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265)

[성매매를 하다가 당하는 복상사는 5등급 횡사.]

[원나잇을 즐기다 당하는 복상사는 4등급 객사.]

[돌싱과 관계 중에 당하는 복상사는 3등급 과로사.]

[애인과 즐기다 당하는 복상사는 2등급 안락사.]

[조강지처와 관계 중에 당하는 복상사는 1등급 순직.]

이 이론(?)에 따르면 레오폴트는 안락사를 당할 뻔 한 순간이었다. 남자의 독맥에서 근축혈을 잡고 다리 쪽으로 가서 양릉천혈에 장침을 넣었다. 약간 좁은 혈자리지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여자 쪽이었다. 홍콩을 넘나든 여자의 혈자리는 불규칙하게 널려 있었다. 양릉천은 넙치근 쪽에 가까웠고 근축혈은 위에 있는 지양혈 쪽이었다. 율리안의 침 흔적을 보니 텍스트에 충실했다. 아직 혈자리에 대한 응용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여자의 혈자리를 찾아 장침이 들어갔다. 근축혈에서 사기(邪氣)를 내몰자 근 풀리는 느낌이 왔다.

사삭!

바짝 조여진 매듭이 늘어지는 것이다.

“이제 빼보세요.”

윤도가 레오폴트에게 말했다. 그가 엉덩이를 들자 그제야 물건이 빠져나왔다. 크고 길었다. 물건은 그때까지도 큰 바나나에 못지않았다.

“후우..”

한숨을 쉰 레오폴트가 물건을 가렸다. 그래도 그는 나름 신사였다. 분리된 몸이 되기 무섭게 여자의 옷부터 챙겼다.

“고맙습니다. 율리안이 동양의학에 빠진 이유를 알겠군요.”

레오폴트가 거의 자연상태로 인사를 전해왔다. 윤도가 그의 옷을 건네주었다. 아무리 인사라지만 물건이 덜렁거리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방금 든 생각인데 닥터 채가 바로 명의순례 30년의 기적을 받은 주인공 같네요.”

율리안이 말했다.

“네?”

“명의순례 후에 의술을 각성하면 천하무적 명의가 된다던 말 말입니다.”

천하무적의 명의.

명의순례에서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반갑지 않네요. 그거 되면 3년 밖에 못 산다는 말도 있었지 않습니까?”

윤도가 웃었다. “그 말은 입증되지 않는 말이니 신경 쓸 거 없죠. 아무튼 진짜 판타스틱입니다.”

율리안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우뚝 선 손가락처럼 경외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부릉!

두 남녀를 곤궁의 위기에서 구한 윤도, 다시 차에 올랐다. 세 남녀가 나와 배웅을 해주었다. 망측한 체험을 한 밤이었다.

띠뽀띠뽀!

앞서 다리는 119 구급대 소리에 호텔을 뒤돌아보았다.

만약!

저들인 지금 앰뷸런스에 실려야한다면?

푸웃!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톱스타의 치명타-안면마비.

톱스타의 치명타-안면마비.

다음 날 뉴스와 인터넷에 워크샾 소식이 실렸다. 윤도는 장지커, 쇼우스케 등과 함께 사진에 나왔다. 기사 중에는 기도환으로 비롯된 인연의 에피소드도 있었다. 거기에 윤도의 침통과 장지커의 침통이 나란히 실렸다. 두 침통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보였다.

“우리 원장님이 제일 멋지게 나왔네.”

연재와 승주가 합창을 했다. 러시아에 있는 조수황에게서도 치하의 전화가 왔다. 어쩌면 그가 나갔어야 하는 자리. 하지만 그는 윤도를 믿었기에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을 예상했다고 했다.

“원장님.”

연재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왜? 배 샘.”

“오늘 오후 예약이 비었던데 당일 환자 몇 명 넣어도 될까요?”

“오늘 오후?”

윤도가 스케줄표를 보았다. 특별예약이 된 왕진이 있었다.

“아니야. 내가 따로 받은 예약이 있거든.”

“알겠습니다.”

연재는 밝은 표정으로 원장실을 나갔다.

외부예약환자.

그건 부용의 소개였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연예인 같았다. 정나현이 통화하고 상담접수를 마친 상태였다.

그 전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대기실에서 소란이 인 것이다. 주인공은 50대의 깡마른 노숙자였다. 광대뼈가 툭 불거진 그는 술까지 거나하게 취한 채 윤도를 만나겠다며 생떼를 썼다.

“사람 차별해?”

소란이 길어지자 진경태가 그를 제압했다. 산 사나이의 호연지기까지 갖춘 진경태는 완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막무가내의 노숙자, 발악을 하며 침 맞기를 원했다.

“그까짓 장침 한 방 가지고 유세냐? 진짜 의원이면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먼저 구해야지. 소문난 명의면 나와서 내 간장에 침 한 방 꽂아보라고.”

노숙자는 끌려 나가며 악을 썼다. 억양도 약간 낯선 편이었다.

“당신은 헐벗은 게 아니라 취했잖아? 정 침 맞고 싶으면 술이나 깨고 오시오.”

진경태가 응수했다. 술을 마시고는 침을 맞지 않는다. 한약사로 한의원 짬밥이 쌓인 진경태가 모를 리 없는 일이었다.

“까고 있네. 아, 제대로 된 침쟁이라면 술 먹었다고 침 못 놔? 나 같으면 맞술을 마시면서 놓을 수 있겠다. 한 잔에 간장을 찌르고, 두 잔에 위장을 찌르고, 세 잔에 심장!”

노숙자는 발악을 하며 쫓겨났다.

“죄송합니다.”

윤도가 나오자 정나현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니고 여기 오신 환자분에게 미안해야죠.”

윤도가 정정에 들어갔다. 대기 중에서 몇 몇 환자들에게 정중한 사과를 올렸다. 한의원에서의 소동, 이유야 어쨌든 환자들에게 불편을 끼쳤을 일이었다.

그런데...

“......?”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들던 윤도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노숙자가 소란을 부리던 곳이었다. 거기 떨어진 걸 집어든 윤도 눈에 지진이 일었다.

‘억!’

비명도 나왔다. 때가 꼬질꼬질 낀 침통이었다. 어쩐지 낯이 익었다. 원장실로 가서 자신의 침통을 집어들었다. 살짝 닮았다. 뚜껑을 열었다. 장침이 가득 들어있었다. 최근에 사용한 건지 핏자국의 흔적도 있었다.

“......!”

침 하나를 꺼내본 윤도가 숨을 멈췄다. 장침이다. 하지만 특이했다. 특이할 정도로 가늘었으니 거의 명주실 한 오라기 같았다.

‘나노 침?’

들어본 적도 없는 조어가 떠올랐다. 그 침갑에 둘둘 말린 종이가 있었다. 노란 고무줄로 감았다. 펼쳐보니 붓으로 직접 쓴 침술 내용이었다. 굉장히 오래 된 한지였다.

<五臟直刺鍼法>

한문을 쓰여진 건 오장직자침법이다. 다섯 장부에 직접 침을 찌른다는 뜻. 종이에는 실례의 그림까지 붙었다. 오장과 장침, 그리고 새털과 구름, 바람이었다.

오장육부와 장침, 그리고 새털...

뭘 뜻하는 걸까? 난해한 조합이지만 생각없이 그린 장난 같지는 않았다.

‘노숙자가 침술가?’

이상한 마음에 윤도가 밖으로 나갔다. 도로 앞에서 진경태가 손을 털고 있을 뿐 노숙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사람 어디로 갔죠?”

윤도가 물었다.

“저쪽 지하철 쪽으로요. 왜요?”

“아, 아닙니다.”

윤도가 뛰었다. 골목을 살피며 지하도까지 갔다. 노숙자는 보이지 않았다.

“원장님. 왜 그러세요?”

윤도가 돌아오자 진경태가 걱정어린 표정이 되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 데요?”

“실은... 아까 이 침통이 아까 그 노숙자 것 같아서요.”

윤도가 주운 침통을 꺼내보였다.

“어, 원장님 침통이랑 비슷하네요?”

“예... 이런 것도...”

윤도가 의서의 한 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한의사 각은 아니고 탈북자 출신 노숙자 같았는데... 어디서 훔친 걸까요?”

“하지만 이런 침법은 들은 적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럼 그냥 무협지 보고 한 낙서일 지도...”

대답하는 진경태도 자신이 없다. 낙서라기에는 너무 구체적이면서 진지했고 장침의 형태 또한 범상치 않았다.

“혹시 다음에오면 나한테 보내주세요.”

윤도의 눈은 여전히 지하도 쪽이었었다.

혹시...

혹시 기도환과 연결되는 사람일까?

일침한의원.

현판을 돌아보았다. 장지커가 보여준 사진이 겹쳐왔다. 기인 침술의 대가 기도환. 사실 궁금한 건 침통이나 침갑이 아니라 그의 침술이었다. 많은 침법들이 전설로 회자되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결국 대륙으로 날아가 중국 침술의 명인 장지커를 키워냈다. 그러나 그에게 따로 남긴 게 없었다.

만약...

기도환이 허임처럼 침술에 대한 비방을 남겼다면... 그건 전설이 아니라 실체이기에 윤도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클릭!

예약환자 차트를 눌렀다. 진단명이 나왔다.

<안면신경마비>

안면신경마비...

한방에서는 구안와사로도 불린다. 반은 맞는 말이다. 구안와사는 입과 눈이 한 쪽으로 틀어지는 질환이다. 중풍 증상의 하나로 와사풍으로도 불린다. 안면마비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구안와사는 정확한 발음이 아니다. 구안괘사가 정확한 발음이다. 문헌에는 구면괘사, 구안괘벽 등으로 나온다. 드라마와 중국 발음이 섞이다보니 ‘괘사’가 ‘와사’로 전이되면서 고착되어버렸다.

안면마비의 정의는 얼굴표정과 근육, 눈물샘, 미각 등을 지배하는 안면신경, 즉 7번 뇌신경의 장애로 야기된다.

주로 세 가지로 분류하는 데 첫째가 중풍이다. 둘째는 벨마비라고 말초성 신경마비다. 대부분의 안면신경마비가 여기에 속한다. 세 번째는 말초성으로 대상포진으로 인한 헌트증후군이라는 안면마비가 있다. 벨마비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은 편이다.

중추성 마비와 말초성 마비는 이마의 주름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중추성 안면마비는 이마에 주름이 잡히고 눈을 감아도 눈동자가 위로 가지 않는다. 이에 비해 말초성은 이마 주름이 없고 눈동자가 위로 올라간다. 말초성 마비는 얼굴근육 마비 외에 다른 부분의 마비가 없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중추성 마비는 교통사고나 뇌질환 등으로 야기되며 팔 다리의 반신마비를 수반하는 경우가 있다. 발음장애와 함께 미각, 청각에도 장애가 올 수 있다.

말초성 안면마비는 벨마비와 람세이 헌트 증후군이 있다 후자는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주원인으로 작용한다. 증상은 대부분 비슷하다. 입이 돌아가 음식을 흘리고 발음도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다. 눈물이 흐르거나 침이 나오기도 하고 이명이 수반되기도 한다. 혀의 미각도 다운되어 짠 맛, 단 맛, 쓴 맛을 느끼기 어렵다. 다만 이마 주름이 펴져 있어 젊어보인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안면마비가 괴로운 건 사회생활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피하게 되니 고립되는 것이다. 저 유명한 안젤리나 졸리도 안면마비를 겪었다.

환자가 들어왔다. 여자였다. 마스크를 쓴 채였다. 걸음걸이조차 애달팠다. 기가 팍 죽은 것이다.

“김성희 님?”

윤도가 물었다.

“네.”“안면마비로 예약하신 분이죠?”

“네...”

“얼마나 되셨어요?”

“......”

환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골든 타임을 놓친 걸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안면마비 치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 첫 일주일이 리얼 골든 타임이다. 그 다음은 한 달까지다. 안면마비는 초기 3달 치료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료에 참고하려고 하니까 처음부터 말씀해 보시겠어요?”

“그어니까...”

환자가 겨우 입을 열었다. 마스크 사이로 엿보이는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미녀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발음은 어눌하게 나왔다.

“대가 돔 힘든 일이 댕겨서 2-3주 식음 던폐하고 누워있던 때가 이떠떠요. 반년 던 뜸인데... 온몸이 마비가 되는 거 같더나고요. 사는 게 귀타나 신경뜨지 않았는데... 다디 기운을 타리고 보니 어굴이 이당해요. 그때부터 병원하고 한느원을 다녔는데...”

“......”

“치도가 잘 안 돼요. 고민하던 중에 우디 매니저가 이부용 대표 추턴을 받아 예약을...”

“......”

“여기... 비밀은 지켜두는 거죠?”

“그럼요.”

“마스크 버들까요?”

“마음이 안정되면 천천히 벗으세요.”

“버들 게요. 어차피 치료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지만...”

환자가 제 손으로 마스크를 벗었다.

“......!”

놀란 건 윤도였다. 여자는 유명한 초특급여배우 김다경이었다. 그러니까 의료보험상의 이름인 김성희는 본명인 것 같았다.

얼굴은 제 자리가 아니었다. 화장을 했지만 비대칭이 선명했다. 옆으로 살짝 돌아간 입술과 부정확한 발음... 치료를 했지만 골든 타임을 놓치면서 후유증이 남았다. 그것도 심한 편이었다. 그러니까 연예인으로서 치명적인 선고를 받은 꼴이었다.

그제야 김다경의 뉴스가 떠올랐다. 이 여자, 몇 달 전에 이혼을 당했다. 남편의 배신이었다. 그 상대는 후배 연예인이었다. 그 충격으로 두문불출한다고 알려진 상황. 충격도 있지만 안면마비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 모양이었다.

“안면마비가 올 때 전조증상 같은 게 있었나요? 예를 들면 극심한 무력감이나 귀가 아프거나... 혹은 얼굴이 떨리는 등의?”

“그때는 달 몰랐은데 디금 생각하니 있떠떤 거 가타요. 피도감과 얼굴의 무감각...”

“그때 병원에 한 번 가보셨으면 좋았을 걸요.”

“......”

여자가 고개를 떨구었다. 대개는 무심코 지나가는 전조증상. 그러나 나중에 생각하면 후회막심이 되는 그 골든 타임들...

“진맥 좀 하겠습니다.”

윤도가 손을 내밀었다. 김다경은 힘없이 손을 내주었다. 맥은 그리 좋지 않았다. 오장육부에서 오는 정보가 거의 다 그랬다.

“머리가 아프고 목과 어깨도 아프죠? 입맛도 잘 모르는 상태고...”“마자요.”

“후유증이 생각보다 크게 남았네요.”

“힘들겠죠? 알지만... 좋은 대본을 받고 보니 괜한 미련을...”

여자의 마음에는 삶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 바닥이 난 것이다.

“이부용 대표는 뭐라고 해요?”

“우디 매니저가 들은 말로는 제대로 고텨두실 거라고...”

“그럼 같이 힘써 봐야죠.”

“선생님...”

“김다경님 안면마비는 간중풍에서 왔어요. 아마 극도의 분노가 반복되면서 순간적으로 기혈이 막혔던 거 같네요. 간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비장과 신장에서 해결을 해야 해요. 하지만 대본문제가 있다면 얼굴부터 돌려보죠. 그렇다고 해도 탕제로 비장과 신장의 기를 올려야만 근본 문제가 없어집니다. 화를 내는 것도 삼가야하고요.”

“......”

“두 가지 다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약똑할 게요.”

대답에 힘이 없다.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그럼 우리 간호사 따라서 침구실로 가세요.”윤도가 문을 가리켰다.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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