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265)

“요청이라고요?”

“신약을 출시하기 전에라도 선생님을 한 번 초청하고 싶다더군요. 앞으로의 신약개발 계획도 듣고 싶고...”

“의무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 신약의 탁월성과 안정성 약리기전에 저들이 뻑 간 거 같습니다. 한국에 이런 약학자가 있나 궁금했던 모양인데 한의사라고 했더니 더 환장을 하고 있답니다. 저들도 최근에 한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맞습니다. 의무 옵션은 아니었지만 현지의 우리 개발팀에게 꼭 부탁한다는 당부를 몇 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이사가 또 부연 설명을 붙였다.

“그렇다면 시간을 내봐야겠군요.”

“고맙습니다. 저쪽에 그렇게 통보해 두겠습니다.”

류수완이 윤도 손을 잡았다.

“그럼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일단 독일 바이마크사에서 먼저 약을 출시하게 될 겁니다. 그런 다음에 약 6개월 후에 우리가 생산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아시아를 맡고 저들이 유럽시장을 담당하는 형식입니다.”“잘 되었으면 좋겠군요.”

“잘 되다마다요. 자그마치 바이마크사입니다. 이건 보증수표를 쥔 거나 다름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계약금을 다 저를 주신다는 건...”

“당연히 채 선생님 겁니다. 무조건 받으시고요, 주식도 일부 기증하겠습니다. 당연히 우리 회사의 주주가 되셔야죠.”

“사장님.”

“아아, 저는 한국하고 아시아 시장에서 벌면 됩니다. 거기서도 떼돈을 벌어서 채 선생님 왕창 챙겨줄 겁니다.”

“그럼 저랑 이 돈을 기부하시죠.”

“예?”

윤도의 느닷없는 제의에 류수완의 시선이 튀어 올랐다.

“기부하자고요.”

“선생님, 돈이 무려... 기부를 하시려면 한 1억 정도...”

“아시아 시장에서 돈 많이 벌 자신 있으시다면서요?”

“그건 그렇지만... 한 번에 60억여 원 기부는 우리나라 최대 제약사도 엄두를 못 내는...”

“만약 이 계약금이 몇 억 정도였으면 어땠을까요?”

“그건...”

“사장님도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 하셨죠?”

“예... 솔직히...”

“그러니까 액수 생각지 말고 기부하자는 겁니다. 한국의 제약회사들은 리베이트다 교수들 치다꺼리다 해서 비난 많이 받잖아요? 이번 기회에 이미지도 쇄신할 겸 기부를 하면 사장님 제약사 이름이 더 빛나지 않을까요? 다른 제약사들에게도 경종이 되고...”

“채 선생님...”

“돈은 사장님이 맡아두십시오. 그동안 저 밀어준 방송국이 있으니 거기를 통해 함께 기부하도록 하죠. 괜찮겠죠?”

“그야...”

“그럼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윤도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선생님...”

류수완은 정문까지 나와 윤도를 배웅했다. 윤도의 스포츠카는 어둠을 따라 사라졌다.

“어때요? 진짜 명의시죠?”

류수완이 이사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보통 의사들과 차원이 다르군요. 60억원을 기부할 생각을 하다니...”

“저런 분 만날 거 행운으로 알고 다른 진력하세요. 우리 강외제약이 세계적인 제약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알겠습니다.”

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류수완은 윤도가 사라진 길에서 오래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명의...’

그 이름은 왜 다른 의사들과 다를까?

류수완은 그걸 알 것 같았다. 그렇기에 채윤도가 명의였다. 그가 아는 유일한 명의였다. 그를 폐암에서 해방시켜줘서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마음에 희망의 온도를 올려놓는다. 그것만으로도 명의의 타이틀은 충분했다.

‘암...’

류수완의 고개는 아직도 끄덕끄덕 긍정을 표하고 있었다.

**

“아버지!”

윤도는 달리는 차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검장 부자를 치료하고 나니 아버지가 눈에 밟혔다. 좋은 일 생긴 김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할 생각이었다.

“어, 채 의원.”

아버지는 조금 늦게 전화를 받았다.

“아직 회사세요?”

“아니, 이 애비가 술 한 잔 하는 중이다. 지금 끝나간다만...”

아버지의 목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있지!”

“뭔데요?”

“저번에 우리 채 의원이 살려준 사장님 있잖아? 그 분이 다시 회사 복귀하면서 나한테 첫 계약을 안겨주었지 뭐냐.”

“예? 정말요?”

“그래. 우리 원단 받아주기로 하셨다. 그것도 엄청난 대박급으로.”

“이야, 축하합니다. 아버지.”

“다 우리 채 의원 덕분이지? 지금 집이냐?”

“아닙니다. 들어가는 중입니다.”

“그럼 샤워하고 기다리거라. 이 애비가 안주거리 푸짐하게 싸들고 들어갈 테니.”

“그러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윤도가 전화를 끊었다. 원래는 신약 로얄티 이야기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니 참았다. 아버지의 기분을 살려주고 싶었다.

“이어, 우리 아들들, 그리고 싸뢍하는 우리 싸모님!”

아버지는 윤도보다 30분 쯤 후에 도착했다. 손에는 참다랑어회와 초밥이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큰 계약 하나 땄다면서요?”

윤도에게 뉴스를 들은 어머니가 아버지를 맞았다.

“그럼.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보라고.”

아버지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월 6억 가까운 물량의 납품계약서였다. 아버지 회사의 규모로 봐서는 대단한 건이었다.

“아유, 우리 남편도 이제 운이 좀 트이려나보네.”

어머니가 참치회를 펼쳐놓았다.

“으아악, 이게 바로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다는 그 참다랑어 뱃살?”

방에서 튀어나온 윤철이 한 점을 집어물었다.

“얘, 아버지한테 고맙다는 말은 해야지.”어머니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이고, 그냥 두세요. 난 괜찮으니까 많이들 먹어라. 모자라면 이 아버지가 바다에 가서라도 잡아온다. 암.”

아버지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았다.

“축하드려요.”

윤도가 맥주 한 잔을 따라놓았다.

“다 네 덕이다. 한의대 보내길 얼마나 잘했는지... 거기 사장님이 자꾸 공치사를 하셔서 얼굴 뜨거워서 혼났다.”

아버지가 웃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참 좋은 날이네요. 저도 오늘 신약이 독일 제약사에서 계약되었다고 연락 받았거든요.”

윤도가 커밍아웃을 했다. 그래도 금액은 말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오롯이 아버지를 위한 시간이기를 바랐다.

“건배!”

투박한 잔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아, 요즘 같으면 살만 하다니까. 사업 잘 풀려. 밖에 나가면 다들 아들 장침 한 번만 맞게 해달라고 떼 써...”

아버지의 시선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한 잔을 더 따라주었다. 아버지는 오늘 밤, 취할 자격이 있었다.

다음 날은 정신없이 행복했다. 시작은 한의원이었다. 진경태에게 쾌거를 설명하자 한의원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윤도의 쾌거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저는 원장님이 될 줄 알았습니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윤도와 진경태는 서로를 치켜세우느라 바빴다.

“......!”

그러다 계약금에 대해 고백하자 진경태가 소스라쳤다.

“기부를 하겠다고요?”

그의 눈동자는 끝간 데 없이 커졌다.

“아저씨 몫은 따로 챙겨드릴 게요.”

“그럼 절대 반대입니다. 제 몫이 얼마가 되었건 원장님 뜻과 함께 합니다.”

“아저씨...”

“저랑 한 길 간다면서요? 그런데 저만 주머니 채우면 무슨 한 길입니까?”

“좋아요. 그럼 나중에 기부할 때 같이 가세요.”

“그것도 안 될 말입니다. 신약의 주인공은 원장님입니다.”

“그럼 아저씨 몫은 따로 빼놓고 기부할 겁니다.”

“알았습니다. 따라갈 테니 그냥 기부하세요.”

진경태가 두 손을 들었다.

“고맙습니다.”

윤도가 웃었다. 이렇게 이해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점심 시간에 조촐한 파티 겸 외식을 했다. 직원들은 또 한 번 큰 자부심에 몸을 떨었다. 직진의 남자 채윤도. 그 거침없는 장침이 이루어가는 성취 속에 그들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식사 후에 강외제약 주식을 체크했다. 호기심이었다.

“......!”

윤도의 시선이 화면에 멈췄다. 화면은 온통 빨간 불기둥이었다. 장 시작과 더불어 상한가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부용...’

퇴근 시간이 되자 그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심전심인지 부용에게서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부용 씨?”

“바쁘세요?”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랬는데 지금 막 해방되었습니다.”

“또 환자들 여럿 구하셨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어디세요?”

“어디라고 말하면 오시게요?”

“가죠 뭐, 대한민국 안에 있다면...”

윤도가 대답했다. 신약의 기쁨에는 그녀도 진경태 못지않은 지분이 있었다. 약제실을 최신 시설로 꾸며준 그녀가 아닌가? 그렇기에 한 번 만나 낭보도 전하고 기부소식도 알려줄 생각이었다.

“선생님.”

전화를 통해 부용의 목소리가 밀려나왔다.

“바쁘시겠지만 선생님을 뵙고 싶어하는 천사가 하나 있는데 좀 만나주시겠어요?”

천사?

단어 하나가 윤도의 귀를 잡아끌었다.

빅 딜-1

빅 딜-1

“선생님!”

약속된 음식점에 들어서자 창가 테이블에서 부용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아이돌 여가수와 함께였다.

“좀 늦었나요?”

착석을 하며 윤도가 물었다. 두 여자의 커피잔이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지하게 늦었죠.”

부용이 너스레를 떨었다.

“어, 그럼 오늘 밥값, 찻값은 내가 쫙 쏴야겠네요.”

윤도가 아이돌을 보며 말했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이돌은 어쩐지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이번에 해피 프레지던트에 새로 합류하는 미우예요. 일본 친구인데 기존 멤버 하나가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교체하게 되었어요.”

“안녕하세요, 미우입니다.”

아이돌이 일어나 정중한 인사를 해왔다. 단정한 인사 폼에서 일본사람 티가 배어나왔다.

“그럼 저를 보고 싶어한다는 천사가?”

“맞아요. 우리 미우 예쁘죠? 이름부터 아름다운 바다라는 뜻이에요.”

부용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한국말도 잘 하는데요?”

“할아버지가 한국통이래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배웠다네요.”

“네...”

“오늘은 또 무슨 기적을 일으키고 오셨어요?”

부용이 눈빛을 세우고 물었다.

“기적은 아니지만 어제 좋은 소식을 받았습니다.”

“어머, 뭔데요?”

부용이 관심을 보였다.

“지난번에 개발한 알레르기 비염과 아토피 치료 신약 말입니다. 이번에 독일의 제약회사와 손을 잡게 되었답니다.”

“와아, 대박!”

“맞아요. 아직 김칫국부터 마실 상황은 아니지만 대박에 속하는 모양입니다.”

“축하드려요. 선생님은 정말 신의 손이네요. 닥터 손석구와의 감동 스토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런 쾌거라니...”

“부용 씨 덕분입니다. 그 말씀드리려고도 한 번 만날 생각이었습니다.”

“흐음, 이렇게 되면 오늘 주제도 바꾸어야하는데...”

“부용 씨는 무슨 일이죠?”

“오늘이 우리 대표님 버스데이에요.”

옆에 있던 미우가 생글거리며 끼어들었다.

“생일요?”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도는 부용의 생일을 알고 있다. 얼마 전에 민쯩에서 보고 메모해두었던 것이다. 그 메모에 의하면 오늘은 부용의 생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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