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채 선생, 이걸 어쩐다?”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식사하시고 제 한의원으로 가시죠. 참석하신 분들 전부 진맥하고 불편한데 돌봐드리겠습니다.”
윤도가 할머니들의 애로를 접수했다.
“그럼 우리 의무실에서 놓는 게 어떨까요? 어르신들이 옮겨 다니려면 힘드실 텐데...”
대통령이 즉석 제의를 내놓았다.
“그래주시면 고맙죠.”
윤도도 흔쾌히 수락을 했다.
식사 후, 청와대 의무실에 진풍경이 펼쳐졌다. 열 넷 할머니들이 단체로 누운 것이다. 언젠가 청와대 직원들이 단체로 헌혈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그 신체도 고달팠다. 첫 번째 할머니부터 진맥을 잡았다.
‘동기(動氣)와 위하수...’
동기는 뱃속에 적취가 있을 때 잡히는 맥이다. 위하수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익숙한 병명. 윤도가 장침 두 개를 뽑아들었다. 양지혈과 중완혈에 넣었다. 모두 화끈한 화침이었다.
“워매!”
침을 맞은 할머니가 꿀럭 움직였다.
“아프세요?”
대통령이 물었다.
“아녀. 아픈 게 싹 다 사라졌어. 워매, 용하네 용해.”
할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번째 할머니는 전중혈에 문제가 있었다. 진맥하던 손을 놓고 전중혈을 슬쩍 눌렀다.
“아파!”
할머니가 울상을 지었다. 울화병이었다. 울화병에 걸리면 전중혈이 아프다. 정상인 사람은 아프지 않다.
화병은 오장의 기운이 역류해 심장을 자극한다. 기가 심장에 쏠리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른 오장의 기혈이 부족해 병이 된다. 초조와 원망, 걱정 등이 빚어낸 질환이다. 어째서 그렇지 않을까? 할머니들의 인생을 돌아보면 울화병은 기본이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침은 소상혈과 은백혈, 전중혈에 넣었다. 전중혈에서 침을 감아주자 심장에 몰린 기가 분산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네?”
할머니 인상이 부드럽게 펴졌다.
다음 침은 발목을 위해 들어갔다. 할머니들은 손발목이 붓는 경우가 많았다. 자칫하면 혈액순환 장애가 될 판이다. 장침은 복토혈과 족삼리, 태충과 대돈혈에 들어갔다. 침끝을 천천히 감아주자 붓기가 내려가는 게 보였다.
이런 과정들은 기자들을 통해 취재가 되고 있었다. 청와대가 붙인 옵션은 단 하나였다.
<채윤도 한의사의 진료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기자들 중에는 성수혁도 있었다. 그는 모범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지켰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할머니에겐 신주와 폐수혈을 잡아주었다. 할머니의 천식은 더 이상 쿨럭거리지 않았다.
진료가 끝나자 할머니들의 표정은 확 달라져 있었다. 휠체어를 타던 세 명은 아예 일어나 걸었다. 무릎 통증이 거짓말처럼 풀린 것이다.
“아이고, 이 한의사 선생이 내 허리에 훈장을 달아준 모양이네. 하나도 안 아파.”
“나는 배에다 훈장을 달았나봐. 늘 아리아리 하더니 시원해.”
“말도 마. 그럼 나는 똥꼬에 훈장을 줬나봐. 화장실 가서 똥을 두 바가지나 싸고 왔어. 속이 다 후련하다니까.”
할머니들은 경쟁하듯 윤도를 치켜세웠다. 그 모습을 보니 갈매도의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침 몇 방 놓아주면 세상을 얻은 듯 바리바리 싸들고 오던 어르신들...
“채 선생.”
퇴정하기 전, 잠시 대통령과 대화시간이 주어졌다. 비서실장과 한중관 차관이 동석했다.
“한 차관에게 자초지종은 들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정말 대단한 활약을 했어요.”
“국민된 도리였을 뿐입니다.”
대통령의 치하에 윤도가 답했다.
“아닙니다. 한 차관에게 듣자니 채 선생의 뚝심이 보석 같았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영화를 챙길 수도 있었을 것을...”
“......”
윤도는 웃었다. 개인적인 영화라면 돈이다. 그날 도쿄의 칸치병원... 만약 윤도가 위안부 사과대신 거액을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몇 십억을 요구해도 내놓았을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큰 액수라고 해도 그들은 받아들였을 지도 모른다.
“저번에는 신약개발로 인한 수익 전액을 기부하셨죠? 대통령으로서 채 선생만 생각하면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과찬입니다.”
“아니에요. 진짜 훈장 하나로 모자라죠. 마음 같아서는 대통령이 줄 수 있는 모든 훈장을 주고 싶습니다만...”“저희 직원들까지 챙겨주셨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그래, 다른 애로는 없습니까? 있으면 말씀하세요. 대통령으로 약속하는데 채 선생의 애로는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애로라면...”
윤도 뇌리에 장 박사가 떠올랐다. 청와대로 오기 전 윤도는 장 박사와 통화를 했었다. 그의 당부는 당연히 한의학 중흥에 대한 거였다. 대통령의 이해도를 높여놓으면 한의학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었다.
한의대학 학생 때부터 품어온 이야기를 전했다. 전통의학으로서의 한의학. 얼마든지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침구도 그렇고 생약인 한약도 그랬다. 그걸 정부차원에서 진흥해줄 방안이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좋은 말씀이군요. 그렇잖아도 우리 비서진들에게 그 말이 나왔습니다. 채 선생 수준의 한의사가 많이 양성된다면 국민보건향상과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맞습니다. 한의학도 본격 발전을 시작하면 현대의학 못지 않은 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한의사로서 채 선생의 포부는 뭡니까? 행적을 보아하니 대통령인 저보다도 큰 행보를 하고 있기에...”
“방금 말씀드린 의견과 궤를 같이합니다. 여건이 허락되면 침술 특화 한의대를 성립해 아직 그 신묘함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침술을 발전시켜 불치병 퇴치에 기여할까합니다.”
“침술 특화 한의대라고 했습니까?”
“우리 침은 발전할 방향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침술은 고작해야 침술능력의 2-3할을 사용하는 정도니까요.”
“채 선생 침술을 보면 공감합니다. 북한에서는 죽은 장교도 살리고 왔다고요?”
“다는 아니지만 그 또한 우연은 아닙니다. 침술만이 할 수 있는 신묘함이죠.”
“기반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이 사람이 퇴임한 후라도 힘이 닿는 한 채 선생을 돕겠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나왔다. 윤도에게는 또 하나의 훈장에 다름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내 부탁인데...”
‘부탁?’
“내 주치의를 좀 맡아주세요.”
“네? 주치의요?”
“그냥 기분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 사람의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만약 거절하면 대통령의 직권으로 임명해 버릴 겁니다.”
“대, 대통령님.”
“머잖아 주치의와 전문분야별 자문의 회동이 있습니다. 그때 모셔서 정식으로 발표하고 위촉장을 드릴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다. 윤도는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았다.
한방 주치의에 내정된 채윤도. 그 손이 살짝 떨렸다.
“자자, 기념사진 찍습니다. 다들 한 자리에 모여주세요.”
청와대 뜰에서 사진사가 외쳤다. 할머니들과 윤도네, 그리고 대통령과 비서실장, 한중관 등이 옹기종기 모여섰다. 사려 깊은 대통령은 윤도와 할머니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신을 중앙에 배치하는 다른 대통령들과 달랐다.
“찍습니다. 치즈!”
사진사가 외쳤다.
“치즈는 무슨 치즈. 조선 사람은 김치여.”
할머니 하나가 호통을 쳤다.
“하모, 치즈가 뭐꼬.”
할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합창을 했다.
“죄송합니다. 김치.”
사진사가 정정을 했다. 할머니들은 저마다 자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더러는 근엄했고 더러는 웃었고, 또 더러는 어색했다.
측칵, 측칵!
사진기가 그 역사를 찍었다. 한 방이 아니었다. 청와대 사진사가 물러나자 기자들 차례가 되었다.
측칵, 측칵!
셔터는 쉴 줄을 몰랐다. 모델이 된 모두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날 윤도 아버지 채혁수는 공장의 전직원에게 국산 생삼겹살 세 근 씩을 돌렸다. 어머니 서미정은 같이 자원봉사를 하는 여사님들 모두에게 커피를 쐈다.
윤도의 훈장은 그 가족들에게도 훈장이었다.
가슴 먹먹한 훈장...
넘보지 마라-1
넘보지 마라-1
채윤도
위안부 사과 숨은 공신
일본총리
방사능 암환자
일침한의원
국민훈장 무궁화장
다시 실검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윤도의 청와대 훈장 수여와 위안부 사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보도된 것이다. 윤도는 쫑파티를 하다가 성수혁 차장의 호출을 받았다.
연재와 승주가 급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맡아주었다. 호프 한 잔으로 달아오른 취기를 화장빨(?)로 가려준 것이다. 윤도는 작은 공원에서 TBC 뉴스 인터뷰에 응했다.
바로 댓글이 쓰나미를 이루기 시작했다.
<채윤도 장침으로 도쿄정벌.>
<장침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숨길을 열어주었다.>
<인성, 실력, 뭐 하나 깔게 없구나.>
<주는 떡이나 받아먹는 정부는 접시물에 코 박고 반성해라.>
<앞으로 대한민국 한일외교는 채윤도에게 맡기심이?>
<반박불가 국민영웅 채윤도, 진심 지렸다.>
<가즈아, 채윤도, 맞으자 장침.>
<일본이 당신의 장침을 싫어합니다.>
<꼴랑 훈장이냐? 대마도(?) 정도 떼어줘라.>
<60억 기부에 위안부 문제해결까지... 지린다.>
<월드 클라스 슈퍼히어로 한의사 탄생.>
<채윤도 미혼이란다. 내가 찜~>
<이 한의사 실화냐? 개쩐다.>
“어머어머, 이 댓글 좀 봐요.”
승주가 핸드폰을 보며 빵빵 터졌다.
“대마도를 주래요.”
연재도 배를 잡고 웃는다.
“가즈아는 뭐야?”
유행어에 둔감한 진경태는 졸지에 문맹이 되었다.
이날 윤도네 쫑파티는 ‘무려’ 무료였다. 사장님은 즉석에서 무한리필에 무한무료를 선언했다. 윤도가 사양하자 통사정까지 나왔다.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도의 전화는 또 불이 났다. 온통 축하전화였으니 저 먼 갈매도의 축하도 빠지지 않았다. 그 중간에 손석구의 전화가 들어왔다. 이제 꺼야겠다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손 선생님.”
윤도가 반가이 전화를 받았다.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국대 명의님.”
“부끄럽게 무슨 말씀을...”
“아닙니다. 저는 제가 국대인 줄 알았는데 채 선생님이야말로 넘사벽이로군요. 의술로 국가 현안까지 치료하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청와대에서 위안부 할머니들 침까지 놔주셨다면서요?”
“아, 예...”
“진짜 대단합니다. 솔직히 인정합니다.”
“눈은 어떠세요?”
“국대 명의의 명침이었는데 별 일 있겠습니까?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래도 너무 혹사하지는 마세요.”
“그런데... 자수 안 합니까?”
“자수요?”
“어허, 왜 이러십니까? 저도 정보통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훈장 말입니다. 제 훈장.”
“아...”
“채 선생님이 강력하게 추천했다면서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손 선생님은 훈장으로도 모자라는 분입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어도 당연히 받으셨을 겁니다.”
“아, 이번에 국회에 불려나갈 기회가 있어서 채 선생님 추천하고 싶었는데 선수를 뺏겼네.”
“국회요?”
“그 양반들이 중증외상 의료법에 지지부진이잖습니까? 예산 타령이나 하더니 나보고 와서 설명하라네요.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고...”
“하긴 손 선생님 말이라면 국회의원들도 흘려듣지 못하겠네요.”
“그런 자리는 채 선생님이 제격이에요.”
“예?”
“위안부 사과 말이에요, 일본에 혈혈단신으로 건너가 빅 딜을 했다면서요. 방사능 암환자들 고쳐주겠다. 대신 위안부 문제 사과해라!”
“그, 그건 좀 과장된... 게다가 혈혈단신도 아니고 우리 간호사 김 샘이랑...”
“아무튼 대단합니다. 저라면 쫄아서 그런 말 못했을 겁니다.”
“별 말씀을...”
“이런, 또 응급 호출이네. 어쨌든 나중에 봅시다. 내가 한 턱 내러 가겠습니다.”
“기대하죠.”
윤도가 전화를 끊었다. 머리에 손석구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는 또 메스를 잡았을 것이다. 중증외상 환자의 목숨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신념으로 의술을 펼치는 의사들. 다다익선일수록 좋을 일이었다. 그게 한의사든 의사든.
며칠은 미친 듯이 바빴다. 일본행에 대한 수습이었다. 월요일 예약환자가 밀리면서 도미노가 되었다. 그 폭풍은 수요일 쯤 되어서야 수습이 되었다.
수요일 오후, 잠시 손을 쉬면서 진경태와 약제실에서 머리를 맞대게 되었다.
“치매...”
진경태가 살짝 긴장을 했다. 윤도의 두 번째 신약개발. 그 도전의 화두가 치매였다.
“겁나세요?”
윤도가 물었다.
“전혀요.”
진경태가 고개를 저었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지금 치매 치료 자료를 들고 있었다. 윤도는 진맥과 혈자리에 반응하는 탕제의 구성이었고 진경태는 각 탕제의 주요성분 농도에 대한 비교자료였다.
진경태의 자료는 충실했다. 윤도가 시키지 않은 분석까지도 덧붙었다. 약재의 계절별, 부위별, 건조방식, 절삭 등을 망라한 자료들이었다.
당연히 성분추출에 대한 분획과 물질분리도 포함이었다. 활성검색과 독성 안정성 등도 수반되었다. 윤도가 그 자료를 검토했다. 혈자리와 더불어 환자 치료에서 나온 효과의 분석이었다.
치매약의 베이스는 산해경의 영약도 발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