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카리스마-1
역대급 카리스마-1
사박.
윤도의 발이 마지막 환자 앞에 다가섰다. 난소암의 하루나였다.
“오래 기다렸죠?”
“아뇨.”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해사한 얼굴의 그녀는 미녀는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막 생긴 편에 속했다. 하지만 눈동자만은 말할 수 없이 선량해 보였다.
그녀에게는 격랑이 있었다. 승주가 듣고 와 윤도에게 전한 이야기였다.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하루나. 도쿄로 올라와 직장생활을 하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후쿠시마 출신이었다. 남편은 다른 남자와 달리 하루나에게 친절했다. 생전 처음으로 생일선물도 받았다. 어느 해, 첫눈이 오는 날 남편이 청혼을 해왔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시련이 왔다. 남편은 마음이 좋은 사람. 우직하게 일만 하는 스타일이다보니 회사에서 모함을 받았다. 교활한 상사가 자신의 부정을 남편책임으로 떠민 것이다. 결국 상처를 입고 사직을 했다.
“나 고향으로 가서 고기 잡으면 안 될까?”
낙담한 남편이 고백을 해왔다. 남편의 아버지는 아직도 후쿠시마의 어부였다. 그가 고령이니 일을 도우며 어부의 길을 가겠다는 거였다. 착한 하루나는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남편 뜻을 따랐다. 그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후쿠시마의 정착은 어렵지 않았다. 남편의 친가가 있는 까닭이었다. 남편은 도쿄의 아픔을 딛고 어부로 정착해 나갔다. 큰 고기를 잡거나 만선이 되면 제일 먼저 하루나에게 알려왔다. 처음에는 모든 게 다 좋았다.
다만 옥의 티가 있었다. 아기가 들어서지 않는 것이다. 하루나와 남편은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임신가능일을 찾았다. 그날은 꼭 음양을 합쳤다. 그래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지진이 나기 3개월 전이었다. 임신테스트기에 반응액을 떨구던 하루나의 눈에 번쩍 불이 들어왔다.
“......!”
빨간 줄이 나왔다. 언제나 외 줄이라 억장을 무너뜨리던 테스트기. 이번에는 두 줄이었다.
“까악!”
하루나는 비명을 질렀다. 바닷가의 집이 무너가라 비명을 질렀다. 임신이었다.
“하루나, 수고했어.”
바다에서 돌아온 남편은 하루나를 업고 마당을 돌았다. 하루나는 행복했다. 얼굴이 못 생겼다고 타박하던 도쿄의 남자들, 고향 친구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하루나의 예쁜 마음과 예쁜 눈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사람을 위한 2세를 갖게 된 것이다.
“아이가 나를 닮으면 어떡하지?”
하루나는 매번 걱정이었다.
“하루나의 눈은 일본 전부를 줘도 안 바꿔. 지구 최강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당신인에 뭐가 걱정이야?”
남편은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 4개월째가 되던 어느 날이었다. 어부들은 바다가 좋지 않아 출항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를 다녀오던 그 날, 부부는 거대한 재앙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말았다.
“신페이.”
언덕 아래의 부두 쪽에서 시아버지가 남편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바다가 보였다. 그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한 검은 산맥이 보였다. 우주가 쏟아지는 듯 한 해일. 그건 분명한 지옥이었다.
“달아나. 네 목숨을 걸고 하루나를 지켜!”
하루나가 들은 시아버지의 마지막 말이었다. 악몽 같은 산은 울컥울컥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버지.”
남편은 아버지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산맥은 아버지의 뒤에서 무차별 쏟아지고 있었다.
“쓰나미야, 쓰나미!”
“......”
“가, 하루나를 지키란 말이야. 나는 네 엄마를 지키지 못했어!”
시아버지는 그 말과 함께 해일에 휩쓸렸다. 그제야 남편이 돌아섰다. 하루나를 차에 태웠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했다. 몰려나온 차로 도로가 엉망이었다.
남편은 하루나를 업고 뛰었다. 시아버지 때문이었다. 4대 독자였던 남편이었다. 그렇기에 손주를 애타게 바랬다. 낳기만 하면 자기가 업어서 키우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거기에 마지막 외침마저 얹혔다.
<나는 네 엄마를 지키지 못했어.>
그런 역사가 있었다. 오래 전에도 해일이 왔었다. 이날 만큼은 아니었지만 굉장했다. 시어머니가 그때 해일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도쿄에서 내려온 남편을 조금도 탓하지 않고 받아주었던 시아버지. 그 소원을 위해 남편은 산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우르릉!
콰아아!
바다가 일어선 듯 한 지옥이 무너졌다. 모든 것을 쓸고 갔다. 하루나와 가깝던 원전과 하루나 뱃속의 아기까지도. 눈앞의 대재앙을 목격한 충격으로 사산을 하고 만 것이다.
“미안해.”
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실려간 하루나가 한 말이었다.
“괜찮아. 아기는 또 만들면 되지.”
착한 남편은 하루나를 탓하지 않았다. 하루나는 맹세했다. 죽어서라도 이 착한 남편과 시아버지를 위해 아기를 낳겠다고.
하지만!
그 맹세와 다짐이 방사능 피폭 앞에 무너졌다. 하필이면 원전과 가까운 산으로 대피했던 하루나. 며칠 동안 대량 방사능에 노출된 까닭인지 결국 난소암을 선고 받고 말았다.
난소암.
그녀에게는 사형선고보다 처절한 아픔에 다르지 않았다.
“난소를 적출해야합니다.”암 진단의사가 진단결과를 말할 때 하루나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으면 전이가 되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의사의 말에 하루나가 답했다.
“아이를 못 낳으면 저는 이미 죽음 목숨입니다.”
“......”
“난소암 따위에 지지 않아요. 아기를 낳아야한다고요!”
하루나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기적.
책이나 영화 따위에서만 보았던 일. 하루나는 그걸 원했다. 착한 남편에게 주고 싶은 단 하나의 선물, 아기. 아내라면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그 선물을...
그렇게 투병을 했다. 하지만 희망은 점점 멀어져갔다. 이제는 하루나의 목숨까지 위태로운 날에 마침내 그 기적의 실빛이 그녀의 운명에 들어왔다. 신침을 놓는 윤도를 만난 것이다.
“하루나, 아까 그 분이 한국 최고의 명의래요. 미나토라고..., 여기 원전 방사능으로 피부암을 선고 받아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도 낫게 했대요.”
검색을 한 신바의 어머니가 하루나 귀에 속삭였을 때, 하루나는 허공에 뜬 시아버지의 미소를 보았다. 남편 못지않게 그녀를 아껴주었던 시아버지. 그가 다가와 가만히 웃었다. 귀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그 미소만은 믿었다.
‘하느님.’
하루나는 바로 기도를 했다.
‘다른 무엇도 바라지 않아요. 신페이와 시아버님을 위해 아이만 낳게 해주세요.’
그녀의 기도는 지금도 진행형이었다.
난소.
알집이다. 영어로는 ovary라고 한다. 자궁의 좌우에 각 1개씩 존재한다. 난자를 보관하고 배란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배란된 난자는 난관을 통해 자궁으로 이동하게 된다. 호르몬 분비에도 관여한다.
크기는 다양하나 대략 3~5cm 정도이다. 사춘기에 이르러 아몬드 모양의 형태를 보이다가 폐경 후에 다시 작아진다. 피질과 수질로 구성되며 수질은 섬유근육조직과 혈관으로 되어있다. 하루나의 난소암 병소는 거의 정중앙이었다.
그녀는 침뜸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일본한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때 잠시 희망을 가졌었다고 했다. 하지만 암세포는 결국 우측 난소까지 마수를 뻗치고 말았다.
진맥으로 잡은 하루나의 난소암 포인트 혈자리는 명문혈과 상료혈, 차료혈이었다. 비수혈 또한 상이한 반응을 보임으로 치료혈로 삼았다. 그 네 혈자리에 장침을 넣었다.
어려웠다.
창해일속(滄海一粟).
넓은 바다에 뜬 좁쌀 한 알이라는 뜻이다. 하루나의 혈자리가 그랬다. 그녀의 혈은 먼지 한 톨의 크기였다. 예전의 윤도라면 처음부터 두 손을 들었을 희귀한 혈자리. 이 또한 4대 기혈이나 8대 기혈에 못지않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것 보다 나았다. 게다가 중국 명의순례 때 쌀알에 소원문을 새기는 명인도 보았던 윤도였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침술. 그렇다면 쌀알 쪼는 조각명인에 집중력에 미치지 못할 수 없었다.
“......”
하루나의 시선은 윤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가 막혔다. 전에 일본 한의사에게 침을 맞을 때, 그는 어쩔 바를 몰라 했다. 수 많은 시도 끝에 한두 혈을 찔렀을 뿐이고, 덕분에 하루나의 몸에는 피멍이 가득했었다.
그런데.
윤도의 침은 ‘제대로’였다. 스륵스륵 들어간다. 따끔한 느낌조차 없었다. 네 개의 침이 모두 그랬다.
‘이제 승부를 볼까?’
드디어 윤도의 약침이 난소를 겨누었다. 하루나의 난소 크기는 대략 4cm 정도. 그 중심부에 떡 하니 똬리를 뜬 난소암. 그러나 그건 바다의 뜬 좁쌀 한 알에 비하면 수박보다도 컸다.
삿!
사앗!
섬세한 약침이 하복부를 뚫고 난소막을 뚫었다.
“......”
윤도는 느꼈다. 침끝이 난소 안의 암세포에 닿는 침감. 뭔가 사나운 이 느낌. 살며시 어르다 그대로 찔러넣었다. 약침이 암세포 안으로 퍼지는 감이 왔다. 침을 감아 뜨끈한 화침을 보태주었다.
온도는 조심스레 올렸다. 난소암을 낫게 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임신을 위해서는 난소 기능을 조금이라도 저해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화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온도는 천천히 42℃에 다다랐다. 암세포의 실드 무너지는 소리가 전해왔다.
‘좋았어.’
같은 감각으로 우측 난소암을 공략했다. 양 쪽 난소를 장악했던 암들은 몸서리를 치며 발악했다. 그래도 소용은 없었다. 윤도의 약침은 이미 중심부를 녹여버린 후였다. 이제 보조 침을 넣었다. 암을 없애는 양문혈, 내부의 찌꺼기를 빼내는 수삼리, 천종, 전중혈의 지원군이었다.
일차 시침 완료!
윤도의 머리가 몸에게 말했다. 동시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일어서던 윤도가 벽에 기댄 채 주르륵 무너졌다.
“원장님!”
승주가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일본 닥터도 혼비백산이었다.
“괜찮아. 잠깐 다리가 풀린 것 뿐.”
윤도가 승주를 안심시켰다.
“조금 쉬셨다가 하세요.”
승주가 말했다.
“쉬는 건 다음으로 미뤄도 상관없잖아?”
겨우 숨을 돌린 윤도가 벽을 짚고 일어섰다. 여덟 환자... 그 치료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다시 첫 환자로 돌아갔다. 발침을 하고 진맥을 짚었다. 담괴는 작살나고 없었다. 하지만 암 뿌리 두 개가 남아있었다. 구석진 곳이었다. 약침을 넣어 끝장을 봤다.
“우에엑!”
폐암 환자는 다시 토악질을 시작했다. 승주가 핏물을 닦았다. 그 또한 작은 암덩어리가 숨어있기에 마무리를 했다. 그렇게 VIP를 돌아 신바에게 돌아왔다. 신바는 아직도 소나무잎을 쥐고 있었다. 윤도가 발침을 했다.
“선생님.”
신바의 입이 열렸다.
“응?”
“그 침 저 하나만 주면 안 돼요?”
“침은 뭐하게?”
“소나무잎이 부러져 버렸어요. 그 침을 소나무잎처럼 간직하게요.”
신바가 손을 펴보였다. 소나무잎은 시들어 꺾인 지 오래였다.
“그러렴. 하지만 소독을 해야 하니 조금 기다려줄래?”
“네, 문제없어요.”신바가 하얗게 웃었다. 그 웃음을 따라 얼굴의 피부암 찌꺼기들이 흘러내렸다. 보기가 좋았다.
“기분 어때요?”
마지막은 하루나였다.
“너무 개운해요.”
“탕약을 먹어야 해요. 제가 한국의 한의원에 말했으니 곧 가져올 겁니다. 한 일 년 정도 가료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겁니다.”
“일 년...”
하루나의 눈 속에 별이 반짝거렸다. 그 별의 주인공은 남편일까 시아버지일까? 아니면... 새로 가지게 될 아이일까? 따뜻한 생각을 하며 침을 뽑았다. 다행히 하루나의 난소 속에는 마수의 흔적이 남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루나를 치료하면 윤도가 얻은 신념이었다.
여덟 환자의 암치료는 월요일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이틀 동안의 강행군이었다. 이틀 동안 윤도는 물 외에 무엇도 먹지 않았다. 한중관이 발을 굴렀지만 윤도는 듣지 않았다.
실제로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여덟 환자는 신경통 환자가 아니었다. 골절도 아니었다. 다들 저승에 한 발을 들여놓은 말기암 환자들. 그렇기에 윤도는 사력을 다해 이들의 운명을 현생으로 끌어냈다. 모든 것을 바친 시침이었다.
“신바.”
치료의 끝은 소년이었다. 신장과 비장, 폐장, 대장의 기를 보해준 윤도가 신바 앞에 섰다.
“선생님.”
신바의 얼굴은 이제 더 이상 괴물이 아니었다.
“받으렴.”
윤도가 장침 세 개를 건네주었다. 신바를 찔렀던 침들이었다.
“하나는 신바, 또 하나는 엄마, 또 하나는 아빠 몫이야.”
“와아.”
환호하는 신바를 윤도가 안았다. 햇살을 안은 듯 피로가 풀려나갔다. 그 시선 너머로 거짓말처럼, 월요일의 아침 해가 뜨고 있었다. 희망이 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햇살을 따라 리무진 차량 무리가 도착했다. 차에서 총리가 내렸다. 일본총리였다.
역대급 카리스마-2
역대급 카리스마-2
일본총리는 비서실장, 외무부장관 등과 함께였다. 집권여당의 당수도 보였다. 슈스케와 차관, 타다요시와 무라다 등이 달려 나와 그를 영접했다. 깍듯하다. 인사 하나에도 절도와 절제가 엿보였다. 미나토는 무리의 뒤에 있었다. 총리는 슈스케를 지나와 미나토 앞에 멈췄다. 그는 총리를 맞아서도 거목처럼 우뚝했다.
“어르신.”
총리가 먼저 미나토에게 허리를 숙였다.
“큰 결심 하셨소.”
미나토는 한 마디로 답했다.
총리는 VIP병실을 향해 걸었다. 와타루와 치모모가 병실 문을 열었다.
“오!”
총리 걸음이 멈췄다. 여섯 환자들이 보였다. 그들 여섯은 모두 총리의 정치적 후견인이거나 정권창출의 산파들. 윤도의 고집으로 들어와 있던 신바와 하루나는 자기 병실로 내려간 후였다.
짝짝!
VIP환자들은 박수로 총리를 맞았다. 죽음의 강 앞에 서성이던 그들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준 사람. 치료자는 윤도였지만 시작은 총리였던 것이다. 총리는 정중한 인사로 그들의 박수에 화답했다. 지난번 보았을 때는 반은 죽어있던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서 생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한국의 한의사가 채윤도라고 했나?”
총리가 슈스케를 돌아보았다.
“그렇습니다.”
“모셔오게.”
“그게...”
총리의 명에 슈스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한국의 외교차관이 와있다더니 그와 함께 있는 건가?”
“아닙니다. 한중관은 기자회견 차 주일대사관으로 갔습니다.”
“그럼?”
“지금 치료 중입니다.”
“치료? 치료는 끝난 거 아닌가?”
“그게... 쉬지도 않고 1층의 일반 피폭환자들을...”
“......!”
“여기 원로님들을 위한 특별탕약이 지금 한국에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때까지만이라도 진짜 침술을 펼치겠다고.”
“진짜 침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