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윤도는 간이식 수술실 안에 동참하게 되었다. 초록색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장침통을 챙겼다. 수술대를 중심으로 윤도는 오른쪽에 앉고, 북한의 참관인 둘은 왼쪽에 앉았다.
“어깨와 팔이 좀 이상하다 싶으면 잠시 시간을 내십시요.”
윤도가 강기문에게 한 말은 한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북한 최고위급 인사의 간이식 수술이 시작되었다.
외과수술의 꽃으로 불리는 간이식 수술. 그는 현재까지 1800례가 넘는 간감췌암 수술을 했고 간이식에 대한 수술성공률은 100%였다. 그러나 간이식은 12시간 이상이 걸리기에 섬세함과 뚝심이 동시에 요구되는 과정. 테크닉과 체력, 섬세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률을 보장하기 어려운 대수술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강기문은 좀 허둥거렸다. 어깨탈구 때문이었다. 그는 딱 한 번 실패할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어깨 탈구 때문이었다. 빠진 어깨를 수습하고 나흘 만에 수술장에 들어갔지만 감이 달랐다. 스태프들 몰래 식은땀을 흘렸다. 어쩌면 실패할 수도 있었던 날. 그러나 오늘 수술대에 오른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자칫 실패라도 하면 국가적인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둘렀다. 팔에 문제가 오기 전에 끝내려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초반 진행은 좋았다. 스태프들과 호흡도 잘 맞았다. 북한 고위층의 흉곽에서 간이 분리되었다. 그 간은 회색의 알 덩어리처럼 보였다. 최악의 간경화증이자 재생성간결절이었다. 간경화가 악화되면서 간은 고작 620g으로 줄었다. 정상인의 무게가 1200-1300g 정도니까 절반에 불과한 크기였다.
그 과정 직후에 강기문의 팔에 문제가 생겼다. 어깨가 뜨끈하더니 감각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힐금 윤도를 보았다. 윤도의 시선은 수술대에 있었다. 그 손에 들린 장침통이 보였다.
‘젠장!’
애써 외면하며 수술에 집중했다. 그런데... 거기서 또 한 번 어깨 결림이 느껴졌다. 별 수 없이 하던 과정을 스태프에게 넘기고 윤도 옆에 앉았다. 윤도는 말없이 장침을 뽑았다. 일단 어깨의 천종혈에 삼향투자로 넣었다. 그런 다음 팔로 내려가 곡지혈, 합곡혈에 하나씩 넣었다. 마지막은 다리의 양릉천혈에 넣었다. 10분 후에 발침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깨를 만져본 강기문이 다시 집도에 나섰다.
그 과정은 북한 참관인들에 의해 매섭게 관찰되었다. 이날 수술은 11시간 20분이 걸렸다. 이날 강기문은 모두 3 차례의 시침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리에 끝났다.
“고맙소.”
수술이 끝난 후, 강기문의 표정은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윤도가 아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집도였기 때문이었다. 부원장과 차장보도 한숨을 돌렸다. 그들도 두고 두고 윤도의 공을 치하했다.
“채 선생의 은공은 잊지 않을 겁니다. 수고 비용은 저희가 따로 준비할 거고 청와대에도 따로 보고가 되었습니다.”
차장보와 외교부 차관의 입가에도 그제야 미소가 엿보였다.
“강 박사님.”
윤도는 스태프들과 수술 뒷이야기는 나누는 강기문에게 다가갔다.
“아, 이럴 게 아니라 내 방에 가서 차라도 한 잔 할까요?”
“아닙니다. 그릴 말씀이 있어서요.”
“뭡니까?”
“췌장 문제인데...”
“아, 채 선생님 췌장에 애로가 있나요? 그럼 제가 언제든지...”
“그게 아니고 강 박사님...”
“나요?”
“죄송합니다. 아까 진맥 중에 알게 될 사실인데 아무래도 말씀드려야할 거 같아서...”
“어깨가 아니고 췌장에 한의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어깨는 소장의 문제입니다. 소장을 보하는 한약을 좀 드셨으면 좋겠고... 그보다 췌장은 좀 더 안 좋을 거 같아서 정밀 체크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채 선생님.”
“정확이 이 부위입니다. 사이즈는 콩알 정도... 부디 흘려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윤도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했다. 상대는 대한민국 간담췌장의 권위자. 하지만 언제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었다.
“......!”
강기문의 얼굴은 다시 황당모드로 들어갔다. 허튼 소리를 할 리 없는 한의사. 하지만 진맥 하나로? 그렇기에 강기문은 복잡다난한 표정이 되어 윤도와 작별을 나누었다.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복도로 나오자 지진대피 현장에서 보았던 국정원 직원 두 명이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보니 창밖이 환했다. 시계를 보니 다음 날 오전이었다. 수술실에서 밤을 새운 것이다.
“그럼 집 말고 제 한의원까지 좀 부탁합니다. 진료예약 환자가 기다릴 테니 좀 빨리요.”
“원하시는 대로 해드려. 경찰 불러서 협조 요청하고.”
차장보가 명령을 때렸다.
우웽우에엥 애앵!
경찰 오토바이 두 대가 앞서 달렸다. 그 뒤를 따라 국정원 세단이 내달렸다. 윤도가 그 안에 있었다. 가면서 통화를 했다.
“정 실장님, 채윤도입니다.”
정나현이 전화를 받았다. 직원들은 모두 상경해 있었다.
“저 20분 안에 도착하니까 환자진료 채비 갖추세요.”
윤도의 지시가 떨어지자 안절부절못하던 일침한의원에 생기가 돌았다.
“원장님 오신대. 1-2-3번 예약환자 진료 준비해.”
정나현의 목소리가 대기실을 울렸다.
“네, 실장님!”
연재와 승주도 덩달아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발목에는 귀천이 없다-1
흐린 날 아침, 원장실에 출근하기 무섭게 윤도 핸드폰이 울었다. 장 박사였다.
“박사님, 웬일이세요.”
승주에게 커피를 받아든 윤도가 활기차게 인사를 했다.
“출근하셨나?”
“예, 박사님은요?”
“나는 인기가 떨어져 환자가 많지 않으니 조금 늦어도 지장이 없다네.”
“원 박사님도...”
“그나저나 수고가 많았네.”
“수고라면...”
“창곡군 지진 대피자들 말일세.”
“아, 그거요.”
“실은 나도 어제 오후에 거기 갔었네. 채 선생만은 못 하지만 낯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박사님이 왜요?”
“아, 이 땅에 채 선생만 한의사인가? 지진이면 국가적 재난인데 우리 한의사들에게는 침이라는 좋은 의술이 있고 지진 대피객들 같은 경우 너무 유용하더군. 그런데 채 선생 외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선배된 도리로...”
“저야 거기가 특별한 연고가 있다 보니...”
“그럴 리가 있나? 채 선생이라면 다른 곳이라도 달려갔을 사람이지.”
“자꾸 그러시면 부끄럽습니다.”
“아니야. 게다가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다지? 채 선생 한의원에서 가까운 탁상명이 말일세.”
“어, 그 일도 아세요?”
“이 바닥이 그렇게 넓을 줄 아나? 내 그 얘기 듣고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가 없네. 안 그래도 한의사협회에 탁상명을 제명하라고 압력을 넣었네만.”
장 박사는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괘씸하기는 하되 제명감은 아니었다. 그래도 장 박사의 한 마디라면 큰 무게가 실릴 일이었다.
“아무튼 지진 대피소 일은 진짜 큰일이었네. 덕분에 우리 한의 위상이 더 좋아졌어.”
“부탁 있으시군요?”
윤도가 미리 앞서 나갔다.
“하핫, 이거 속이 빤히 보였나? 하지만 지진 의료봉사 칭찬은 진심이라네.”
“환자 보내시게요?”“내가 사람 하나 데리고 오겠네. 시간이 되려나?”“박사님이 오신다면야 열 일 제치고 시간 내야죠.”
“알았네. 잠시 후에 보세.”
전화가 끊겼다.
‘원 박사님도...’
공연히 웃음이 나왔다. 어차피 환자를 밀어주는 일이다. 그러니 장 박사가 미안할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예우를 갖추는 장 박사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더니 최고 원로급에 속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의 장 박사. 과연 탕약 분야의 일가를 이룬 거물다웠다.
네 명의 시침을 끝냈을 때 장 박사가 도착했다. 그는 50대의 남자와 함께였다.
“이 쪽은 한국빙상협회의 안혁봉 사무총장님이시네.”
장 박사가 남자를 소개했다.
“박사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전설적 명의 화타 편작에 버금가는 의술이시라고요.”
안 총장이 첫 인사를 건네왔다.
“별 말씀을요. 장 박사님은 원래 칭찬이 후하신 분이라...”
“그럴 리가요? 제가 볼 때 장 박사님처럼 빡빡하신 분도 드물답니다.”
안 총장이 바로 응수했다.
“아, 예... 일단 앉으시죠.”
윤도가 자리를 권했다.
“이 분이 환자신가요?”
자리를 잡은 윤도가 장 박사를 바라보았다.
“환자 맞지. 빙상협회 부흥의 책임감 때문에 골골거리는 환자...”
“......?”
“아이고, 박사님,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명의를 앞에 두고 있자니 입이 근질거려서요.”
활달한 표정의 안 총장이 장 박사를 막고 나섰다.
“실은 우리 협회가 지금 침체기 아닙니까? 100년 만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김여나 선수 후로 예견된 일이긴 했습니다만...”
“네...”
윤도는 안 총장의 말에 귀를 기우렸다.
“그런데 최근에 재부흥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신기루가 될 처지입니다.”
“......?”
“혹시 피겨에 관심 있으십니까?”
“그거야... 저도 김여나 선수 팬이었거든요.”
“그럼 다행이군요. 지금 사실 우리 협회에는 여러 유망주가 있습니다. 남들은 김여나 그림자만 보고 살았냐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거든요.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 최선을 다했지만 피겨라는 게 워낙 동양권에서는 기반이 안 좋다보니...”
“......”
“지금 국제적으로도 꽤 유망 받는 선수가 몇 있어요. 여자부의 이영, 임은서, 최소빈... 그리고 남자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 둘 있지요. 하나는 열일곱 살 난 이현찬 선수고 또 한 사람은 열아홉 살 난 차지환 선수입니다. 혹시 들어보였나요?”
“이현찬 선수는 들어봤네요.”
“어이쿠, 그렇다면 말씀 드리기가 더 부드럽겠군요. 한 사람은 주니어 그랑프리 2위까지 올랐고 또 한 선수는 그 전 해의 주니어 그랑프리 3위를 먹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승이 아니면 큰 관심 갖지않지만 이 정도면 세계적 레벨이거든요.”
“예...”
“이 선수들이 이번 올림픽 예선 2차전에서 한 장의 티켓을 놓고 맞붙게 되었어요. 그야말로 빅 매치가 되는 거죠. 협회도 이번 기회에 올림픽 열기와 더불어 피겨의 인기를 몰아가려는 생각에 야심찬 예선전을 준비 중이었는데...”
말을 하던 안 총장의 얼굴에 그늘이 깊어졌다. 그는 남은 차를 원샷에 들이키고는 뒷말을 이었다.
“이현찬 선수는 마무리 훈련에서 발목 부상을 당해 출전이 불투명하고 차지환 선수 역시 허리와 발목이 좋지 않아 출전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끝에 장 박사님을 찾아뵈었더니 채 원장님이 신침이라고 그래요.”
“......”
“죄송하지만 저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그 선수들이 맞대결을 펼치지 않으면 이번 예선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선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기량 차이가 크거든요.”
“두 선수의 부상을 낫게 해서 진검승부를 펼치게 해달라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대회가 닷새 남았으니 가능성만 확인되면 욕을 좀 먹더라도 진료일정에 맞춰보겠습니다.”
“으음...”
“부탁합니다. 비용이 든다면 기꺼이 부담할 수 있습니다. 협회 차원도 그렇고 선수들 역시 완쾌만 된다면 비용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얼마나 주시게요?”
윤도가 넌지시 물어보았다. 윤도의 장침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지 알고 싶었다.
“협회가 천만 원을 대고 선수들이 각각 500만원씩 내면 되겠습니까?”
“2천만 원이군요?”
“적으면 더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됐습니다. 일단 선수들을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다만 진료를 받게 되면 협회 쪽 비용만 청구하겠습니다. 프로 선수가 아닐 테니 그쪽까지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군요.”
“어이쿠, 그럼 더 고맙죠.”
“그럼 선수들은 언제 오는 거죠?”
“선생님만 허락하시면 당장 부르겠습니다. 사실 닷새라고 해도 긴 시간은 아니거든요.”
“그러세요. 시침을 서둘러서 시간을 빼보겠습니다.”
"아, 참."
거기서 장박사의 입이 열렸다.
"미안하지만 채 선생, 워크샾에서 강좌 하나 해주시면 좋겠네."
"강좌라고요."
"얼마 후에 한의학회 주관으로 국제 워크샾이 열리는데 침술실기발표를 맡은 이창수 선생께서 교통사고가 났지뭔가? 해서 나하고 조수황 과장이 채 선생을 적극 추천했다네."
"제가 그런데 나갈 깜냥이 됩니까? 경력으로 보나 조수황 과장님 같은 분이 나가시면..."
"조과장은 그때 러시아 침술전수가 예정되어 있어 러시아로 간다네. 그리고 채 선생이 안되면 누가 되겠나? 자유주제로 간단한 사례를 발표하면 되니까 한의학 중흥을 위해 부탁하네. 수준급 중의들이 오는 일이라 대타로 내세울 사람이 만만치 않아서 말일세."
"박사님."
"너무 겸손한 것도 실례야. 내 그렇게 알겠네."
장 박사와 안 총장이 나갔다.
세미나...
장 박사와 조 과장의 얼굴을 봐서도 별 수 없었다. 윤도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예약자가 가득하지만 조금씩 당기면 중간에 두 명 정도 넣을 사정은 되었다. 그러자면 시간을 벌어야했다.
첫 환자는 장침 원샷.
두 번째도 장침 세 방으로 가뜬히 회복 시켰다. 세 번째 환자는 70대 후반의 남자였다. 한때는 은행의 보안담당자였다는 사람. 엘리트 기풍이 남았지만 몸은 그와 달랐다.
매독이었다.
“......!”
“......!”
<불문진단.>
윤도가 그랬다. 이심전심인지 환자 역시 눈빛을 내렸다.
“오래 되었네요.”
윤도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예... 종로 3가에서...”
종로 3가라면 박카스 아줌마다. 하지만 요즘은 아니다. 박카스 아줌마들에 대한 일제 단속이 병행되면서 황혼의 청춘(?)들은 모두 콜라텍으로 몰려갔다. 아니, 이름도 이제는 사이다텍으로 불린다. 그게 비극이다. 젊은 여자들은 정부에서 관리라도 한다. 보건증이니 STD니 HIV니...
하지만 황혼의 청춘들에게는 그런 관리조차 없다. 황혼의 외로움에 어쩌다 한 번 내딛은 일탈이 어긋나면 골병을 만드는 것이다.
“치료는 받았어요?”
“보건소 앞까지 갔다가 이 나이에 무슨 창핀가 싶어서...”
“그래도 치료는 하셨어야죠.”
“......”
“몸이 차갑고 다리가 땡기는 날이 많죠?”
“예.”
“그것도 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건 늙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여름에도 몸이 잘 덥혀지지 않죠?”
“예...”
“그것도 그것 영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