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에 윤도의 손가락은 다른 날에 비해 뜨거웠다. 마치 난로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이 불의 기운이 다른 장침의 침감과 파동을 맞추었다.
스슥!
소리 없이 암세포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다.
다음으로 장강혈로 옮겨갔다. 약침으로 넣었던 장강혈. 이제는 수삼리만큼 뜨거운 화침으로 바뀌었다. 장강혈은 수삼리의 길잡이로 삼았다.
수삼리는 화농의 특급 저격수로 안성맞춤이었다. 화농 명혈이다. 고름이 있으면 없애버리고, 피부나 조직이 썩기 시작하면 가차 없이 녹여 이물을 제거한다.
‘녹아라... 직장 끝의 암덩어리들...’
윤도는 자신의 의지와 기를 듬뿍 실어보냈다.
“......!”
손끝으로 감이 왔다. 저 검은 철갑 기세의 암 무리들. 그들을 향해 진격하는 윤도의 장침군단. 그 군단의 틈새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은밀한 저격수 수삼리혈...
암세포의 발악이 엄청나지만 장침 군단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장침의 기세가 암세포의 성벽에 닿았다. 초반 기세는 암세포의 압승이었다. 선발대로 내려온 장침군단의 힘은 암세포들의 거친 파워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그 기세의 체외 조절자는 신의 손가락 채윤도. 무너지고 스러져도 장침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철갑의 암세포들은 기세등등했다. 그 기세에 흠을 낸 게 저격수들이었다. 맹렬한 격돌의 틈을 타 수삼리의 기가 암세포에 닿았다. 약침의 힘을 받은 수삼리는 암세포를 골라 자폭했다.
사륵!
스륵!
암세포가 녹으며 하나 둘, 방어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원하다 못해 통쾌한 장면이었다. 혈자리 공략법에서 약침공략법, 마침내 환부 저격 공략법까지 발전하는 윤도였다. 인체 어디라고 손처럼 침을 넣을 수 있는 윤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거기서 환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졌다.
그녀의 똥꼬를 지켜주세요-2
그녀의 똥꼬를 지켜주세요-2
“아픈가요?”
“뜨거워요.”
“조금만 참으세요. 지금 암세포를 녹여내는 중입니다.”
“하지만 오줌보가 터질 거 같아서...”
“......!”
윤도가 그녀의 하체로 고개를 돌렸다. 터진 건 오줌보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항문에서도 비향기로운 덩어리가 빼꼼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직 치료침이 다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 윤도 머리에 그린 최후의 지원군 양로혈은 시침도 않은 판이었다. 옹저의 치료에 수삼리와 쌍으로 쓸 요량이었다. 수삼리와 짝을 지으면 농과 옹저 치료에 시너지 효과를 낼 혈이기 때문이었다.
‘음...’
맥으로 상황을 살폈다. 직장암의 표면은 어느 정도 녹았다. 거기에 환자의 체력이 딸리는 상태. 그렇다면 첫 치료에서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었다. 하루 이틀 지난다고 목숨이 위험한 경우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감을 잡은 것에 만족하고 발침을 했다.
“네...”
그녀는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직장 쪽 암세포를 일부 녹였습니다. 밤에 열이 날 수 있어요. 해열 약제를 드릴 테니 가져가셔서 드시고 변에 평소보다 많은 피가 나와도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의사항을 알려주고 첫날 치료를 마감했다.
“어때요?”
어머니가 들어와 물었다.
“잘 될 것 같습니다.”
윤도가 대답했다.
“또 뵙겠습니다.”
어머니는 딸을 부축해 나갔다. 딸은 걸음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두 모녀의 뒷태는 신기하게도 닮아있었다.
다음 날, 그녀가 오지 않았다. 연락도 없었다. 밤새 공략법을 정리하고 기다리던 윤도였다. 통증을 낮추고 침감을 강화한 약침도 임자가 없으니 몇 방울의 물에 불과했다.
“어제 그 직장암 환자 연락 없었나요?”
진료하는 사이에 승주에게 물었다.
“없었는데요?”
승주가 대답했다. 윤도는 마지막 환자를 받았다. 어린 아토피 알레르기 비염 환자였다. 맘 카페를 통해 이 분야의 치료에 꽤 알려진 윤도. 거의 완성 단계에 있는 신약만으로 콧물을 잡았다. 그 후에 장침을 넣자 아이는 금세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현관 쪽에 119 구급대 사이렌이 울렸다.
“원장님!”
창밖을 보던 승주가 소리쳤다. 119 구급대였다. 구급대원들이 내리고 있었다. 구급대는 환자 한 사람을 내렸다. 어제 왔던 직장암 환자였다.
“구급대 19년 동안 응급환자가 한의원으로 가자는 건 처음입니다.”
서류에 사인을 받으며 구급대원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거죠?”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열감이 있고 늘어지긴 했지만 의식이 있었다.
“밤에 열이 심해서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어요. 그런 다음 귀가했는데 계속 실변이... 딸이 절망을 했는지 그냥 이대로 죽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설명은 어머니가 대신했다. 그 얼굴에 눈물이 깃들었다. 삶을 내려놓은 환자와의 실랑이를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윤도가 환자를 바라보았다. 손에 쥔 약병이 보였다. 그녀가 옆으로 숨겼다.
“잠깐 나가계시죠.”
윤도가 보호자를 내보냈다. 창밖으로 119 구조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거 수면제죠?”
윤도가 환자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네.”
“먹었나요?”
“먹을까 생각 중이었어요.”
답하는 환자의 시선은 허공이었다.
“그런 생각 버리기로 하지 않았나요?”
“알아요.”
“......”
“선생님은 죽을 병에 걸려보셨나요? 아니면 저처럼 이런...”
“아뇨.”
잘라 말했다. 감성의 포로가 된 환자에게 부화뇌동할 생각은 없었다.
“저처럼 이런 상황이 되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이 바뀌어요. 그냥 죽자. 아니야, 희망이 있을 거야. 무슨 희망? 평생을 장루라는 감옥을 차고 다닐 상황? 아니야, 말기암을 고친 사람도 많잖아...”
“......”
“어제도 그랬어요. 여기서 나갈 때는 희망이 솟았는데 열이 오르면서 변이 새자 긍정이 사라졌어요. 그깐 침이 어떻게 이 암을 낫게 하겠어. 최고의 병원도 못하는 일을... 괜히 너만 더 초라해질 뿐이야. 발버둥치지 말고 그냥 이대로...”
“그런데 왜 수면제를 안 먹었죠?”
“먹으려 할 때 엄마가 내 방에 들어왔어요.”
“......”
“한 번...”
“......”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해보자고 하셔요. 그래서... 살아남을 엄마를 위해 잠시 미뤘어요.”
“김 샘.”
윤도가 승주를 돌아보았다.
“네, 원장님.”
“우리 냉장고에 샴페인 한 병 남았죠?”
윤도가 물었다. 간호사와 약제팀은 탁상명이 준 돈으로 회식을 나갔다. 고질병이던 가슴결림을 고치고 간 와인바 사장의 가게였다. 거기서 회식을 하고 작은 샴페인 세 병을 얻었다. 그걸 기억하는 윤도였다.
“네.”
“한 병만 가져오세요.”
윤도의 지시를 받은 승주가 샴페인을 가져왔다. 윤도는 그 병을 수면제 병과 나란히 그녀의 머리맡에 놓았다.
“선생님?”
“우선 잘 왔습니다. 제가 할 말은 그것 뿐입니다. 시침이 끝나면 둘 중 하나를 잡게 될 겁니다. 실패하면 정다래씨는 집으로 돌아가 수면제를 털어넣을 지도 모르겠군요.”
“......”
“하지만 저는 샴페인 쪽에 겁니다. 여기서 나가기 전에 저 수면제를 정다래님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샴페인으로 저랑 건배하게 해드리죠.”
“......”
“그럼 축배의 서전을 장식해볼까요?”
윤도가 침통을 들었다. 말과는 달리 결연한 시작이었다.
첫 출격은 어제처럼 중완혈이었다. 하지만 세 개의 침은 삼향다침으로 넣었다. 어제는 아랫배의 힘이 약했다. 그걸 보완하는 윤도였다.
백회혈에 장침이 들어갔다. 공최와 천추에도 들어갔다. 하체로 내려가 장강혈과 회음혈에 침을 넣었다. 난감한 부위지만 이미 익숙해졌다.
똑!
어제의 절침이 생각났다. 오늘은 애당초 임맥 라인에 호침 두 개를 넣어 혈자리의 경직을 풀었다. 회음혈은 얌전히 장침을 받아들였다.
신주혈에 두 개의 장침을 넣은 후 본격 공세를 시작했다. 뜨끈하게 달아오른 손가락으로 화침을 시전한 것이다. 저격수를 생산하는 수삼리혈 약침이었다. 뒤를 이어 양로혈에도 두 장침을 약침으로 꽂았다. 농이나 옹을 공격해 녹여버리는 수삼리. 역시 비슷한 역할로 힘을 실어주는 양로혈. 선봉군들 사이에서 다가선 두 저격수 연합군이 암세포를 몰아치기 시작했다.
우우우!
그 기세가 어제와 달랐다.
어제 이미 제1 방어벽을 상당 녹여버린 윤도. 오늘은 양로혈의 기세까지 얹어 단숨에 암세포의 본진으로 밀고 들어갔다. 작지만 항문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차지한 암덩어리들. 그러나 집요하게 저격해 대는 두 혈자리의 기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아아!”
환자가 신음을 내쉬었다. 그때마다 환자의 몸에 몸서리가 일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윤도는 수삼리의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천혜의 요새에 자리를 튼 암세포들. 얌전히 물러갈 리가 없었다.
“조금만...”
그야말로 사투였다. 인체의 말단 중의 하나. 항문 근처에 또아리를 튼 암세포들을 향한 침감의 조준. 그게 쉬울 리 없었다. 천하의 윤도라고 해도 사력을 다해야만 했다.
‘마지막...’
윤도 손끝에 사나운 기세가 느껴졌다. 이미 몇 개의 기세를 넘은 상황. 그렇다면 이게 암세포의 본산이자 뿌리가 분명했다.
‘미안하지만...’
윤도의 마지막 기가 손끝으로 들어갔다. 최후의 저격을 노리는 기의 합체였다.
‘이제 꺼져줘야겠다.’
후웅!
41.5℃
42.0℃
42.2℃
윤도는 광기의 몰입으로 직장암의 본산에 치명적인 온도를 가했다. 오직 한 부분, 직장끝에서만 작렬하는 명침의 신기에 암세포의 본산이 녹아나기 시작했다. 역시 수삼리혈과 양로혈이었다. 수삼리는 암세포의 분해를 돕고 양로가 뿌리를 흔들었다. 두 혈자리는 녹아나기 시작한 암세포만을 골라 처절하게 녹여내기 시작했다.
저격이다.
지상 최고의 저격이었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 느낌은 윤도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최후의 한 세포까지.’
땀범벅이 된 윤도가 마지막 기를 보탰다. 옆의 승주는 숨도 쉬지 못했다. 이 사람은 그냥 한의사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원장인 윤도는 한 사람의 신선이었다.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숭고함 속에서 환자 속의 질병과 맞짱을 뜨고 있는...
후웅!
마지막 암세포 덩어리에 작렬하는 화침의 기는 차라리 장렬했다.
지직!
윤도는 보았다. 환자의 항문에서 새록새록 삐져나오는 증기와 액체 덩어리들. 철갑의 암세포들이 녹아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항문 괄약근이 실룩 요동을 하더니 시커먼 액체의 덩어리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직장암세포의 최후였다.
“악!”
“아!”
환자와 윤도의 비명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환자는 악몽을 밀어낸 비명이었고 윤도는 탈진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원장님.”
승주가 소리쳤다.
“나보다 환자를... 이제 끝났어.”
윤도는 자신을 지탱하며 환자를 가리켰다. 승주는 녹아나온 암세포 덩어리를 치우고 환자를 안정 시켰다. 승주의 품에서 환자는 윤도를 보았다. 탈진에 가깝게 늘어진 윤도, 그러나 환자의 시선을 느끼자 눈빛을 들며 웃었다. 구세주가 거기 있었다.
“정다래님.”
윤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기분 어때요?”
“시원해요. 똥꼬 안에 꽂힌 포크가 빠진 듯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에요.”
“그럼 이제 선택하세요.”
“......”
윤도 말을 들은 환자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머리맡에는 수면제 병과 샴페인 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수면제와 샴페인...
그녀의 선택은 당연히 샴페인이었다.
“같이 한 잔 하고 싶지만 나중으로 미루고요, 집에 가서 어머니와 드세요. 항문과 함께 정다래 님에게 드리는 제 선물입니다.”
“원장님...”
환자의 얼굴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다래야!”
승주의 통보를 받은 어머니가 쏜살처럼 들어섰다.
“엄마, 나 다 나은 거 같아. 저것 좀 봐.”
환자가 샘플통을 가리켰다. 거기 시커멓게 녹아나온 암세포 덩어리들이 보였다.
“아, 부처님, 하느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샘플통을 향해 미친 듯이 고개를 숙였다.
“엄마, 감사는 원장님께 해야지. 그건 나를 괴롭힌 암 덩어리야. 정말이지 원장님이 혼신의 힘으로 침을 놓아주셨어.”
“원장님...”
어머니의 인사가 윤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암세포는 다 잡았고요 하지만 치료는 이제 시작입니다. 계속적인 예후 관찰이 필요하고 탕제로 오장의 기혈을 돌봐야합니다.”
“예, 예...”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따님의 똥꼬는 지켰다는 거.”
“원장님이 제 은인입니다. 우리 모녀의 은인입니다.”
“샴페인 한 병 선물로 드렸으니까 오늘 내일 좀 안정 되면 한 모금씩 하시고요 이건 제가 안전하게 폐기하겠습니다. 이의 없죠?”
윤도가 수면제병을 들어보였다. 이의가 있을 리 없는 일이었다.
“원장님...”
어머니는 끝내 무너졌다. 그동안 애를 끓은 서러움이 한 번에 날아갔다. 고뇌의 무게를 비우니 어깨가 가벼워졌다. 그녀는 그 감격에 취한 것이다.
올 때는 119 구급차를 타고 온 정다래 환자. 갈 때는 약혼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치료를 확신한 그녀가 전화를 건 것이다.
“나 이제 걸을 때도 별로 안 아파.”
정다래가 혼자 서 보이며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