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와아...”
아이의 엄마와 보호자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윤도의 침은 이미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남은 두 아이의 부모들은 깍지 낀 손을 풀지 못했다. 차곡차곡 차도를 보인 앞의 두 아이. 이제는 이 보호자들의 아이 차례가 온 것이다.
콜록콜록쿠얼럭!
세 번째 아이 입에서 발작적 기침이 쏟아졌다. 아이 엄마는 온 시선을 윤도의 장침에 집중했다.
‘천식이 강한 아이...’
윤도는 이미 그 혈자리를 알고 있었다. 복부의 거궐과 기해에 침이 들어가자 발작기침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남은 침 하나는 예정된 자리가 있었다. 바로 양문혈이었다. 침이 들어가자 눈물 범벅이었던 아기가 방긋 웃었다.
“상아야!”
엄마는 차라리 오들오들 떨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액션은 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윤도 때문이었다. 침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그 모습. 그거야 말로 지상 최고의 숭고함, 신의의 강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아이, 푸른 변을 종종 보죠?”
윤도가 추가로 물었다.
“네...”
엄마가 대답했다. 발침한 후에 명문혈에 보너스 침을 넣었다. 명문혈이 살짝 부어있음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명문혈은 어린 아이가 푸른 똥을 쌀 때의 특효혈이기도 했다.
“내일부터는 괜찮을 겁니다.”
윤도가 웃었다.
“......!”
뒤에서 넘겨보던 용 피디는 피가 역류하는 걸 느꼈다.
‘뭔가 잘못됐다.’
그제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하지만 팀을 투입할 수 없었다. 촬영종료가 선언되면서 화장실이며 휴식을 위해 흩어진 까닭이었다.
그의 눈에 보조직원이 들어왔다.
‘오, 마이 갓.’
피디는 또 한 번 피가 역류했다. 구세주였다. 그가 핸드폰 촬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찍어.>
화면으로 문자를 보여주고 뛰었다. 곳곳에 흩어진 팀을 규합했다. 아직 환자 한 명이 남아있었다. 촬영팀이 카메라를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지급이야, 시청자 투표 잠시만 미뤄줘.”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잘 부탁합니다.”
마지막 아이. 그 보호자가 윤도에게 고개를 숙였다. 윤도는 인사를 받고 환자 앞에 섰다. 보호자의 벌써 많이 울었다.
다섯 아이들 중의 마지막이었다. 다 놀라운 차도를 보였으니 기대가 큰 것이다.
<해수욕 같은 걸 시켰죠?>
<아이가 짠 음식을 잘 먹죠?>
진맥할 때 윤도가 물은 질문이었다. 다 그렇다는 말이 나왔었다. 신장 기혈이 나쁜 사람에게 해수욕은 쥐약이다. 아주 좋지 않다. 하물며 어린 아이임에야... 짠 음식도 마찬가지다. 신장 기혈이 나쁘면 짠 음식을 선호한다.
윤도가 정신을 모았다. 이 아이가 마지막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혈자리 때문이었다. 이 아이의 혈자리는 변칙이었다. 일렬로 서지 못하고 군데군데 삐져나간 것. 그렇기에 혈자리 잡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불규칙 속의 규칙을 파악해 나갔다. 그 후에야 장침이 들어갔다. 폐수혈과 풍문혈이었다. 뜸을 뜨는 듯 한 화침이었다. 신장은 이미 조치를 했으니 천식을 때려잡으려는 것이다.
퐁퐁!
윤도는 들었다. 아이의 혈자리가 장침을 받아들이는 소리. 미리 신주혈과 신수혈, 명문혈의 기혈을 왕성하게 조치했기에 들을 수 있는 연주음이었다. 그 소리 하나마다 피로가 쭉 밀려 내려가고 보람이 올라왔다. 자신의 치료에 대한 확신. 그건 모든 의술이 꿈꾸는 최고의 가치였던 것이다.
풍문혈에서 마침내 대미를 장식했다. 좌기우혈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콜록콜록!
이 아이 역시 목이 터질 듯한 기침을 쏟았지만 이내 잦아들었다.
콜록.
콜...
기침이 멈췄다. 윤도는 보았다. 그 아이 얼굴에 어리는 헤이싼시호 아이의 얼굴. 그 시린 빛은 분명 웃고 있었다.
“엄마...”콧물을 들이마신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왜?”
“목이 편해졌어. 흠흠... 콧물도... 그리고 몸도 안 가려워.”
아이의 소리 또한 더 이상 쌕쌕거리지 않았다.
“아아아...”
엄마는 비명을 내며 주저앉았다. 저주 받은 아토피까지 효과를 본 것이다.
“왜? 이제 엄마가 나대신 걸렸어?”
“아니, 아니...”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 마지막 침을 뽑아낸 윤도가 휘청 흔들렸다.
“선생님!”
엄마들이 몰려들어 윤도를 받쳐주었다.
“의자요.”
“물 여기 있어요.”
“수건도요.”
엄마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윤도에게 소용이 될 것들을 내밀었다. 할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덜컥 떼어주고 싶은 그녀들이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전부 다 받아들었다.
벌컥벌컥.
생수 한 병을 그 자리에서 원샷했다. 명의열전... 물 건너갔다. 윤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이 장면들. 명의열전에 출연하는 기쁨 이상이었다.
“선생님!”
숨을 돌리는 사이에 용 피디가 다가왔다.
“피디님...”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무슨 설명 말이죠?”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의 시침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보셨어요?”
“그럼요. 이번에는 죄다 과제와 맞는 혈자리들 같았어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아까는...”
“비륙 아시죠? 코피...”
“네...”
“코피를 멈추게 하려면 다들 어떻게 하죠?”
“대개는 휴지로 코를...”
“하지만 그건 코피에 대한 치료가 아니죠?”
“네...”
“맞아요. 코피를 멈추게 하려면 용천혈을 잡아야합니다. 만약 코피의 원인이 오장육부에 있다면 그것까지 잡아야 완벽하고요.”
“그럼?”
“축농증이나 천식, 중이염 같은 건 거의 다 신장과 비장의 허실에서 비롯되죠. 한방에서는 그렇습니다. 족삼리나 상거허혈, 혹은 기해와 천료혈 등에 침을 넣으면 금세 좋아지는 건 알지만 미봉책이라 도의상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원인치료로 들어간 거로군요?”
“그렇죠.”
“그럼 왜 아까는 설명을 안 하신 거예요?”
“상대방이 있는 일이잖습니까? 그 분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치료라는 게 늘 망망대해의 항해와 같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라...”
“선생님...”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윤도는 인사를 하고 침통을 챙겼다. 마음은 진작 비워뒀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의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엄마들과 아이들이 윤도 주위에 몰려들어 ‘떼창’을 했다.
“의사가 아니고 한의사 선생님이셔.”
마지막 환자의 엄마가 정정을 해주었다.
“기다리세요.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윤도 앞을 피디가 막아섰다.
“이미 늦은 거 아닌가요?”
윤도가 웃었다.
“늦었죠. 빌어먹을 행정팀 놈들이 내 요청 묵살하고 시청자 투표 시작했대요. 그 놈의 규정인지 나발인지를 늘어놓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이대로 보내드리기에는 제 마음이 허락하질 않아요.”
“그럼?”
“늦은 건 선생님 잘못이지만 조금 늦었다고 포기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어차피 선생님이 자초한 일이니까요.”
“......”
“그러니까 기다리세요. 방금 그 진짜배기 장면들, 번개 편집해서 바꿔달라고 요청했어요.”
“피디님, 그럼 이 선생님이 명의열전에 못 나가는 거예요?”
엄마 하나가 다가와 용 피디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어요. 방송 스케줄이라는 게 있다 보니...”“말도 안 돼. 세상에 이런 분이 명의가 아니면 누가 명의인데요? 상대방 명의 분은 우리 애들처럼 제대로 고쳤대요?”
“그쪽도 일단은... 하지만 방금 확인해보니 두 명이 다시 기침을 시작했다네요.”
“거봐요. 이런 분이 진짜 명의잖아요? 보고서도 그래요? 원인을 잡는 게 명의지 당장 진통제에 거담제, 해열제로 때우는 게 의사예요?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 애들도 병이 커진 거라고요.”
“......”
“그러니까 지금 이 선생님이 불리한 거죠? 아까 원인부터 치료하는 장면이 올라가는 바람에?”
“예... 이제야 수정본이 올렸지만...”
“아, 진짜 열 받네. 이러니까 방송의 공정성이 의심 받는 거잖아요?”
“면목 없습니다.”
“여기요, 다들 저 좀 보세요!”
엄마가 다른 보호자들을 불러모았다.
“이 선생님이 우리 애들 정성을 다해 치료하느라고 명의열전 투표에서 오히려 불리해졌대요. 이게 말이 되요? 우리가 어떻게든 도와야 하지 않겠어요?”
“저기 어머니...”
윤도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그냥 푹 쉬세요. 우리 애들 이렇게 고쳐주셨는데 우리가 나서야지요. 안 그래요? 여러분?”
엄마의 주장은 모두의 생각과 같았다. 다행히 두 엄마가 맘 커뮤니티의 매니저들이었다. 또 한 여자 역시 나름 유명한 블로거였다. 그녀들은 즉석에서 SNS를 날려댔다.
<도와주세요.>
<채윤도 선생님을 도와주세요.>
<이분이 진짜 명의입니다. 어떤 의사도 못 고치던 천식, 축농증 치료 인증샷 함께 올립니다.>
그녀들의 SNS는 네트워크를 이루며 촘촘하게 퍼져나갔다.
거침없는 행보!
거침없는 행보!
기적!
그 단어가 윤도를 찾아왔다. 일방적으로 독주하던 투표가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건 흡사 윤도의 장침과정과도 비슷했다. 의술의 양심으로 바닥부터 시작한 질병과의 승부. 어쩌면 그건 무모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윤도는 결국 판을 뒤집었다. 저 하초에서 몰아친 기혈을 상초로 밀어붙여 아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말았다.
투표의 추세도 치료와 닮은 꼴이었다. 완전하게 기울었던 판에 희망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종료 20분 전에는 마침내 근소하게 따라붙었다. 이제 추세는 윤도 쪽이었다.
결정타는 섬에 찾아왔던 엄마들의 가세였다. 그때 아기의 간기를 치료하고 갔던 엄마. 그녀 또한 또 다른 맘 까페를 동원해 힘을 얹어주었다.
종료가 가까워지자 윤도 표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국 종료 5분여를 남기고 300여 표를 역전하는 반전이 연출되었다. 스포츠보다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와아!”
엄마들의 함성이 병실에 울려퍼졌다. 아이들을 안고 춤을 추는 엄마들이었다.
결과는 윤도의 승으로 끝났다. 피를 말리는 신승이었다.
“선생님!”
엄마들이 윤도에게 몰려와 발을 동동 굴렀다. 용 피디는 한 쪽 구석에 서서 붉어진 눈시울을 숨겼다. 천리마를 못 알아보고 헐값에 팔아버린 중국의 고사처럼, 대박 명의를 차버릴 뻔 한 피디였다.
“선생님,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엄마들의 합창 소리가 높았다. 모두의 목소리는 장마철 들판처럼 흠뻑 젖었다.
웃음소리 높아갈 때 한 아이가 말했다.
“엄마, 웃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난대.”
그 말에 병실은 또 한 번 행복에 겨운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하핫!
“축하합니다.”
용 피디가 축하를 해왔다.
“고맙습니다. 얼떨떨하네요.”
“저도 그래요. 만약 선생님이 떨어졌으면 이 프로그램 사표낼 생각이었습니다.”
“사표까지요?”
“제 실수잖아요? 이거 두고 두고 공부로 삼을 겁니다.”
“별 말씀을...”
“나머지 촬영분은 자유 선택하셔도 됩니다. 보아하니 개업직전이시던데 일단 선생님 한의원에서 몇 커트만 찍으시고 환자 진료 장면은 오늘 것으로 대체해도 됩니다. 물론 흥미로운 진료가 있다면 스케줄 조정은 얼마든지 가능하고요.”
“네...”
“스튜디오 현장촬영분의 환자 역시 요청하실 수 있습니다. 병명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병원에 섭외해서 모서놓도록 하겠습니다.”
“예.”
“보조출연자는 이 대표님이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시던데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따로 섭외할까요?”
“제 방송은 이 대표님이 매니저이니 그 말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한의원 촬영분은 내일 정오 지나 선생님 한의원에서 끝내고 바로 스튜디오 녹화로 들어가겠습니다.”
“예.”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용 피디가 찬조 환자들에게도 인사를 전했다.
“저희도 내일 방청객으로 갈 건데 그래도 되죠?”
아이들 엄마들이 물었다.
“당연하죠. 좌석이 없으면 임시 의자라도 준비하겠습니다.”
“선생님, 파이팅이에요!”
“파이팅!
엄마들이 주먹을 쥐어보이자 아이들도 덩달아 주먹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