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265)

일침이구一鍼二求, 침 하나로 둘을 살리다-2

일침이구一鍼二求, 침 하나로 둘을 살리다-2

이 병의 첫째 원인은 극단의 과로로 보였다. 기가 정체됨으로써 산기(疝氣)가 되었다. 산기는 혈압을 극한으로 밀어올렸다. 혈압이 오르니 황반변성이 악화되고 녹내장 역시 그 영향권에 들어갔다. 망막혈관이라고 별 재주 없었다. 꼼짝없이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눈은 간에 속한다. 심장과도 연관된다. 간은 비장과 신장의 영향을 받는다. 결국 이 기전은 신장-비장-간-심장으로 연결되는 근본 시침이 필요했다.

‘신은 수(水)요 비는 토(土), 간은 목(木), 심은 화(火)...’

고리는 이내 파악되었다. 하지만 상황이 문제였다. 시분을 다투는 응급상황에서 오장의 기를 차곡차곡 쌓는 시침은 무리였다. 윤도의 장침에도 응급처방 모드가 필요했다. 응급의학의 권위자 손석구에게 잘 어울리는 시침이었다.

‘노수혈, 천료혈...’

혈압의 요혈이다. 혈압약이 투약되어 있어 당장은 그리 높지 않은 혈압. 하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선행조치를 했다.

신-비-간-심.

이름에 맞춰 네 개의 장침을 뽑았다. 마음 같아서는 강경과 담경 정도는 더 잡아주고 싶었던 윤도. 그러나 역시 시간이 없었다.

<신장의 모혈 비수혈>

<비장의 모혈 장문혈>

<간장의 모혈 기문혈>

<심장의 모혈 거궐혈>

네 장침이 각각의 모혈에 들어갔다. 다음으로 간수와 격수 가까운 곳에 삼향자침으로 침 세 개를 놓았다. 윤도가 특별히 맥 포인트로 잡은 지점이었다. 신장과 비장, 간장으로 침향을 보낼 수 있는 요혈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윤도가 손석구의 눈으로 다가섰다.

오장직자침.

윤도 머리에 그 단어가 떴다. 직장암을 치료하고 차평재의 췌장암을 잡으면서 노하우가 쌓인 윤도. 마치 바람결로 침을 놓는 듯 한 무아와 무심의 경지가, 침과 혼연일체가 되어 눈을 뚫고 들어갔다. 이것은 침이 아니다. 차가운 쇠의 일부가 아니다. 마법사의 부드러운 마나와 같다.

신성마법의 치유력 마나 같은... 윤도 손에 들린 장침은 이 순간, 그런 느낌이었다.

“......!”

같은 순간 안과부장이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아무 소리도 치지 못했다. 부원장이 입을 막은 것이다.

“진정하시게.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부원장의 속삭임은 천둥 같은 힘이 있었다.

“하지만 부원장님, 지금 침이 들어가는 저 부위는 눈입니다.”

“심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

“앉으시게. 우리가 할 일은 그것 뿐이야.”

절반 쯤 일어섰던 안과부장은 다시 자리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윤도가 요청한 약이 도착했다. 혈전용해제였다. 약침조차 가져올 여유가 없는 윤도. 로마법에 따르듯 현대의학의 약물을 빌렸다.

눈꺼풀... 그 위에서 파르르 경련하는 장침은 가장 가는 침이었다. 거침없이 들어간 침끝이 공막에 닿았다. 맥락막을 지나 망막에 도착했다. 침 끝에 혈관이 닿았다. 혈괴로 인해 막힌 지점이었다. 맥락막하 신생혈관이 생길 경우 심각한 시력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자칫 실명도 우려된다. 색소상피박리, 장액망막박리, 망막하출혈 등 모두가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바람결로 찌르듯...’

오장직자침법.

이제는 몸으로 익힌 그 비기...

윤도는 꿈에 본 차상광의 말을 잊지 않았다. 부드럽게 중심을 노려 혈관에 핀 혈괴들을 꿰었다. 다행히 극강의 사기(邪氣)를 뿜어내던 차평재의 암세포보다는 순했다. 잇달아 침이 들어갔다. 두 개.. 세 개...

‘후우...’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절했다. 오장직자침법을 익힌 지금, 병소 적중은 암세포보다 쉬웠지만 보사는 그보다 신경이 쓰였다. 환부가 눈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인체에서 가장 섬세한 부위인 눈...

침 끝에 심혈을 기울여 보사를 맞췄다. 혈괴가 터지는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차근차근 터져 혈관을 따라 흘러갈 수 있도록. 그 찌꺼기들이 주변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막힌 혈관에 샛길이 났다. 그 샛길을 따라 혈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맥락막하에서 곁가지를 치다가 터진 혈관을 잡을 차례였다. 역시 침을 넣어 출혈 지점을 눌러 막았다. 이번에는 강력한 침감. 찌르는 침이 아니라 누르는 침이었다. 몇 군데로 같은 침이 들어갔다. 소리 없이 누수 되던 핏물이 멈췄다. 그래도 윤도는 침을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10분.

20분.

30분...

마침내 터진 혈관들이 완벽하게 지혈되었다. 그제야 안구에서 침을 뽑았다. 실핏줄을 잡는 시간을 파악한 윤도, 나머지 실핏줄들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나갔다. 이때까지도 손석구는 미간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마무리는 합곡과 족오리, 족삼리였다. 녹내장으로 맥이 높아진 합곡. 장침이 들어가자 맥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 매조지는 삼음교혈이었다. 합곡과 더불어 강한 침감을 주었다. 두 혈자리는 인체에 필요치 않은 잡 것들을 없애는 혈자리였으니 안구 속에 남은 찌꺼기를 걷어내기 위한 시침이었다.

“후우!”

침을 놓고 일어선 윤도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은 두어 번 더해졌다. 윤도도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딸깍!

타이머를 세팅시켰다. 그렇다고 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윤도는 주요 혈자리 체크에 소홀할 수 없었다. 침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를 망치는 것이다.

따르릉!

마침내 세팅한 시간이 흘러갔다. 윤도는 발침 조차도 보사에 맞춰 심혈을 기우렸다. 나쁜 것은 빼내고, 좋은 것은 몸 안네 눌러야했다.

“손 선생님.”

그제야 윤도가 손석구를 불렀다. 그는 눈을 감은 채였다.

“예...”

“시침 끝났습니다.”

“......?”

“눈을 뜨셔도 됩니다.”

“눈...”

“천천히 떠보세요.”

“눈...?”

손석구가 눈을 떴다. 병실 천정을 보는 눈이었다. 잠시 눈을 깜빡인 그가 허공을 쓰다듬듯 휘저었다. 그러자 안과부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보입니까?”

그가 달려와 물었다.

“마치 뭐가 떠다니는 것처럼...”

“눈앞에 말입니까?”

“예.”

“맙소사. 그럼 비문증이잖아요? 녹내장의 증세의 하나로 안구 유리체 안에 출혈이 있다는 건데... 그걸 볼 수 있다는 건 어쨌든 시력이...”

안과부장은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었으니 시신경 일부가 살아난 게 틀림없었다.

“채 선생...”

안과부장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죄송하지만 비문증이 있다면 아직 치료를 더 해야 합니다.”

그 한 마디로 안과부장을 일축하는 윤도였다. 시신경이 일부 살아난 것만 해도 기적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윤도가 다가서자 안과부장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까는 웬 낯설고 어이상실한 한의사 같던 윤도, 지금은 거대한 태산이 다가서는 것 같았다.

“앞에 뭐가 떠다니는 것 같다고요?”

윤도가 손석구에게 물었다.

“예... 무지개처럼...”

“잠깐만요.”

윤도가 다시 장침을 뽑았다. 이번에도 합곡과 삼음교였다. 아까와 달리 다향자침으로 두 개의 장침을 머리 방향으로 찔렀다. 또 하나의 침은 노수혈에 들어갔다. 무지개는 안압 때문일 수 있으니 잡것들의 청소를 한 번 더 하는 것에 더불어 혈압을 낮춘 것이다.

카메라라는 게 그렇다. 렌즈에 티 하나만 묻어도 신경이 쓰인다. 많은 경우, 눈은 카메라의 렌즈와 비교되지만 사실은 카메라 따위가 비견될 부분이 아니었다.

“어떠세요?”

다시 윤도가 물었다.

“무지개가... 사라집니다.”

“지금은요?”

좀 더 센 침감을 가하는 윤도.

“......?”

“눈을 깜빡여보세요.”

윤도의 지시에 따라 손석구가 깜빡, 눈을 몇 번 감았다 떴다.

“보이네요... 전등... 그리고...”

손석구가 윤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당신이 채 선생?”

“그렇습니다. 안과부장님. 확인을 부탁합니다.”

윤도가 비로소 백대승을 호명했다. 백대승은 떨리는 발을 간신히 옮겼다. 안저검사기 옵살모스코프를 꺼내 오른쪽 눈을 살폈다. 백대승이 휘청 흔들렸다. 왼쪽 눈을 살폈다. 여기서 그가 안저검사기를 떨구고 말았다. 비문증까지도 설마했던 백대승. 차마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백 부장.”

놀란 부원장이 다가왔다.

“시력이...”

백대승은 어깨뼈가 부러져라 와들거리며 뒷말을 이었다.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양쪽 다.”

“채 선생.”

부원장이 윤도를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에는 감격이 가득차 있었다.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슨 말씀, 이건 도리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오.”

“사람을 살린 일입니다. 너와 내가 따로 없을 일입니다.”

“허어, 이거 매번 채 선생에게 배우는구려. 내 이만하면 대한민국 땅에서 괜찮은 의사 소리 좀 듣겠다 싶었는데 죄다 착각이 되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굉장합니다.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백대승은 두 손을 들었다. 윤도에 대한 완벽한 인정이었다.

“아빠!”

일단 딸이 먼저 불려들어왔다.

“어이쿠, 우리 딸 나 때문에 많이 울었나보네? 얼굴이 말이 아니야.”

“내 얼굴 보여요?”

“그럼, 코에 난 뾰로지까지 다 보인다. 그거 좀 아프겠는데?”

“아빠는... 몰라...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딸이 손석구의 품에 안겼다.

“울 힘 있으면 저 선생님에게 인사나 챙겨라. 이 아빠에게 시력을 돌려주신 분이시다.”

손석구가 윤도를 가리켰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딸은 윤도에게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다.

“자, 이제 인사 끝났으면 아빠 옷 좀 가져올래?”

“왜? 퇴원해도 돼?”

“퇴원복 말고 아빠가 입고 온 옷이 있을 거야.”

“수술복?”

“그래.”

“아빠...”

“지금 수술대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아마 굉장히 힘들 거야. 아빠가 도와줘야해.”

“아빠...”

“너 내 딸 맞지? 이 손석구 딸. 그러니까 아빠 수술복...”

손석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결국 딸이 수술복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옷을 입혀주는 딸이 소리없는 눈물을 울었다. 자신도 환자와 다름없는 손석구. 그는 늘 그랬다. 그래서 한 때는 원망도 많았다. 하지만 딸은 알고 있었다.

손석구.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증외상전문의.

그 이름이 얼마나 숭고하고 거룩한 것인지.

“채윤도 선생님.”

딸의 도움으로 수술복 차림이 된 손석구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예?”

“아까 부원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강기문 박사님이 중요한 수술을 하는데 채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셨다고...”

“그렇습니다만.”

“주제 넘지만 저도 그 요청을 드려도 될까요?”

“예?”

“제 수술장에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라도 또 눈에서 불이 나간다면 환자에게도 면목이 없는 일이거든요.”

손석구가 웃었다.

“그렇게 하죠. 사실 제 침술도 응급조치에 불과하거든요.”

“고맙습니다.”

손석구가 윤도와 눈을 맞췄다. 그의 눈에는 벌써 수술장이 아른거려 보였다.

“와아아!”

병원 복도, 간호사와 의사들이 늘어서 환호했다. 병실문이 열리면서 손석구가 나왔다. 국군병원에서 실려온 수술복장 그대로였다. 그 옆에는 윤도가 있었다.

짝짝짝!

손석구는 SS병원 의료진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육군헬기에 올랐다.

투타타타!

헬기가 이륙하자 손석구가 윤도 손을 잡았다.

“채 선생님.”

그는 한없이 깍듯했다.

“예.”

“잘 부탁합니다.”

그의 눈에는 이제 지향이 있었다. 숭고함과 비장함도 가득했다.

“와아아!”

의료진은 날아가는 헬기를 향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원장님.”

잠시 후에 강기문이 헬기장으로 달려왔다. 다른 수술이 있는 까닭에 늦은 그였다.

“갔군요?”

강기문이 하늘을 보며 물었다.

“그래요. 채윤도 선생... 여기서 기적을 일으키고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키러 떠났습니다.”

“손석구의 두 눈 시력이 돌아왔다고요?”

강기문이 백대승을 바라보았다.

“믿기지 않지만 그렇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가는 도중에 시력이 꺼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안과부장은 멀어지는 헬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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