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허엉, 흐엉!”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이대로 보내는 줄만 알았던 딸을 되찾은 기쁨이었다.
“엄마, 있잖아...”양이닝은 그 어머니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알았지?”
“그래. 그래...”
딸의 요청을 받은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간 윤도는 세 번째 병실에 있었다. 문제의 그 간부 아들 차례였다. 치료하기로 한 이상 사심은 내려놓았다. 병세만으로 보면 이 아이도 생명을 위협 받는 상태였다.
“아까부터 의식이...”
간호사가 말했다. 윤도는 침착했다. 이 아이. 윤도가 최초 진맥을 할 때는 의식이 있었다. 그 후로 독감 증세가 더 심해졌다는 얘기였다.
이번에는 족삼리부터 노렸다. 아이가 침을 잘 받지 않는 체질이었다. 그렇잖아도 의식이 없는 판에 치명타가 될 수 있었다.
거기서 왕민얼이 두 번 놀랐다.
족삼리...
아이에게는 잘 놓지 않는 혈자리였다. 나아가 윤도는 장침의 명인. 그조차 사전 안전조치를 해야만 하는 아이의 혈자리가 궁금했다.
“......”
첫 침에서 궁금증이 풀렸다.
‘철혈...’
왕민얼은 현기증이 일었다. 철혈이라면 기혈(奇穴) 중에서도 기혈이었다.
족삼리 부근에 호침 두 개가 먼저 들어갔다. 그것으로 타겟 혈자리의 긴장을 푼 윤도, 진짜 족삼리혈을 향해 장침을 밀어넣었다. 주저하면 안 된다. 이것은 혈자리가 튕김을 내기 전에 먼저 찔러야하는 혈이었다.
‘후우.’
족사리혈에 대한 선공은 성공이었다.
다음 침은 신주와 명문혈이다. 윤도의 손은 여전히 신중했다.
“......!”
지척의 왕민얼은 압도감의 극치에 있었다. 마치 물결 같은 침술이었다. 바람처럼 들어가고 바람처럼 움직인다. 그렇기에 기혈이나 금혈을 만나도 흔들림이 없다. 신선이 침을 놓으면 저런 모습일까 싶었다.
득지어심(得之於心) 응지어수(應之於手).
마음으로 깨우치고 손이 거기에 응한다.
그가 아는 이상형의 침술 단어가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침술의 경지를 오늘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는 경혈부터 잡았다. 혈자리의 반응이 그랬다. 경혈은 본시 천식과 기침에 좋다. 추웠다 더웠다 하며 기를 해치는 한열에 애용된다. 경혈을 말하려면 오수혈을 먼저 언급해야 한다. 오수혈은 12경맥에 속해있는 다섯 혈자리로 다섯 가지 성질을 갖고 있다. 경맥의 기가 나오는 곳이 정혈, 기가 머무는 곳이 형혈, 기가 주입되는 곳이 수혈이고, 경혈은 기가 흐르는 곳이다. 그곳에 영약 주별의 약침을 넣었다.
다음으로 침이 들어간 혈자리는 좌우의 고황이었다.
아이의 고황은 부어 있었다. 본래는 4-5번 흉추의 극돌기 틈의 견갑골 내연에 위치한다. 경횡동맥과 늑간동맥이 가깝다. 견갑배신경과 흉신경도 가깝다.
“......!”
피하로 들어가던 장침이 멈췄다. 주변에 호침의 지원까지 세워놓았건만 철혈은 달랐다.
고황.
심폐 두 장기의 치명상을 반영하는 곳. 한의학의 정설로는 고황에 든 병은 치료가 어려운 것으로 본다. 철혈이 아니더라도 자침이 어렵다. 깊이 자침하면 안 된다. 윤도의 신침은 예외지만 신경써야할 부분이 너무 많은 고황이었다.
좌우에 호침 하나씩을 더 세웠다. 그제야 혈자리의 반발이 조금 줄었다. 왼손으로 살며시 주변을 어르며 장침을 넣었다. 이번에는 윤도표 한방 약침이었다.
“......!”
보사를 하려는 순간 침이 감겼다. 놀란 윤도가 재빨리 침끝을 들었다. 사기가 딸려 올라왔다. 그 기세에 지지않고 침을 밀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윤도와 병세의 기 싸움이었다. 독감은 불뚝거리고 윤도는 그에 맞섰다.
5분...
10분...
20분...
윤도는 숨도 쉬지 않은 채 침 끝에만 집중했다.
“선생님...”
지켜보던 리빙빙 간호사가 왕민얼을 톡 건드렸다. 윤도가 걱정되는 까닭이었다.
“쉬잇, 지금 한 판 승부입니다.”
왕민얼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 이것은 마치 현대의학의 중대 수술 장면과도 같았다. 도와줄 수도 없고 건드려서도 안 된다. 오직 윤도의 능력으로 대처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채 선생...’
왕민얼이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그 역시 한의학을 펼치는 한 사람으로서 간절한 마음을 보태주었다.
‘당신을 믿습니다.’
고황의 혈투.
윤도에게는 그랬다. 말하자면 병세의 운명을 판단하는 격전지였다. 여기서 지면 아이는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 파죽지세가 될 수 있었다.
대거혈을 첫 지원군으로 삼았다. 윤도표 약침이 들어갔다. 대거혈은 폐렴의 본산이라고도 불린다. 단순한 폐렴이라면 윤도의 장침 한 방으로 폐렴을 종식할 수도 있는 곳.
그런데...
거기 침을 넣으니 뜻밖에도 기죽마혈에서 반응이 왔다. 기죽마혈 역시 감기의 명혈. 감기와 독감이 다르다지만 기본은 역시 중요하다. 그걸 놓칠 리 없는 윤도가 기죽마혈에도 약침을 넣었다.
‘아!’
손 끝에 숭고함이 느껴졌다. 거기가 명혈이었다. 마치 제갈공명의 예지가 적중이라도 되는 듯 고황의 사기가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감았던 침을 풀며 약빨을 퍼트렸다.
연연천상월(娟娟天上月)
상견간하활(相見間何濶)
호재가인면(好在佳人面)
영아심대활(令我心大豁)
잠시 고개를 드니 한시 액자가 보였다.
곱디 고운 하늘 위 달이여
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었나.
내 마음을 활짝 펴게 하누나.
잘 있었구나, 미인 같은 네 얼굴.
뜻을 읊조리는 순간 아이 몸에 서광이 보였다. 달처럼 환한 기운. 고황으로부터 출발한 서광이었다. 발악하던 독감의 본진이 마침내 무너진 것이다.
경맥에 마무리 침을 넣었다. 낙맥과 경맥은 거의 같은 높이. 그러나 경맥의 침은 상승하고 낙맥의 침은 하강한다. 그렇기에 침감의 상승으로 폐와 상기도의 독감 잔존 세력을 쓸어버리는 윤도였다.
고황...
그 안에 한 발을 넣은 병마를 뚫은 윤도였다.
“후우!”
한숨과 함께 윤도가 출렁 흔들렸다. 겨우 몸을 가누다 왕민얼과 시선이 닿았다.
“......”
왕민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는 믿기지 않는 상황에 넋이 반은 나가 있었다. 그 장엄한 침묵 사이로 아이의 목소리가 밀려나왔다.
“엄...마...”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의식이 돌아오는 아이였다.
“아아악!”
소식을 들은 당 간부가 행복한 오열을 했다. 그는 당장 윤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어 했지만 윤도가 사양했다. 당 간부의 신분 같은 건 관심 없었다. 그저 한 아이를 살린 것만이 팩트였다.
이날 밤 윤도는 열 네 어린이를 모두 치료했다. 사경을 헤매던 아이들도 모두 구해냈다. 베이징은 신기록을 달성했다. 첫 사망자가 난 후로 날마다 몇 명씩 죽어나가던 아이들. 이날만은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사망자 : 0 >
처음으로 사망자 제로를 기록한 어린이 병원의 현황판. 그 화면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숫자 ‘0’은 베이징의 희망이 되었다. 희망의 불꽃은 어린이병원 의료인들 가슴에 노도처럼 번져나갔다.
윤도는 이제 정도가 다소 약한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11살 난 여자아이는 폐렴이 독특했다. 폐열로 인해 입이 마르고 텁텁했다. 침도 나오지 않았다.
척택혈에 장침을 넣어주었다. 척택은 폐 기운을 맑게 하여 기의 조화를 이루고 침 분비를 도와 입이 마르는 걸 돕는 명혈이다. 아이의 폐렴은 폐수와 격수혈, 어제혈의 3종 세트를 묶어 해결했다. 격수혈의 자침이 약간 난해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이 아이는...”
두 번째 아이의 침대 앞에서 리빙빙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그녀는 이제 윤도와 척척 손발이 맞았다. 10살 환자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였다.
“괜찮습니다.”
윤도가 간호사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사실, 괜찮은 게 아니었다. 기존에 실시된 침술에 문제가 있었다. 우선 아이의 체력이 너무 약했다. 침술에 자신이 없다면 침을 놓지 말았어야했다. 의서에도 음양형기가 부족한 아이들은 침을 놓지 않는 게 좋다고 나온다. 그럼에도 침을 깊이 넣었다. 위기상황에 당면하자 중의가 무리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이해했다. 제한된 인력에 끊임없이 몰려드는 독감 환자들. 치료현장에 수련의과 전공의, 전문의의 구분이 없었을 일이었다.
침은 아이의 심포를 건드렸다. 모세혈관이 터지면서 약간의 출혈이 계속된다. 나노 침을 뽑아 심포경락에 넣었다. 오장직자침이었다. 출혈되는 모세혈관의 분지를 눌렀다. 피는 더 나오지 않았다.
구미혈 때문이었다. 이 혈은 임맥의 낙혈이다. 검상돌기 아래에 있다. 노련하지 않은 침술이라면 환자의 양손을 들게 하고 침끝을 상향, 또는 좌우로 눕혀야 문제가 없다. 그런데 침이 살짝 빗나가면서 심포막을 건드렸다.
이 아이의 경우 구미혈 자침의 매력은 크지 않았다. 아마 다른 혈자리에서 큰 반응을 보지 못하자 추가로 자침한 듯 보였다.
침이 조금만 더 전진했어도 심장을 건드려 사망했을 아이. 그나마 침이 여기서 멈춘 게 다행이었다.
“어때?”
심장출혈을 막은 윤도가 아이에게 물었다.
“아픈 게 줄었어요.”
“좋아. 이제 독감도 잡아볼까?”
윤도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이는 윤도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로 화답했다. 환부를 바라보던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기척이었다. 한둘도 아니었다.
“원장님!”
보조하던 리빙빙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도 땀 범벅이었다.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원장과 의료진, 거기에 더해 바이징팅과 고위 간부 등도 보였다.
“무슨 일로?”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원장이건 뭐건 진료현장에 떼거지로 들어오는 건 의료인의 자세가 아니었다.
“채 선생...”
바이징팅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진료를 방해해 미안합니다만 지금 우리 주석께서 와 계십니다.”
‘주석?’
“채 선생을 보기 위해 오셨다는군요. 지금 환자들을 위로하며 선생의 치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
바이징팅의 한 마디에 윤도의 시선 출렁거렸다.
중국 주석!
굉장한 사람이다. 이제는 세계 패권의 양강을 다투는 중국의 리더. 그런 사람이 어린이병원에? 게다가 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딸깍!
병실문이 열렸다. 처음으로 치료한 양이닝의 병실이었다. 중국 주석 왕마오핑은 그 안에 있었다. 비서관과 베이징 시장을 거느린 채였다. 윤도 눈에 그 모습이 들어왔다. 마스크를 낀 그는 양이닝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채윤도 선생님!”
윤도를 본 양이닝이 소리쳤다. 주석이 고개를 돌렸다. 윤도가 선 채로 꾸벅 예의를 갖추었다. 주석이 다가왔다.
“채윤도 선생.”
주석의 목소리는 굵직하면서도 정중했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아닙니다. 중국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어려운 일에 돕는 건 한국인의 본성입니다. 작으나마 보탬이 되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양이닝을 보십시오.”
주석이 양이닝을 가리켰다. 윤도가 바라보자 아이가 종이를 감추었다.
“보여드리렴.”
주석이 웃었다. 양이닝은 한껏 붉게 물든 뺨으로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에 그려진 건 윤도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윤도가 분명했다. 양이닝은 정말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그걸 위해 어머니에게 도구를 부탁한 양이닝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병원에서는 당신이 중국의 주석보다 낫소. 나도 저런 그림의 주인공은 되어보지 못했으니...”
주석의 표정은 한없이 경건했다.
“나네?”
양이닝에게 다가선 윤도가 웃었다.
“네, 채윤도 선생님.”
양이닝은 또박또박 윤도 이름을 발음했다.
“그거 그리면 나 줄 거야?”
“그럼요. 엄마가 예쁜 액자에 담아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무리하지는 마렴.”
“걱정마세요. 선생님 덕분에 굉장히 편해요. 엄마도 너무 좋아하시는 걸요.”
“고맙다.”
윤도가 양이닝의 두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의술이 위대한 건 아니었다. 장침이 신적인 것도 아니었다. 위대한 건 환자였다. 이 아이가 살아주었기에 의술이 빛날 뿐이었다.
“바이 회장.”
주석이 바이징팅을 불렀다.
“예, 주석 동지.”
“한국에서 채윤도 선생을 모셔왔다고 들었소.”
“예...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걸 그냥 볼 수 없어서...”
“HIV 스캔들로 고생이 많았죠? 이번에 거액을 쾌척한 것도 보고 받았소.”
“그건...”
“당신을 오래 기억하겠소.”
주석이 손을 내밀었다. 바이징팅은 환한 표정으로 그 손을 잡았다.
신의神醫 강림-4
신의神醫 강림-4
“시장.”
주석이 베이징 시장을 불렀다.
“예, 주석 동지.”
“기자회견 준비하세요.”
“주석께서 직접 하시겠습니까?”
“그러고 싶지만 병원 아니오? 나보다 병원장이 하는 게 좋겠소.”
“......”
“원장.”
주석의 호명이 원장에게 이어졌다.
“예.”
“기자와 외신들에게 이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가감없이 발표하세요. 무슨 뜻인지 알겠소?”
“주, 주석 동지...”
“우리 중의들은 따끔한 분발이 필요하오.”
주석이 잘라 말했다. 위엄에 압도된 병원장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채 선생.”
“예.”
“미안하지만 중국의 주석으로서 부탁 하나 해도 되겠소.”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