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265)

“알겠습니다. 잠깐만요. 채 선생.”

창승이 전화기를 윤도에게 건네주었다. 윤도가 그 전화를 받았다.

“채 선생, 나 SS병원의 이철중입니다.”

“아, 예...”

“거기 지금 채 선생 만나러 간 사람들 있지요?”

“그렇습니다만...”

“미안하지만 그 사람들 편에 좀 올라와 줄 수 있겠소? 아주 중대한 일이 생겼는데 채 선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지진현장에서 이재민을 돕는 중인데요?”

“압니다. 하지만 지금 국가적으로 중대한 수술이 기로에 놓였습니다. 그러니...”

“국가적인 수술이라고요?”

“국가 안보와 관련된 일입니다. 그렇게만 아시고...”

“하지만 여긴 지금 남쪽입니다. 제가 올라가는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그건 거기 찾아간 사람들이 해결해줄 겁니다. 서둘러주세요.”

“부원장님!”

“부탁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이건 채 선생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전화가 끊겼다.

황당했다.

“무슨 일이죠?”

정나현이 물었다. 그 사이에 검은 옷차림의 두 사람이 다가섰다. 양종일이 막았지만 윤도가 비키라는 눈짓을 보냈다.

“서두르시죠.”

“......”

윤도가 체육관을 돌아보았다. 침을 기다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가봐. 여긴 내가 마무리할게.”

이창승이 윤도 등을 밀었다.

“아저씨, 서울에 중요한 환자가 생긴 모양입니다. 저 먼저 올라가 봐야할 거 같습니다.”

“원장님...”

“차 좀 부탁합니다.”

차 키를 넘겨주고 검은 옷 남자들을 따랐다. 그들은 윤도를 태우기 무섭게 경광등을 울리며 달렸다.

“대체 무슨 일이죠?”

진경태가 이창승을 바라보았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큰일인 것만은 분명한 거 같습니다.”

창승의 시선도 멀어지는 세단에 꽂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저 멀리에서 헬기가 눈에 들어왔다. 헬기는 군청 착륙장에 내렸다. 윤도가 탄 세단이 멈춘 곳이었다.

“타시죠.”

검은 옷 남자가 헬기를 가리켰다. 윤도가 보던 닥터 헬기가 아니었다.

“......!”

“시간이 없습니다.”

남자가 한 번 더 재촉했다. 윤도가 헬기에 올랐다. 갈매도에에 이어 두 번째 헬기 탑승. 헬기는 윤도가 목적인 듯 비어 있었다.

투타타타타!

헬기는 지체 없이 이륙했다. 그리고 서울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이 명의다-3

이것이 명의다-3

투타타타!

헬기는 전속력으로 날았다. 이내 대구를 지나고 세종시를 지났다. 옆 자리의 두 남자는 말이 없었다. 오죽하면 입냄새가 날 지역이었다. 처음 탑승 때 이유를 물었지만 그들은 한 마디로 대답했다.

“국가적 중대사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특급보안.

보아하니 정보부 쪽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들의 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정보’는 그게 전부였다.

‘SS병원...’

어둠 속에 우뚝한 병원 빌딩이 보였다. 도심 속에서도 SS병원의 자태는 고고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SS병원. 지난번의 경우는 특별했다. 게다가 부원장의 신념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일이 두 번 일어나기 힘든 병원. 그런데 또 다시 윤도를 호출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조차 말해주지 않았다.

국가적 중대사...

‘그렇다면 대통령?’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는 주치의 강기문이 있다. 그들 외에도 대한민국 최고 의사들이 포진하는 형편. 그런데 또 다시 윤도라니...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삭제해버렸다.

‘그럼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오지 않았다.

투타타!

생각하는 사이에 헬기가 착륙장에 내렸다. 남쪽에서 여기까지 딱 1시간 5분 걸렸다. 거기 세 명의 인사가 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원장과 외교부차관, 그리고 국정원 차장보였다.

“채 선생!”

이철중 부원장이 다가와 윤도를 맞았다.

“부원장님.”

“채 선생, 나 기억하시죠?”

그 뒤의 사람은 외교부 차관이었다. 여객선 사고 때 딸을 구해준 인사차 갈매도에 찾아왔던 사람이었다.

“아, 예... 차관님.”

“이 분은 국정원 차장보이십니다.”

차관이 국정원 간부를 소개했다.

‘국정원 차장보?’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국정원하면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차장보라면 굉장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병원과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테러라도 난 건가?’

윤도의 긴장감이 높아졌다. 종일 침을 놓느라 뉴스를 챙기지 못했다. 그렇기에 깜깜할 수 밖에 없었다.

“사안이 중대하니 여기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오늘 일어나는 모든 일은 평생 기밀에 붙여주셔야 합니다.”

차장보는 보안부터 체크하고 나왔다.

평생 기밀.

굉장한 단어가 나왔다.

“진료관계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문제 없습니다. 환자 진료에 대한 사안은 의료법상으로도 누설금지니까요.”

“지금 이 병원에 북한 고위층 인사가 와 있습니다.”

“......!”

귀를 기울이던 윤도가 호흡을 멈췄다. 대통령일까 하던 상상이 박살나는 순간이었다. 환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북한 사람이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남북한 관계가 지금 최악 아닙니까? 그래서 정부와 정보부 쪽에서 물밑으로 북한 고위층과 선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특별한 기회를 만들게 되었는데...”

“......”

“고위층 한 사람이 간부전에 간경화가 심해 간이식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해서 우리가 좋은 케이스를 만들어 여기까지 데려오는 데는 성공했는데 중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중대문제?’

“간은 확보 되었지만 그걸 이식하려는 단계에서 집도를 맡은 집도의가 예상치 못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채 선생께서 그 분을 좀 돌봐줬으면 합니다.”

“간이식이라면... 이 병원에는 전문가가 여럿인 걸로 알고 있는 데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원하는 집도의가 따로 있기 때문에... 지금 와서 집도의를 교체하겠다고 하면 수술을 거부하고 북한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건 최악이죠. 그래서...”

“집도의는 어디를 다친 겁니까?”

“부원장님!”

차장보가 이철중을 돌아보았다.

“어깨탈구입니다. 이 양반이 최근 무리를 하다 보니 재발성 어깨탈구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최근에 컨디션이 좋아서 추진한 일인데 수술을 앞두고 가운을 입다가 느닷없이 그만...”

이철중이 다가와 설명을 했다.

“수술실은 모든 세팅이 끝난 상태입니다. 해서 달리 방법이 없길래...”

“......”

재발성 어깨탈구.

간단히 말해 어깨가 빠졌다는 것이다. 간이식은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한 수술. 그러나 어깨가 탈구되면 손가락이 아프고 감각이 떨어진다. 어깨를 맞추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자칫 엄청나게 부어오를 일. 아무리 좋은 진통제를 맞는다 해도 팔과 손가락의 감각이 떨어져 섬세한 수술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집도의를 만나보죠.”

윤도가 말했다. 보아하니 시간을 다투고 있는 일. 빠른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여기요.”

부원장이 수술장 문을 가리켰다. 안으로 들어서자 초긴장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레지던트 한 사람이 대기실 문을 열었다. 거기 집도의가 있었다. 어깨를 잡고 입술을 물고 있던 집도의가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이 윤도와 마주쳤다.

“......!”

윤도의 호흡이 다시 한 번 멈췄다. 강기문 박사였다. 대통령주치의이자 간담췌암 치료와 장기이식의 최고 권위자. 동시에 한국정맥경장영양학회이자 국제학술지 SCI에 최다 논문을 올린 간이식 전문가... 동시에 지난번 윤도의 침술을 못 마땅하게 여기던...

“강 박사.”

차장보와 함께 들어선 이철중이 다가섰다.

“지금 달리 방법이 없어요.”

“......”

강기문은 대답을 안 했다. 중차대한 수술을 앞두고 일어난 불상사. 그러나 그도 사안의 중대성을 알아 난감하던 차였다. 그렇기에 부원장이 대안을 알아본다기에 잠시 대기 중인 상태였다. 그런데, 그 앞에 채윤도가 등장했다. 지난번 그의 무시를 고이 즈려밟고 폐부전 환자를 살려낸 장침의 한의사... 현대의학의 의사가 아니라 한-의-사.

“채 선생이라면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어깨를 맡겨봅시다.”

이철중이 한 번 더 재촉했다.

“강 박사님!”

차장보도 가세했다.

“끄응!”

신음을 토한 강기문이 윤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잘 부탁합니다.”

입은 말하되 마음은 열리지 않은 상황. 윤도가 손을 내밀어 그 맥을 잡았다. 사심은 버렸다. 그저 환자일 뿐이었다. 지난번에 약간의 눈치를 주었다고 반감을 의식할 일은 아니었다.

“......”

어깨 쪽 맥은 거칠고 사나웠다. 기세가 좋아서 그러는 게 아니라 반대라서 그러는 것이다.

“......!”

그러다 윤도의 호흡이 멈췄다. 이 사람... 더 큰 병이 있었다. 맥을 따라 복부로 내려갔다. 오장육부의 비장이었다. 비장의 췌장이었다.

‘젠장!’

호흡을 가다듬고 한 번 더 확인에 들어갔다. 섬세한 췌장... 그 안으로 이어지는 길, 딱 중앙부였다. 거기 콩알만하게 뭉친 사기(邪氣)... 아무리 봐도 암의 전조처럼 보였다.

‘일단은 응급조치부터.’

진맥을 끝낸 윤도가 강기문의 손목을 놓았다. 그런 다음 견갑골 안쪽 모서리 위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

강기문이 기겁을 했다. 압통을 느끼는 것이다.

“가능하겠소?”

침을 넘긴 강기문이 물었다.

“가능합니다.”

똑 같은 글자수로 대답하고 장침통을 열었다. 그는 한국 현대의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한사람. 구구하게 한의학적 설명으로 유세를 떨 생각은 없었다. 이럴 때의 의술이란, 오직 결과가 말할 뿐이었다.

“간호사만 남고 다들 나가주시겠습니까?”

윤도가 부원장과 차장보를 바라보았다.

“채 선생, 시간이 별로 없어요. 저쪽 참관인이 뭔가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수술 준비중이라고 하세요. 20분이면 됩니다.”

윤도는 단호했다. 그 기에 질린 차장보, 별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재발성 어깨탈구.

그로 하여 수술기능을 할 수 없는 오른팔. 어깨는 소장과 연결된다. 손도 소장경이다. 이 사람의 신경은 온통 거기에 있을 일. 그 바람을 따라 합곡과 곡지, 외관혈에 장침을 넣었다. 곡지와 합곡혈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근시와 난시, 눈의 피로까지 덜 수 있는 혈이니 눈이 침침한 강기문에게 보너스를 안기는 셈이었다.

다음은 떨리는 손을 위해 천종혈과 수장수혈, 양릉천에 장침을 넣었다. 어깨는 견중과 천료혈을 잡았다. 몇 군데 혈자리에는 이향자침으로 두 개의 침을 넣었다. 마지막은 기해혈에서 끝냈다. 기해혈은 원기의 바다. 한 시간 정도지만 낭패감으로 방전되었을 그의 기를 위한 에너지 충전이었다.

“끝났습니다.”

타이머가 울리자 발침과 함께 말했다. 강기문이 어깨를 움직여 보았다.

“......!”

그의 시선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진통제를 맞았음에도 다 가시지 않았던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 어깨를 더듬었다. 작렬감과 붓기도 많이 내려갔다. 손가락의 반응도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

강기문은 한 번 더 흠칫거렸다. 컨디션이었다. 완전하게 다운되었던 컨디션이 확 올라온 것이다.

한 마디로!

‘언빌리버블...’

강기문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간호사의 보고를 받은 부원장과 차장보가 들어왔다.

“채 선생!”

차장보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일단 어깨는 잡았지만 안정할 시간이 없으니 도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간이식이라면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니 저를 참관하게 해주시면 그때 그때 응급조치가 가능합니다.”

윤도가 진단 견해를 밝혔다.

“수술 중에 침을 맞는단 말입니까?”

“통증 부위에 따라 침을 꽂으면 만에 하나 수술을 중단하지 않아도 됩니다.”

“김 선생님.”

부원장이 차장보를 바라보았다. 그의 성씨가 김인 모양이었다.

“수술 도중에 침이라... 어쩌면 극적일 수도 있겠습니다.”

차장보가 차관을 바라보았다. 둘은 긍정적이었다. 차관이 긍정의 견해를 밝혔다.

“그렇게 되면 참관인이 감동하지 않겠습니까? 아, 남한 의사가 제 몸 돌보지 않고 수술을 하는구나... 물론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튼 시작하죠. 어깨가 멀쩡할 때...

강기문이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튼이라는 말은 윤도의 수술장 동행의 거절이 아니었다.

간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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