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77/265)

“으아, 진짜 폭망이네. 침술 명의라기에 기대했더니...”

가수의 몸서리가 병실을 울렸다.

“그럼 시범 시침은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윤도가 돌아나왔다. 안미란은 황당했다. 앞선 작가에 비해 더 많은 투자를 한 장침. 그런데 고환의 차도 외에는 거의 없다니...

“선생님.”

안미란이 쫓아나왔다.

“왜요?”

윤도가 돌아보았다. 묻고 싶은 말을 안다는 눈치였다.

“저 모르는 뭔가 있죠? 그렇죠?”

“맞아요.”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요. 좀 알려주세요.”

“공기가 안 좋은데 잠깐 바람 쐬러 갈래요?”

**

윤도는 병원 산책로로 나왔다. 초록이 좋았다.

“이제 말해주세요. 뭐죠?”

안미란이 윤도를 재촉했다.

“사실 저는 두 사람 다 좋은 결과를 안겨주었어요.”

윤도가 잔잔하게 웃었다.

“두 사람 다라고요?”

“한 사람은 성기능장애를 바로 잡아주었고, 또 한 사람은 머잖아 죽을 목숨을 세이브 시켜주었거든요.”

“죽, 죽어요?”

안미란이 하얗게 질렸다.

“네.”

“어, 어째서요?”

묻는 안미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첫번째 환자는 발기부전이지만 신 그 자체는 괜찮았어요. 음기만 보충되면 될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신수혈 문을 활짝 열어 음을 잘 받을 수 있게 해주었지요. 그 후에 전립선 비대를 잡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그 분은 이제 한 10여 년 부부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소변도 찔끔거리지 않고 잘 보고요. 그 후의 일은 저도 모르죠. 나이도 있고, 또 어떤 일상을 살아갈지 모르니까요.”

“두번 째 환자는요?”

“그 환자는 앞 환자와 근본이 달랐어요. 신의 정기가 바닥까지 피폐해졌거든요.”

“피폐?”

“맥 잡아보셨어요?”

“네...”

“신기(腎氣) 어땠어요?”

“좋지는 않았어요.”

“삼음교혈 봤어요?”

“거기까지는...”

“삼음교는 3개의 음경락이 교차하는 혈자리잖아요. 비장, 간장, 신장으로 통하는 3개의 음경락이 지나가지요. 비뇨생식기가 안 좋으면 움푹 들어가는데 거짓말 좀 보태서 싱크홀 수준이었어요. 당연히 석맥도 문제였고요.”

“선생님 장침으로도 안 되는 건가요?”

“아뇨. 크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혹시 편작 아버지의 천식 일화를 아세요?”

“네...”

“거기 보면 일병장수(一病長壽)라고 편작이 아버지의 천식만은 제대로 고치지 않고 살지요. 그러다 편작이 며칠 왕진을 가면서 제자에게 천식약을 주며 부탁을 하고 가요. 제자가 보니 스승 아버지의 천식은 별 게 아니었습니다. 해서 스승의 인정을 받을 욕심에 천식을 고쳐버리지요. 하지만 돌아온 편작은 아버지의 천식이 나은 걸 보고 대성통곡을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제 곧 돌아가실 거라며 말이죠.”

“그것과 이 것이 무슨 관계가 있어요?”

“두 번 째 환자... 색정에 넘치는 사람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 환자는 병원에 오기 전까지 날마다 성관계를 했을 겁니다. 일 년 365일 365회 이상... 여자가 없으면 자위로라도... 요즘 말로 치면 셀프 디스겠네요. 그것도 치명적인.”

“......”

“작가는 성관계를 못해서 이혼을 당한 것이고 가수 환자는 너무 들이대고 밝혀서 이혼을 한 케이스입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펑, 전구가 나가듯 신장의 정기가 바닥이 난 거죠.”

“어머.”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관계를 잊겠지만 고치게 되면 이성을 상대로, 혹은 하루 두 번 세 번 자위를 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 분은 발기불능이 해결되면 올 해 안에 죽게 됩니다.”

“......!”

“그래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만 치료를 한 것입니다. 장침을 많이 꽂은 것도 그 이유죠. 최선을 다했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미련 때문에 다른 병원에 기웃거리지 않도록.”

“선생님!”

“편작 흉내를 낸 꼴인가요? 하지만 발기불능이라고 해도 죽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게다가 그 분은 이미 원 없이 섹스를 해본 사람이니...”

“이제 보니 여기로 나가자고 한 것도 복도에서 말하면 행여 환자가 들을까봐 그러셨군요?”

“네.”

선생님...”

안미란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상상불허.

그 단어가 실감이 되었다. 명의가 되고 싶던 안미란. 명의들이 우글거린다는 광희한방대학병원.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안미란의 눈에는 딱 한 사람의 명의만 보였다.

윤도였다.

그만이 진정한 명의였다.

먼 산을 바라보는 윤도의 시선은 비어 있었다. 기왕이면 그 넘치는 욕정까지 고쳐야했던 윤도. 그게 살짝 아쉬웠다.

윤도의 연수는 그렇게 마감을 했다.

**

마지막은 도톤보리 초밥집이었다. 자궁근종을 앓던 환자의 초밥집. 분당에 자리한 초밥집은 깔끔한 북해도풍이었다. 일행은 많았다. 유수미가 인원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수련의들과도 식사 정도는 함께 하고 싶었던 윤도. 모두를 이끌고 초밥집을 찾았다.

“여기예요?”

초밥집 앞에 내린 안미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밥집은 외관부터 깔끔했다.

“이야, 보통 초밥집이 아니네.”

송재균도 살짝 긴장 모드에 돌입.

“유명 인사들이 다닌다잖아요? 검색해 보니까 연예인들하고 스포츠 스타들 단골이 굉장이 많더라고요.”

안미란은 벌써부터 기대만빵이었다.

“들어가시죠.”

윤도가 부원장에게 권했다.

스릉!

문이 열렸다. 자동문이었다.

그런데...

윤도 일행은 안으로 들어서지를 못했다. 불이 없는 것이다.

“어머, 오늘 안 하시나?”

안미란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실내에 불이 켜지켜 뻥뻥 꽃술이 터졌다.

“환영합니다. 채윤도 선생님,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

그제야 유수미가 나왔다. 그녀의 이벤트였다.

하지만 윤도 일행은 또 한 번 놀랐다. 안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채 선생님 일행만 모시기로 했습니다.”

유수미가 말했다.

그녀가 신호를 보내자 직원들이 카트를 밀고 나왔다. 드라이아이스의 연기 속에는 엄청난 회감들이 놓여있었다. 초대형참치살을 필두로 다금바리, 민어, 돌돔, 꽃새우... 나아가 털게와 성게, 킹크랩 등등 산해진미의 집합이었다.

“와아.”

“으아, 초특급 회감들만 모으셨네?”

안미란과 송재균 등이 자지러졌다.

“착석하시죠.”

유수미가 자리를 가리켰다. 그녀는 윤도와 일행의 착석을 일일이 도운 후에야 주방에 자리를 잡았다. 모자까지 눌러쓰자 사람이 변했다. 환자 유수미의 흔적은 간 곳 없고 최고의 요리사가 된 것이다.

“원하시는 대로 쥐어 드리겠습니다.”

사시미칼을 잡은 유수미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주인공은 채윤도. 지체 높은 부원장도, 조 과장도 아닌 것이다.

“쉐프께서 가장 자신 있는 것부터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윤도가 그 뜻을 받았다.

“다른 분들은요?”

유수미가 부원장과 조 과장, 수련의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우린 부록이니 채 선생 따라가리다.”

부원장이 대표로 말했다.

차착!

고수의 손길은 달랐다. 초밥 쥐는 손은 윤도의 장침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드세요.”

첫 초밥이 나왔다. 유수미의 마음이 나왔다. 초밥을 먹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윤도 마음에 들어왔다. 많은 것을 배운 연수 생활. 최고의 초밥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니...

“잘 먹겠습니다아!”

안미란의 목소리는 여전히 명랑했다. 가만히 초밥을 물었다. 우물거림을 따라 황홀함이 혈관으로 번져갔다. 고진감래의 끝은 이토록 달콤했다. 참치뱃살이 입에서 녹고 꽃새우 살이 눈처럼 퍼지며 피로를 덮어주었다.

사르르.

사르르.

달콤하게 달콤하게.

위대한 포기-1

끼익!

다음 날, 윤도가 병원 앞에 닿았다. 차에서 내렸다. 흰 빛이 눈부신 스포츠카였다.

“......!”

복도 창에서 내다보던 안미란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싱그러운 캐주얼 차림으로 내리는 한 사람. 분명 윤도였다.

“선생님.”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윤도를 맞았다.

“굳모닝, 안 선생님.”

“저거 선생님 차였군요.”

“네?”

“스포츠카 말이에요. 저번에도 보기는 했는데...”

“아, 네. 오늘 볼일이 많아서 부득 타고 왔어요.”

“세상에...너무 멋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선생님... 이제 정말 가시네요.”

“왜 그래요? 사람 무안하게... 마 선생님, 송 선생님 지금 계시죠?”

“네...”

안미란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새 정이 들어 헤어지기 싫은 눈치였다.

“저 부원장님하고 과장님께 인사 좀 드리고 내려올게요.”

윤도가 돌아섰다.

부원장은 가뜬하게 윤도를 맞았다. 조과장도 그랬다.

“바쁘겠지만 침술 논문 좀 많이 내라고. 나도 공부 좀 하게.”

조 과장은 첫날과 달랐다. 이제는 윤도를 닥치고 신뢰하는 그였다. 마혁과 송재균 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찰칵!

사진을 찍었다. 부원장과 과장급 스태프들이었다.

찰칵!

수련의들과 일동 한 방 박았다.

찰칵!

고맙다고 인사하는 환자와 간호사들과도 찍었다.

찰칵!

안미란의 요청에 의해 단둘이 한 장 추가했다.

남는 건 사진 뿐?

그렇지는 않았다. 윤도에게 남은 건 보람이었다. 짧고도 길었던 연수생활은 그렇게 마감이 되었다.

“선생님...”

울먹이는 안미란에게 선물 하나를 받았다. 윤도도 보답 선물을 주었다. 그녀를 위해 준비해둔 마함철 장침 세트였다.

“나중에는 나보다 잘 놓게 될 거예요.”

따뜻한 말로 그녀를 응원했다. 호기심이 많은 그녀, 머잖아 좋은 한의사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고 쉴 틈은 없었다. 그길로 장 박사의 장백한방병원으로 날아갔다. 노 차관과 약속된 침술 예약 때문이었다.

“아이쿠, 나는 채 선생이 안 올까봐 애가 다 탔어요.”

차관은 아들 노정명과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노정명도 인사를 보탰다. 목소리는 문제가 없었다.

“목소리 괜찮지?”

윤도가 체크 멘트를 날렸다.

“선생님 덕분에 완치입니다. 저 얼마 전에 오디션도 봤어요.”

“결과는?”

“합격이죠. 이제 2차만 남았습니다.”

“시작할까요?”

간호사에게서 가운을 받은 윤도가 차관에게 말했다. 노정명은 나가고 장 박사만 남았다. 윤도가 준비한 장침은 여섯 개였다. 제일 먼저 등의 견중수와 고황을 겨누었다. 두 침은 일침투혈로써 좌우 대칭으로 넣었다. 이 침은 눈 질환에 많이 쓰는 혈이었다.

다음으로 요삼침으로 불리는 혈자리 세 개를 잡았다. 역시 등 쪽에서 허리 부분에 위치하는 신수혈이었다. 명문을 중심으로 좌우 신수혈에 대칭으로 장침을 넣었다. 그 조율은 신수혈 가운에 위치하는 명문혈에서 했다. 허리 전체의 기혈 조화를 맞추는 것이다.

사삭.

사사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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