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265)

“태구야.”

아들이 들어서자 노모가 먼저 알아보았다.

“엄마.”

“얼굴 좀 봐라. 밥은 먹고 댕기는 거냐?”

“아, 이 노인네... 지금 누가 누구 걱정하는 거야?”

아들은 투박한 정을 쏟아내며 노모의 손을 잡았다.

“조금 안정했다가 탕제 나오면 찾아서 모셔가세요.”

윤도가 아들에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여기 병원비는 무지 비쌀 거라고 하던데... 제가 가진 돈이 10만원 밖에 안 됩니다. 모자라는 돈은 노가다 며칠 뛰어서 가져다드리면 안 될까요?”

“태구야.”

침상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지금 선생님이랑 치료비 얘기 중이잖아요?”

“나 돈 있어.”

“노인네가 무슨 돈요?”

“윗목의 장판 들치면 그 안에 검은 봉투 들었어. 나 죽으면 장사비 때문에 고생할까봐 조금씩 모았는데 300만원은 될 거야.”

“어머니...”

“헛소리하는 거 아니야. 그거 가져다 선생님 드려.”

“어머니...”

“죽을 때 되면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 속 하고 머리 어지러운 게 나았으니 돈은 또 모으면 돼. 박스나 빈 병 바지런히 주우면 한 2년이면 모을 수 있어.”

“어머니...”

아들 목이 확 미어졌다. 죽을 때까지도 자식 걱정을 하는 어머니. 그 무거운 폐지 주워 모은 돈이 300만원이라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두 분요.”

이제 윤도가 나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아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아뇨. 그런데 치료비는 아드님 돈으로 충분합니다.”

“네?”

“탕약까지 7만원에 해드릴 테니 3만원은 나가서 어머니에게 따뜻한 식사 사드리세요. 아드님 돈이라 어머니께 보신이 될 겁니다. 어머니 돈은 두 분이 알아서 하시고요.”

“선생님...”

“자, 다음 환자 모시세요.”

윤도가 승주에게 소리쳤다. 딱한 환자들은 오래 두고 보면 좋지 않다. 딱한 사정 또한 독감처럼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원장님.”

새 환자를 안내해온 승주가 인터폰을 가리켰다. 외부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위안부 쉼터 여직원이었다.

“선생님...”

“오늘 내일 넘기기 힘들 것 같아 보인다고요?”

“예. 그런데 이 할머니가 꼭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알겠습니다. 오후 진료 마치는 대로 가도록 하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직원은 거듭 인사말을 남겼다.

한 위안부 할머니.

임종이 가깝다는 말을 듣고는 깜박 잊고 있었다.

왜 윤도를 보려는 걸까? 그동안 몇 번이나 걸려왔다는 전화... 거기에 더해 임종이 임박한 상황. 고단한 삶을 사신 분이기에 외면할 수 없이 하던 시침을 서둘렀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아직은 산 사람이 아닌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원-2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원-2

저녁 무렵, 윤도가 위안부 할머니들 쉼터에 도착했다. 원장과 담당 여직원이 달려나와 윤도를 맞았다.

“어떠십니까?”

윤도가 원장에게 물었다.

“좋지 않으십니다.”

원장이 답했다. 그를 따라 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안에는 천주교에서 나온 신부와 신도들이 있었다. 할머니를 위해 천국의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복도에서 잠시 기다렸다.

“연고자가 없으신가요?”

윤도가 원장을 바라보았다.

“네... 영감님은 앞세우셨고 아드님이 한 분 계셨는데 어릴 때 홍역을 앓다가 그만...”

“형제분도 없고요?”

“네...”

대화하는 사이에 기도와 노래가 끝났다.

“방 여사가 모시세요.”

원장이 직원에게 지시했다.

“큰 언니, 채윤도 선생님 오셨어요. 그 용한 한의사 선생님 말이에요.”

여직원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얇은 실모자에 붉은 목도리를 두른 황금분 할머니는 생각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채 선생...”

할머니가 손을 내밀었다. 윤도가 그 손을 잡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니야. 용한 침쟁이면 오라는 곳도 많을 텐데 내 사정만 고집할 수 있나.”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안해. 늙은이가 갈 때가 되니까 말이 많아져서...”

“별 말씀을...”

“청와대에서 놔준 침 고마웠어. 그 후로 잠도 잘 자고 무릎도 안 쑤셔.”

“다른 불편한 데는요?”

“없어. 여기저기 아픈 거야 늙어서 그런 거잖아? 그거까지야 어쩌겠어?”

“네...”

“실은 내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뭐든 말씀하세요.”

윤도가 가만히 화답했다.

질곡의 세월을 보낸 위안부 출신 할머니. 이만한 시간이 흐른 일이니 어쩌면 과거의 불행에 대해 입을 닫고 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아픈 과거를 밝힌 분들. 그 또한 커다란 용기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분들이 모두 침묵했다면, 일제의 위안부 만행은 표면에 드러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 눈으로 벽을 가리켰다. 거기 젊은 남자의 흑백사진이 한 장 보였다.

“먼저 간 우리 신랑이야.”

“네...”

“잘 생겼지?”

“그렇네요?”

“저 양반이 마음이 따뜻해. 그 손길이 닿으면 내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가벼워졌어.”

“네...”

“저 양반은 내가 왜정 때 위안부 끌려간 걸 몰라. 그냥 일본 놈들 공장에 끌려갔다온 줄 알아. 그러다 위안부 문제가 터지기 전에 먼저 죽어서...”

“......”

“귀신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알겠지?”

“......”

“그래도 해코지 안하는 거보니까 이해한 거 같지?”

“그런 거 같네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 양반 마음을 안 받아줬는데 자꾸 나 좋다고 쫓아다녀. 그러니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결국 마음을 허락했었지.”

“......”

“첫날밤에 저 양반이 나를 안는데... 일본 놈들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나는 거야. 오랫동안 잊었던 겁도 나고... 그래서 소리 없이 울었어.”

“......”

“그랬더니 이 양반이 내가 처녀라서 아파서 우는 줄 알았나봐. 그게 미안해서 더 울었지.”

“......”

“나는 저 양반이 참 고마웠어. 내 아픈 시간을 달래라고 하늘이 보내준 사람으로 보였거든. 그 시대 사람답지 않게 부엌일도 많이 도와줘서 시어머니에게 불알 떨어진다는 호통도 많이 들었지.”

별빛 같은 할머니 눈에 추억이 스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허공에 할아버지가 와 있는 지도 몰랐다. 그 옛날, 처녀 총각으로 만날 분홍의 그날 모습 그대로...

“그 사진 뒤로 넘겨봐.”

할머니가 다시 시선으로 가리켰다.

“이 사진요?”

“사진 뒤에 또 한 장이 있어요.”

뒤에 있던 여직원이 웃으며 설명했다. 윤도가 사진을 넘기자 운명 즈음의 할아버지 사진이 나왔다. 젊은 날의 사진으로 가린 사진이었다.

“나이 드시니까 더 미남이신데요?”

윤도가 말했다.

“그렇지?”

“네.”

“하지만 속알머리가 없잖아?”

“......”

할머니의 지적에 윤도가 입을 다물었다. 할아버지 사진... 젊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50줄을 살짝 넘은 사진에는 문제가 생겼다. 정수리 부분이 훤하게 드러난 것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신장과 비장이 나빴군요?”

“워매, 징한 거.”

윤도의 진단에 할머니가 경기를 했다.

“맞죠?”

“맞아. 우리 저 양반... 처음엔 폐가 안 좋다고 거기 치료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장에 무슨 신우염인가 뭔가 생기는 바람에 그런 거라고 해서... 꽤 오래 고생하다 죽었어.”

“신장이나 비장이 나쁘면 정수리에 탈모가 일어날 수 있거든요. 폐 역시 신장을 고쳐야 제대로 고쳐지는 거고요.”

“아이고, 그때 우리 영감이 이렇게 용한 선생을 만나야했는데...”

“......”

“그래서 말인데... 나 소원 하나 들어줄 수 있을까?”

“무슨 소원인데요?”

“실은 엊그제 우리 영감이 창밖에 왔었어. 아무리 봐도 나 데리러 온 거 같은데 내가 봉사 나온 아줌마 시켜서 커튼을 내려달라고 했지.”

커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중에 원장에게 들은 말이지만 이틀 전, 할머니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회진 의사까지도 달려왔었다. 그 직전, 할머니가 자원봉사자에게 커튼을 쳐달라고 했었다. 거짓말 같지만 커튼을 친 후부터 할머니의 호흡이 위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나 모자 좀 벗겨주겠어?”

할머니가 윤도에게 눈짓을 보냈다. 윤도가 다가서 실모자를 벗겨주었다.

“내 머리 어때?”

할머니가 몇 개 남은 앞니를 드러내며 암죽암죽 물었다.

“......”

윤도가 답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원형탈모였다. 가운데가 폭탄을 맞은 듯 맨질맨질 비어있었다. 지난번 청와대에서도 털실모자를 썼던 할머니. 그렇기에 탈모를 보지 못한 윤도였다.

“머리카락이 없지?”

“그렇네요.”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더니 허튼 것까지 닮았나봐.”

“예...”

“실은 영감이 대머리 되었을 때 내가 굉장히 놀려먹었거든. 공짜 좋아하니까 대머리가 된다고 말이야.”

“예...”

“그런데 내가 그 꼴이잖아? 나는 공짜 좋아한 적도 없는데...”

거기서 여직원이 신문기사를 들어보였다. 할머니의 기부선행이 보도된 기사였다. 이런저런 지원금과 후원금에 재산을 더한 3억여 원. 그 모두를 고향의 복지원에 기탁한 기사였다.

‘할머니...’

괜히 콧등이 시큰거렸다. 평생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살았을 할머니. 그럼에도 떠나는 마당에는 그 누구보다 값진 선택을 한 그녀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 머리카락 좀 나게 해줄 수 있어?”

“네?”

“오랜만에 영감 보게 될 건데 둘 다 똑 같이 속알머리 없는 대머리여 봐? 누가 신랑인지 색시인지도 모르게 되잖아? 신랑 놀려먹다가 염치도 없고... 오랜만에 보는 거니 예쁘게 보이고 싶기도 하고...”“그게 소원이세요?”“응, 내 소원이야.”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윤도가 그녀의 맥을 잡았다. 맥은 완전히 다운 직전이었다,

‘진간맥...’

‘진심맥...’

‘진비맥...’

“......!”

윤도의 눈빛이 신중해졌다. 맥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다행히 진신맥은 그나마 나았다. 더불어 신장경락의 태계혈 역시 금세 까무룩해질 맥은 아니었다.

“안 될까?”

“할머니가 잘 참으면 될 것도 같은 데요?”“그럼 참지 뭐. 참는 게 내 인생이야.”

참는 게 내 인생.

담담한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윤도 심장을 건드렸다. 할머니의 과거를 생각하면 공감이 갈 수 밖에 없는 말이었다.

“시작할 게요.”

“응, 안 아프게 부탁해.”

할머니가 어린 아이처럼 움츠렸다. 당연히 아프게 하지 않았다. 윤도는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침을 할머니의 비장과 신장혈에 꽂아넣었다.

먼저 간 할아버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할머니.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원. 그 소원을 위해 신주혈과 비수혈을 비롯한 네 개의 혈자리에 침이 들어갔다. 화침이었다. 정수리의 털은 비장과 신장에 의한다. 거기서 발모를 자극했다.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잠시 복도로 나왔다. 정원 목련나무에 잎이 지고 있었다. 햇살도 마침 황혼이다. 시간도 할머니의 친구가 되어 같이 가주려는 걸까?

“선생님.”

여직원이 다가왔다. 그녀 옆에 여고생이 보였다.

“아까 그 황금분 할머니 자원봉사하던 이연아 학생이에요. 운명하실 때가 다 되었다는 말을 듣더니 학교 끝나면 매일 오네요.”

“그래요?”

윤도가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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