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약혼자는 큰 소리로 윤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모녀는 약혼자의 자가용을 타고 떠났다. 119 구급대 차를 타고 온 올 때와는 아주 달랐다.
“원장님...”
승주는 아직까지도 감동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왜?”
“너무 멋져요. 원장님의 장침은 정말 불가능이 없는 거 같아요.”
“어허, 내 진이 얼마나 빠진지 알아?”
“아뇨. 원장님이 장침을 시침할 때 보면 신뢰감부터 들어요. 저 환자는 이제 낫겠구나...”
“그렇지는 않아. 실은 나도 늘 불안하고 겁이 나거든.”
“진짜요?”
“그럼. 이 병은 또 어떻게 고칠까, 이 환자는 또 내가 모르는 어떤 특이한 기전을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원장님...”
“어쩌면 오늘 환자도 내 장침이 아니라 그 환자 마음 속에 있는 희망이 치료를 가능하게 한 걸 거야. 누구든 환자가 포기해 버리면 제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소용이 없는 법이니까.”
“명언이네요. 잘 새겨놓고 환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조력할 게요.”
“땡큐!”
윤도가 웃었다. 창창한 젊은 아가씨의 똥꼬를 세이브 시킨 윤도. 마치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결승7차전의 한 점 차 승리를 세이브 시킨 구원투수모양 피로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챔피언. 아니, 이제 그보다 더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똥꼬 세이브 프로젝트.
대성공이었다.
대륙 침술대가 장지커-1
“어제 너무 달렸어요.”
출근하고 가운을 입을 때 연재가 배를 문질렀다. 어제 그녀의 친구들을 만났단다. 윤도 이야기를 하며 늦게까지 달렸다. 술은 백약(百藥)의 으뜸. 그러나 한국의 음주문화는 백약 쪽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연히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장침 두 방으로 그녀를 도왔다.
“우와, 머리가 확 맑아진 거 있죠? 속도 편안해졌고...”
연재가 좋아했다.
“원장님하고 일하니 술 마시는 것도 겁이 안 나요. 이렇게 도와주시니...”
정나현이 웃었다.
“그럼 우리 종일이도 한 대 부탁합니다. 저 친구도 어제 군대간 후배 만나서 제대로 달린 거 같던데...”
진경태가 종일을 가리켰다. 당연히 그에게도 두 대의 장침이 들어갔다.
이날은 아무래도 알코올이 화두였다. 두 번째 들어온 사람도 알코올 중독이었다. 그러나 탓할 수 없었다. 그의 직업이 술상무였던 것.
술상무!
여자들은 이 말 뜻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회사의 접대담당자 혹은 대외 고객관리나 영업전담 쯤 될 것 같다. 한국의 남자들은 아직도, 술로 인간관계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서먹한 분위기를 술로 풀고 이야기를 진해하는 것이다. 술은 가끔 좋은 친구가 되니 술 한 잔 들어가면 비즈니스가 잘 진행되는 장점도 있었다.
이 경우가 남녀에게 옮겨가면 작업주가 된다.
진맥을 하려하니 환자 손이 떨렸다.
‘서경...’
이유없이 손이 떨리는 경우를 서경이라고 한다. 손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많이 생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손 떨림... 안면 떨림보다는 낫다. 괜찮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손이 떤다는 것은 손의 근육이 떤다는 이야기다. 근육이 그냥 떨릴리 없다. 긴장이 발생한 증거다. 이런 문제는 간으로 귀결된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손 떠는 경우가 많은 게 반증이다.
그러니까 이 환자는 간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주독(酒毒)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간이 허하면 보지 않아도 알 일들이 수반된다. 신장과 비장이 피곤하다. 위장은 말할 것도 없다.
“간이 정신이 번쩍 드는 장침 한 방 부탁합니다.”
40대 후반의 환자가 붙임성 있는 청탁(?)을 던져왔다. 마케팅 팀장이라는 남자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좋았다.
“술을 원래 좋아하시나요?”
윤도가 물었다.
“아닙니다. 이게 직업이다 보니...”
“한 번에 마시는 주량이 얼마나 되죠?”
“대중 없지만 보통 시작하면 하루 소주 세 병은 기본이죠. 양주로 마시면 작은 거 2-3병, 맥주만 마시면 5000cc 이상?”
“일주일에 마시는 횟수는요?”
“하핫, 거의 매일입니다.”
“소주, 맥주, 양주에 거의 매일...”
“며칠 쉴 기회가 있기도 한데 이게 또 안 마시면 허전해서 말이죠. 딱 한 잔만 하려다가 결국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됩니다. 저 심각합니까? 건강검진에서는 그래도 γ-GPT 하고 GPT 외에는 쓸만하던데...”
“이거 한 번 보시겠어요?”
윤도는 알코올성 간염으로 작살이 나서 적출된 간 사진 샘플을 보여주었다.
“흐미...”
환자가 몸서리를 쳤다. 흔히들 이렇다. 실물을 보면 몸서리를 치지만 흉곽 안에 든 자신의 장기혹사에는 관대하다.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선생님 간은 사실 이 상태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주독에 찌들어 머잖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간경의 기혈이 바닥났거든요.”
“나쁜 줄은 알고 있었는데...”
환자가 뒷덜미를 긁었다.
“술을 마시면 간은 소위 노가다를 해야 합니다. 간은 원래도 할 일이 많은데 술이 들어오면 만사를 제치고 알코올부터 분해해야 하죠. 간이 소주 한 병을 분해하려면 하루가 걸립니다. 2차다 3차다 달리면 며칠 동안 알코올 분해 업무에만 시달려야 하죠. 그나마 일주일에 한두 번이면 견딜만 한데 그렇게 빼곡하게 달리면 후유증이 깊어져 간세포 사이에 지방이라는 상흔으로 남습니다. 이 것들은 결국 간의 업무능력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되어 업무능력을 떨어뜨리죠. 핸드폰으로 치면 LTE를 2G, 3G 기능으로 만든다고나 할까요?”
“오옷, 그 설명 실감나는데요? 핸드폰이 그렇게 버벅거리면 열 뻗치죠.”
“간이 그 정도면 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 상태로 보면 위에 만성염증까지 있는데 맥주는 쥐약입니다. 낮은 도수의 술이 들어가면 위는 위산을 분비합니다. 위궤양 심해지라는 셀프 디스가 따로 없죠.”
“그럼 양주를 먹으면 덜 할까요?”
“그런 독주를 먹으면 위에서 출혈이 날 수도 있어요.”
“으헉.”
“그 아래 소장 역시 무지막지한 노가다로 병이 들고 있습니다. 알코올의 90% 정도는 소장이 흡수하거든요. 안주라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면 소장도 연일 폭행을 당하는 거나 같습니다.”
“폭행... 쩝!”
“췌장은 어떨까요? 선생님 나이 대의 한국 남자들이 조심해야 하는 췌장에게 있어 알코올은 독배나 진배 없습니다. 술이 들어오면 기능이 떨어지는데 췌장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당뇨가 될 가능성이 솟구치게 됩니다. 알코올성 당뇨라고 알고 계시죠?”
“예...”
“심장은 어떨까요?”
“심장이야 술하고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 오장육부가 피를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심장도 노가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동체운명이죠.”
“......”
“결국 폐까지 연결됩니다. 폐도 알코올을 분해하거든요. 양으로 치면 그리 많지 않지만 인체는 맞물려 서로 돕게 되어있으니 어느 장부가 격무에 시달리면 다른 장부도 쉴 수가 없습니다. 회사 일하고 다를 바 없지요.”
“술을 끊으라는 말씀이군요?”
“술이 직업이시라니 그럴 수야 있나요? 마시되 일주일에 2-3일은 간장이 쉴 시간을 주라는 거죠. 그리고 간에 장비지원을 하십시오.”
“장비라면?”
“비타민과 무기질... 이런 걸 보태주면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어차피 부려먹으려면 먹여가면서 부려먹으시는 게 좋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치료를 받으시려면 한 가지 더 유념할게 있습니다.”
“더요?”
“제 장침은 뜸의 기능을 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주독은 빠지지만 주량은 줄어들게 될 겁니다.”
“아주 못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지만 취기가 빨리 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술 좀 줄여보죠 뭐.”
환자가 동의하므로 시침에 들어갔다.
술!
알코올 중독에는 혈은 신문혈이 좋다. 신문혈에 침을 놓으면 불안장애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실제로 신문혈에 자침을 하면 불안을 상승 시키는 호르몬 수치가 의미 있는 변화를 보인다.
신경물질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회복을 도움으로써 불안증세를 없애는 것이다. 확대해 말하자면 불안장애 전체에 신문혈이 의미가 있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윤도의 시각은 단순히 알코올 중독 침에만 있지 않았다. 간의 기혈 저하는 신장과 비장까지 연결되는 일. 그렇기에 시침의 출발은 신장과 비장혈이었다. 다음으로 소장수와 삼초의 조화를 추구했다. 이렇게 인체 전반의 기혈조화를 잡은 후에야 신문혈에 장침을 넣었다. 주독이 열린 혈문을 따라 시원하게 밀려나갔다. 신장과 비장, 삼초의 지원이 간의 치유능력을 도운 것이다.
‘40분...’
시침 시간은 오래 잡았다. 주독이 깊은 까닭이었다. 그 중간에 15분 단위로 풍문혈과 기해혈에 장침을 하나씩 더 보태주었다. 풍문혈은 치유능력을 위한 ‘비타민’이었고 기해혈은 기를 더해주는 ‘무기질’로 사용했다.
따르릉!
타이머가 끝나자 침을 뽑았다.
“손 들어보세요.”
윤도가 말했다. 남자가 얌전히 손을 들었다. 떨리지 않았다. 두 손을 다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됐습니다. 이제 일어나세요.”
윤도의 지시를 받은 환자가 일어섰다. 가뜬해 보였다.
“이야, 제가 술상무 15년 만에 이렇게 맑은 머리는 처음입니다. 저 이 머리로 공부하면 서울대 가도 되겠는 데요?”
환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가뜬하다는 것이니 윤도의 기분도 좋았다.
“서울대 가는 침은 따로 있습니다.”
윤도가 웃었다. 환자는 떨리지 않는 손이 기특한지 몇 번이고 조물락거렸다.
“저 분 이제 술 좀 줄일까요?”
환자가 나가자 연재가 윤도에게 물었다.
“배 샘 생각에는 어떨 것 같아?”
“그래도 똑 같이 마실 거 같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연재 말에 윤도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사람은 때로 교만하다. 동시에 어리석기도 하다. 술 마시기 전에 숙취방지제를 마시고, 술 마신 후에 술 깨는 약을 마신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그런 고생하지 않아도 됨에도 술을 마신다.
앞의 말처럼 술은 백약의 으뜸이라고 나온다. 그렇게 좋은 걸 마시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른 의미도 알아야한다. 술은 만병의 원인이다. 허얼, 백약의 으뜸이자 만병의 원인.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까? 이 답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
**
광희한방병원에서의 워크샾이 열리는 날, 원장실을 나서려다 장식장에 시선이 닿았다. 오래된 침통이 시선에 들어왔다.
달각!
윤도가 원장실 장식장을 열었다. 낡은 침통을 잡았다. 일침한의원에서 주웠던 침통이었다. 너무나 오래 되어 마치 시간을 건너온 것 같은 질박함. 지난 번 청와대행부터 왕진용으로 변한 침통...
‘중국 중의들이 많이 오는 워크샾이니...’
어쩐지 질박한 침통. 윤도가 어리니 관록 보완이 될 것 같았다. 이번에도 침통은 일침한의원에서 득(得)한 이 것으로 정했다.
“다녀오세요.”
윤도가 입구의 문을 열자 정나현과 두 간호사가 배웅을 해주었다. 그때 낯익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구대홍 씨?”
윤도가 시선을 들었다. 골종양으로 인연을 맺은 광희한방대학병원의 환자 구대홍이었다.
“충성!”
구대홍은 씩씩한 거수경례를 날려 왔다. 그 뒤로 구대홍의 아버지 트럭이 들어섰다. 장작통닭 냄새가 폴폴 풍겨왔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우선 이거부터 받으시죠.”
구대홍이 꽃다발을 내밀었다.
“왜 주는지 알아야 받든지 하죠.”
“소방관 근무 첫 월급 탔습니다. 오늘 비번이라 달려왔습니다!”
구대홍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구대홍.
그는 결국 특별합격처리 되었다. 예정선발인원보다 한 명을 더 뽑은 것이다. 국민들 누구도 뭐라하지 않았다. 그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리는요?”
“보시다시피 멀쩡합니다. 하지만 제 다리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 다리죠?”
“선생님이 살려줬으니 선생님 다리고, 이제 소방관이 되었으니 나라의 다리입니다.”
“......!”
그 한 마디가 윤도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왔다. 먹먹해져 버렸다.
“좋아요. 꽃은 고맙게 받죠.”
윤도가 기꺼이 대답했다. 이런 꽃이라면 열 다발이라도 받아줄 용의가 있었다.
“그리고 선물도 드리고 싶습니다.”
“선물은 필요 없는 데요?”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꼭 드려야한다고 합니다.”
“아버지?”
윤도의 시선이 구대홍 뒤편의 트럭으로 향했다. 구대홍의 아버지 손에는 푸짐한 즉석 통닭 봉지가 들려있었다. 노스스름 구어진 바비큐가 무려 10마리였다.
“아들이 첫 월급 나오기 무섭게 선생님 말을 하더군요. 자식 돌보지 못한 죄는 부모에게 있으니 그 돈은 통장에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선물은 제가 마련하겠다고...”
“......”
“제가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더 있습니까? 해서 최고의 정성으로 구웠습니다.”
통닭에서 고소함이 등천을 했다. 윤도에게 주려고 여기까지 와서 화로에서 꺼낸 통닭. 돈으로 치면 5만원도 안 될 테지만 정성은 돈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지상 최고의 통닭 바비큐가 되겠네요.”
통닭을 받아든 윤도가 인사를 전했다.
“통닭 생각 나시면 언제든 전화만 하세요. 선생님은 평생 무료입니다. 덕분에 저희도 광희한방대학병원에서 평생 무료진료를 받게 되었지 않습니까?”
“......”
“선생님.”
구대홍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가 이쪽 소방서로 발령 받았거든요. 혹시라도 화재위험 같은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제가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죠.”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구대홍이 다시 경례를 붙여왔다. 윤도는 공보의 때도 어색했던 거수경례로 인사를 받았다. 장작구이 통닭차량은 고소한 냄새를 흘리며 멀어졌다.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 단어에 딱 들어맞는 구대홍이었다.
통닭은 정나현에게 건네주었다. 직원이 여섯이니 대략 처리가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진경태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기어이 닭다리 하나를 찢어와 윤도 입에 물렸다.
“보아하니 원장님 먹으라고 가져온 건데 우리가 다 먹으면 도리가 아니죠. 잘 다녀오세요.”
진경태가 손을 흔들었다.
그때 뒤에서 경적소리가 들렸다.
빵빵!
돌아보니 건너편 한의원 원장 탁상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