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265)

그것.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통하고 있었다.

“무섭군요.”

“그나마 신경계 쪽으로는 안 들어간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앞으로는 꼭 장화를 신으세요.”

“......”

환자의 눈빛이 또 한 번 무너졌다. 장화... 노인들에게는 익숙치 않을 일이었다.

“올라가세요.”

윤도가 진료 침대를 가리켰다. 직맥을했다. 맥과 혈자리 기세는 좋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상하면서 뒤틀린 까닭이었다. 척추 옆의 혈자리를 눌렀다.

“아, 아!”

환자가 된소리 섞인 신음을 냈다. 오장수혈로도 불리는 의희혈의 특징이었다. 누르면 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혈자리다. 하지만 몸이 안 좋은 까닭에 더 슬프게 들렸다. 다섯 장침이 출격했다. 침끝은 조금 들어가면 걸렸다. 그렇기에 윤도의 장침은 흡사 지그재그 운전을 하듯 혈자리를 파고 들었다.

한 침은 노년의 외로움을 위해 고황혈에.

또 한 침은 앞으로 남은 날을 위해 의희혈에.

또 하나는 이따금 남자가 되는 날을 위해 신수혈에.

또 하나는 그동안 고생한 날을 위해 기죽마혈에

마지막 침은 이 모든 것을 위해 축빈혈에 넣었다.

축빈혈에서 매독 기운을 내치며 기혈조화를 이루었다. 매독은, 걸리면 참 성가신 병이다. 병원에 가면 혈액검사를 한다. 소위 VDRL이라고 불리는 스크린 테스트다. 여기서 양성으로 잡히면 TPHA 같은 정밀 검사에 들어간다. 문제는 치료를 받은 이후. 이 병이 성가신 건 치료가 된 후에도 스크린 테스트에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 때문이다.

폐결핵을 앓은 환자가 완치된 후에 X-ray 찍을 때마다 흔적이 나오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의사의 재확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걸려서 치료했는데요?”

그 말을 해야 한다. 한국사람처럼 성병에 민감한 정서 속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너스는 기해혈자리로 잡았다. 노년의 문제는 언제나 에너지 부족. 기가 채워지면 얼마간이라도 활기찰 일이었다. 물론. 그 활기로 인해서 또 다시 박카스 아줌마를 찾아가는 일은 없기를 바랬다.

“어휴, 몸에 온기가 도는 것 같네요.”환자는 가뜬하게 침구실을 나갔다.

그로부터 10분 후, 협회의 안 총장과 함께 두 귀공자가 한의원에 도착했다. 고교생 피겨선수 이현찬과 고교생 차지환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는 차지환이 먼저 해왔다. 둘 다 피겨의 트리플 악셀처럼 마스크가 시원하면서도 상큼했다.

“너희들 잘 보여라. 이 분이 바로 손만 대면 고쳐대시는 닥고 명의님이시다.”

닥고는 닥치고 고치다의 준말이란다. 요즘 유행하는 닥치고 공격의 표절판(?)이었다.

“피겨하는 친구들이라 그런지 스케이팅처럼 시원하게 생겼네요. 누가 먼저 진료를 받을까?”

윤도가 두 선수를 바라보았다.

“에헷, 사막 모래에도 파도가 있으니까 제가 먼저예요.”

차지환이 너스레를 떨며 나섰다.

“형, 왜 이러셔? 국대는 내가 먼저 뽑혔거든.”

이현찬도 지지 않았다. 다행히 둘은 마인드가 긍적적이었고 서로의 친분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접수순이야. 누가 먼저 접수했지?”

윤도가 기준을 제시했다.

“앗!”

눈치 빠른 이현찬이 접수실로 뛰었다.

“야야, 너 이러면 새치기야. 정정당당하게 승부해야지.”

차지환도 덩달아 뛰었다. 국가대표라지만 나이로 치면 청소년. 활발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결과를 말하자면 차지환이 먼저 진료를 받았다. 먼저 달려간 이현찬이 차지환 이름을 대놓고 기다렸단다. 연장자에 대한 예우였다. 인성이 된 친구들이었으니, 윤도는 시작 전부터 두 친구의 케미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진맥부터 잡았다.

손목에서 펄떡거리는 진맥을 따라 온몸을 돌았다. 오장육부를 돌아간 진맥이 무릎을 지나 발목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결국은 위장으로 돌아와 멈췄다.

윤도 머리에 차지환의 진단서가 들어왔다.

<외측발목염좌>

간단히 말하면 바깥 쪽 인대의 손상으로 인한 부상이었다. 윤도는 거기에 자신의 진단을 덧붙였다.

<위하수의 근본에 의한 외측발목염좌>

위하수가 시작이었다.

발목에는 귀천이 없다-2

피겨선수들은 몇 가지 부상을 달고 산다. 허리와 발목, 무릎 부상 등이 대표적이다. 근력이나 체력이 다 성장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훈련을 시작하는 게 원인의 하나다. 더구나 주로 한 발을 쓰는 착지를 한다. 그 착지를 받아주는 얼음은 쿠션이 아니라 딱딱하다. 그렇기에 허리와 발, 발목, 무릎 등에 부상을 안겨주는 원인이 된다.

부츠 문제도 크다. 보다 높은 점프를 위해 발을 고정 시키는 부츠는 선수들의 발목을 약하게 만든다. 얼음 위에서의 스케이트 과학화는 엉뚱하게 지상에서 발목을 약하게 하기도 한다. 발목의 근력을 약화 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피겨 선수들은 얼음판이 아니라 도리어 지상생활에서 발을 다치는 경우가 많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차지환도 그랬다. 훈련 잘 마치고 지상에서 발목을 삐끗했다. 첫 부상은 3개월짜리로 인대 3개가 늘어나 버렸다. 두 달을 쉬고 다시 훈련을 시작했는데 이때 쉰 것을 보충하려는 욕심에 또 인대를 다쳤다. 이번에는 6개월을 쉬어야했다. 잘 나가던 차지환의 악셀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었다.

“이후로 부상을 달고 살아요. 나은 듯 하다가 조금 무리하면 또 아프고... 병원에서는 괜찮다지만 저는 작은 통증이 계속 붙어 있거든요. 고춧가루 듬뿍 뿌린 음식 먹고 이빨 안 닦은 기분이라서 도약할 때 자꾸 주저하게 되요. 발목 안에 작은 지옥이 들어있는 거 같아요.”

발목 안의 작은 지옥. 차지환이 때 묻지 않은 소감을 밝혔다.

“이제 괜찮을 거야. 내가 원인을 찾았거든.”

“어, 진짜요?”

“우선 외측발목염좌는 이제 큰 문제가 없어. 그러니 병원의 진단은 틀리지 않아.”

“그런데 왜 계속 통증이 있죠? 하긴 코치님도 마인드 탓이라고 과감하게 잊어보라시던데.”

“마인드는 아니고 바로 여기 때문이야.”

윤도가 차지환의 배를 가리켰다.

“배요?”

“식사 제 때 안 하지?”

“네... 체중관리 때문에...”

“체중관리는 당연할 테고 식사시간 말이야.”

“좀 그런 편이에요. 다른 선수들은 국가대표에 뽑히면 식단관리를 받지만 피겨는 개인 코치를 두거나 외국에서 배우는 경우가 많아서...”

“그건 핑계야. 훈련을 스케줄에 맞춰서 하듯 식사시간도 잘 지켜야해. 그게 몸을 위한 도리거든.”

“네... 실은 코치도 그 말을 하지만 피곤하거나 힘들면...”

“팔뚝에 힘 좀 줘봐. 꽉.”

“이렇게요?”

차지환이 주먹을 쥐어 보였다. 팔뚝에 근육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이 힘줄이 잘 얼은 얼음처럼 단단하면 위장이 건강한 거고 그렇지 않으면 약한 거야. 이제 누워볼까?”

이번에는 침대에 누이고 배를 눌렀다. 배는 힘줄과 달리 단단했다.

“여기가 뭉쳤어. 그건 곧 음식 먹기가 즐겁지 않다는 거고 위장이 늘어났다는 반증이지.”

“그럼 위장을 고치면 발목도 낫는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고칠 수 있어요?”

“그렇다고 봐야지.”

“와아!”

“아픈 데가 여기지?”

윤도의 손이 발목으로 옮겨갔다.

“네.”

“여기?”

발목을 누르며 아시혈을 찾는 윤도.

“네, 그 속이오.”

“오케이.”

워밍업을 마친 윤도가 침 놓을 준비에 들어갔다.

힘줄(tendon)과 인대(ligament).

둘은 다르다. 힘줄이란 근육과 뼈를 이어주는 구조물이다. 근육이 수축하여 힘을 만들면, 힘줄이 이를 뼈에 전달하여 관절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달리 인대는 뼈와 뼈를 연결한다. 뼈의 연결을 도와 관절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역할이다. 인대와 힘줄의 조직학적 구조는 비슷하다. 다만 역할과 손상기전은 다소 차이가 난다.

힘줄의 경우, 움직임을 만드는 구조이어서 대부분은 과다한 사용, 즉 무리한 경우가 많다. 골프엘보, 테니스엘보, 슬개건염, 아킬레스건염, 회전근개건염 등이 모두 힘줄 관련 질환이다. 치료는 과다한 사용을 줄여야 하며 잘못된 운동동작으로 인한 손상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힘줄 질환일 때는 근육 문제가 없는 지 확인이 필요하다.

인대의 경우는 좀 다르다. 관절이 제 위치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보니 대부분 외상과 관련이 많다. 발목염좌, 손가락염좌, 십자인대파열 등이 대표적인데 관절이 정상범위 이상으로 사용될 때 인대가 파열되는 경우가 많다.

차지환의 경우는 발목염좌이므로 인대손상이 맞지만 그 원인이 약한 위장에서 왔다. 인대 자체의 염좌는 고쳤지만 위장이 좋지 않기에 계속 신호가 가는 것이다.

시침 준비는 승주가 도왔다. 차지환은 이제 얌전히 누웠다. 첫 혈자리는 위상혈과 기해혈, 족삼리혈이었다. 모두 화침으로 넣었다. 마무리는 관원혈과 중완에서 맡았다. 관원에 꽂힌 침으로 위하수를 달래며 기세를 말단까지 밀었다. 위하수의 처진 부분이 꼼지락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침감을 조절하면서 남은 침끝을 다 밀어넣었다. 저만치 먼 발목이 움찔 반응을 보였다.

‘신호...’

윤도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약침을 뽑았다. 같은 관월혈에 이향투자침으로 넣었다. 미리 개척한 침감을 따라 약침이 질주했다. 늘어진 위하수가 수축하면서 제자리를 잡아갔다. 마무리는 미세 조절로 끝을 냈다. 혈자리에서의 조절은 언제나 어려웠다. 윤도라고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휴우!’

숨을 골랐다. 발목은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은 발목의 아시혈이 타겟이었다. 환자는 의사와 다르다. 본인이 스스로 찜찜한 마음을 떨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것까지 떨쳐내 주어야 좋은 의사가 된다. 섬세하고 어린 피겨선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윤도의 침은 발등의 태충혈로 들어갔다. 차지환이 가장 신경을 쓰는 아시혈이었다. 사실 이런 경우의 아시혈은 자침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윤도의 본 치료는 이미 끝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 그걸 노리는 윤도였다. 플라시보도 엄연히 의술의 한 분야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태충혈에 다향투자침으로 세 개의 장침을 넣어주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 차지환을 만족시키려는 침술서비스였다.

따르릉!

타이머와 함께 발침을 했다.

“어때?”

윤도가 물었다. 차지환은 발목부터 꼼지락거렸다. 꼼지락꼼지락, 발목이 돌아갔다.

“어!”

차지환이 외마디 소리와 함께 윤도를 바라보았다.

“아파?”

“아뇨. 대박 시원해요.”

“내려와 봐.”

“어!”

이번에는 신발을 신고 윤도를 바라보는 차지환.

“어때?”

“개시원해요.”

“......!”

“우와, 진짜 신기해요. 어쩌면 그럴 수가 있죠? 침 몇 방에...”

“위하수 약 지어줄 테니까 잘 챙겨 먹고, 식사 제 시간에 챙겨 먹고... 이번에 말쑥이 고쳐아지 이제 슬슬 성숙해지고 있어서 몇 번 더 다치면 선수생활 오래 못해.”

“알겠습니닷!”

차지환은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하고 나갔다.

“무지 귀여워요.”

그 모습을 본 승주가 쿡하고 웃었다.

다음 이현찬은 약간 수줍어하는 성격이었다.

“선생님.”

그가 고개를 들었다.

“왜?”

“저 지환이 형보다 더 안 아프게 고쳐주세요.”

“더 좋은 경기 보이려고?”

“네. 저번 평가전에서 제가 졌는데 기왕에 맞붙으면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거든요.”

이현찬이 웃었다. 승부욕은 누구보다 강한 선수였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해봐.”

“도약과 착지예요. 점프를 할 때 발목이 뻐근하고요 균형이 잘 안 잡혀요. 착지도 마찬가지고요.”

“발등도 부었네?”

“진짜 내 발이 아닌 거 같다니까요. 꼭 중요할 때 말을 안 들어요. 그래서 부츠까지 바꿨는 데도...”

“그래?”

이번에는 윤도가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굉장한 성적을 올린 선수였다. 사실 김여나 이후의 피겨선수들은 좀 불행한 면도 있었다. 그녀가 이룬 어마무시한 업적 때문이었다. 국민들 눈높이가 확 높아졌으니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위의 성적도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무기는 공중 4회전 플립. 웬만한 선수라면 시도도 할 수 없는 고난도의 연기였다.

촤라락!

파앗!

꽈당!

윤도가 뜨면 이렇다. 하지만 이들이라면...

파앗!

사뿐!

나플!

수준 자체가 다르다 발목에 날개를 단 나비가 되는 것이다. 그 나비들이 날개를 다친 셈이었다.

<아킬레스건병증>

그의 진단은 그랬다. 점프에 영향을 미치는 발 뒤꿈치 아킬레스건의 이상이었다. 그 또한 과도한 훈련이 원인이었다. 침술은 종아리 근육을 이완 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아킬레스건 옆의 혈자리 두 개가 범상치 않았다. 뭔가 뭉친 느낌이 있었다. 좁쌀처럼 단단하고 동그란 덩어리였다. 약물을 발라 일침이혈로 한 방에 꿰었다.

“발목 좀 움직여볼래?”

윤도가 주문을 넣었다. 꼼지락, 이현찬의 발목이 회전을 그렸다.

“느낌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오케이.”

발목을 잡고 침감을 더 했다. 침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세심하게 감았다. 딸깍, 침과 혈자리가 완전하게 맞물리는 느낌이 왔다. 원하는 파동을 찾은 것이다. 거기서 손을 놓았다.

약간 부어오른 발등은 협계혈의 장침으로 해결을 했다.

“우와, 대박!”

침대에서 내려선 이현찬 역시 가뜬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만족스러운지 제 자리에서 세 바퀴나 스핀을 넣고 돌았다.

“발목 뻐근한 게 사라졌고요 균형감각 대박이에요.”

이현찬의 입이 귀밑까지 올라갔다.

“으아, 선생님이 현찬이를 더 잘 고쳐주셨나 봐.”

안 총장과 들어온 차지환이 조크를 날렸다.

“이 녀석들이 이제 살판이 났나보군. 어서 인사나 드려.”

안 총장이 두 선수의 머리를 누르며 웃었다. 한숨 돌린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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