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2/265)

“용 검사님 대체...”

상황이 정리된 후에야 윤도가 말문을 열었다.

“아,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일이 찝찝해서 침 좀 맞은 후에 천천히 말하려고 했는데...”

“......?”

“실은 얼마 전부터 검경에 계속 신고가 들어왔어. 마약 장침을 쓰는 한의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서울로 온지 얼마 안 되다보니 다른 업무가 바빴어. 그래서 신참 검사에게 맡겼는데 알고 보니 거기 늙은 계장 놈이 비리에 닳고 닳은 여우더라고. 은밀히 재검토를 했더니 시기의 대상이 채 원장님이더라고. 채 원장이 잘 나가니까 누군가 그걸 시기해 한 번 밟아달라고 청탁을 넣은 모양이야. 그 모양새 갖추느라고 검찰에 투서를 넣었던 거고.”

“......”

“그래서 내사 끝내고 채 원장에게 사연도 전할 겸 찾아온 건데 코앞에서 불상사가 일어났군. 이해하시게.”

“시기라면 대체 누가?”

“수사상 관련 인물들을 알려주는 건 금지되어 있네. 하지만 채 원장이 직접 목격하는 건 불법이 아니니 우리 수사관들 따라가 보시게나. 멀지도 않으니.”

말을 마친 용 검사가 앞섰다.

“같이 보시죠.”

윤도가 돌아보자 진경태가 등을 밀었다. 아직도 황당기가 가시지 않은 진경태. 내력을 알아야만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수사관들은 저 건너 편의 한의원 앞에 차를 세우고 있었다.

“설마 화암 한의원 탁상명 원장?”

윤도가 소스라쳤다. 하지만 정나현이 확신을 더해주었다.

“맞을 거예요.”

“정 실장님.”

“아까 말씀드리려다 원장님이 그쪽 얘기는 말라기에 덮었는데 거기 상담실장이 제 동창이거든요. 얼마 전에 원장 닦달이 싫어서 사표냈는데 원장님 무척 씹는다고 했어요.”

“나를요?”

“입에 담을 말이 아니지만... 마약 쓰는 게 분명하다고 수사기관에 투서를 보내라는 회유와 압박까지 있었다고...”

“......”

“아, 진짜 못된 놈이군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진경태가 핏대를 올렸다.

결국 윤도와 진경태, 정나현이 도로로 나왔다. 화암 한의원 빌딩 앞에 선 용 검사가 보였다. 잠시 후에 탁상명이 나왔다. 다른 수사관 둘과 함께였다. 그 눈빛이 윤도와 마주쳤다.

“......!”

“......!”

명의열전 녹화 이후로 다시 마주치는 눈동자. 이번에는 그가 먼저 눈빛을 돌렸다. 입이 백 개 있어도 할 말이 없을 순간이었다.

“당신이 우리 원장님 모함한 거요?”

진경태가 나섰다.

“......”

탁상명은 당연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당신, 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원장님 뒤통수 한 번 더 노리면 그때는 내 손에 죽어.”

진경태가 매운 경고를 날렸다. 얼굴이 일그러진 탁상명은 그대로 수사관들 차량에 태워졌다.

“아, 아까 형사 하나가 마약 검사를 위해 약재를 공인분석기관에 보냈다고 하던데 곧 돌려드리라고 하겠네.”

볼 일을 끝낸 용 검사가 윤도에게 말했다.

“아니, 그냥 진행하게 두시죠.”

“응? 그냥 두라고?”

“누군가 의심을 한다면 공인기관에서 검사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아서요. 물론 바람직한 과정은 아니지만요.”

“채 원장!”

윤도의 배포와 자신감. 용 검사까지 압도하고 있었다. 윤도는 농담이 아니었다. 이런 시비는 늘 있을 수 있었다. 때로는 병원 쪽에서 한의사를 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약재 관리에 자신이 있는 윤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허어, 저 양반 운도 없군. 이런 상대를 넘보다니...”

용 검사는 차 안의 탁상명을 향해 혀를 차고 멀어졌다.

“저 잘 했죠? 아저씨.”

윤도가 진경태를 바라보았다.

“그런 거 같습니다. 저도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는데...”

“자칫하면 이 일 자체가 어수선한 느낌으로 남을 수 있어요. 그러니 어차피 가져간 약재는 공인검사를 받는 게 좋아요. 게다가 검사비도 공짜잖아요?”

윤도가 웃었다.

뇌물공여.

탁상명의 죄목이었다. 그 정도로는 구속될 사안이 아니었다. 돈 많이 번 한의사니 변호사 세워 벌금 몇 푼 내면 끝날 일이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기반은 방송이다. 방송을 이용해 자신의 유명세를 알리고 돈을 번다. 그 방송출연에 치명적인 결격사유가 생긴 것이다.

그런 쪽이라면 부용이 전문가다. 윤도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부용에게 협조를 부탁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탁상명은 방송에서 매장이었다.

윤도 뒤통수를 치려다 뇌진탕급 셀프 디스!

딱 그 꼴이었다.

심장판막의 스위치가 자궁에 있다고?

심장판막의 스위치가 자궁에 있다고?

끼익!

윤도의 흰 스포츠카가 멈췄다. TS전자 본관 앞이었다.

“어서 오시게.”

현관에 나와 있던 김 전무가 다가왔다. 옆에는 간호사 둘이 보였다.

“저 기다리신 겁니까?”

차에서 내린 윤도가 물었다.

“채 실장 기다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네.”

김 전무가 웃었다.

“가세나.”

김 전무가 몸소 안내를 자처했다. 그를 따라 회장실부터 들렀다.

“이어, 채 실장.”

책상에서 서류를 검토하던 이 회장이 일손을 놓고 일어섰다.

“이거 면목이 없네.”

이 회장이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사돈 일 말일세. 내가 진웅이 녀석에서 채 실장 부담주지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아닙니다. 한의사 할 일이 환자진료 아닙니까? 제게도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정말 고맙네. 덕분에 우리 며느리한테도 대우 받기는 한다네.”

“다행이군요.”

“어쨌거나 채 실장은 진짜 신의(神醫)야. 사돈 일까지 가능하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네.”

“그럼 신의 체험 한 번 더 해보시겠습니까?”

“신의 체험?”

“받으십시오.”

윤도가 작은 약상자를 꺼내놓았다.

“뭔가?”

“신의의 선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복용하시면 회장님이 원하는 걸 얻을 겁니다.”

“내가 원하는 거?”

“전에 중국 상무위원에게 양보하신 거 말입니다.”

“그, 그럼 이게?”

이 회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복용법은 그때 말씀드렸죠? 그럼 저는 진료보러갑니다.”

“채 실장!”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약값은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 절대 봉투 같은 거 주시지 말기 바랍니다. 만약에 봉투 준비하시면 그 약 회수할 겁니다.”

“......”

“그럼...”

잠시 문 앞에 멈췄던 윤도가 그대로 회장실을 나갔다. 이 회장은 멍한 시선을 거두고 약상자를 열었다. 그 약이었다. 이빨을 나게 하는 영약환...

“허어...”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김 전무가 반색을 했다.

“저 사람은 아무래도 내 구세주인가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회장은 영약환을 든 채 오랫동안 중얼거렸다. 상무위원에게 양보한 후로 까맣게 잊었던 이빨 영약. 윤도가 다시 수고를 더해 가져왔으니 감격이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 회장이 핸드폰을 열었다. 사진이 나왔다. 상무위원의 그것이었다. 중국으로 돌아가 당을 이끄는 상무위원. 이빨이 가지런히 나자 감사의 인사와 함께 사진을 보내왔었다. 사진에 난 이빨은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희게 반짝거렸다.

셰셰(謝謝)!

사진 아래 찍힌 감사의 중국문자. 후회는 하지 않지만 너무나 신기한 그 영약. 그게 이 회장의 손에도 들어온 것이다.

‘채윤도...’

이 회장은 저절로 미소가 났다. 글로벌 경영을 하면서 수많은 걸물을 만난 이 회장. 하지만 윤도처럼 인상적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진료 시작할까요?”

의무실에 들어선 윤도가 가운을 걸쳤다. 목소리는 더 없이 명랑했다. 잠시 후에 김 전무가 뒤따라 들어섰다.

“채 실장.”

“환자는 몇 명이나 되나요?”

“그보다 수고했네. 회장님 지금 감격해서 기절해 계시다네.”

“보기보다 마음이 약하시군요.”

윤도가 웃었다.

“한의사가 왜 그러시나? 이빨 없는 고통,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

“그건 맞습니다.”

“진료는 네 명 추렸네. 임원에서 두 명, 직원들 두 명.”

“더 많아도 상관없는 데요?”

“그 또한 회장님 엄명이셨네. 직원들 줄 세워서 채 실장 애먹게 하지 말라는...”

“어쨌든 시작하겠습니다.”

“오케이, 채 실장 스타일은 직원들 먼저지?”

“기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직원을 일타로 받았다. 사실 윤도도 TS전자의 직원들이 궁금했다. 여기 근무하면 일단 한국의 엘리트로 봐야했다. 연봉도 높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병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까?

“안녕하세요?”

여직원은 표정이 밝았다.

“영광이에요. 유명하신 명의에게 진료를 받게 되어서.”

“저도 영광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여기서 첫 환자십니다.”

“어머, 그럼 저 인증샷 한 장 찍어도 돼요?”

“저하고요?”

“네.”

“그러시죠.”

윤도가 허락을 했다. 여직원은 가장 자신 있는 각도로 셀카를 찍었다. 윤도 역시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어디가 불편하시죠?”

“저기...”

여직원이 주저했다.

“곤란하시면 손 좀 줘보시겠어요.”

윤도는 바로 진맥에 들어갔다. 여자는 섬세하다. 그렇기에 직접 말하기 어려운 질환도 많았다.

“소변 때문에 오셨군요?”

“어머!”

여직원이 소스라쳤다. 가려운 곳을 짚어낸 까닭이었다.

“족집게세요. 진맥만 하시고도 아시네요?”

“소변 횟수가 너무 많은 거죠?”

“네... 남들에게 말도 못 하고...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리니까 담배 피러가는 줄 아는 동료도 있다니까요.”

“침대에 누워서 하의를 벗으세요. 팬티는 음모가 보일 때까지 최대한 내리시고요.”

주문은 간결하게 끊어 말했다. 혈자리가 음모 부근이기 때문이었다. 자칫 웃음이라도 섞이면 환자는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윤도는 장침 세 개를 뽑아들었다. 첫 침은 중극혈로 들어갔다. 위치는 관원과 곡골혈의 중간 지점. 즉 배꼽과 음부를 중심으로 볼 때 음부 쪽에 가까운 자리였다.

중극혈은 인체의 중간을 뜻한다. 여성의 생식기에 관련된 질환에 두루 쓰이는 하복부의 요혈이다. 응용하면 자궁근종에도 쓸 수 있다. 다음 침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장침은 살짝 드러난 음부의 터럭에서 좌우 대칭으로 들어갔다. 거기가 귀래혈이었다.

후끈!

윤도 손 끝에 불덩이가 돌았다. 화침으로 작렬하는 것이다. 침감은 부드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퍼져나갔다.

“기분 어떠세요?”

타이머를 맞추며 윤도가 물었다.

“기분인지... 요도 끝이 늘 찜찜했는데 시원해지는 거 같아요.”

“침 뽑으면 더 좋아질 겁니다.”

잠시 쉬었다가 침을 뽑았다.

“시원하죠?”

“네, 사실 다른 때 같으면 지금 또 화장실 가야할 타임인데...”

여직원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마음 편안히 가지고 근무하세요.”

“와아, 침이 이렇게 좋은 줄 몰랐어요. 너무 신기해요.”

“믿어주신 덕분이죠 뭐. 환자가 신뢰하면 침이 보답을 하거든요.”

“고맙습니다. 선생님.”

여직원은 만족한 얼굴로 의무실을 나갔다. 첫 환자진료는 성공적이었다.

“안녕하세요?”

두 번째 환자도 여직원이었다.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저는 심장 때문에 왔는데... 이런 것도 한방에서 되나요?”

여직원이 물었다.

“심장이 어떻게 안 좋은 데요?”

“심장이 부었고 판막에 이상이 있다고 해요. 병원에서 조금 더 지켜보다가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해서요.”

“언제 알았죠?”

“올해 정밀검사에서요. 평소에 등산이나 계단 오를 때 약간 숨이 찼는데 그냥 운동부족으로 알았어요. 그러다 우수사원으로 뽑히면서 건강검진권이 나와서 검사해본 건데...”

“손 좀 줘보세요.”

바로 진맥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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