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265)

끼익!

20분 쯤 후, 차량이 병원에 도착했다. 평양소재의 인민병원이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군관들과 당 지도부 인사들, 사망 소좌의 부친이 나와 있었다.

“이 분입니다.”

방수용이 사망자의 부친에게 말했다. 인민복을 입은 리수창은 칼날 같은 각이 선 얼굴이었다.

“당신이 인민영웅 차평재 의원에 버금가는 침술을 가졌다고?”

리수창이 물었다. 윤도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

“......”

윤도와 리수창의 눈빛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윤도는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리수창은 사망자의 아버지. 그의 허락 또한 필요한 상황이었다.

“방수용 동무?”

“제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리수창의 질문에 방수용이 보증을 서주었다.

“좋소.”

리수창의 허락이 떨어졌다. 딸깍!

병실 문이 열렸다. 수술대가 보였다. 그 위에 흰 천을 두른 시신이 있었다.

“이 사람이오. 리한웅 동지...”

의사가 천을 벗겨주었다. 정말이지 사체 외관은 더 없이 깨끗했다. 핏기가 가시긴 했지만 얼핏 보면 잠든 얼굴로 봐도 좋을 것 같았다. 정확한 사인을 위해 부검을 준비 중인 시신. 부검에 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팔 다리는 싸늘했다.

얼굴은 검푸르게 보였다.

서둘러 맥을 잡았다. 오른손목의 촌맥에서 폐와 대장의 맥을 짚었다. 관맥에서는 비장과 위장을 체크. 척맥에서 신장의 맥을 기다렸다. 손목에는 맥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고귀한 사람은 양손목의 맥이 없는 법...’

조바심을 위로하며 목으로 옮겨갔다. 인영맥에도 맥은 나오지 않았다. 아래로 가서 발을 문질러주었다. 그런 다음 발목 안 쪽의 태계혈과 발등의 충양혈맥을 잡았다. 삶의 근본인 신장을 상징하는 태계혈, 기의 원천이 되는 위장의 충양혈... 거기 실오라기 맥만 남아도 장침 출격은 가능했다.

“......”

없-다.

투둑!

희망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바라던 작은 희망. 가깝게는 사망한 소좌와 차평재, 그리고 남북 정상화까지 살리고 싶었던 윤도... 큼 헛기침을 하고 한 번 더 시도에 들어갔다.

태계혈...

충양혈...

온 몸의 진기를 더해보지만 세맥조차 걸리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삶의 심연 저 깊은 곳... 죽음으로 가는 그 지난한 길... 그저 한줄기 세맥만 이 세상에 걸쳤어도 잡아보련만...

‘삼 세판...’

기왕 온 걸음이니 한 번 더 수고를 했다.

없-어.

안타까움이 한 번 더 무너질 때였다. 누군가 거칠게 병실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쾅!

순간 지진이라도 난 듯 진료대까지 흔들렸다.

‘응?’

손을 떼려던 윤도가 다시 태계혈을 짚었다.

“이봐, 방수용 동무. 한국 대표로 온 한의사를 데려왔다고?”

정치국 상무위원이라는 한길상이 핏대를 올렸다. 그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다들 뭐하는 짓이오? 당장 데리고 나가라우.”

상무위원의 기세는 무서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북한 내 서열 4위의 막강 권력자였다. 방수용이 10위권이었으니 천지차이의 권력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윤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잠깐만요.”

“뭐라? 저 동무가 지금 뭐라는 게요?”

상무위원이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윤도의 촉감은 온통 시체에 있었다. 미세한... 아주 미세한 맥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문의 진동 때문일 수도 있는 일. 다시 한 번 진맥을 잡는 윤도였다.

‘맥...’

윤도는 숨을 쉬지 않았다.

‘제발...’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나노 크기의 숨결이라도...’

침도 넘기지 않았다.

“이봐!”

다가선 한길상 상무위원이 윤도의 목덜미를 잡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을 밀어내며 하체를 확인했다. 고환이었다. 고환은 줄어들지 않았다.

“건방진!”

화가 난 상무위원의 얼굴이 일그러질 때 윤도가 벼락처럼 소리쳤다.

“죽지 않았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살릴 수 있습니다.

“......!”

윤도의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한길상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살릴 수 있다고요.”

윤도의 외침에 병실은 초토화가 되고 있었다.

리한웅의 사망원인은 쇼크였다. 쇼크 자체는 맞았다. 기가 막혀서 생긴 기통(氣痛)이 숨통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럴만 한 사정이 있었다. NNL을 넘어간 북한 병사의 하나가 리한웅이 데리고 있던 부사관이었다. 현재는 다른 함정으로 배속된 상황이지만 기가 막혔다. 배신감이 등짝을 쳤다.

‘쫑 간나새끼!’

지도자의 관심을 받으며 충성심에 불타는 리한웅. 번개처럼 출동해 배신자들에게 총탄을 안겼다. 걸레가 된 시신을 지도자에게 바치고 싶었지만 한국 해군이 출동했다. 코앞에서 그들을 놓치고 말았다. 분노와 광기가 그의 육체를 장악했다. 그렇게 기통이 폭발하고만 리한웅이었다.

그렇게 가사상태가 되었다 숨을 쉬지 않으니 사망이었다. 30분, 1시간이 지나도 그랬다. 덕분에 산 채로 해부가 될 판이었다.

이 상황은 전설로 내려오는 편작의 기사회생과 닮았다. 편작도 이와 유사한 경우로 곽나라의 태자를 살렸다. 태자가 죽은 지 한 나절 안 쪽이었다. 편작은 삼양과 오회에 침을 놓아 관 속의 태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야말로 기사회생이었다.

몸속의 기는 신기하다 못해 신묘하다. 양기와 음기. 그것들은 자신의 역할이 있다. 몸 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오장육부를 돌본다. 하지만 리한웅의 경우에는 음양의 조화가 한순간에 망가졌다.

펑!

음양의 기통에 펑크가 난 것이다.

다행히 양기가 음기 속으로 들어갔다. 이게 뒤집혀 음기가 양기 속으로 들어갔다면 이 솜털 같은 목숨줄마져 끊겼을 일이었다.

윤도의 장침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삼양혈과 오회혈에 침이 들어갔다. 그 마지막으로 백회혈을 꽂아 생명의 기를 부르자 오장에서 화답이 왔다.

꿀럭!

리한웅의 복부가 출렁거린 것이다.

“상무위원 동지.”

고위 당원들과 군관들이 소리쳤다.

“쉬잇!”

방수용이 그들의 소란을 막았다. 그 사이에도 윤도의 기 조율은 쉬지 않았다. 침감으로 저승 앞에 도착한 오장육부를 되돌리는 것이다.

꿀럭!

한 번 더 반응이 왔다. 이제는 손가락도 꼼지락거렸다.

“누가 닭털 하나 준비해주세요. 날개나 꼬리털로.”

윤도가 소리쳤다. 방수용이 턱짓을 하자 군관 둘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군관들의 손에는 닭털이 들려있었다.

‘후우!’

털을 받아든 윤도가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닭털로 리한웅의 목젖을 간질였다.

“이보라우.”

상무위원 목소리가 끼어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다시 네 번 째 간질일 때였다. 리한웅의 몸이 확 경련하는가 싶더니 쿠에엑 토악질을 뱉어냈다.

“우엑우엑!”

토악질은 두세 번 더 이어졌다.

“살았습네다. 리한웅 동무가 살았습네다.”

군관들이 동시에 외쳤다.

“채 선생!”

방수용이 윤도 팔을 잡았다. 윤도의 시선은 한길상에게 건너갔다. 그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기적입니다.”

군의관이 중얼거렸다.

“기적이 아니라 침술일세. 명의의 침술...”

방수용이 그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는 벌써 두 번째 겪는 일. 지난 날 차평재가 고위층을 살릴 때와는 또 달랐다. 윤도 쪽의 난이도가 더 높았고 더 극적이었다.

“방수용 동무.”

상무위원 한길상이 방수용을 바라보았다.

“예, 동무,”

“당신 판단이 옳았소. 내 주석 동지께 연락하리다. 굉장한 치하가 있을 것 같소이다.”

상무위원이 방수용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격앙되었던 분위기가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리한웅.

그는 기사회생과 동시에 영웅으로 포장되었다. 조국을 배신한 병사를 추격해 총탄을 안겨주고 사망직전까지 간 군관. 애당초 지도자의 눈에도 들었던 관계로 포장이 가능했다. 북한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조국을 배신하면 불벼락 응징을 한다는 본보기로 삼을만 했다.

윤도는 병원 당직실로 보내졌다. 밤이 늦었지만 그보다는 북한 측 인사들의 회의가 바쁜 탓이었다. 방수용도 이제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신새벽이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차평재...’

의자에 앉아 차평재 생각을 했다. 평양의 밤은 길었다.

이른 아침, 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깜빡 졸았다. 들어온 사람은 방수용이었다.

“방 비서님.”

“좀 쉬었소?”

“예...”

“미안합니다. 아래 위로 의견조율할 게 많다보니 채 선생 챙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괜찮습니다만 차 선생님이...”

“어쩌면 곧 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그 전에 할 일이 생겼습니다.”

“왜요? 깨어난 환자 상태가 안 좋습니까?”

“아니오. 리한웅 동무도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우리 주석동지께서 와 계시오.”

“예?”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주석이라면 북한의 최고 지도자. 그가 여기 와 있다고?

“지도자 동지께서 보고를 받으시더니 채 선생 보기를 원하고 있소.”

“......!”

윤도 뇌리에 벼락이 내리꽂혔다. 한국과는 아주 다른 북한의 권력층. 모두가 베일에 싸인 풍경인데 그중에서도 최고 지도자가 윤도를? 골똘할 사이도 없이 방수용이 윤도를 재촉했다.

“갑시다. 우리 지도자 동지는 기다리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

“왜? 겁납니까?”

“겁은 아니지만...”

“걱정마세요. 채 선생을 치하하려는 겁니다.”

방수용이 문을 가리켰다. 복도에는 이미 호위총국 병사들이 날렵한 호위진을 치고 있었다.

“이어, 채윤도 선생!”

윤도가 병실에 들어서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방송에서 보고 또 보던 북한의 지도자. 그가 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악수하세요. 우리 지도자 동지입니다.”

방수용이 주의를 환기 시켰다. 윤도가 손을 내밀어 지도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 손이 신의 손이로구만. 죽은 우리 리한웅 동지를 침 한 방으로 살렸다고?”

“예...”

“잘 했소. 내가 상을 줘야겠군.”

“......”

“방 동무.”

“예.”

“채 선생에게 차평재 선생 시침을 부탁하고 있다고?”

“예...”

“그럼 얼른 모셔가서 진료 받게 하시오. 누가 아오? 저기 리한웅이처럼 우리 민족영웅 차평재 선생이 훌훌 털고 일어나실지.”

“예...”

“채 선생.”

지도자의 목소리가 다시 윤도를 겨누었다.

“차평재 선생을 잘 부탁하오. 만약 차 선생까지 회복 시켜준다면 내가 당신들 남에서 온 대표단을 만나줄 용의도 있소.”

“......?”

“가보시오.”

지도자가 리한웅을 향해 돌아섰다. 침대의 리한웅이 윤도를 향해 거수경례를 붙여왔다. 그 표정은 한없이 비장하다. 말을 나눌 기회가 없기에 경례로 보내는 은혜의 보답이었다.

부웅!

방수용의 차량이 병원 정문을 나섰다. 방수용은 한국대표단에 전화를 걸었다.

“예, 예... 그러니까 채 선생이 리한웅 소좌를 살렸습니다. 덕분에 분위기가 좋아져서 회담이 계속 진행될 듯 합니다. 그러니 준비하고 계시고... 채 선생은 저와 함께 있으니 염려마시기 바랍니다. 채 선생.”

통화하던 방수용이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수화기에서 김광요 차장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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