외로 많았다. 평균수명이 확 늘어난 까닭이었다.

남자들은 그렇다. 한참 때는 생각하지 못하지만 나이가 들면 간절해지는 것. 소방호스처럼 빡세게 나가는 오줌발과, 원하는 곳에서 발딱 일어서는 자존심... 그 ‘소박’한 원초를 되찾고 싶은 것이다.

고환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뭉긋하게 우러나오는 통증. 때때로 신경이 쓰이는 ‘알 덩어리’의 아픔. 그 또한 말 못할 고민에 다름 아니었다.

오전은 시침 오후는 약재와 미용침, 치료사례 연수.

남은 시간표를 쪼개 시침에 나섰다. 이제 연수의 막바지. 위상이 높아지면서 병원 생활이 즐거워졌지만 머잖아 이별이었다. 정들만 하면 떠난다더니 그 말이 딱이었다.

선택된 차트의 환자들 병실을 돌았다.

이명 환자는 귀 옆의 이문, 천궁, 청회혈을 잡았다. 귀는 신장에 속하기에 신주혈과 신수혈에도 장침을 넣었다. 신(腎)을 따라가면 귀가 나오는 법이다.

한 불면증 환자에게는 일침사혈이 들어갔다. 손목의 신문혈에서 음극, 통리를 지나 영도혈에 다다른 것이다. 이 환자에게는 신경쇠약까지 있었으니 명침이 될 혈자리였다.

산후어혈 환자는 기문에 장침을 넣었다. 본시 기문은 뜸자리로 좋은 곳이다. 그렇기에 화침으로 들어갔다. 윤도의 손가락이 알아서 조절해싿. 기문혈은 간경의 모혈로 간 질환과 소화기 병에도 특효로 꼽힌다. 환자의 어혈은 시원하게 내려갔다. 기문이 간경이고 간경은 생식기와 연결된 까닭이었다.

병실을 돌며 환자를 시침했다. 모두 일침즉쾌였다. 자기주도로 하는 시침이니 거칠 것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윤도가 가는 병실마다 인사 꽃이 피었다. 마음을 데우는 꽃이었다.

인사의 마지막은 원인불명의 두통을 달고 사는 환자였다. 세상에는 작은 고질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조금 참으면 된다는 이유로 삶의 질을 망가뜨리는 작은 고질병들... 진료가 끝난 차트를 안미란에게 넘겼다. 이 병원 모든 환자를 돌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여기예요.”

안미란이 발기부전 환자 병실을 가리켰다. 이제 남은 차트는 딱 둘이었다.

“안녕하세요?”

윤도가 작가 환자에게 인사를 했다. 책을 보던 남자가 윤도를 돌아보았다.

[님의 침묵.]

[바람과 하늘과 별과 시.]

오래 된 시집들이었다.

“채 선생님?”

환자가 반색을 했다.

“저 아세요?”

윤도가 묻자.

“그럼요. 소문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하고 혼자 웃는 작가. 중후한 미소가 장년의 멋을 느끼게 해주는 남자였다. 반면 몸은 부실해 보였다. 얼굴은 검고 자주 무릎을 주무르는 데다 머리카락에 윤기도 없었다. 신장이 굉장히 나쁘다는 반증이었다.

“시범치료 케이스로 장침 좀 놔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아이고, 괜찮다마다요. 로또 맞은 기분이네요. 지금 맞을까요?”

작가는 행여 행운을 놓칠까 옷 벗을 자세부터 취했다.

“진맥부터 좀 보겠습니다.”

“그러세요. 얼마든지.”

작가가 손을 내밀었다.

“......”

진맥으로 오장을 살폈다. 비장과 간장은 괜찮았다. 예상대로 신장과 전립선 문제였다.

“가슴 아파요?”

“네.”

“배도 가끔 아프죠?”

“네.”

작가는 신음허(腎陰虛)로 보였다. 음허는 장부에 음양의 음(陰)이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인간은 본래 음양을 바탕으로 태어난다. 양기는 크게 부족함이 없지만 음기는 늘 부족한 편이다. 그걸 주장한 사람이 원나라의 명의 주진형이었다. 창작이나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은 이 음으로 인한 질병을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오장을 해치는 오로증이 다 걸릴 수 있다.

[아이디어를 짜느라 신경을 너무 쓰다보면 간로.]

[생각이 많아 심장이 약해지면 심로.]

[실현될 수 없는 일에 집착하다보면 비로.]

[미래의 일에 근심걱정이 지나치면 폐로.]

[프라이드와 지조에 지나치게 연연하다 신로...]

이러다보면 발기불능에 정액이 저절로 나오거나 양이 줄고 소변을 봐도 오줌빨이 신통치가 않다.

<신음허에서 시작된 전립선염에 의한 발기부전.>

진단이 나왔다.

전립선...

선조직과 근육조직으로 이루어졌다. 그 비율은 보통 2:1이다. 그러나 비대가 일어나면 비율이 역전되어 1:5 정도로 변한다. 이 비대는 전립선의 중엽과 측엽에서 일어난다. 암은 후엽에서 잘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립선이 커지면 당연히 요도가 압박을 받는다.

‘신수, 기해, 곡골, 삼음교...’

자침 혈자리를 찾아냈다. 그런 다음 기왕의 치료차트를 확인했다. 진단 자체는 비슷했다. 다만 자침 혈자리는 달랐다. 조 과장의 침은 기해, 차료, 신문, 삼음교로 들어갔다. 기해혈은 뜸이었다. 처방된 약은 기양신기전이다. 신음허를 보하는 탕제이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신장은 왜 망가졌을까? 작가이기에 베스트셀러작품 부담에 스트레스 빵빵 받아서? 물론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진짜 원인은 다른 데 있었다.

“혹시 냉수욕 좋아하세요?”

“어, 어떻게 아셨어요?”

찬물 속에 오래 참고 있거나 습기가 많은 땅에 오래 앉아 있어도 신장은 상한다. 그렇기에 신장이 나쁜 사람은 물 온도가 낮은 날 해수욕도 좋지 않다. 차트에 없는 걸 윤도가 처음으로 알아낸 것이다.

“그게 집중이 잘 안 되어서 정신 좀 차리느라고... 그리고... 항간에 정자 생산온도가 체온보다 낮은 34도 쯤 된다고 고추를 찬물로 씻으면 정력이 강해진다는 말도 있고...”

“그런 걸 다 믿으셨어요?”

“......”

“찬물 샤워가 필요하면 짧게 하세요. 오래 참고 있는 건 신장을 망치는 일이에요. 신장은 수(水)에 속하고 원래 차가운 성질이기 때문에 차게 하면 좋지 않습니다. ”

“네.”

“소변 볼 때 뻐근하시죠? 물을 마시거나 샤워 같은 걸 해도 요의가 느껴지고 소변줄기는 자주 끊기고요?”

“네.”

“짝퉁 정력제 같은 거 드셨었어요?”

“···예.”

“그런 것도 함부로 드시면 안 됩니다. 자칫하면 전립선이 펑!”

윤도가 폭발 흉내를 내자 환자가 움찔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장의 기혈이 쪼그라들었을지언정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점. 윤도에게는 가능성이 분명했다.

“침 놔드릴 게 엎드리세요.”

윤도가 장침을 뽑았다. 첫 타겟 혈자리는 신수혈이었다. 신수혈은 양손으로 허리를 잡았을 때 엄지가 닿는 곳에서 1-2cm 위에 위치한다. 자주 눌러주면 건강에 좋은 혈이다.

한방에서 신수혈은 음이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환자는 음이 부족하므로 그 문부터 열어놓았다.

덜컥!

덜컥!

가능한 한 활짝 열었다.

30분 후에 발침하고 복사뼈 위의 삼음교와 허벅지의 삼황혈에 장침을 넣었다. 삼음교와 삼황혈 모두 신장에 관여하는 혈자리였다.

작가의 시침은 그렇게 끝났다.

그런데...

두 번째 환자인 가수는 처방이 많이 달랐다. 진맥을 오래했다. 문진도 많았다. 시침 역시 임맥의 관원혈을 중심으로 10여 개도 넘는 장침이 꽂혔다. 상료와 차료에도 넣었다. 다른 건 개수만이 아니었다. 사실 이 장침은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었다. 허장성세(虛張聲勢)다. 알고 보면 그들 중 딱 하나만 제대로 된 시침이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환자는 대중가수라는 직업답게 굉장히 사교적이었다. 진료하는 동안에도 안미란에게 추파를 던졌다. 간호사에게도 그랬다. 윤도는 그가 내미는 음료수를 사양하고 치료를 끝냈다.

“저기...”

가수가 게슴츠레 윤도에게 다가앉았다.

“말씀하세요.”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제가 지금 20대 연하의 후배를 만나고 있는데...”

“......”

“다음 달에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과장님에게도 드린 말인데 그때까지 차도가 좀 생길 수 있을까요?”

“......”

“이거 남자 가오가 있지 어렵게 사귄 여자인데 존슨이 새끼손가락 각으로 나와 거사를 망치면...”

가수가 손가락을 쫙 펴보였다.

손가락...

흔히 손가락에 빗대 발기력을 설명한다. 엄지는 10대, 검지는 20대... 아래로 축 쳐진 새끼손가락은 50대 이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발기는 왜 중요할까? 성관계를 떠나 발기가 되어야 혈액공급이 무난해진다. 발기 되지 않는 거시기는 미량의 혈액만을 공급 받는다. 이렇게 되면 거시기의 근육은 콜라겐에게 서서히 밀려난다. 이 콜라겐이 거시기를 구성하는 근육의 7할이 넘으면 완전한 발기불능이 된다. 좋게 보면 사리 나오는 수도자들과 같은 경지(?)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평범한 수컷들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

내 얘기잖아?

···하고 기겁할 필요는 없다. 다행히 거시기는 은밀한 고독을 좋아하니 그 시간이 새벽이다. 평상시 발기가 되지 않는 사람도 새벽의 두세 시간 동안 저 홀로 불이 들어온다. 이때 산소와 영양을 공급 받는다. 이에 대한 확인은 얇은 테이프를 붙이고 자보면 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테이프가 끊어져 있다면 그가 새벽 산책을 다녀갔다는 증거가 된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윤도그 그 말로 답을 대신했다.

하루.

이틀.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윤도의 연수 마감을 하루 앞둔 날...

병을 고치면 죽는 남자-2

병을 고치면 죽는 남자-2

“선생님!”

장침을 들고 나올 때 안미란이 커피를 내밀었다.

“웬 거예요?”

“내일도 인사할 기회가 있겠지만 시침은 안 하실 테고... 가운 입고 뵙는 것도 마지막 같아서요.”

“작별인사군요?”

“여기도 있어.”

옆에서 송재균이 팔을 겹쳐왔다. 또 한 잔의 커피였다. 그것말고도 커피는 많았다. 시침실의 백 간호사와 이 간호사가 그랬고, 구대홍과 류수완 등의 환자가 그랬다. 건강하게 자연분만에 성공한 산모도 직접 커피를 들고 왔다. 그 많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고 시침에 나섰다. 아직은 연수의 끝이 아니었다.

“선생님!”

윤도가 들어서자 작가가 반색을 했다. 그는 환자복 하의를 들추고 거시기를 보는 중이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에 젊을 때 이후 처음으로 변기를 뚫었습니다.”

환자의 목소리가 높았다. 어제 비로소 다르게 들어간 장침. 기해와 곡골, 삼음교혈자리를 차지한 침이 일침즉쾌를 부른 모양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윤도를 당겨 귀엣말을 해주었다.

-새벽에 여기 불이 제대로 들어왔어요.

-민망하지만 조금 전 저 앞 환자 문병객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왔는데 그걸 보고서도 벌떡...

-그래서 친구 놈들이 보내줬던 야동을 보았는데 거기서도 벌떡...

작가가 얼굴을 붉혔다. 변기를 뚫은 건 오줌발이 세졌다는 뜻이었다.

“침이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냉수욕 짧게 하시고 운동 적절하게 하세요. 토마토 같은 것도 즐기시고요.”

토마도는 전립선의 명약이다. 토마토가 많이 팔리면 의사들 주머니가 가벼워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걱정마세요. 내가 다른 의사들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무조건 들을 겁니다. 저 이제 그 사람에게 청혼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진짜 명의시네요. 명의 같은 건 소설에나 나오는 단어로 알았는데...”

작가는 좋아 어쩔 줄을 몰랐다.

신수혈 집중 공략 덕분이었다. 음기의 문을 활짝 열어 음을 채웠다. 그 다음에 전립선을 공략했다. 음의 에너지를 등에 업은 혈자리들은 마침내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시든 꽃에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두 달 쯤 후에 오셔서 같은 시침을 받고 가세요. 그럼 오래 괜찮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작가의 병실을 나왔다.

“역시 선생님.”

안미란이 엄지를 세워주었다. 윤도의 쾌거는 늘 그녀의 긍지였다.

다음에는 가수 차례였다. 이번에도 물량 공세의 장침을 꽂았다.

“어떠세요?”

윤도가 가수에게 물었다. 안미란은 청각을 곤두세웠다. 어쩌면 그의 물건은 ‘완치’에 도달해 속옷을 뚫고 나왔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고환 아픈 건 나은 거 같은데 거시기는 불이 들어오려다...”

환자의 대답은 시들했다.

“고질병이라 금세 낫지 않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계속 맞으시면 차츰 호전될 겁니다.”

“그게 얼마나 걸리는 데요?”

“한 6개월은...”

“으억, 6개월 씩이나?”

“그 안에는 자위나 몽정도 안 됩니다. 야한 생각 하시면 치명적이니까 가급적 생산적이거나 활동적인 일을 하면서 성에 대한 욕망은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유럽여행은요?”

“힐링 여행으로 가시면 안 될까요?”

“나는 이걸 써야 진정한 힐링인데...”

가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벌거벗고 있던 20살 차이 영계가 옷을 입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겹쳐 입은 옷은 눈밭을 굴러도 될 정도였다. 가수의 섹스여행은 그렇게 물 건너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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