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안에 계세요.”
“저분들 좀 모셔.”
윤도는 두 차를 가리키고 안으로 뛰었다.
“1번 침구실이에요.”
접수대 앞에서 정나현이 소리쳤다. 윤도가 들어서자 두 환자가 보였다. 연재가 임시처치를 맡고 있었다.
“원장님.”
“어때요?”
윤도가 가운을 집어들었다.
“남자 분이 예약환자고 여자 분이 보호자인데...”
설명을 들으며 여자에게 다가섰다. 중병의 말기암환자를 앞에 두고 절침 환자를 먼저 돌봐야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저는 참을만 해요. 그러니 우리 아들부터...”
보호자 장명화. 그녀는 배를 잡은 채 웃어보였다. 얼굴에는 고통이 배어있지만 찡그리지 않는 사람. 그 모성애에 놀라 암환자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부터 부탁합니다.”
아들도 같은 말을 했다.
“......!”
윤도는 잠시 황망했다. 두 사람의 표정이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대개는 깊은 슬픔이 배어나온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암환자에 절침으로 뱃속에 침이 든 환자. 그럼에도 두 사람의 표정에는 긍정의 햇살이 더 진했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들에게 말하고 장명화에게 다가섰다. 응급환자부터 치료하는 게 순서기 때문이었다.
“저는 정말 괜찮은데... 실은 전부터 참았던 거거든요.”
‘전부터?’
장명화의 말에 윤도 솜털이 발딱 일어섰다.
“죄송하지만 얼마 전에도 절침이 있었어요. 게다가 아들의 병이 중하잖아요.”
“그 침은 뺐습니까?”
“아뇨. 외과에서 개복을 했는데 찾지 못했어요.”
‘크헉.’
어이상실.
그렇다면 이 여자의 몸 속에는 절침이 둘?
담도암과 붕어회-2
담도암과 붕어회-2
“영상에서 골반 쪽에 금속 물질이 보인다며 개복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개복을 했는데 침이 안 보이요. 두 시간 넘게 찾다가 포기하고 닫았어요. 그냥 퇴원했죠. 뭐.”
‘......’
“그 후로 쭉 괜찮았는데 그 침이 안에 숨어있다가 오늘 부러진 침하고 만났나 봐요. 둘이 사랑이라도 나누는 건지 이렇게 볶아대네요.”
장명화의 말이 윤도를 한 번 더 뒤집어놓았다.
‘이 여자, 대체...’
담대한 건지 무모한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말투나 행동으로 보아 굉장히 스마트해 보이는 사람. 거두절미하고 진맥부터 잡았다.
‘침...’
눈을 감고 장명화의 복부에 집중했다. 거기서 전해오는 맥의 정보를 받았다.
‘젠장.’
그녀의 말은 참이었다. 하복부에 두 개의 침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골반 쪽이었다. 장명화의 말처럼 천생연분이라도 되는 지 찰떡처럼 붙어있었다.
“오늘 절침 후에 X-ray 찍어보신 겁니까?”
윤도가 물었다.
“아뇨.”
“그런데 어떻게?”
“침이 안에서 만났죠?”
“......”
“침이 말을 했어요. 선생님이 꺼내주실 수 있다고.”
“예?”
이 여자...
점입가경이었다.
“꿈을 꾸었거든요. 이런 말 믿지 않겠지만 제가 예지몽을 꾸어요. 꿈에서 선생님을 만났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 침도 우리 아들의 암도...”“어머니...”
“저 정신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미신 믿는 무속인이나 보살도 아니고요. 이래 뵈도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랍니다.”
그녀가 목을 의식해 보였다. 거기 은빛 십자가 목걸이가 빛나고 있었다.
“아들을 살려주세요. 돈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제가 사학재단을 운영해요. 아들만 살려주시면 전재산의 반이라도 내드리겠어요.”
처음에는 절침이더니 이제는 돈으로 정신을 흐린다.
“일단 침이나 뺀 후에 말씀하시죠. 안 되면 당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셔야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믿어요.”
장명화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사람은 오히려 윤도였다. 어쩌면 환자와 한의사의 역할이 바뀐 것만 같았다.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진맥을 잡았다. 절침의 위치는 대장 안, 직장 쪽으로 가까웠다. 혈자리 세 곳에서 반응을 해왔다. 손목 위의 지구혈, 복부의 중완혈, 등 쪽의 대장수혈이었다. 바로 장침을 꽂았다. 지구혈과 중완혈에서 대장의 연동운동을 자극했다. 두 혈은 원래 변비에 많이 쓰이는 혈자리. 변을 밀어 안에 있는 침을 꺼내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침은 날카로운 것. 행여 장부에 걸리지 않도록 느리게, 느리게 자극을 주었다.
“좋아요.”
장명화가 혼자 중얼거렸다. 남의 일처럼 천하태평이다.
“좋아요.”
한 번도 아니었다. 자극의 세기에 따라 그녀의 말이 반복되었다. 좋게 보면 긍정의 아이콘 같았다. 아프다고 인상을 쓰는 것보다는 나아 그냥 시침에 몰입했다.
대장의 내용물들이 서서히 직장으로 밀려나갔다. 거기서 잠시 멈추고 진맥을 잡았다.
좋아요.
그 말이 신호였을까? 절침은 처음의 자리에서 아래 쪽으로 내려가 있었다.
‘좋았어.’
장명화의 말에 물든 것인지 윤도도 같은 말을 했다. 확신을 한 윤도가 장침 하나를 더 꺼내들었다. 그 침은 엉덩이 위의 요근혈로 들어갔다. 침 끝을 감아 항문 쪽에 강력한 침감을 넣었다.
“어머!”
장명화가 꿈틀 움직였다.
“아프세요?”
“아뇨. 화장실...”
다시 윤도의 침이 끝까지 들어갔다.
“지금은요?”
“쌀 거 같아요.”
“김 샘, 이분 화장실로 안내해주세요. 그리고...”
침을 뽑은 윤도가 특별지시를 내렸다. 승주는 잠시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윤도의 말을 따랐다.
잠시 장명화를 기다렸다. 절침이 나오지 않으면 시침을 다시 해야 할 판이었다. 혹시라도 대장 안에 융종이나 장애물이 있어 침끝이 걸렸다면 양방 응급실행을 피할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을 보았다. 눈썹이 살짝 기울고 혈색에 푸른 느낌이 배어있다. 암의 기세가 좋지 않은 건 확실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장명화는 잠시 후에 돌아왔다. 하지만 승주는 오지 않았다. 윤도가 화장실로 향했다. 거기 승주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녀 앞에 놓인 건 한 바가지의 응아였다.
장명화의 응아.
변기 안에다 볼 일을 보면 안 될 일이었다. 절침이 나왔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응아를 헤쳐 확인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이런 일이 많았다. 특히 어린 아이들, 부모 모르게 동전 같은 걸 삼키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면 아이가 응아를 할 때마다 철저 수색에 나서야 했다.
승주가 주저하는 건 수색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명화의 응아는 막강 분량에 악취까지 강했다.
“내가 할게.”
윤도가 폴리글러브에 마스크를 끼고 나섰다.
“아, 아니예요. 원장님.”
“아니긴... 군대 안 가봐서 수색할 줄 모르잖아?”
“그건 선생님도 공보의...”
“어, 그런가? 하지만 나는 훈련소에서 특급병사였어.”
되는 대로 지어대며 그녀를 밀어냈다. 윤도는 바닥의 응가 덩어리 앞에 앉았다. 젓가락 두 개를 들고 응가를 헤집었다. 냄새는 이미 잊었다. 팩트는 오로지 절침이었다.
“빙고.”
절반 쯤 헤집던 윤도가 소리쳤다.
“나왔어요?”
“오케이.”
윤도가 절침 한 조각을 집어보였다.
“와아.”
승주가 감탄을 터트렸다. 응아에서 나온 이물질을 보고 감탄하기는 그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 침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첫 환호는 응가 향 속으로 사라졌다. 진맥으로 느낀 침 조각은 두 개였으니 하나만 나와서는 안 될 일이었다.
재수색.
윤도가 호흡을 골랐다. 이번에는 아예 응아를 뭉개듯 분해하며 정밀수색에 나섰다. 끝에 남은 조각에서 남은 침을 찾았다. 녀석은 섬유질에 섞여 숨어있었다.
“잡았어.”
윤도가 또 하나의 절침을 들어보였다. 시침보다 어려운 수색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어머!”
두 개의 침조각을 받아든 장명화가 입을 쩌억 벌렸다. 물론 알코올에 담궜다가 꺼낸 것이었다.
“맞아요. 제가 쓰는 침...”
장명화도 감격스러운 표정이었다.
쩝.
윤도가 혼자 입맛을 다셨다. 응가 수색의 추억 때문이었다.
“그거 침의 질이 안 좋아요. 어디서 구하셨어요?”
“이거... 저희 아버지가 쓰시던 침이에요.”
“......?”
“아버지가 사이비 침구사셨거든요. 학교 이사장 하는 분이 친구에게 곁눈질로 배운 거니 영락없는 사이비 맞죠?”
혼잣말처럼 말하며 그녀가 웃었다. 이래도 저래도 웃고 있는 장명화. 아무래도 연구대상처럼 보였다.
“저 어릴 때 이 침 맞으면서 살았어요. 체해도 침, 두통에도 침, 심지어는 시험 때마다, 어쩌다 울어도 침을 놓으셨어요. 그게 싫어서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안 하고 살 정도였으니까요.”
“......”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침통부터 갖다버렸는데 그날 밤 꿈에 아버지가 보여요. 이제 그 침에 신통력이 생겼으니 당장 찾아오라고. 언젠가 우리 재우를 구해줄 침이라고...”
“꿈에요?”
“네, 아버지가 꿈에 보인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져 다시 찾아왔죠. 그러다 어느 날 제가 지독한 식체를 당했는데 병원에 가도 안 고쳐지는 거에요. 그래서 두판 잡고 아버지 기억을 떠올려 침을 찔러보니 세상에...”
그 자리에서 체한 게 시원하게 내려가지 뭐예요.
장명화의 뒷말이었다.
이후로 그녀는 민간침요법을 배웠다. 소소한 질병을 침으로 다스렸다. 최신 침이 많지만 바꾸지 않았다. 아버지의 꿈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침이 되었는데도 몸에 안고 살았던 거예요?”
윤도가 물었다.
“병원에 가기는 했다니까요. 거기 의사가 초짜라서 못 꺼낸 거죠. 아니면 선생님 앞에서 나오려고 했던 건지.”
장명화가 또 웃었다.
“그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 아들을 저한테 보내라고 했다는 건가요?”
“네.”
장명화가 한 마디로 대답했다.
“진맥을 보니 다행히 절침에 의한 부작용은 없는 거 같네요. 이제 아드님 진료해야 하니까 누워서 좀 쉬세요.”“우리 아들 꼭 좀 부탁해요. 선생님이 아니면 합격된 검사임용, 불합격이거든요.”
“검사임용이라고요?”
돌아서던 윤도가 걸음을 멈췄다.
“우리 재우... 재수에 재수를 거듭해서 로스쿨 마친 후에 간신히 검사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러다 얼마 전에 복통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담도암이라고 해요. 그것도 수술불가의 말기...”
“그럴 때까지 몰랐단 말인가요?”
“전에 아이가 담석수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시초였던 거 같아요. 하지만 그때 초기 암을 발견하지 못하는 바람에...”
“임용예정일은 언제인데요?”
“2주일 남았어요. 그래서 제가 날마다 여기다 전화를 걸어서 겨우 예약을 받은 거예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세요.”
“2주일이라고요?”
“네, 2주일.”
장명화는 또 웃는다. 그녀에게 2주일은 마치 2년이라도 되는 듯 느긋하게 보였다.
“짧은 시간인 줄은 알지만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걱정하지 말라고. 선생님이 다 해결해주실 거라고.”
윤도의 표정을 읽은 듯 장명화가 부연을 했다.
그런데...
긍정의 아이콘은 장명화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들 석재우도 판박이였다. 서울지검장 부자가 떠올랐다. 둘이 기타를 치던 모습... 거기서 느끼는 붕어빵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눈썹 말이에요, 원래 이렇게 생겼나요?”
윤도가 진맥을 잡으며 물었다.
“예?”
“눈썹요. 원래 이렇게 생겼냐고요?”
“눈썹요? 눈썹이 왜요?”
석재우는 윤도의 말을 명쾌하게 캐치하지 못했다. 귀가 어두워진 것이다.
“귀는요? 원래 좀 어두웠어요?”
이번에는 석재우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아뇨. 얼마 전부터 그런 거 같습니다.”
그제야 제대로 대답이 나왔다.
청력은 약해지고 눈썹은 기울고, 거기에 더해 얼굴은 누렇게 뜬 푸른 빛... 담의 기가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저 기가 툭 끊어져 얼굴의 푸른색이 희끄무레하게 변하면 목숨을 놓을 일이었다. 그야말로 목숨이 위태로운 일. 검사임용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진맥을 시작했다. 첫 맥부터 기세가 사납다. 달리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담도암인가? 난소암과 신장암, 담도암. 이들은 모두 저승사자의 소리 없는 낙인이었다.
석재우.
검사시험에 합격한 재원.
두 번의 재수를 거쳐 로스쿨에 들어갔다. 이후 지도교수의 추천을 받아 바늘구멍 검사임용과정을 뚫어냈다. 변호사 시험까지 합격하고 임용절차만 남은 예비 검사. 그러나 느닷없는 담도암 진단으로 검사임용은커녕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판이 되었다.
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