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아기가 나올 거 같아요.”
“......?”
“아기... 악!”
임산부가 배를 움켜쥐며 자지러졌다.
“산달 아니잖아요? 진정하세요.”
승무원이 임산부를 달랬다. 그녀는 임신 말기. 탑승 전에 진단서도 제출했었다. 여자는 임신 34주. 진단서에 기재된 분만예정일은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아기... 아기...”
임산부는 배를 잡고 악을 썼다. 아기는 꼭 예정일대로 나오지 않는다. 난기류에 휘말리면서 받은 충격으로 태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저기요, 혹시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 계세요?”
승무원이 승객을 향해 외쳤다.
“제가 간호사에요.”
다행히 중국 여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임산부가 출산할 것 같다고 해요. 좀 도와주세요.”
승무원이 소리쳤다. 간호사가 자리에서 나와 앞 쪽으로 뛰어왔다.
“출산 맞아요. 산모를 편한 곳으로 옮겨주세요.”
간호사가 산모를 부축했다.
“승객 중에 의사가 있으면...”
안내 방송이 숨 가삐 나왔다. 그걸 듣고서야 윤도가 일어섰다. 그때까지는 소란을 모르고 있었다. 비행기가 컸고 1등석인 까닭이었다. 게다가 난기류로 어수선한 기내였으니 그런 소란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의사입니다.”
윤도 말을 들은 승무원이 길을 내주었다. 그 사이에도 임산부는 계속 비명을 내질렀다.
“아으...”
“아기가 곧 나올 거 같아요. 담요하고 수건, 따뜻한 물하고 끓는 물에 담근 가위 좀 준비해 주세요.”
“나옵니까?”
분투하는 간호사에게 윤도가 중국어로 물었다.
“닥터세요?”
“한의사입니다.”
“머리가 보이는데 산모가 너무 놀랐어요. 힘을 주지 못하고 있어요.”
“잠깐만요.”
윤도가 바로 장침을 꺼내들었다. 침은 중극혈, 차료혈, 합곡혈과 삼음교혈로 들어갔다. 통증을 감소하고 분만을 촉진하는 혈자리였다.
“아...”
순간 산모가 힘을 내며 이를 물었다.
“어, 저 사람 채윤도예요.”
장침이 나오자 한국 승객 일부가 윤도를 알아보았다.
“으아, 그 명침명의 채윤도?”
승객들의 목소리에서 안도가 묻어나왔다.
“아기가 나와요.”
집중하던 간호사가 소리쳤다.
“조금 더요, 조금 더.”
보조하던 승무원들도 기운을 보탰다. 이윽고 아기의 머리가 나왔다. 어깨도 가뿐히 빠졌다.
“아기가 나왔어요. 공주님이에요.”
승무원이 반 박자 빠르게 소리쳤다.
“와아!”
승객들이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하지만 간호사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있었다. 아이가 태반을 물고 나왔다. 더구나 태변까지 먹은 것 같았다.
“어쩌죠? 태변을 먹은 거 같아요.”
간호사가 파랗게 질렸다. 아기는 울지도 않았다.
태변 흡입.
위험하다. 가능한 한 빠른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비행기 안이었다. 베이징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 시간 가까이 남았다.
“어떡하죠?”
간호사가 아기 볼을 자극해보지만 해결이 될 리 없었다.
“어떡해, 우리 진징 어떡해요?”
산모가 발을 굴렀다. 출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럼에도 태변을 먹고 나온 아기. 비행기의 요동으로 충격을 받은 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대로 두면 폐렴이나 뇌합병증 등이 우려될 수 있었다.
“아기를 눕히세요.”
윤도가 다시 장침을 뽑았다.
“왜요?”
놀란 산모가 물었다.
“태변 빼야죠.”
“침으로요?”
“서두르지 않으면 합병증이 올 수 있어요. 어서 눕히세요.”
윤도가 다그쳤다. 합병증이라는 말에 놀란 산모가 마지못해 아기를 눕혔다.
아기...
그것도 갓 세상에 나온 연약한 아기...
그러나 이미 태중 태아의 혈자리도 찔러보았던 윤도였다. 신중하게 혈자리를 잡은 윤도의 장침이 중완혈로 들어갔다. 자침 방향은 상향이었다. 침향을 위로 향하게 해 토하게 할 작정이었다.
하필 그때 또 비행기가 출렁거렸다.
“악!”
간호사와 산모가 흔들렸지만 윤도는 아기를 잡은 채 버텼다.
“승객여러분, 자리에 앉으세요. 안전벨트를 매주세요.”
다시 안내방송이 반복되었다. 비행기는 몇 번 더 춤을 추고서야 겨우 평형을 잡았다. 그 틈을 탄 윤도, 재빨리 침향을 아기의 상체로 밀어올렸다.
“우아앙!”
그순간 아기 울음이 터졌다. 목을 넘어갔던 태변도 죄다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태변이 나와요.”
승무원이 소리쳤다. 중심을 잡은 간호사가 태변을 닦기 시작했다. 아기는 안에 남은 찌꺼기까지 다 밀어낸 후에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진징... 괜찮아. 이제 괜찮아.”
아기를 안은 산모가 몸서리를 치며 울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아기의 진맥을 본 윤도가 가만히 웃었다. 불안하던 아기의 맥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태변까지 처리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산모가 눈물을 그렁거렸다. 윤도가 일어나 1등석을 향해 걸었다.
짝짝짝!
등 뒤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그제야 베이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신의神醫 강림-1
신의神醫 강림-1
띠뽀띠뽀!
앰뷸런스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안에 탄 건 윤도와 바이징팅, 그리고 그의 수행비서였다. 베이징의 교통지옥도 만만치 않다. 그렇기에 아예 앰뷸런스를 대기시킨 바이징팅이었다.
바이징팅의 표정은 몹시 비장해 보였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회색의 베이징. 산업화는 필연 공해를 동반한다. 공해는 각종 질병을 야기한다. 공해가 아니더라도 인구증가에 따른 가금류 등의 가축의 증가... 독감에게는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커튼 밖으로 슬쩍 내다본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아이들도 그랬다.
윤도가 독감용 마스크를 꺼냈다. 정나현이 챙겨준 것이다. 바이징팅에게도 하나 건네주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베이징의 독감. 보건당국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최소한 마스크 쓰기 운동이라도 벌여야했다.
창밖으로 베이징의 대형병원이 스쳐갔다. 한방양방협진병원도 보였다. 건물들의 위용은 자못 어마무시하다. 그러나 소용없다. 의술이 발달했다지만 정작 발전한 건 화려한 외양이다. 그렇기에 독감 하나 잡지 못해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띠-뽀.
앰뷸런스의 경적이 꺼지면서 차가 멈췄다. 목적지 도착이었다. 분주한 의료인력들이 보였다.
앰뷸런스에서 내려 안으로 향했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접수창구에는 기침소리 높았고 어린 아이를 안거나 업은 보호자들은 울먹인다. 한 쪽에서는 응급환자가 밀려들고 또 한 쪽에서는 의료진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전쟁이다.
상황은 분명 숨 막히지만 적군이 보이지 않는다. 비말과 공기를 타고 소리 없는 저격 화살침만 난무할 뿐이다. 누구든 침 몇 방울의 화살을 맞으면 감염되는 것이다.
윤도가 막 엘리베이터를 타려할 때였다. 느닷없이 나타난 보호자 하나가 윤도 멱살을 거머쥐었다.
“우리, 아이... 우리 아이 어떻게 되는 거야?”
“......”
윤도가 움츠리자 보호자는 야수처럼 울부짖었다.
“너희들, 대체 뭐하는 거냐고? 우리 아이 죽이는 거야 살리는 거야?”
“이봐요.”
옆에 있던 바이징팅이 말리고 나섰다.
“이 분은 우리를 도우려고 한국에서 날아오신 의사입니다. 이게 무슨 행패예요?”
“한국?”
“이 손 놓고 물러나세요. 당신 아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 분이 살릴 겁니다.”
바이징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행비서와 경비원들이 달려들어 보호자를 떼어냈다.
“우허어엉.”
보호자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워낙 상황이 이렇다보니...”
바이징팅이 위로를 건네 왔다.
“괜찮습니다.”
옷깃을 추스르며 웃었다. 아이가 죽어간다면 부모는 눈이 뒤집힐 수 밖에 없다. 진심으로 이해하는 윤도였다.
“채 선생님.”
종합대책실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첸슈에센이 보였다. 그도 치료 지원을 나온 모양이었다. 노련한 마롱도 거기 흰 가운으로 우뚝 서 있었다.
“채윤도 선생!”
그리고 또 한 사람... 명의순례에서 만났던 왕민얼까지 등장했다.
“여긴 어떻게?”
왕민얼이 다가와 물었다.
“예... 작으나 도움이 될까해서...”
윤도가 답하는 사이에 국가어린이병원 원장과 베이징 시장, 중앙당 상무위원 등이 다가왔다.
“말씀드린 한국의 명의입니다.”
바이징팅이 윤도를 소개했다.
“한국 명의가 이 사람?”
네 거물들의 미간이 격하게 구겨졌다. 중국 최고 기업가의 한 사람인 바이징팅. 이번 재앙에 기여하겠다며 한국 명의 초빙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선 윤도는 새파랗게 젊었다.
“나이는 약관이지만 최고의 의술을 지닌 분입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바이징팅이 쐐기를 박았다.
“하지만...”
원장의 미간이 뒤틀릴 때 지원군이 가세했다.
“저도 보증합니다.”
마롱이었다. 뒤를 이어 첸슈에센과 왕민얼도 인증 대열이 끼었다. 중국 명의 10걸 안에 꼽히는 마롱이다. ‘병원’에서는 그의 인정이 바이징팅보다 위였다.
“아는 분입니까?”
원장이 마롱에게 물었다.
“알다마다요. 제가 아는 지상 최강의 명의십니다.”
마롱이 쐐기를 박았다.
“마 선생님이 인정한다면야...”
“베이징의 축복으로 아십시오. 이제 이 병원의 중환자들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 그렇게나?”
긴가민가하던 원장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의술 평가에 한없이 인색한 대륙 명의. 그가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뭐하십니까? 아이들 구하러 달려오신 분을 이렇게 시간 낭비하게 하실 겁니까?”
마롱이 원장을 다그쳤다.
“진 부장, 진 부장 어디 있나?”
그제야 원장이 진료부장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가서 WHO 역학조사 책임관을 모셔오시게.”
‘WHO 역학 조사관?’
윤도 눈빛이 흔들렸다. WHO 역학조사관까지 나와 있을 줄은 몰랐던 윤도였다. 조사관은 둘이었다. 그 중 하나가 독일인이었다. 그들 역시 고개를 갸웃하지만 상황이 긴박한 만큼 환영의사를 밝혔다.
저벅저벅!
비장한 걸음 사이로 온갖 신음이 따라왔다. 병실은 대만원이었다. 그나마 저층은 경미한 증상의 환자들이었다. 윤도의 걸음이 6층 격리실 앞에 멈췄다.
격리실.
그 첫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
병실 하나하나를 돌아본 윤도의 어깨가 미친 듯이 떨렸다. 한 마디로 처절했다. 중증의 환자들은 열과 콧물, 기침의 기본 단계를 넘어 폐렴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서 회복하지 못하면 바로 요단강을 건너갈 일이다. 환자들마다 의료진이 달라붙어 최선을 다하지만 중증환자들에게는 단지 흰 가운이 옆에 있다는 위안이 될 뿐이었다.
“채 선생님.”
복도에서 기다리던 바이징팅이 윤도를 불렀다.
“예.”
“미안합니다. 이렇게 큰 짐을 지우게 해서...”
“......”
“상황이 어제보다도 더 심각해지다보니 강요는 못 하겠습니다. 자칫하면 선생님이 감염될 수도 있으니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셔도...”
“바이 사장님.”
윤도가 반듯한 시선으로 바이징팅을 바라보았다.
“예?”
“사장님을 치료하는 경우에도 위험하기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
“제가 명색이 한의사입니다. 한의사가 왜 존재하는 지 아십니까?”
“선생님...”
“한의사나 의사나 다 이런데 기여하라고 존재하는 겁니다. 한의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여기서 도망치면 면허 내놔야죠.”
“......”
“누가 저를 도와주실 겁니까?”
윤도가 원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강철과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