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침... 제 미련으로 남은 오장직자침을 위한 도구죠. 오장 안에 장침을 넣어 환부를 직접 다스리면 스승처럼 명침이 될 것 같은데 보통 장침으로는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낸 거죠. 나노 크기라면 가능할까 싶어서...”
“직접 만드셨어요?”
“웬걸요. 실은 같이 노숙하던 사람 중에 그런 거 개발하던 과학자가 있었는데 사업 실패로 신장과 비장이 피폐했습니다. 그러니 자신감도 없고 의지도 약하기에 침으로 신과 비의 기혈을 올려주었지요. 용기가 난 그 친구가 미국 실리콘밸리 쪽으로 진출하면서 제게 선물로 보낸 겁니다. 제가 나노 침에 대해서 여러 번 설명을 했었거든요.”
“그랬군요. 그래서 그 침으로 오장직자침을 시도하게 되었겠군요?”
“예.”
“성공하셨나요?”
“아뇨. 고양이에게는 성공했지만 사람은 결국...”
실패!
노윤병의 말줄임표 속에 들어갈 단어였다.
“서울역 노숙자들을 상대로 여러 번 도전해 보았습니다. 거긴 정말 병자들의 소굴이거든요. 웬만한 병 하나쯤 안 달고 사는 사람들이 없으니... 암 환자도 많아서 시도를 했는데 자신이 없어요. 언제나 오장의 막 앞에서 멈추고 말았죠. 조금 더 집어넣으면 사람이 죽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연습 삼아 고양이를 찌른 거군요?”
“노숙 생활을 하다보면 고양이만큼 많이 만나는 동물도 없으니까요.”
“나쁘지 않습니다. 고양이에게는 적어도 명침명의가 되었으니 남은 건 사람 뿐이잖습니까?”
“사람...”
“북한은 몰라도 한국에서는 한의사 노릇을 하시려면 한의대를 나와서 면허를 가져야합니다. 아니면 무면허 의료행위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처음 월남했을 때 한의대에 가셨으면 지금쯤 굉장한 명의가 되어있었을 것을요.”
“핑계 같지만 탈북자들은... 그만한 경제력이 없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저 가진 건 남한에 대한 동경과 꿈 뿐이었죠.”
“후원자가 아쉬웠군요?”
“그렇죠.”
“그럼 지금이라도 후원자가 나오면 한의대에 가실 겁니까?”
“예?”
“선생님 나이가 50인가요?”
“만으로 48세입니다만...”
“그럼 진학하세요.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원장님...”
“그 침술... 한의대를 나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빛이 되겠지만 지금처럼 노숙자의 신분이라면 무면허 의료행위가 될 뿐입니다. 병자에게 침을 놓고 돈을 받는다면 말입니다.”
“늦었습니다. 제 나이 내일모레면 50...”
“한국에서는 말이죠 55세에 9급 공무원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얼마 전에 강남의 한 구청에 발령 받은 신입 공무원은 59세였어요. 딱 1년 후면 정년 퇴직이지만 도전하신 거죠.”
“59세?”
“한의대가 6년이니 선생님은 55세에 면허를 따겠군요. 간단히 말하면 6년 후부터 당당하게 침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진맥도, 탕제 처방도... 그걸 하려고 남한에 온 거 아닙니까?”
“......!”
“제가 한의대 쪽에 아는 분이 있습니다. 어쩌면 북한의 학제를 인정 받아 편입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도 해도 요즘은 탈북자 특례입학도 있으니 길은 많습니다. 문제는 선생님의 결단이죠.”
“원장님.”
윤도 말은 막은 노윤병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저 같은 놈에게 그런 제의를 해주니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침술가 대우 제대로 받아보는군요. 하지만...”
“문제가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도울 수 있다면 돕겠습니다.”
“그게... 제가 먹고 살기 위해 침술을 하면서 돈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신고가 들어가는 통에 기소중지자 신세입니다.”
“......!”
“제 꼴이 한의대 가기 전에 감옥에 갈 판입니다. 그러니 말씀만 마음에 담아두겠습니다.”
“......”
“남한 사회에 불만이 쌓이다보니 원장님이 명침이라는 기사에 배알이 꼴렸습니다. 그래서 남한에 무슨 명침이 있나 싶어 깽판이나 한 번 부리려는 참이었는데 이리 후하게 대해주시니...”
“......”
“술주정에... 무례함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노 침은... 저보다 원장님께 더 잘 어울릴 거 같으니 필요하면 두고 쓰시기 바랍니다. 그럼...”
노윤병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대한민국.
다른 무엇도 아니고 꿈을 펼치기 위해 택한 자유의 나라. 그러나 그 자유에는 제도 관습의 차이, 경제력이라는 높은 담이 있었다. 그 또한 노윤병에게는 만만한 담이 아니었다.
기소중지.
순간, 윤도 머리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용천규 부장 검사>
그라면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깐만요.”
노윤병을 눌러놓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용천규가 전화를 받았다. 노윤병의 사연을 전해주었다.
“탈북자에 기소중지?”
“예, 이 분이 북한에서 한의대를 중퇴하고 왔는데 노숙자들 돌보면서 더러 돈을 받고 시침을 한 게 문제가 되어 고발을 당한 모양입니다.”
“이름이 뭐지?”
“노윤병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만 48세고요.”
“잠깐만, 노윤병이라...”
핸드폰 너머로 자판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템포가 지나자 용 검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찾았어. 기소중지자...”
“죄송하지만 그거 해결 좀 안 될까요? 자수를 하면 선처가 된다든지...”
“채 선생과 지인이신가?”
“여러 인연으로 얽힌 분입니다. 나이가 드셨지만 침술이 아까워 기소중지가 풀리면 본격 한의학 공부를 추천할까 해서요. 한의사가 되면 좋은 인술을 펼칠 분입니다.”
“뭐 그런 취지라면 검찰청에 같이 오시게. 보아하니 별 죄도 아니고 나도 채 선생 얼굴 한 번 보고...”
“정말입니까?”
“내가 채 선생을 뭘로 돕겠나? 무슨 큰 중죄인이나 파렴치범 봐달라는 것도 아니고... 약식명령이나 소액벌금으로 대체하도록 지시하지.”
“고맙습니다. 검사님.”
“언제 오시겠나?”
“지금 가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하핫, 역시 일침즉쾌 정신이시군. 기다리고 있겠네.”
용천규는 흔쾌히 전화를 끊었다.
“선생님, 기소중지는 해결 될 것 같습니다.”
윤도가 노윤병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정말입니까?”
“저랑 서울지검으로 가시죠. 거기 부장검사님인데 저랑 인연이 좀 있거든요. 같이 오면 선처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 천지신명님...”
노윤병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내친 김에 장백교 박사에게도 전화를 했다. 편입까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그 역시 10분이 지나지 않아 낭보를 전해왔다. 지방의 진광대학에서 편입허용에 장학금까지 제공하는 조건을 승낙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원장님!”
노윤병이 감격으로 무너졌다. 기소중지 해결에 한의대 편입. 예기치도 못한 행운을 만난 것이다.
“모자라는 학비는 제가 대드릴 테니 걱정마시고 이제부터 차근 준비를 하세요. 시간 나면 저랑 침술봉사도 함께 나가시고요.”
“원장님...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습니까?”
“면허 딴 후에 인술 많이 베풀면 됩니다.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많이 도왔다고 하니 인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원장님.”
“아, 가능하면 이 나노 침 좀 많이 만들어주세요. 성인은 상관없는데 갓난 아기의 경우에는 오장직자를 할 때 나노 침이 유용할 것 같더군요. 비용은 정당하게 지불하겠습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십시오. 미국으로 간 과학자가 언제든 말만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자기 은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술 끊으셔야합니다.”
“당연하죠. 제가 술 마시는 이유가 좌절감이었는데 이제 좌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시는 겁니다. 70세까지 한의사 하신다고 해도 졸업 후에 15년은 가능합니다. 그 정도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요?”
“고맙습니다. 제게는 오늘이 진짜 탈북의 첫날 같습니다. 그때의 기운찬 정신으로 도전해 보겠습니다.”
노윤병의 광대뼈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달프고 고달팠던 탈북인생과 노숙자 생활. 그 인생에 나노 침처럼 가느다란 라인을 타고 행운이 들어왔다. 그 행운은 병든 인생에 오장직자침이 되었다. 그의 시름을 고쳐주었다.
자유와 꿈.
이제야 빛나는 두 개의 단어가, 눈물 속에서 숭고하게 아롱져 갔다.
중증 우울증을 깨라-1
“채 선생!”
용천규가 로비에서 윤도를 맞이했다. 옆에는 수사관이 있었다.
“퇴근 무렵에 죄송합니다.”
“명의가 오시는데 퇴근이 문젠가?”
“아까 말씀드린 분입니다.”
윤도가 노윤병을 소개했다. 노윤병이 용천규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박 계장, 데려가서 처리해주게나.”
용천규가 대기 중인 수사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노윤병을 수사관을 따라 복도를 걸어갔다.
“잠깐 시간 좀 되시겠나?”
“몰론이죠.”
“그럼 내 방으로 좀 가세.”
용천규가 반대편을 가리켰다.
“드시게.”
용천규는 손수 차를 내놓았다. 전 같으면 여직원이 들고 왔을 차. 이제 검찰청 안에도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윤도가 물었다.
“당연히 있지. 명의 만나기가 쉽나?”
“명의라는 말씀은 듣기 부담스럽습니다.”
“그럼 명의를 명의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
“검사님도 참...”
“솔직히 말하자면 부탁이 하나 있네.”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네.”
“말씀해 보시죠.”
“혹시 말일세 한방으로 중증 우울증도 고칠 수 있나?”
“우울증이라고요?”
윤도가 촉각을 세웠다.
“우리 지검장님 아들 일인데... 일단 대외비로 하세나. 이 양반이 나 초임 검사 시절에 모시던 분이라 나한테만 털어놓은 거라네. 해서 우리 검찰청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한둘일 정도야. 워낙에 다음 총선에서 여당 영입 1순위라는 말까지 나도는 분이라...”
“예...”
“아들이 4대 독자인데 공부에 소질이 없는 눈치야. 하지만 아버지는 고등학교 월반에 서울대 수석입학 출신, 고시 4관왕을 이룬 천재형이지. 아버지 후광에 스트레스 좀 받은 모양이야.”
고시 4관왕.
윤도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사법고시에 행정고시, 외무고시, 입법고시까지 패스했다는 의미였다. 한 마디로 SSS급 머리니 인간이라기보다 인공지능, 즉 AI라고 보는 게 옳았다.
“미국에 가면 좀 나을까 싶어 조기유학을 보냈는데 거기서도 간신히 졸업장이나 딴 거야. 그쪽에서 별 다른 비전이 안 보이자 한국으로 불러왔는데 취직은 되지 않고 아버지의 기대는 높고... 어머니까지 몇 년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뜨다보니 부자 사이에 완충막도 사라지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다가 우울증에 걸려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더군.”
“......!”
“큰 병원과 전문병원에서 치료도 받았는데 워낙 중증 우울증이라 그런지 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군. 해서 이제는 아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예...”
윤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울증.
한국 사회에서는 내색하기 쉽지 않은 병이다. 사람들은 신경정신과 가는 것조차 꺼린다. 혹시나 진료사실이 알려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료기록은 의료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본인의 동의 없이 회사나 주변이 알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땅에서는 그 불가능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더 불가사의한 건 그 유출경로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것.
“내가 채 선생 생각이 나서 추천을 하기는 했는데 한의학에 대해 뭘 알겠나? 그런 것도 고칠 수 있겠나?”
“환자부터 봐야겠죠.”
“내 말은... 지검장님께 괜한 희망을 줘서 마음만 더 아프게 할까 봐 그러네. 눈치를 보니 전국의 명의라는 명의, 심지어는 무속인들까지도 불러본 눈치라... 상심이 커서 사석에서 노래도 잘 하던 양반이 싹 변했어. 늙어서 그런지 요즘은 가끔씩 가슴도 두드려대고...”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일단 한 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고맙네. 그럼 지금 당장 지검장님 방으로 가세나.”
용천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섰다.
“이분이 채윤도 한의사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지검장실에서 용천규가 윤도를 소개했다. 관보를 보던 지검장 김정엽이 고개를 들었다. 관록이 내린 어깨지만 눈에는 시름이 가득해 보였다. 그나마 윤도를 올려보던 시선은 저절로 가라앉았다.
“용 부장.”
“예, 지검장님.”
“너무 애쓸 거 없네. 그냥 모셔가시게.”
그는 체념모드다. 겪을 만큼 겪었다는 표정이었다.
“지검장님.”
“그냥 모르는 걸로 해주시게.”
“우리 채 선생 나이 때문입니까?”
용천규가 돌직구를 날렸다.
“......?”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채 선생의 침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명침입니다. 전에 제가 말한 남해 바다의 심장마비 승객들 말입니다. 침 하나로 살린 게 이 채 선생입니다.”
“......?”
“제가 말씀드리기에 너무 많은 전설을 가지고 있으니 수고스럽지만 노트북에 한 번 검색을 해보시지요.”
“용 부장.”
“검색해보시고 마음에 안 들면 나가겠습니다.”
용천규가 소파에 앉아버렸다. 하늘 같은 지검장이지만 ‘부장검사’도 고스톱으로 딴 건 아니었다. 더구나 오랜 안면이 있으니 뚝심으로 미는 용천규였다. 지검장은 윤도를 바라본 후에 차분하게 자판을 눌렀다.
토독!
톡!
검색어에 이어 엔터키가 들어갔다. 화면에 주르륵 윤도 기사가 떴다. 많았다. 정말 많았다. 기사 하나하나가 기적이지만 그 아래 댓글도 장난이 아니었다.
“신침?”
김정엽이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