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환자는...”
간호사가 주의를 환기 시켰다. “열어드리세요.”
윤도 뒤의 왕민얼이 지원을 했다. 그제야 간호사가 문을 열었다. 마지못한 손놀림이었다.
딸깍!
문소리와 함께 병실 풍경이 나왔다. 양이닝은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진맥을 잡았던 윤도. 어린 그녀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죄송하지만 이 아이는 뇌에도...”
간호사가 한 번 더 부연을 했다. 한바탕 소란을 지켜본 리빙빙 간호사. 윤도의 신념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는 가능성이 없는 쪽이었다.
“간호사 선생님, 채 선생님은 중국어 잘 합니다. 특히 문자 해독은 선생님 이상일 지도 몰라요.”
왕민얼이 다시 부연했다. 그제야 간호사의 입이 닫혔다.
윤도가 재차 진맥을 잡았다. 마스크를 했지만 손은 맨손이었다. 아이를 돌려 등을 보았다. 독맥혈이 울퉁불퉁 돌출해 있었다. 병변이 뇌로 올라간다는 신호였다.
‘젠장!’
생각보다 속도가 빨랐다. 폐렴보다 뇌로 가는 사기(邪氣)의 기세부터 잡아야했다. 서둘러 독맥의 끝 장강혈에 장침을 넣었다. 명문을 지나 머리 위 백회와 전정혈에도 장침을 넣었다. 마무리는 윗니 잇몸의 은교혈이었다. 원래는 독맥의 모든 혈자리에 침을 넣으려던 윤도. 아이의 체력이 바닥이기에 백회혈에서 스물 여덟 혈자리 조절에 들어갔다.
사기...
독맥 전체를 장악한 사기.
이걸 빼주지 못하면 마침내 아이의 뇌는 바이러스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한 번 해보자고.’
기꺼이 백병전을 받아들였다. 백회혈에서의 사투는 치열했다. 느닷없는 신침 난입에 당황한 사기가 불뚝거리며 요동을 쳤다. 머리를 잡으면 가슴이, 가슴을 잡으면 가슴 아래에서 발악을 하는 것이다. 거기서 약침을 뽑았다. 침은 독맥의 한가운데 신주혈로 들어갔다. 타미플루의 원료가 되는 Shikimic acid와 국산 한약재 진액을 칵테일한 처방이었다.
화악!
신주로 들어간 약침은 뜨끈한 화침으로 변했다.
신주혈...
어린이 침뜸하면 신주와 명문혈이다. 이 둘을 합쳐 ‘명주혈’이라고도 부른다. 특히 가슴 위의 병이라면 닥치고 신주혈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걸 보는 왕민얼은 다시 한 번 얼어붙고 있었다. 신주혈의 위력. 그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신주혈의 혈자리는 대충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의 두 팔을 뒤로 당기고 머리까지 젖혀야만 가능한 어깨뼈 사이의 혈자리. 그 혈을 누워 떡먹기로 잡아내는 윤도였다.
‘채윤도...’
왕민얼은 남몰래 혀를 내둘렀다. 윤도와 처음 만난 건 명의순례였다. 거기서 상견례를 한 채윤도는 평범한 한의사에 불과했다. 혈자리에 대한 지식은 해박했지만 그거야 앵무새 재잘거림에 불과한 일. 여러 실습에서 확인한 윤도의 침술은 왕민얼의 아래였다.
그런데...
지난번 한국의 세미나에서도 그랬지만 지금은... 아예 왕민얼이 존경하는 장지커보다도 위였다. 더구나 지금은 실전이 아닌가?
그 순간 윤도는 아이의 침을 뽑기 시작했다. 독맥의 붓기를 잡은 것이다. 불거진 정맥줄기처럼 튀어나왔던 독맥이 스러지고 있었다.
‘곁가지는 쳤고...’
윤도는 쉬지 않았다. 독맥의 사기를 잡았다지만 진료의 일부에 불과했다. 아이의 독감 바이러스 본진은 폐와 상기도. 이걸 해치우지 못하면 독맥의 치료는 의미가 없을 일이었다.
‘열...’
분투하는 사이에 아이의 열이 올랐다. 간호사가 체크한 체온은 무려 40.2℃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특히나 폐장 쪽이 심했다.
“열이 너무 심해요.”
간호사가 울상을 지었다. 해열제는 투여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제어되지 않는 열이었다. 윤도의 손이 폐수혈을 짚었다. 피침을 꺼내더니 그 옆을 살짝 베었다. 피가 조금 배어나왔다.
“한 번 더 체크하세요.”
윤도가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
체온을 잰 간호사가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뭐가 잘못된 줄 알고 한 번 더 체온을 측정했다.
“38.1℃...”
대답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믿기지 않게도 체온이 뚝 떨어진 것이다.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었다. 그건 침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윤도는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는 말에 따랐을 뿐이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때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치료하라는 의미였다. 병원에 해열제가 있지만 그걸 더 투약하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었다.
‘격수-간수-비수-신수-활육문... 그리고 폐...’
혈자리에서 읽은 독감 바이러스의 침투 코스를 복기했다. 병이란 원인부터 알아야한다. 이 질병이 어디로 들어왔는 지를 안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윤도는 그렇게 믿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독감 바이러스가 성성한 폐에서 역순으로 병을 밀어내야했다.
사삿!
다시 약침이 꽂히기 시작했다. 처음 들어가는 폐수혈에는 산해경의 영약 주별의 약침을 찔렀다. 나머지 격수까지는 한약 약침이었다. 폐수에서 격수까지의 침감은 내림차순으로 강약을 계산했다.
“이 아이 이름이 뭐라고요?”
폐수혈자리의 장침을 잡은 윤도가 간호사에게 물었다.
“양이닝...”
“헤이, 양이닝. 닌 하오?”
윤도가 환자를 불렀다. 환자는 눈만 꿈뻑일 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한국에서 온 채윤도야. 많이 아프지?”
“......”
“몸이 나으면 뭐 하고 싶어?”
“......”
“그거 생각하고 있어. 침이 끝나면 내가 물어볼 거거든.”
“네...”
아이가 대답했다. 모기소리였지만 분명 대답이었다. 아이 이마를 쓸어준 윤도, 드디어 폐수혈의 침 끝을 감기 시작했다. 침은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았다. 미세하지만, 폐장 안에서 우르르 천둥을 쳤다. 그렇게 형성된 침감을 심장, 기문혈, 대거혈 너머의 천추혈에 밀어보냈다.
<주별>
전염병이나 유행병을 막아주는 영약.
거기에 보태지는 윤도의 신침명침.
그 시너지가 사기를 압박해나갔다. 기세가 천추혈을 넘어 활육문에 다다랐다. 조금 더 분투하자 신수혈과 비수혈까지 미쳤다. 남은 건 간수혈과 격수혈이었다. 중병은 본래 격수와 간수혈 사이에 숨는다. 그들의 최후의 아지트다. 조금 더 심한 악질은 고황혈로 간다.
그런데...
“선생님!”
바이탈 사인을 보던 간호사가 거기서 비명을 질렀다.
“......!”
왕민얼도 파랗게 질려버렸다.
양이닝.
바이탈 사인이 멈춰있었다.
“어떡하죠?”
간호사가 울상을 지었다. 응급조치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이다. 윤도는 재빨리 맥을 확인했다.
“......!”
희미한 결대맥이 잡혔다. 가늘게 뛰다가 고요히 쉬는 맥. 너무 약해 윤도의 손에나 잡힐 법한 맥이었다. 이 맥은 심장병이 있거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잡힌다. 양이닝이라면 후자 쪽이었다. 바이러스의 발악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진맥 잡는 손이 발목으로 내려갔다. 태계혈과 충양혈을 짚었다. 아직 맥이 남았다. 아직은, 이승과 닿은 끈을 완전히 놓은 게 아니었다.
신주혈!
거기 장침을 넣었다. 역시 신장이었다. 삶의 근본은 신장에 달려있다. 당연히 신장의 정기를 먼저 살려야했지만 위중한 탓에 병소의 본진부터 쳤던 윤도. 어린 환자가 그걸 버티지 못한 것이다. 조금... 아주 조금만 버텨주면 되었을 것을.
신주혈 다음으로 격수와 간수혈을 잡았다. 주저할 것도 없이 주별의 약침을 넣었다. 두 혈자리에서 조금 비낀 좌우의 혈이었다. 이 독감 바이러스의 최후의 보루였다.
신주혈에 사력을 다했다. 뜨끈한 화침이 시들어가는 신장에 정기의 물을 뿌렸다. 신장에 남은 건 고작 한둘의 정기 뿌리. 이걸 살리지 못하면 태계혈의 맥이 성둥 끊어질 판이었다.
“양이닝!”
윤도가 소리쳤다.
“조금만 버텨. 다 나아서 가고 싶은 데 가야지!”
중국어로 외치는 윤도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힘든 거 알아. 하지만 나으려면 지금 힘을 내야해. 지금이 아니면 힘을 내도 소용이 없어!”
“채 선생...”
지켜보던 왕민얼이 차마 고개를 돌렸다. 자책이었다. 못 견딜 자책... 왕민얼은 한 번도 이렇게 간절한 적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했다지만 윤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채윤도.
그가 왜 이토록 높은 침술의 성취를 이루었는지... 왕민얼처럼 자신의 의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닫힌 의술이 아니었다. 윤도의 의술에는 품격이 있었다. 휴머니즘과 간절함이 있었다. 왕민얼은 그래서 떨었다.
대한민국 한의학(韓醫學).
중의들은 한의학을 발 아래로 보았다. 왕민얼의 마음 속에도 그런 기류는 도도했다. 하지만 이 단 하나의 사례로 무너졌다. 환자를 살리고 못 살리고의 결과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롯이 환자를 겨누는 의자(醫者)의 의술. 그것만으로 윤도는 편작, 화타와 함께 회자될 자격이 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윤도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침끝. 그러나 그 미세함 속에 가해지는 치열한 염원과 비원... 그 의술의 폭풍을 왕민얼은 알 것 같았다.
“신의(神醫) 강림...”
왕민얼이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간호사 리빙빙도 들었다. 공감한다는 듯,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앞에서 시침하는 윤도는 신의의 현신이었다.
지성이면 감천.
마침내 신주혈에서 반응이 왔다. 죽은 혈이 아니라 살아서 펄떡거리는 혈자리의 반응이었다.
“바이탈 사인이 돌아와요!”
간호사가 소리쳤다. 그 말을 놓칠세라 윤도가 침끝을 밀어넣었다.
동작 그만!
독감 바이러스를 향한 결정타였다.
삐이삐이!
바이탈 사인이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혈압, 맥박, 호흡, 체온... 정상치는 아니지만 최악은 벗어났다. 윤도는 쉴 새 없이 마무리 치료를 계속했다. 폐수혈에서 찌꺼기 사기를 밀어내는 작업이었다. 환자가 한 번 까무룩 넘어갔기에 더 서둘러야했다. 다행히 간수와 격수 근처까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러스 또한 버티기에 들어갔다. 윤도가 약침을 하나 더 꽂았다. 또 하나를 더했다. 폐수혈에 세 개의 장침이 들어가자 추진력에 날개가 돋쳤다.
‘날아라!’
윤도는 세 개의 손가락으로, 세 개의 장침을 동시에 감았다.
후웅후웅!
숭고한 침감이 쾌속으로 밀려나갔다. 격수와 간수혈의 바이러스는 몰아치는 신성을 버티지 못했다.
‘해냈다.’
윤도 심장에 불이 들어왔다. 침감이 헐거워졌다. 격수와 간수혈이 맑아지고 있었다. 기어이 독감의 병세를 격파한 윤도였다.
“바이탈사인이 정상치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간호사가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도 어느새, 윤도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깃들어 있었다.
‘후우.’
윤도 입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몸은 땀으로 다 젖은 후였다.
“채 선생님.”
왕민얼이 멸균 거즈를 건넸다.
“간호사 선생님.”
윤도는 거즈보다 간호사를 불렀다.
“네!”
목소리에 경외감마저 깃든 간호사, 부동자세로 윤도에게 예를 갖추었다. 말로만 듣던 신의(神醫). 그걸 확인했으니 넋이 반은 나가 있었다.
“그 아이 보호자 있지요?”
“네.”
“위기를 넘겼다고 전해주세요.”
“네, 선생님!”
간호사는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하고 문으로 뛰었다.
“그런데 선생님.”
그녀가 문 앞에서 윤도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세요?”
“원장님과... WHO 관계자들에게 알려도 될까요?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거든요?”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병원 의료진들도 부르세요. 뒷일은 그 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네, 선생님!”
간호사는 한 번 더 허리를 조아리고 복도로 뛰었다.
“고맙습니다.”
그제야 왕민얼에게 인사를 하고 거즈를 받았다. 순간 환자의 손이 윤도 손을 잡았다.
“양이닝.”
윤도가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 얼굴 역시 땀투성이였다. 받은 거즈로 아이 이마부터 닦아주었다.
“선생님...”
아이 목에서 가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잘 했어. 잘 참아주었어.”
윤도가 아이를 달랬다.
“선생님... 몸이 나으면 뭐 하고싶냐고 물었죠?”
“응... 이제 생각났어?”
“다 나으면 선생님 얼굴을 그리고 싶어요.”
“내 얼굴?”
“저 그림 잘 그리거든요. 고마워요. 다른 선생님들은 다 제가 틀린 거 같다고 수군거리고 나갔었는데...”
아이의 말이 울컥 윤도의 목젖을 후려쳤다.
“아니, 내가 고맙지. 잘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
윤도가 아이 손을 잡았다.
목이 메인 왕민얼은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꺽꺽 북받친 소리만 토해낼 뿐이었다.
신의神醫 강림-3
신의神醫 강림-3
“Oh my God.”
윤도의 쾌거에 중국 당국자들과 WHO 역학조사관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티안 아!”
병원관계자들의 벌어진 입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특히 원장과 병원실무진, 각 성에서 자원해 온 명의들이 그랬다. 그들이 의견일치로 포기한 양이닝이었다. 오늘 밤 넘기가 힘들다고 보았던 양이닝. 그래서 예상 사망자 숫자의 첫 머리에 올랐던 아이. 그녀의 얼굴은 그 진단을 무색케하고도 남았다.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폐렴이 사라졌다.’
직접 청진기를 들이댄 원장이 휘청거렸다. 동시에 서른 셋 척추 마디에 얼음이 맺힌 듯 서늘하다. 내놓으라하는 명의들과 함께 확진했던 치명적인 폐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뇌염증세까지도...’
넋이 단체로 흔들렸다. 중국의 중의 양의 연합군은 한 마디로 망연자실이었다.
“이닝!”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가 목이 매인 채 양이닝을 품었다. 국가적 재앙이 되어버린 독감. 그리하여 생짜 같은 딸을 격리실에 빼앗기고 죽음의 통보만 기다리던 그녀에게 일어난 기적이었다.
“엄마.”
양이닝 역시 어머니 품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