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장기라고 말한다. 담도는 간에서 나온 담즙이 십이지장으로 흘러가기까지의 경로를 담도라고 한다. 담도는 그물을 연상하면 쉽다. 가는 실개천이 모여 큰 물을 이루듯 간 속에 있는 가늘고 많은 관들이 가닥가닥 합쳐 큰 관을 이룬다.
담관은 간내 담관과 간외 담관으로 나뉜다. 암이 발생하는 위치에 따라 간내 담도암과 간외 담도암으로 구분하게 된다.
석재우의 경우에는 담관 주변으로 암이 침윤을 했다. 그렇기에 절제수술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 황달이 심해진 상황. 현대의학에서는 개복수술 아니면 내시경을 이용한 스텐트 삽관술을 권하고 있었다. 암은 잡지 못하더라도 황달은 해결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식도암...
절대 만만한 암이 아니다. 담도암은 폐암, 췌장암에 이어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에 속한다. 다른 암에 비해 수술도 쉽게 할 수 없다. 대략 40-50%의 환자만이 수술을 시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담도 아래 쪽에 암이 발생하면 행운이다. 황달이 야기되는 바람에 조기 발견이라도 가능한 것.
주목할만 한 건 석재우의 담도암이 간흡충으로부터 기인한 것 같다는 진단결과였다.
간흡충.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민물고기에 많다. 강변에 살면서 민물고기를 날로 자주 섭취하는 사람이 고위험군이 될 수 있다. 암 발생 기전은, 간흡충이 담도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시작된다. 이 놈들이 염증을 일으키면 암의 원인이 된다. 민물고기를 날로 먹는 사람이 많은 까닭에 한국에는 담도암이 많다.
간흡충의 번식은 기하급수적이다. 일단 감염되면 4주 후에 알을 낳는다. 알의 양이 무려 하루 4000여 개에 달한다. 게다가 20년 이상을 장수한다. 약국의 일반 구충제로는 약빨도 받지 않는다. 붕어를 비롯해 모래무지, 피라미, 돌고기, 몰개 등의 대다수 민물고기 속에 들어있다.
석재우의 경우는 붕어가 원인이었다. 낙동강이 가까운 탓에 싱싱한 붕어가 주변에 많았다.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니 붕어회도 가리지 않았다. 몸이 허하면 보신용으로도 먹었다. 그 붕어들이 뻐끔뻐끔 간흡충 알을 심어놓았다. 예비검사의 인생에 제대로 딴죽을 건 것이다.
진맥은 간장의 정보를 중점으로 가져왔다. 담이 간에 속하는 까닭이었다. 따라서 담도 간처럼 목(木)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담도암은 신장의 기혈부조화가 기원이었을까? 신장이 수(水)에 속하니 많은 경우의 간질환에 대해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석재우의 경우는 외부에서 들어온 간흡충으로 인한 담도암. 그렇기에 신장과는 큰 관계가 없었다.
‘후우.’
진맥을 마치자 한숨부터 나왔다. 담관 때문이었다. 간내 담관부터 간외 담관까지 많은 가지들에 암세포가 달라붙었다. 덕분에 간의 좌엽 말단과 십이지장의 일부에도 전이가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도였다. 머리카락처럼 매끈하게 뻗어야할 담관들은 자잘한 암덩어리로 인해 꽈리처럼 흉하게 변한 것이다.
‘어쩐다?’
생각을 정리할 겸 복도로 나왔다. 거기서 손석구를 보았다. 어찌나 몰입했던지 그와 함께 왔다는 사실조차 깜빡했던 윤도였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좀 걸리네요.”
윤도가 말했다.
“절대 죄송 아닙니다. 저는 수술하다가 홍콩 출장 가는 비행기 시간을 잊은 적도 많고 아이 생일날 패밀리 레스토랑에 먼저 가있으라고 하고는 그것도 잊어버린 적이 있거든요.”
‘허얼.’
“의사는 환자가 우선이죠. 보아하니 어려운 환자인가본데 도와드릴 건 없나요?”
“담도암 환자입니다. 담도는 물론이고 그 주변까지 암세포가 침윤되었고 간과 십이지장 접촉 부위도 전이소견이라...”
“고민이군요. 선생님의 신침을 넣는다고 해도 한두 개가 아니고...”
“그렇습니다.”
“담도하고는 다르지만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선생님 경우요?”
“중증외상환자들 보면 가끔 혈관이 뭉개져서 올 때가 있습니다. 강력한 압박이나 충격으로 인해 다 터져나가거나 떡이 진 거죠. 동맥부터 정맥, 심지어는 모세혈관들까지...”
“......”
“처음에는 그걸 어떻게 다 살리나 아뜩했는데... 이제는 루틴을 세웠습니다.”
‘루틴?’
“일단 가장 만만하거나 중요한 혈관 한 놈부터 구하는 거죠. 인체라는 건 신비해서 혈관 하나를 살려놓으면 거기서부터 길이 생깁니다. 한의학적으로 생각하면 기의 통로가 되겠군요.”
“......!”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손석구와 시선이 마주쳤다.
<고민보다 첫돌을 놔라.>
과연 명언이었다.
“김 샘, 침 좀 준비해줘요. 바로 시침할 겁니다.”
힌트를 얻은 윤도가 승주에게 소리쳤다.
담도암과 붕어회-3
담도암과 붕어회-3
침...
성수혁의 카메라가 침을 겨누었다. 윤도 앞에 놓인 침은 두 가지였다. 장침과 나노 침. 스타트는 장침이 먼저 끊었다. 갈비뼈 밑의 기문혈이 첫 목표였다. 두 번째는 발의 태충혈을 잡았다. 둘 혈자리는 간기능의 활성화를 위한 조치였다.
다음으로 중완혈의 왼쪽에서 양문혈자리를 찾았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2촌이나 쳐진 혈자리였다. 암을 치료하려는 것이니 체크를 했다.
기본조치를 끝내고 나노 침으로 갈아탔다. 목표는 담도 중에서도 가장 극성을 떨치는 담관 줄기였다. 처음부터 전면전을 선택한 것이다. 나노 침이 안으로 들어갔다. 침끝은 세포와 세포 사이를 헤치며 들어갔다. 침이 가면 세포와 혈관이 비켰다.
첫 나노 침은 간내 담도의 출발 부위에 닿았다. 두 번째 침은 십이지장에 닿는 말단에 닿았다. 시작과 끝 부분을 정리한 윤도, 비로소 치료침을 넣었다. 약침이었다.
세심하게 들어간 나노 침이 암세포 표면에서 멈췄다.
티큭!
지금까지와는 달리 사나운 느낌이 전해왔다. 가는 담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암세포들. 마치 바다 양식장에서 건져 올린 밧줄에 붙은 홍합과도 같았다. 표면에서 몇 번 간을 보다가 그대로 침을 밀었다.
사삿!
아련한 느낌과 함께 침이 암세포를 관통했다. 침을 꽂은 채 침감을 감지했다.
묵묵무답.
반응은 깊고 아련하다. 무반응이거나 녹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였다.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욕구남풍 선개북유야(欲求南風, 先開北牖也).>
불오약실방함구결(勿誤藥室方函口訣)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남풍이 불기를 원하면 먼저 북쪽 창문을 열어야한다.
간...
목(木)이다.
상생은 신장이다.
신장은 수(水)다.
상극은 심장이다.
심장은 화(火)다.
물을 나무를 키우고, 불은 나무를 태운다.
담은 간에 속한다. 간이 바다라면 담은 작은 강줄기로 비유할 수 있다. 이 병든 강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을까? 악성 암세포들이 들어차 수로를 막아선 강을...
자극...
자극이 필요했다. 바다를 흔드는 것이다. 흔들어 수로의 장애물을 밀어내는 것이다.
바다를 흔드는 법에도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물이다. 물을 더해 출렁이게 한다. 또 하나는 불이었다. 바다 속에서 화산이라도 터진다면 그 또한 바다를 흔들 수 있었다. 윤도는 불덩이라는 길을 택했다. 말하자면 이독제독(以毒制毒)이었다.
장침이 나왔다. 수소음심경의 극혈에 들어갔다. 불꽃 크기를 키웠다. 심경을 자극해 심장의 기혈을 최대한으로 높인 것이다. 불길이 커졌다. 침 끝을 한없이 조이다가 역으로 감았다.
펑!
심장의 기가 터져나갔다. 화산이 터진 것이다.
한 번.
두 번.
간이 반응하지 않았다. 이제는 신도혈까지 막았다. 간의 열은 신도혈로 나오는 법. 그 길을 막아 동작그만을 선언한 것이다.
펑!
다시 화산을 터트렸다. 그제야 간의 기혈이 잠에서 깨었다.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그 방향을 담을 향해 조준했다. 마침내 꽂힌 나노 침끝에 침감이 왔다.
암세포에 두 번째 나노 침이 들어갔다. 약침 성분은 조금 더 강화되었다.
두 개의 나노 침.
적진 난입에 성공한 윤도가 첫 번째 나노 침을 잡았다. 침을 돌려 화침을 만들었다. 암세포는 열에 취약하다는 명제. 그걸 아낄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나노 침도 화침을 만들었다. 손 끝에 전해오는 막막한 느낌이 조금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암세포가 녹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도의 시선이 나노 침통으로 옮겨갔다. 선발대로 감을 잡았으니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무차별 공략에 돌입하는 윤도였다.
자침, 자침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로운 약침을 넣던 윤도의 손이 멈췄다.
“......!”
침끝이 시원해졌다. 서둘러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말단의 침을 체크했다.
‘빙고.’
윤도가 주먹을 불끈쥐었다. 막힌 담관에 길이 났다. 가늘고 가늘지만 길은 길이었다. 그것은 곧 윤도의 나노 침빨이 먹히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첫 걸음.
언제나 그게 중요했다. 성공의 맛을 보면 그 감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윤도의 나노 침들은 꼬리를 물고 출격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담관에 길을 내고 세 번째 담관의 숨통을 텄다.
기세.
윤도는 그 단어의 참맛을 보았다. 가늘게 뚫린 담관들은, 처음에는 별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가는 관들이 하나, 둘, 셋, 넷으로 이어지니 그 또한 하나의 기세가 되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던가? 결국 담관의 내경은 차츰 커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쓸개즙이 흐르기 시작했다.
윤도는 탄력을 받았다. 수백을 헤아리는 나노 침들이 앞으로 나란히를 이루며 담관의 암세포 무리를 적중 시켰다. 윤도는 보았다. 석재우의 눈썹...
삐딱하게 기울었던 눈썹이 서서히 바로 서는 걸. 얼굴의 황달이 흐려지고 푸른빛 안면에 혈색이 섞이는 걸.
거기서 나노 침을 멈추고 신장의 기혈에 장침을 넣었다.
나무가 무성해지면 물이 부족하리니.
간은 목(木)이오 신장은 수(水)이니, 그에 따른 당연한 조치였다.
“후우!”
첫 판을 끝낸 윤도의 한숨이었다.
“괜찮죠?”
윤도가 처음으로 환자에게 물었다. 여유가 생겼다는 반증이었다.
“속도 편하고 배도 안 아프고... 눈도 맑아지는 느낌인데요?”
석재우가 웃었다.
“담에 병이 들면 눈도 어두워지고 침침해지거든요. 그대로 편안히 계세요.”
“네.”
석재우의 대답을 들으며 복도로 나왔다. 손석구가 기다리는 상담실로 가는 길에 장명화가 보였다. 그녀는 십자가를 들고 기도 중이었다.
“이야.”
약제실을 보여주자 손석구가 입을 벌렸다. 그가 상상하던 한의원이 아니었다. 더구나 얼마 전에 들여온 새 장비까지 세팅된 상태였다.
“이건 뭐... 그냥 첨단 실험실 아닙니까?”
“첨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침제조와 약제관리에 애로 없는 정도는 됩니다.”
“그런 수준이 아닌데요? 우리 병원 검사실도 이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실은 지금 치매치료제를 찾고 있거든요. 장비는 더 보강될 예정입니다.”
“치매치료제요?”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
“하긴 아토피와 비염약도 개발했다고 했죠?”
“그건 무대뽀로 덤비다 보니 운이 좋아서...”
“그럴 리가요? 치매약이라니 기대가 큽니다. 나도 요즘 깜빡깜빡하는데 약 나오면 제일 먼저 예약입니다. 치매 걸리면 보통 문제가 아니죠.”
“하핫, 접수해 놓겠습니다. 1번 예약자 손석구 선생님. 이거 광고에 써먹어도 될까요?”
“뭐 선생님이라면 허락해드려야죠.”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진짜... 와보길 잘했네요. 여기 보니까 우리 의사들도 공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 만나면서부터 그랬지만 한의사 깜보는 친구들 있으면 내가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별 말씀을...”
“침은 계속 놔야하죠?”
“예... 하지만 선생님하고 잠깐씩 얘기할 시간은 됩니다.”
“저도 그렇게라도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호출이네요. 지방에서 교통사고 난 환자가 닥터 헬기로 오고 있답니다. 초중증이라니 가봐야겠어요.”
“어, 그러면 죄송해서...”
“아닙니다. 이것도 다 의사의 복 아니겠습니까? 아픈 사람 고칠 수 있는 기회... 선생님도 그렇지만요.”
“아쉽네요.”
“그럼 치료 잘 하시고...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손석구가 차에 올랐다. 아쉽지만 별 수 없었다. 의사에게는 언제나 환자가 먼저였다.
저녁 7시.
승주만 남기고 간호사들을 퇴근 시켰다. 내일도 정상진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밥은 굶지 않았다. 치료 막간을 이용해 석재우 모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석재우는 잣죽을 한 그릇 다 비워냈다.
“세상에, 최근 들어 저렇게 먹은 적이 없어요.”
장명화가 반색을 했다.
“밥 맛이 좋아요.”
석재우가 환하게 웃었다. 이제 그의 얼굴에서 황달과 푸른 기색은 흔적뿐이었다.
두 번의 침을 더 하면서 밤을 넘어갔다.
신새벽, 윤도가 마지막 침을 뽑았다. 깊은 밤을 치료로 건너왔지만 석재우의 혈색은 점점 더 좋아져갔다. 발침을 마치고 진맥을 했다. 간장 사이에서 불뚝거리던 사기(邪氣)는 흔적만 남았다. 결국 담도암의 기세를 잡은 윤도였다.
퇴근 무렵, 윤도는 원장실에서 장명화를 만났다. 석재우에게 네 번 째 시침을 마친 후였다.
“이제 침은 당분간 그만 맞아도 될 것 같습니다.”
윤도가 말했다.
“다 나은 건가요?”
“완치까지는 아니지만 암의 기세는 잡았습니다. 탕제로 다스리면서 한 달 후에 한두 번 더 맞으면 될 거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장명화가 활짝 웃었다. 가히 백만불짜리 미소였다.
“치료비 정산해야죠?”
장명화가 가방을 열었다.
“치료비는 접수대에서...”
“거기서 알아봤는데 너무 턱도 없어서요.”
“너무 많아요?”
“아뇨. 제 말은 우리 아들 목숨 살린 값으로는 턱도 없다는 뜻이에요.”
장명화가 손사래를 쳤다.
“그럼 얼마를 내시려고요?”
윤도가 웃으며 물었다.
“첫날 말씀드렸잖아요? 아들 살려주시면 돈은 따지지 않겠다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지가 꿈에서 그러시네요. 처음 마음 먹은 대로 치루지 않으면 재우가 다시 발병할 거라고. 그러니 제발 제 사정 좀 봐주세요.”
“장 여사님...”
“당장 통장에 있는 잔액은 2억 뿐이더라고요. 매물로 내놓은 땅이 팔리면 문제없는데, 토지등기권리증을 맡아가지고 계실래요?”
“안 됩니다. 제가 무슨 고리대금업자도 아니고...”
윤도가 손사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