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265)

“오른팔이 아파? 그럼 오십견 아니야?”

“그러게? 별 거 아니네?”

방청석에서 수근거림이 들렸다. 그 소리는 화면에 뜬 진료일지가 지워주었다. 환자는 무려 3년이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대학병원도 다녔고 한방병원도 다녔다. 물리치료에 침·뜸을 받았지만 그때 뿐이었다.

“하도 고질이라 속는 셈 치고 와봤습니다.”

환자는 심드렁했다.

“어떻습니까? 치료 가능합니까?”

유재덕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가능합니다.”

그 사이에 윤도는 벌써 침통을 개방하고 있었다.

“원인도 알 수 있습니까? 왜 치료가 안 되는 걸까요?”

“이 병은 신경통처럼 보이지만 그 근본은 소장 때문입니다. 이 환자는 소장이 나쁩니다.”

“팔이 아픈데 소장이라고요?”

“이 팔의 힘줄이 소장경에 속하거든요. 장침 세 방이면 통증은 끝납니다. 다만 앞으로 소장치료에 유념하셔야 재발이 되지 않습니다.”

윤도의 장침이 출격했다. 천종혈과 소장수를 장악했다. 마지막 한 방은 양릉천 혈자리에 넣었다. 이 혈자리는 다소 난해했지만 윤도의 손가락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분할 화면은 환자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아침 화면이었다. 대형병원의 재활치료실.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팔을 올려보지만 뻣뻣하기가 나뭇가지 같은 팔이었다.

“팔 움직여보세요.”

양릉천에서 기혈 조화를 맞춘 윤도가 1번 환자에게 말했다.

“......!”

팔을 움직이던 환자가 숨을 멈췄다. 눈동자 역시 휘둥그레진 채 멈춰버렸다.

“아픕니까?”

유재덕이 물었다 .

“아뇨. 귀신에 홀린 듯 안 아픕니다. 허참, 이거...”

짝짝짝!

엄마부대를 시작으로 박수가 나왔다. 첫 미션은 가볍게 통과. 하지만 그건 단지 맛배기일 뿐이었다.

‘꿀꺽.’

윤도가 두 번째 환자에게 다가서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른 침을 넘겼다. 마치 체육하는 아들의 올림픽 결승전을 보는 듯 한 긴장감이었다.

“이분은...”

진맥을 마친 윤도가 유재덕을 향해 말을 이었다.

“피부병입니다. 등 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군요.”

“오, 마이 갓!”

유재덕이 익살스런 멘트를 토했다. 그 역시 틀림이 없었다. 간호사가 등을 보여주자 보기에도 역겨운 피부질환이 눈에 들어왔다. 보조진행자들과 방청석에서도 비명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유재덕이 물었다.

“정확합니다. 이 분의 진단서 확인하시죠.”

유재덕이 화면을 가리켰다. 환자의 진단서가 나왔다. 원인불명의 피부병. 환자 역시 5년 가까이 치료를 받고 있지만 차도가 없었다. 덕분에 독한 약을 먹느라 위까지 버린 경우였다.

“원인이 뭡니까? 간이 나쁩니까?”

“신장입니다.”

“신장이라고요?”

“신장과 피부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신장의 배설능력이 저하되면 그 독성이 피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환자는 바로 이 부위에 독성이 쌓인 거죠. 그러니 원인치료가 선행되지 않으면 나은 듯 하다가 다시 재발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침으로 가능합니까?”

“해보겠습니다. 다만 실험을 위해 몇 가지 준비를 부탁합니다.”

윤도가 말하자 간호사가 준비를 도왔다.

장침이 들어갔다.

신주혈부터 심수혈, 간수혈... 마지막에는 중완과 태계혈자리에 침을 넣었다. 이 환자의 백미는 장침이 아니었다. 피부병소에 붙인 흰 거즈였다. 생리식염수를 살짝 묻힌 흰 거즈에 집중하던 방청객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머어머!”

보조진행자로 나온 인기 개그우먼은 시침을 넘겨보다가 입을 쩌억 벌렸다. 거즈의 색이 변해갔다. 장침으로 상처 부위의 독성을 배출 시키자 흰 거즈가 오염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대조를 위해 다른 곳에 붙여둔 거즈는 변함이 없었다.

“대-박!”

개그우먼은 양 엄지를 나란히 세워들고 요란을 떨었다.

“어떠십니까?”

환자의 소감은 유재덕이 물었다.

“개운해요. 가려움증이 사라진 거 같은 데요.”

“정말이십니까? 단지 침을 맞은 것 뿐입니다만?”

“내가 이 병으로 5년을 고생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상쾌함은 처음이에요.”

“......!”

환자의 대답에 유재덕의 입까지 벌어졌다.

무대에는 결국 마지막 환자만 남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여유가 생긴 윤도가 환자에게 인사를 했다.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앞선 진료를 지켜본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 윤도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진맥하시죠.”

유재덕이 말했다. 하지만 윤도는 그저 환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선생님.”

“진찰은 끝났습니다.”

윤도가 대답했다. 그 한 마디는 촬영장을 의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얗게 뜬 얼굴에 오른쪽으로 기운 상체. 척 봐도 맥이 없는 환자였다. 그런데 시작도 없이 진찰이 끝났다니?

“선생님?”

노련한 유재덕조차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분은 목소리와 외형만으로도 진단이 가능합니다.”

“예?”

“하늘에는 다섯 색이 있고 지상에는 다섯 음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상당수 환자는 얼굴색과 목소리로도 진단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 그런?”

유재덕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생각했다. 윤도가 지금 자신을 부각 시키기 위해 오버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윤도는 아랑곳없이 소신껏 말을 이어나갔다.

“이 분은 왼쪽 폐가 좋지 않습니다.”

윤도가 유재덕을 바라보았다. 유재덕의 시선은 진단을 띄워놓은 화면으로 옮겨갔다. 진행자조차 궁금했던 사안이었다.

“우!”

방청석에서 신음 섞인 감탄이 나왔다. 윤도의 진단을 적중이었다. 하지만 윤도는 스스로의 진단을 그대로 뭉개버렸다.

“저 진단은 일부만 맞았습니다.”

“일부만 맞다뇨? 방금 폐가 문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이 환자의 진짜 병소는 자궁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장입니다.”

“신장이라고요? 신장 검사는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환자가 고개를 들었다.

“검사의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오장육부의 기혈조화죠. 좌측 폐가 나빠진 건 자궁 때문입니다. 환자분은 자궁의 위치가 바르지 않습니다. 자궁은 신장과 연관됩니다. 거꾸로 말해 신장의 기혈을 바로 잡으면 자궁이 제 자리에 들어서고 뱃속의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폐는 저절로 낫게 됩니다.”

“선생님.”

“얼굴이 하얗게 뜬 건 폐가 나쁘다는 반증입니다. 폐장은 색으로 치면 흰색에 해당하니까요. 나아가 이 분은 ㅅ과 ㅇ 발음이 좋지 않으니 폐와 신장이 함께 좋지 않습니다. ㅅ은 폐의 소리요 ㅇ은 신장의 소리니까요.”

“......!”

듣고 있던 유재덕이 입을 벌렸다. 차분한 사람은 이부용 뿐이었다. 그녀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채윤도... 그는 타고난 의원이었다. 첫 방송출연이면서도 카메라를 압도하는 소신과 확신이 그 증명이었다. 그건 유재덕의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대박...

이건 진정 대박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환자에 대한 진단이 맞아떨어지기만 한다면... 그렇기만 한다면...

이 방송 실화냐? 2

이 방송 실화냐? 2

윤도의 장침은 삼초로 들어갔다.

“삼초에 침을 넣거나 뜸을 뜨면 몸이 정화됩니다. 몸 안에 남은 월경의 찌꺼기들도 말쑥하게 사라지죠.”

삼초(三焦).

삼초는 명문과 더불어 ‘유명이무형(有名而無形)이고 무형이유용(無形而有用)’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해부학상 실질적인 형태는 없고 오직 기능만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기혈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삼초는 상초 · 중초 · 하초로 구분된다.

[상초-심장 · 폐를 중심으로 한 흉부.]

[중초-비장 · 위장 · 간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복부.]

[하초-신 · 방광 등을 포함하는 하복부.]

윤도의 혈자리 구분법으로는 위에서 격수혈까지를 상초, 신수혈까지를 중초, 신수혈 아래를 하초로 삼았다.

신장혈을 잡은 다음 양지와 중완혈에 장침이 들어갔다. 자궁의 위치를 바로하려는 시침이었다. 이어 중완혈에 들어간 건 화침이었다.

“어떻습니까?”

발침을 하며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어머머, 배와 폐가 다 시원해졌어요.”

“잠깐만요.”

환자가 대답할 때 유재덕이 끼어들었다. 그는 환자의 얼굴을 비춰달라고 요청했다. 사진 비교도 요청했다. 화면에 치료 전과 후의 얼굴이 나왔다. 기분이 아니었다. 그 색은 비교가 될 정도로 달랐다. 하얗게 뜬 부분에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아까에 비하면 꿀피부가 되었어!”

개그우먼의 폭풍 오버가 튀어나왔다.

“가능하면 발음도 비교해 보시죠.”

그 요청은 윤도의 것이었다.

“우!”

발음 비교 화면이 나오자 방청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발음 또한 현저하게 명쾌해져 있었다.

“워어어어!”

개그우먼이 자지러졌다.

짝짝짝!

엄마부대를 필두로 방청석의 기립박수가 나왔다. 실험진료를 위해 참석한 무대의 환자들은 윤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들의 표정이 말했다. 이것은 쑈가 아니라고. 이것은 각본이 아니라고...

폭풍은 지나갔다. 잠깐 예능인들과 놀아줄 시간이었다. 의술은 의술, 방송은 방송. 철저하게 시청률이 필요한 정글이었으니 시청자들에게 한의학을 이용한 즐거움을 안겨줘야 했다.

“오늘의 게스트 모시겠습니다.”

유재덕의 멘트와 함께 해피 프레지던트가 튀어나왔다. 그녀들은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분위를 바꿔놓았다. 그녀들의 앞 줄에는 장현서와 이가인도 있었다. 둘은 걸그룹을 리드하며 기꺼이 망가졌다. 그동안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막춤까지 동원한 두 스타들 덕분에 진지하던 방청석이 빵빵 터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리에 앉아 윤도의 장침을 맞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때 정말 하늘에서 저를 위해 명의를 내려준 줄 알았어요.”

장현서와 이가인이 입을 모았다. 해피 프레지던트도 어린 풋풋함으로 윤도 띄우기에 일조를 했다. 없는 말이 아니었으니 그 또한 시청자들에게 잘 먹히고 있었다.

이어진 차례는 필살기였다. 예능을 가미한 명의열전이기에 출연자의 비기를 보여주는 시간. 윤도는 인기절정의 ‘하프 텐’ 걸그룹의 멤버 맞추기 신공을 선보였다.

윤도 앞에 놓여진 건 다섯 걸의 손이었다. 얼굴과 몸은 보이지 않았다. 진맥만으로 걸그룹을 맞춰냈다. 대개 건강한 그녀들이었으니 진맥으로 몸을 유추해 연결 시켰다.

걸그룹.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람은 체형이라는 게 있다. 혈자리도 그걸 닮는다. 윤도가 도출한 답은 퍼펙트였다.

다만...

한 멤버의 진맥에서는 고개가 갸우뚱 돌아갔다. 멤버 이름은 윤사니. 그 이름을 따로 새겨두었다.

주제가 폐 쪽으로 쏠렸다. 한바탕 막춤을 섞어댄 이가인이 잔기침을 해댔기 때문이었다.

“가인 씨, 얼굴만 대박이지 폐는 쪽박이네.”

개그우먼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었다. 유재덕이 그 멘트를 물었다.

“말난 김에 선생님, 오늘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폐가 나쁜 사람, 혹시 찾아낼 수 있나요?”

“가능하죠.”

윤도가 출연자들 앞으로 다가섰다. 그 손은 마침내 한 사람을 가리켰다. 이규리였다.

“나요?”

이규리가 손으로 자기 가슴을 짚었다.

“네.”

“내가 왜요?”

턱!

윤도의 손이 그녀 팔등을 가리켰다.

“빽빽하게 난 솜털이 증거입니다.”

“솜털이 폐와 관련이 있나요?”

유재덕이 물었다.

“한방식으로 말하자면 삼초에 울체가 생긴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어 하초에 기혈이 부족해지면 피부의 영양 밸런스가 깨져서 피부가 추워하죠. 그래서 폐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솜털이 많이 나도록 하는 겁니다. 털은 피부에 속하고 피부는 폐에 속하는 까닭이죠.”

“어머어머!”

“제가 침으로 보여드리죠.”

윤도가 침을 꺼내자 이규리가 간이 진료대에 누웠다.

“나 침 싫은데...”

이규리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몸서리 연기를 작렬 시켰다.

“카메라 가능하면 솜털을 잡아주세요.”

요청을 날린 윤도의 장침이 양지와 중완혈로 들어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윤도가 두 혈자리에서 침을 돌려 조화를 찾아내기 무섭게 솜털이 얌전히 드러누운 것이다. 분명, 털이 누워버렸다.

“우와!”

확대 화면을 본 출연자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하초의 기를 보하면 솜털은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잠이 든 거죠. 이규리 씨는 하초를 보해야만 진짜 꿀피부가 되고 폐도 좋아집니다.”

짝짝짝!

박수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출연자들의 손뼉이었다.

“진짜 명의네 명의.”

“그러게. 저 장침 하나면 만병통치잖아?”

보조 진행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웅성거렸다. 때 맞춰 최고령 여배우 장세화가 적절한 멘트를 들이댔다.

“그럼 내 귀도 그걸로 될까요? 나이 먹으니 귀가 자꾸 어두워져서...”

“선생님!”

유재덕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가능합니다.”

윤도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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