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265)

“이게 뭐죠?”

“우리 세경이 치료비에요.”

“치료비라고요?”

윤도가 쇼핑백을 열었다. 안에는 5만원권 다발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어머니...”

놀란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세경이 눈을 이렇게 만든 병원에서 받은 배상금이에요. 은행에 넣어두었던 걸 이자까지 다 찾아왔어요.”

“그런데 이걸 왜?”

“아기 아빠랑 제 생각이 그래요. 우리가 원한 건 아가의 시력이었지 돈이 아니었어요. 그 병원에서도 아가를 고쳐주었더라면 돈은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세경이 시력이 돌아왔잖아요. 그러니 그 돈은 선생님에 드리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이건 너무 많습니다.”

윤도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쇼핑백 속의 돈은 얼핏 봐도 1억원 상당이기 때문이었다.

“아뇨. 꼭 받아주세요. 저는 이 돈 가지고 있으면 우리 세경이 눈에 또 이상이 생길까봐 무서워요. 그러니 이 돈은 치료비로 받아주시고 대신 약이나 좋은 걸로 부탁드려요.”

“어머니...”

“이렇게 부탁합니다. 우리 세경이... 어디 가서 눈을 고칠 수 있었겠어요? 저희가 미국의 병원들까지 다 알아봤는데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고칠 수 없다고 했어요. 저희는 실제로 선생님이 몇 억을 달라고 하면 전세금 빼고 신장이라도 팔아서 드릴 생각이었어요.”

전세금에 신장이라도.

그 말에 또 윤도의 심금이 울었다. 이게 부모였다. 이게 중병을 앓는 보호자의 마음이었다.

“그러니 제발...”

“어머니.”

“네?”“제 말 잘 들으세요.”

윤도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대충 말해서는 들을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까닭이었다.

“아기의 시력은 찾았지만 완벽하게 치료가 끝난 건 아닙니다. 신장과 심장, 간장을 보하는 탕제를 먹어야합니다.”

“......”

“그 약값은 물론 싸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오래 장복해야 할 수도 있고요.”

“......”

“그러니 서두르지 마시고 오늘 치료비와 탕제값만 내시고 가세요. 치료비라는 건 미리 받을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러면 약효가 떨어집니다.”

“선생님...”

“다른 거 다 차지하고 아기 눈 지켜야죠. 안 그래요?”

“선생님.”

“얘 이름이 세경이라고요? 얼른 데려가서 아빠 보여드리세요. 아픈 데가 다 나을 거 같네요.”

윤도가 아기 볼을 문질렀다. 아기는 처음보다도 더 맑은 미소로 까르르 반응을 했다. 정기가 들어온 미소는 아까보다도 탱글거렸다. 이제는 정말 천사에 가까운 미소였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자는 결국 윤도 말에 따랐다. 거듭 인사를 하더니 운전대를 잡았다. 올라올 때는 한없이 비장했을 여자. 갈 때는 가뜬하게 핸들을 잡았다. 먼 길을 가는 그녀를 위해 피로를 더는 장침까지 놓아준 윤도였다.

부릉!

차가 도로로 나가자 윤도 등 뒤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정나현과 승주 등의 직원들이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던 환자들도 동참을 했다.

짝짝짝!

박수소리에 아기 웃음소리가 겹쳐왔다.

까르르!

그래.

그 웃음 잃지말고 건강하게 자라렴.

윤도가 오래 중얼거렸다.

펑!

순간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윤도가 돌아보자 TBS 성수혁 차장이 눈이 들어왔다.

“보기 좋은 데요?”

언제 왔을까? 성수혁이 다가왔다.

“여긴...”“실은 저도 조금 전에 나간 환자와 같이 올라왔습니다.”

“예?”

뜻밖의 말에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청송병원에서 감지를 했거든요. 뉴스감이다 싶어서 저 분 차를 쫓아왔지요.”

“허얼.”

“저 아기 신생아 망막질환이었죠?”

“그렇습니다만...”

“살면서 느끼는 건데 확실히 옛날 말 틀린 거 없다니까요. 우리 할머니 말씀이 병은 자랑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이런 경우겠지요.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남들에게 알리면 치료법을 알게 되는...”

“예...”

“진짜 대단하십니다. 닥터 손석구에게 빛을 준 것만 해도 대단한데 모든 병원이 포기한 아기에게 시력을 찾아주다니...”

“제가 아니어도 누군가 했을 겁니다.”

“그럴 지도 모르죠. 좁고도 넓은 대한민국에 선생님처럼 굉장한 의술을 가진 사람이 없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없습니다.”

“그 말씀하려고 여기까지 쫓아오신 건 아니죠?”

“실은 이 건이 저를 땡겼어요. 그래서 따라오게 되었죠. 요즘 세상, 기자라면 다들 기레기라고 쓰레기 취급하지만 그래도 감은 있거든요.”

“......”

“닥터 손석구를 시작으로 앞뒤 퍼즐을 맞추다보니 재미난 그림이 나오더군요. 선생님의 2박 3일 중국행...”

“......”

“나갈 때는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데 들어올 때는 정보부 직원과 나란한 좌석으로 오셨더군요. 우연일까요?”

“......”

“하핫, 긴장하실 거 없습니다. 선생님 뒷조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중국에서는 또 어떤 불치병을 고치고 왔을까 하는 궁금증일 뿐입니다.”

“......”

“본론을 말씀드리면 제가 뉴스 특집 한 번 꾸며보고 싶어서요.”

“특집이라면...”

“선생님의 침술과 탕약이 특별하다는 건 이제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잘 모르고 있지요. 그러니 조금 더 널리 알려서 조금 전에 기적을 만난 아기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이 될 수 있다면 해서요.”

“취재요청입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귀찮게 할 수는 없으니 이거만 허락하시면 됩니다.”

성수혁이 들어보인 건 소형 카메라였다.

“그건 몰카 아닙니까?”

“몰래 쓰면 몰카지만 공개적으로 쓰면 취재용이자 기록용이죠.”

“......”

“진료실과 침구실에 설치를 허락해주시면 됩니다. 작동은 선생님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케이스에 하십시오. 환자 선택도 선생님 마음이고 질병 선택도 그렇습니다. 몇 케이스가 모이면 제가 편집해서 사용하겠습니다. 물론, 뉴스 이외의 사적인 사용은 일체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안 됩니다.”

윤도가 잘라 말했다.

“선생님.”

“방금 전 기레기 운운하시더니 이렇게 되면 연장선상이 됩니다. 몰카를 설치하고 촬영하는 건 환자의 의사에 반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매번 매 환자의 동의를 구하게 되면 그 또한 갑질이 됩니다.”

“갑질이라고요?”

“제게 오는 환자들은 절박합니다. 그러니 제가 제의하면 거부하기 어렵지요. 우월적 지위나 입장을 이용해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 그게 바로 갑질 아닙니까? 목숨이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것이니 슈퍼갑질이 되겠군요.”

“......!”

“전에 도와주신 것도 있고 하니 취재를 원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세요.”

“......”

“그럼 저는 환자가 밀려서 그만...”윤도가 돌아섰다. 성수혁은 아야 소리 한 번 못하고 당했다. 윤도가 백 번 옳았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돌았다. 사실 이 제의는 그의 변죽이었다. 정신줄 제대로 박힌 의사라면 수락할 일이 아니었다. 나아가 성수혁은 공식 대안을 얻었다.

다른 방법!

성수혁은 애당초 그걸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원하던 결과를 우회적으로 얻은 셈이었다.

‘역시 매력적이란 말이지.’

성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랐다.

부릉!

시동을 걸고 나가던 성수혁, 인도 쪽에서 갑자기 들이대는 사람을 만나 화들짝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봐, 당신 미쳤어?”

놀란 성수혁이 창을 내리고 외쳤다. 남자는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소주병을 꺼내들었다. 한 모금을 빨더니 성수혁의 차에 대고 뿜어버렸다.

“엿 같은 세상인데 좀 미치면 안 되나?”

빈정의 극에 달한 포스. 눈에서 광기를 뿜어대는 남자의 큰 주머니에서 고양이까지 튀어나왔다.

야옹!

고양이가 운전석 앞의 유리에서 창을 긁어댔다.

‘뭐야?’

성수혁은 어이가 없었다. 더 상대해봐야 머리만 아플 거 같아 그대로 도로에 올라섰다.

야옹.

고양이는 차에서 내려와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의 시선이 한의원 현판으로 향했다.

<일침 한의원>

푸웁!

남자가 현판에 대고 소주를 뿜었다. 그런 다음 어슬렁 한의원을 향해 걸었다. 그였다. 나노 침통의 노숙자 노윤병...

고양이 명의-1

고양이 명의-1

이날 일침한의원의 전화는 다시 대폭발을 이루었다. 손석구와의 일화가 매체를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이다. 손석구의 두 눈을 고친 한의사. 그 두 눈으로 절명 직전의 북한병사를 살린 손석구.

둘은 따로, 혹은 함께 SNS와 유튜브의 화제로 떠올랐다. 동시에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1위, 혹은 2위를 다투며 오르락거렸다.

녹내장.

황반변성.

두 질환에 대한 질문전화만 해도 수백 통이 넘었다. 홍보를 위해 만들어둔 홈페이지는 아예 마비가 되어버렸다. 부득 전화기를 내려놓도록 지시했다. 상담환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별 수 없었다. 덕분에 연재와 승주, 정나현까지 정신줄을 놓고 살았다.

“우리 원장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숯을 가져온 종일이 혀를 내둘렀다. 진경태는 참나무 숯으로 탕제를 다리고 있었다. 특별한 처방들은 모두 옹기에 숯불을 쓰는 진경태였다.

“그럼, 진짜 한의사시지.”

부채질을 멈춘 진경태가 푸근한 미소를 머금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런 데서 일할 기회를 주셔서...”

“나한테 고마우면 안 되지. 여기 주인은 원장님이니까.”

“하지만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나 역시 원장님이 아니었으면 너를 보지 못했을 지도 몰라.”

“예?”

“나도 녹내장으로 한 쪽 눈 시력을 잃었었거든. 남은 한 쪽도 위태로웠고.”

“우워어, 그럼 선생님 눈도 원장님이?”

“그래.”

“으아, 세상에 이런 일이...”

“솔직히 잘 믿기지 않지?”

“예...”

“맞아. 기적이라는 건 말이지 남들에게는 그저 막연함 놀라움일 뿐이지.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또 하나의 목숨을 부여 받은 것 같은 벅참이야.”

“그래서 선생님이 원장님에게 각별하시군요. 저는 원장님이 나이도 어린데 왜 그렇게 쩔쩔 매시나 했어요.”

“쩔쩔?”

“죄송합니다. 표현력이 거기까지 밖에...”

“아니, 상관없다. 쩔쩔 매면 어떨까? 너라면 네 눈에 빛을 사람에게 쩔쩔 매지 않을 도리가 있겠냐? 그보다 더한 대우라도 마다하지 않게 될 거다. 게다가 나를 대한민국 최고 한약사로 대해주는데?”

“......”

“너 강릉의 큰 한의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했었지?”

“예...”

“어땠냐? 여기하고 비교해서...”

“솔직히 여기하고는 비교가 안 돼요. 거긴 대개 허리나 관절염, 신경통 같은 환자들 투성이었거든요.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침하고 한약 때문에 민원도 들어가고...”

“그렇지. 우리 원장님은 말이다, 급이 달라요. 솔직히 한의사라고 다 같은 한의사는 아니지.”

“저도 그건 느껴요. 거기서 일할 때는 누가 너네 한의원 좋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했는데 여기는 저절로 자랑하게 되니까요.”

“바로 그거다. 우리 원장님은 진짜 한의사거든. 진맥만 하면 질병을 꿰뚫고 침 하나로 난치와 불치병을 다스린다. 게다가 한약재를 보는 눈은 나보다도 낫지.”

“......”

“자, 알았으면 숯불 관리나 잘 해라. 이게 아무 것도 아닌 거 같아도 아주 중요한 거야. 은근하게 다리지 않고 서두르거나 불이 꺼지면 약성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거든. 그렇게 되면 원장님 얼굴에 똥칠하게 되는 거야. 저렇게 열심인 분의 얼굴에 똥칠할 수야 없지?”

“그럼요. 걱정마시고 들어가 보세요.”

종일이 진경태 등을 밀었다.

그 시간 윤도는 만성 늑막염 환자를 보고 있었다. 늑막염도 만만치 않은 병이다. 늑막은 폐의 겉표면과 안을 덮고 있는 얇은 막이다.

이 막에 염증이 생기면 늑막염으로 부른다. 주요 증상은 가슴 흉통이다.

인간은 숨을 쉬어야한다. 흉통은 숨 쉴 때마다 따라온다. 하루 종일 벗어날 수 없는 고질병이다. 그렇기에 호흡곤란과 더불어, 피로, 식은 땀, 열, 식욕저하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치료는 교감신경 과항진, 항응고제 등을 쓰기도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윤도는 대거혈을 잡았다. 폐렴과 늑막염은 냉(冷)에서 온다. 땅의 한기가 들어와 병이 된 것이다. 윤도의 진단으로는 대거로 들어간 사기가 기문을 찔렀다. 기문에서 폐를 통해 늑막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대거혈이었다. 대거는 대장의 병에 좋다. 설사, 변비, 장염 등에 효과적이나 폐렴과 늑막염 또한 특효혈이다. 혈자리는 천추혈 쪽으로 바짝 당겨 잡았다. 배꼽을 중심으로 보면 활육문에도 가까웠다.

사락!

절반 가까이 넣고 환자를 돌아보았다.

“숨 쉬어보세요.”

“후우!”

“어때요?”

“조금 편한 데요?”

“지금은요?”

침을 조금 더 넣었다.

“편해요.”

그 말을 들으며 남은 침끝을 다 밀어넣었다. 그런 다음 침끝을 돌렸다. 언제나 미세하다. 침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감겼다. 사기를 밀어내는 것이다. 침을 역으로 돌리면 하초의 기를 위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중완혈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타이머를 세팅할 때 승주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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