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신비스러운 나라입니다. 한국의 고미술품은 우아하고 깊이가 있지요. 그래서 평생 동안 한국 고미술품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유형의 미술품보다 더 우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한의학입니다. 오늘 이 노구는 불치에 3달 시한부를 선고 받은 목숨줄을 늘여준 채윤도 한의사에게 감동해 소장하고 있던 한국의 고미술품 일체를 채윤도 한의사가 정하는 방법으로 한국에 반환하고자합니다.”
짝짝!
조용한 박수가 나왔다. 주지 스님이었다. 저만치 뒤로 모인 스님들도 박수대열에 동참했다. 그 중에는 진경태와 장년의 스님도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잔뜩 찡그리던 장년 스님의 표정도 밝아져 있었다. 그는 윤도를 향해 거푸 엄지를 세웠다.
미나토의 고미술품들은 그렇게 한국 반환이 결정되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미우가 윤도에게 말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에요. 한 3개월 정도는 탕약을 먹으며 몸의 기운을 길러야합니다.”
“3개월이 아니라 3년이라도 괜찮아요. 그렇죠, 할아버지?”
“당연하지.”
“대표님께 연락했어요. 달려오시는 중이래요.”“부용 씨에게요?”
“대표님이 말씀하셨거든요. 어떻게 되는 지 결과를 알려달라고...”
“그래도 힘들게시리...”
“힘든 건 선생님이죠. 침 놓는 거 제가 몰래 보았어요. 선생님은 정말 대단했어요. 만화에서 본 메이지 명의 텐진보다도 더 굉장해요.”
“할아버지가 잘 참아준 덕분이에요. 굉장한 위기도 있었거든요.”
“아무튼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아.”
미우의 허리가 자꾸만 숙여졌다. 그 뒤로 햇살 속에서 전화를 받는 미나토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전화는 불이 나고 있었다. 일본의 막후실력자라더니 허튼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채 선생님.”
오래지 않아 부용이 도착했다. 윤도는 돌담 아래서 그녀를 만났다.
“이거 드세요.”
부용이 내민 건 죽이었다.
“와아, 전복죽 아니에요?”
“아무래도 밤 새우신 거 같아서 준비했어요. 미우 말 들으니 식사도 제대로 안 하시고 치료만 하신다기에...”
“설마 부용 씨가 직접?”
“설마라뇨? 미우 일을 떠맡겨놓고 죽도 하나 못 쑤겠어요? 입 맛에 맞을 지는 모르지만...”
“우리 한의원 진경태 아저씨도 함께 왔는데...”
“걱정마세요. 같이 왔다는 말 듣고 넉넉히 준비해 왔으니까요. 미우에게 가져다주도록 했어요.”
“그럼 같이 먹어요.”
“죄송하지만 저는 아침식사를 안 해요. 커피 한 잔이면 족하거든요. 얼른 드세요.”
“그럼...”
윤도가 죽을 먹기 시작했다.
“어때요?”
“좋은 데요?”
윤도가 웃었다. 빈 속에 들어가는 죽은 위장을 편안하게 달래주었다. 그때 중년의 스님이 다가왔다.
“어, 우리 한의사 선생님이 식사를 하고 계시네?”
스님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도 죽 소반이 들렸다. 윤도의 쾌거에 반한 스님이 주방에 말해 준비한 모양이었다.
“주세요. 다 먹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윤도가 소반을 받았다. 차근차근 두 죽을 해치웠다. 죽 그릇은 깨끗하게 비어나갔다. 미나토의 몸에서 사라진 피부암의 흔적들처럼.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부용이 손수건을 꺼내 윤도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피로까지도 말쑥하게 닦여나갔다.
이날 대한민국 인터넷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윤도였다.
<채윤도>
<장침 명의>
<문화재급 고미술품>
<일본인 미나토><미우>
처음 인터넷을 휩쓴 검색어는 이랬다. 오후에는 조금 변했다.
<채윤도>
<장침 명의>
<신약개발>
<바이마크사>
<강외제약>
<알레르기성 비염과 아토피 피부염>
<거액 계약금 전액 기부>
강외제약에서 한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윤도는 오래 끌지 않았다. 그렇기에 계약금으로 들어온 60억여원 일체를 난치병 어린이재단에 기부해 버렸다. 그 자리에는 류수완과 진경태를 대동했다. 이번에는 독일 언론까지 포함해 많은 매체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다.
<채윤도>
그 이름이 대한민국 곳곳에 깔리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국보급 고미술품을 기증하는데 기여한 장침명의로, 두 번 째는 독일 유수의 제약회사도 뻑가게 한 신약개발 명의로.
그 저녁에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류수완의 강외제약에서 마련한 연회였다. 보건복지부 차관이 오고 청와대 관계자도 배석을 했다. 굴지의 병원장들도 보였다.
윤도는 가족과 한의원 직원 전원을 이끌고 참석했다. 부용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장 박사를 비롯해 한의사협회 회장, 길상구와 조수황 등 내놓으라 하는 한의사들도 보였다. 류수완은 더 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신약개발의 주역 채윤도 한의사입니다.”
류수완이 차관에게 윤도를 소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만나고 병원장들도 만났다.
한의사입니다.
한의사입니다.
그 말이 듣기 좋았다. 생약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도 글로벌 제약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까닭이었다.
“여러분 건배합시다. 전통한약신약으로 세계시장을 정복합시다.”
류수완의 건배사는 패기에 넘쳤다. 패기는 원래 폐의 기(氣)에서 왔다. 폐암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폐를 강화시킨 류수완다웠다.
식전의 귀띔에 의하면 이미 중국에서도 거액의 사용권을 제시 받은 모양이었다. 미세먼지로 어린이 아토피 피부염과 알레르기 비염 환자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은 중국이었다.
고무된 류수완은 윤도는 물론 진경태에게도 1만주의 주식을 넘겨주었다. 아침부터 상한가를 친 주식의 오늘 종가는 3900원. 이제는 1만원 시대를 바라보는 유망주식이었다.
건배 직후에 류수완이 금발의 여자와 함께 윤도에게 다가왔다.
“채 선생님, 인사하세요. 이쪽은 스벤야라고 바이마크사의 신약개발 매니저십니다. 우리 강외제약 계약팀과 함께 입국했는데 채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
“안녕하세요?”
은발의 스벤야가 영어 인사를 건네왔다. 서른 살 쯤 보이는 스벤야는 초록 눈에 시원한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도도 영어로 인사를 받았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번 신약의 핵심 인재이시라고요? 오는 내내 궁금했는데 굉장히 쿨하게 생기셨군요?”
“고맙습니다.”
“본국의 개발진들이 채 선생님 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간 시간을 내 입국해주시면 고맙겠어요.”“그렇게 하죠.”
“아, 그리고 스벤야가 채 선생님 한의원을 보고 싶어 하는데...”
류수완이 스벤야의 의사를 대신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대답은 윤도가, 스벤야에게 직접 전했다.
“고마워요.”
스벤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와, 미녀인데요? 서양인이면서 동양적 분위기도 있고...”
그녀가 다른 테이블로 가자 진경태가 감탄을 쏟아냈다.
“그렇네요.”
“요즘은 잘 생긴 사람들이 능력도 좋다니까요.”
“미녀를 보니 결혼이라도 땡기시나요?”
“절대!”
진경태가 잘라 말했다. 너무 대놓고 답하니 살짝 수상한 생각도 들었다.
“아저씨.”
“예, 원장님.”
“고맙습니다.”
윤도가 고요히 웃었다.
“제가 할 말이네요. 시골 장터 구석에 약재나 팔던 놈에게 이런 호사를 안겨주다니.”
“우리 또 한 건 해요. 치매나 녹내장 치료제 같은 걸로...”
“그럼요. 뭐든지 지시만 내리십시오. 저는 레디 상태니까.”
진경태가 잔을 들어보였다. 정나현과 연재, 승주, 미화원 아줌마 천영희도 잔을 들었다.
“자, 삼장법사보다 멋진 리더 채윤도 원장님을 위하여.”
진경태가 축배사를 외쳤다.
챙!
마음으로 부딪치는 잔 소리가 축하연주음보다 더 아름다운 울림을 냈다.
“그런데 실장님.”
승주가 진경태를 바라보았다.
“김샘 왜?”
“우리 원장님이 왜 삼장법사 리더예요?”
“아, 그거... 유명한 CEO가 한 말인데 삼장법사야 말로 세계 최고의 리더라고 하더라고. 각기 다른 팀원의 능력을 완벽하게 조율해 최고의 성과를 올린 사람이라고.”
“에, 그럼 우리 한의원에서는 내가 사오정인 건가요?”
종일이 끼어들었다.
“흐음, 그럼 저팔계는?”
연재의 시선이 정나현에게 향했다.
“배 샘, 지금 설마 나를 저팔계랑 비교하는 거야? 나 몇 킬로 안 나가?”
정나현이 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팔계는 저겠죠. 요즘 2kg나 늘었어요.”
자수는 미화원 천영희가 했다. 일동은 또 한바탕 신나게 웃음바다를 피웠다.
다음 날, 스벤야가 류수완과 함께 일침한의원을 찾았다. 윤도가 나와 그녀를 맞았다.
“와우!”
약제실을 본 스벤야가 소스라쳤다. 시설 때문이었다. 제약회사도 아닌 윤도의 한의원. 그러나 그 안의 첨단시설은 바이마크사가 자랑하는 신약개발실의 축소판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놀라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경태가 가려놓은 약재들의 성분은 그녀를 또 한 번 흥분 시키기에 충분했다. 추출기와 분석기를 돌려본 그녀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일본과 중국의 자연약재 시장을 둘러본 적 있지만 이렇게 우수한 약성의 약재는 처음이에요.”
스벤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백미는 윤도의 장침이었다.
“몇 가지가 안 좋으십니다.”
원장실에서 시범 진맥을 한 윤도가 말했다.
“어머.”
“침을 한 대 놔드려도 되겠습니까?”
윤도가 침통을 들어보였다.
“영광이에요.”
스벤야는 기꺼이 진료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윤도가 장침을 뽑아들었다.
“헙!”
스벤야가 자기 입을 막았다. 침의 길이에 겁을 먹은 것이다.
“그게 내 몸에 들어가는 건가요?”
“이미 들어갔습니다.”
윤도가 웃었다. 장침은 정말 그녀의 중완혈에 들어가 있었다. 느낌조차 없는 신침이었다. 다음 침은 등의 지양혈이었다.
“끝났습니다.”
윤도가 발침하자 스벤야가 상체를 일으켰다.
“뭘 하신 건가요?”
그녀가 물었다. 윤도의 손이 그녀의 눈으로 향했다.
“위산과다가 있었죠? 중완으로 들어간 첫 번째 침은 그걸 위한 선물입니다.”
“오 마이 갓!”
스벤야가 자지러졌다. 은근하게 쓰리던 위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럼 등에 찌른 침은요?”
이번에는 스벤야가 먼저 물었다.
“그건 제가 비켜드릴 테니까 확인해 보세요. 스벤야만의 비밀일 테니까요.”
윤도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혼자 남은 스벤야는 생각에 잠겼다. 대체 무엇을 고쳤다는 걸까? 새벽이면 고민으로 변하던 위통은 감쪽 같았다. 그것 외에는 눈에 띄는 애로가 없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한 가지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설마?’
스벤야의 시선이 은밀한 부위로 향했다. 그녀는 냉대하가 심했다. 그러나 그게 침으로 될 리 없었다. 스벤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커트를 들었다. 그리고 그곳을 확인했다.
‘맙소사.’
스벤야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냉대하가 멈췄다. 질의 느낌이 그랬다. 늘 찜찜하던 느낌이 사라진 것이다. 늘 쿰쿰하던 냄새의 원천이 막힌 것이다.
매직!
그것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침 몇 방으로 스벤야의 오랜 고질병을 날려버린 채윤도... 그녀의 시선은 은밀한 허벅지 사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매직... 매직...
그녀 입 속의 말은 계속 진행형이었다.
살려야만 명침인 건 아닙니다.
살려야만 명침인 건 아닙니다.
<갓윤도, 전액기부라니 이미지 관리하려는 쫌팽이들의 기획기부하고 차원이 다르구나.>
<내가 받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고맙쥐?>
<국개의원들 보고 배우-개. 개조아 개조아 이권이나 챙길 수작말고>
<감동의 쓰나미. 당신이 완전 쵝오>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아재세대들이 본 받아야한다.>
<완소 채윤도, 빌게이츠 못지 않다.>
<헬조선에 핀 희망의 꽃 채윤도 한의사>
<이런 젊은이가 있기에 대한민국에 희망이 있다.>
<정치꾼 놈들 본 받아라. 맨날 주둥이로만 국민 위하지 말고.>
<장침을 타고 온 천사>
<한의사는 다르구나. 우리 동네 비보험환자만 대우하는 치과의사야, 좀 보고 배워라.>
<주위에 어려운 사람 있으면 직접 도와주는 게 났다. 기부나 성금으로 내면 중간 놈들이 다 해먹는다.>
<그래서 다스는 누구 거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