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심장이 비대했다. 오른쪽보다 30%는 부은 듯 했다. 심장비대는 승모판 때문에 생긴다. 이 판막은 심장 안에서 피가 심방에서 심실로 흐르게 조절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이 판막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심실에서 심방으로 피가 역류해 심장이 붓게 된다,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큰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하지만 자칫 방치하면 일부 돌연사를 할 수도 있고 부정맥이 되어 혈전으로 뇌혈관을 막으면 중풍을 만날 수도 있었다.
‘원인은 삼초와 자궁.’
윤도는 본질을 알았다. 사실 심장은 웬만해서는 병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심장이 오장육부에 연결된 까닭이다. 이 환자는 삼초의 기 정체가 문제였다. 삼초와 심장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거기에 자궁의 위치가 바르지 않아 심장 판막에 이상을 초래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의 심장판막 열쇠는 자궁이 쥐고 있는 셈이었다.
“자궁위치가 안 좋다고요?”
윤도 설명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네.”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자궁 위치 검사를 해봤을 리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아마 평소에는 심장보다 아랫배가 안 좋았을 겁니다. 자궁의 위치가 좋지 않으면 아랫배가 좋을리 없거든요.”
“그건 맞아요. 아랫배에 소소한 병을 달고 살아요.”
“손발도 차고요.”
“네...”
“저 안에 들어가서 옷 다 벗으시고 거울을 보세요. 몸이 한 쪽으로 기울었을 겁니다.”
“어머!”
확인을 하던 여직원이 소스라쳤다.
“정말 그렇네요...”
다시 윤도 앞으로 온 여직원이 얼굴을 붉혔다.
“이제 침대에 누우세요.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윤도가 장침통을 들었다.
“심장판막도 침으로 해결이 되나요?”
“삼초를 조절하고 자궁 위치만 잡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지금 자궁이 움직이지 않으면 제 한의원으로 오세요. 몇 번 더 하면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네...”
여직원에게는 몇 개의 장침을 먼저 넣었다. 양지와 중완혈을 다스리기 위한 조치였다. 사전조치가 끝나자 좌양지혈과 중완혈에 장침을 넣었다. 뜨끈한 화침으로 자궁을 조절했다. 양지혈에서 시작된 침감이 내장으로 퍼져갔다. 하지만 침감이 조금 딸렸다.
두 개의 침을 꺼내 삼향투자침으로 넣었다. 세 방향의 공세가 몰아치자 내장이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궁이 제 자리를 찾았다. 그러자 신장과 난소, 방광과 소장, 대장도 조금씩 이동하며 반듯한 위치로 변했다.
“어떠세요?”
시침을 끝낸 윤도가 환자를 바라보았다.
“속이 굉장히 편해요.”
“손발도 따뜻해졌을 겁니다.”
“어머!”
“다시 안에 가서 거울에 비쳐보세요. 아까와 달리 몸이 많이 반듯해졌을 테니까요.”
“어머어머!”
안으로 들어간 여직원은 거듭 감탄을 토해냈다.
“가까운 시간에 저희 한의원에 한 번 오세요. 탕약을 지어놓을 테니 한 제만 드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정된 자궁이 그대로 고착될 겁니다.”
“그럼 제 심장판막증도 나은 건가요?”
“오늘을 기준으로 낫게 될 겁니다. 그건 계단 올라가 보시면 알 겁니다.”
“어머머머!”
밖으로 나간 여직원은 감탄사를 달고 살았다. 한 층 계단을 올랐지만 숨이 차지 않았다. 너무 신기해서 한 층 계단을 더 올랐다. 그래도 심장은 그리 허덕이지 않았다.
“전무님.”
여직원이 돌아와 김 전무 앞에 섰다.
“좋아졌지?”
김 전무가 웃었다.
“이건 의술이 아니고 마술이에요. 저 심장 다 나은 거 같아요.”
“당연하지. 우리 채 실장 침은 마법의 침이거든.”
“심장 때문에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서 퇴직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이런 기회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인사는 내가 아니라 채 실장에게 해야 할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여직원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하긴 백 번은 못 숙일까? 고민하던 질병이 나은 기분. 그건 고통 받던 환자가 아니고는 짐작도 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것이 명의다-1
이것이 명의다-1
두 여직원 진료가 끝나자 중역이 들어왔다. 50대 후반의 이사였다. 그는 고질적인 요통을 달고 있었다. 허리의 명문혈 원샷으로 통증을 잡아주었다.
“허어, 이럴 수가 있나?”
일어나 허리를 움직여본 이사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훌라후프도 돌릴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환자 역시 직급은 이사. 업무를 보다 달려왔는지 서류뭉치를 안고 있었다.
“바쁘신 중에 온 모양이군요?”
윤도가 먼저 말했다.
“예... 자칫하면 날짜도 까먹을까 했습니다.”
대답하는 이사는 자세가 좋지 않았다.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 척추가 굽은 것이다.
“어디 불편하신 데가 있나요?”
모른 척 물었다.
“불편한 건 이겁니다. 명의시라니 이런 것도 될까요?”
이사가 반듯이 서보였다. 애를 쓰지만 반듯한 건 아니었다.
“척추 때문에요?”
“이게 언제부턴가 조금씩 굽어지더니 이젠 아예... 나이를 척추로 먹는 건지...”
“언제 간질환 앓은 적 있으시죠?”
“예. 오래 전에 과로를 하다가...”
“그때 치료를 하셨겠지만 간과 비장의 기를 제대로 보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서 경혈이 뒤틀리면서 몸이 굽은 것 같습니다.”
“경혈 때문이라는 건가요?”
“예.”
“그래서 그런가? 물리치료를 대놓고 해도 받을 때 뿐이고...”
“맥 좀 보겠습니다.”
진맥에 들어갔다. 윤도의 추측은 정확했다. 이사는 비장과 간장의 기혈이 바닥이었다. 두 기혈이 약해지면서 몸이 굽었다. 여자라면 자궁 때문에 굽는 경우도 있었다.
“잘 오셨네요. 그대로 방치하시면 더 굽을 뻔 했습니다.”
“치료가 됩니까?”
“누워보시겠어요.”
윤도가 침대를 가리켰다. 일단 임맥의 출발인 승장혈에 장침을 넣고 반응을 보았다. 승장혈은 입술 아래에 위치한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하의를 벗겼다. 임맥의 터미널이라고 할 수 있는 회음부에도 장침을 넣었다. 이사는 조금 황당한지 큼큼 헛기침을 해보였다.
임맥은 인체 내의 음양 발란스를 조절하는데 큰 축이 된다. 그 말단에서 침감을 더하고 빼며 임맥의 요동을 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배의 임맥 라인이 침감을 빨아갔다. 이 정도라면 허리를 펼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침은 많이 꺼냈다. 굽은 척추의 경직을 풀려는 의도였다. 신주혈을 시작으로 간수, 근축, 양지, 기죽마, 삼초수, 신수를 따라 곡지혈과 족삼리까지 달렸다. 방점은 발의 태계혈에 찍었다. 징검다리처럼 연결되는 장침들은 척추의 혈자리들을 두루 어루만졌다. 가지런히 꽂힌 장침은 만리장성 같은 위풍이기도 했다.
마지막 화룡점정은 거궐혈이었다. 그 전에 관원혈에서 거궐혈의 원기를 북돋워주었다. 둘은 의미 있는 관계이니 바로 거궐혈만 공략하는 것보다 나았다.
‘자, 부탁한다.’
윤도의 장침이 거궐혈에 들어갔다. 뜨거운 화침이었다. 단숨에 넣지 않고 단계를 나누었다. 침감으로 기혈의 적정을 맞추는 윤도였다. 거궐혈은 왕의 궁궐로 불린다. 궁궐의 대들보를 다시 놓는 심정으로 침감을 가했다. 기울어진 대들보를 바로 하려는 것이다. 임맥의 요동이 느껴졌다. 몰아치는 침감을 받고 있다는 신호였다.
침감을 좀 더 가했다. 몰아칠 때는 사정을 두지 않는 게 좋았다. 꿀럭거리는 포인트에서 남은 부분을 다 밀어넣었다. 배의 임맥은 마침내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상태를 풀었다.
거궐혈자리는 원래 골반교정에도 효과가 좋은 곳. 임맥이 늘어지자 척추의 경직도 함께 풀리기 시작했다.
‘후우!’
겨우 숨을 돌리며 발침에 들어갔다. 마지막 침은 매조지를 하며 뽑았다.
“일어나보세요.”
“어, 끝났습니까?”
이사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섰다. 하지만 여전히 굽은 상태였다. 윤도가 뒤로 돌아가 그 등짝을 살짝 쳤다. 놀란 이사가 척추를 곧게 세웠다. 오랫동안 습관이 된 동작. 그렇기에 나은 줄도 모르고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던 이사였다.
“어때요? 펴졌죠?”
“어?”
“걸어보세요. 불편한 데 없나.”
“이, 이게 어떻게?”
“걸어보시라니까요.”
“이야, 살다보니 이럴 수도 있네. 내 허리가... 다시 일자가 되다니...”
이사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수일 내로 한의원 오셔서 신장과 비장 탕제 받아가세요. 바쁘시면 택배로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 비용은 일반 한의원보다 좀 나올 겁니다.”
“이런 명의신데 비용이야 무슨 문제겠습니까? 몇 백을 달라고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까 비장과 간의 기가 모자라다고 하더니 왜 갑자기 신장과 비장 한약이 된 거죠?”
“간은 신장과 비장을 치료하면 낫습니다. 수(水)와 토(土)를 좋게 하면 목(木)이 좋아지는 원리죠.”
“아!”
한방의 절묘함에 이사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네 명 환자들의 첫 진료는 대박이었다. 오늘을 주관한 김 전무 역시 고무되어 있었다.
“기가 막히네요. 전무님도 침 한 번 맞아보시죠. 이거 완전히 만병통치예요.”
윤도에게 인사를 챙기던 이사가 김 전무를 밀었다.
“나는 괜찮네. 타고 난 강골이잖나?”
“에이, 강골은 무슨... 가끔 병원 가시는 거 모를 줄 압니까?”
“쓰읍, 유 이사.”
“그러지 말고 누워봐. 그 나이에 병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때맞춰 들어선 이 회장이 가세를 했다.
“회장님!”
“어허, 명령이야.”
“그러시죠. 어차피 시간도 좀 남았으니.”
이제 윤도도 거들고 나섰다. 김 전무는 마지못해 침대에 누웠다. 윤도는 가벼운 마음으로 맥을 짚었다. 아무리 건강체질이라고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다. 눈이 침침할 것이며 오줌발이 약해졌을 것이며 어깨나 허리가 아플 일이었다. 딱히 병이 없으면 그 정도 침이라도 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
진맥을 하던 윤도 솜털이 왈딱 일어났다.
‘이건...’
서둘러 손을 뗐다. 자칫하면 떨림을 들킬까 걱정한 행동이었다.
“어때? 문제없지?”
김 전무가 물었다.
“그렇군요. 진짜 강골이십니다. 눈이 좀 침침하신 거 같은 데 그거나 잡아드리겠습니다.”
윤도의 목소리는 유독 크게 나왔다. 뭔가를 감추려는 듯 허둥거림도 엿보였다.
“아, 해보세요. 혀에서 혈자리를 잡을 겁니다.”
“아!”
김 전무가 입을 벌렸다. 윤도의 침은 금진혈과 옥액혈로 들어갔다. 몸의 어혈을 빼려는 침이었다. 이 혈자리는 순환장애에 좋았다. 때로는 심근경색과 신부전 등에도 유용했다.
시침하는 사이에 마음과 손이 안정되었다. 정신을 침에 집중한 덕분이었다.
“어때요? 시원하죠?”
다시 큰 소리로 물어보는 윤도.
“어이쿠, 이거 천리안이 된 기분이네. 우리 회장님, 지갑 속 비상금까지도 보이는 걸.”
김 전무도 화통하게 웃었다.
“역시 건강도 타고 나는군. 역시 김 전무야.”
보고 있던 이 회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채 실장, 아까 봉투는 말도 꺼내지 말랬으니 그렇고... 저녁이나 어떤가? 명의에게 밥 한 끼 사는 영광 쯤은 사양 않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도는 이 회장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 채 실장.”
옷 맵시를 다듬은 김 전무가 윤도를 불렀다. 이제 의무실에는 윤도와 김 전무 뿐이었다.
“예.”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신경은 저절로 곤두섰다. 진맥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 전무의 말은 방향이 달랐다.
“우리 직원들도 귀가 얇군. 방금 쾌거를 보더니 즉석에서 통사정이 하나 들어왔네.”
“그럼 지금 오게 하시지요.”
“그게... 직원의 집사람이라네. 모유를 먹이고 싶어 하는데 젖이 안 나온다고 하더군. 한의원으로 보내도 되겠나?”
“그러십시오. 성심껏 봐드리겠습니다.”
“고맙네.”
김 전무가 어깨를 쳐주며 돌아섰다.
“전무님.”
“응?”
돌아서던 김 전무가 고개를 돌렸다.
“저한테 하실 말씀... 더 있을 거 같은데요?”
“채 실장에게?”
“머리 말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씀드릴까요?”
“......!”
윤도의 한 마디에 김 전무의 호흡이 멈췄다.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채 실장...”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 난 다음에야 의료인의 사명감 같은 게 있습니다.”
“역시 명의로군. 난 또 혹시나 모르고 지나갔나했는데...”
김 전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까 그 직원 올 때 함께 오십시오.”
“채 실장.”
“아니면 그 직원도 진료거부하겠습니다.”
“......”
“그럼 저는 짐을 챙겨야 해서...”
윤도가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김 전무는 오래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 그걸 엿본 윤도. 윤도는 점점 멀어졌지만 김 전무의 마음 속에서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곤란하게 되었군.”
김 전무는 왼쪽 눈을 만지며 맥없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