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265)

“......!”

윤도 시선이 이메일 앞에 멈췄다. 얼굴을 들이대고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으며 읽었다.

“귀하의 논문은 뜻 깊게 읽었으며 우리 학술지의 심사의원들은 격론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원장님.”

“실장님, 영어 잘 하죠. 이 것 좀 번역해 보세요.”

윤도가 정나현을 불렀다.

“영어야 원장님도...”

“글쎄 빨리요.”

윤도가 재촉하자 진경태가 정나현의 등을 밀었다.

“우리 학술지는 격론 끝에 심사의원 만장일치로 귀하의 치매 치료논문에 대해 기꺼이 게재를 수락하게 되었으며 이에 통보 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치매 논문?”

듣고 있던 승주 목소리가 높아졌다.

“악!”

연재는 비명까지 질렀다.

“원장님, 그럼?”

눈치를 차린 진경태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맞아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의 논문게재 축하 통보예요!”

번역을 끝낸 정나현이 소리쳤다.

“원장님!”

마침내 윤도에게 쏠리는 직원들의 눈...

“세상에, 이거 꿈 아니죠?”

윤도가 되물었다. 그러자 진경태가 발을 비벼 윤도 구두 코를 뭉개주었다.

“악!”

“아프죠?”

“그야...”

“그러니까 꿈은 아닙니다. 축하합니다. 원장님!”

진경태가 두 팔을 벌렸다.

“정말 꿈이 아니라고요?”

“당연하죠. 이건 원장님의 노력과 의술로 따낸 쾌거입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논문게재.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정나현을 비롯한 간호사들이 합창을 했다.

“......!”

윤도는 말을 잃었다.

NEJM... 즉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의학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학술지다. 네이처나 셀지보다도 더 높은 인정을 받는 세계 최고의 학술지. 그 학술지가 윤도의 장침을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관련 치매약이 FDA 심사에 들어가 결과를 기다리는 마당. 잘 하면 백 투 백 홈런을 칠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다.

“빙고!”

그제야 윤도 입에서 사자후가 터졌다.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진경태를 끌어안았다. 다른 간호사들도 모두 동그랗게 포옹을 했다. 꿈에서나 그리던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논문 게재. 그 영광을 실현하는 윤도였다.

“부원장님.”

당장 도와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논문에는 많은 사람들의 협조가 있었다. 특히 SS병원과 JJ병원, 광희한방대학병원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그들 덕분에 다양한 치매 환자를 접할 수 있었고 치료에 관해 폭 넓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마혁과 안미란 등의 실무협력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보상도 없었다. 윤도가 철저하게 명예저자, 게스트 저자, 기프트 저자 등의 관행을 커트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기꺼이 협력한 것은 윤도의 논문이 그만한 가치가 있고 의술의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부수적으로는 그들 병원의 환자완치에 도움을 받는 실익도 있었다.

“안 선생님.”

마지막 통화자는 안미란이었다. 그녀야 말로 많은 걸 보조해 주었다. 그렇기에 인사를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축하해요, 너무 축하해요!”

안미란은 자기 일보다 더 기뻐해주었다.

논문 관련자들과의 통화가 끝난 후에야 류수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발딱 뒤집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한 시간 이내에 꽃다발을 들고 날아왔지만 일착을 찍지는 못했다. 이미 윤도의 한의원은 꽃다발로 가득 차 있었다.

한의사협회를 필두로 SS병원과 JJ병원, 광희한방병원은 물론, 관련 스태프들이 빠짐없이 축하인사를 버낸 것이다.

맨 먼저 도착한 꽃은 진경태에게 주었다.

“받으세요.”

“원장님.”

“아저씨가 없었다면 해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윤도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원장님 고집을 아니까 이건 챙기겠습니다만 대신 이걸 받으십시요.”

진경태가 큼지막한 꽃바구니를 건네주었다. 종일과 둘이 지갑을 털어 준비한 것이다. 덕담을 주고 받는 사이에 류수완이 도착했다.

“원장님!”

류수완은 두 팔을 벌려 윤도를 껴안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류수완은 윤도 등짝이 터져라 두드려댔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저야 원장님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사람이죠. 진짜 대단한 일 해냈습니다.”

“이거 꿈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죠. 제가 그쪽에 확인해 봤습니다. 모든 것이 퍼펙트했다고 하더군요.”

“퍼펙트...”

“덕분에 FDA 심사에도 유리해질 것 같습니다.”

“FDA에도요?”

“당연하지 않습니까? 최고의 학술지에서도 인정한 원리입니다. 논문이 치매신약 자체는 아니지만 그 기원이에요. 분명히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제가 스카우트한 제임스 이사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FDA에 장난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허가가 떨어질 겁니다.”

“장난질이라면?”

“다국적 제약회사들이죠. 효과 좋은 신약이 나오면 그들의 기성 제품이 치명타를 받게 되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검은 커넥션 말이죠.”

“미국에서도 말입니까?”

“지구상 어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기존 약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신약 특허권을 사서 사장시켜버리는 업자도 있습니다.”

“......”

“이도저도 아니면 부정적인 논문이나 연구결과를 내세워 이슈를 터트리죠.”

“그럼 우리가 신청한 신약도?”

“제임스 이사의 정보에 의하면 다국적 제약사 두 곳에서 자신들이 후원하는 약학자를 내세워 부정적인 연구결과를 투서한 모양이더군요. 하지만 그들은 침술을 모르는 터라 혈자리에 독창적 반응을 하는 신약을 흠집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그나저나 표정관리 좀 하시죠.”

“왜요? 기자들이라도 불렀습니까?”

“당연하죠?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아무나 실립니까? 이건 대통령 훈장 받고 중국 독감 박살낸 것 못지않은 대사건입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선생님이 기자들 부를 것 같지 않아서...”

“그럼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저도 불러야할 기자가 있습니다. 그분 빼먹으면 보복 들어올 분이거든요.”

윤도가 말하는 건 성수혁 차장이었다.

펑펑펑!

한의원 정원에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치료 받으러 온 환자들까지도 하객으로 나서주었다.

“한국 침술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징검다리를 놓게 되어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인터뷰 요지는 그랬다. 침술로 뚫어낸 타입침안(駝入針眼). 즉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에도 비할 수 없는 쾌거였다.

펑펑!

카메라 불꽃이 터졌다.

플레쉬의 발광이 오각 빙창처럼 찬란하게 보였다. 꿈은 반대라던 어머니 말이 맞았다. 악몽이 아니라 길몽이었다. 윤도는 카메라에 마음껏 취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야 윤도는 가족에게 사실을 알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이 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윤도가 한 일이니 무조건적인 축하와 지지를 보내주었다.

대미 장식은 부용으로 정했다.

‘깜짝 놀라겠지?’

흐뭇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잡았을 때였다. 마침 전화가 들어왔다. 놀랍게도 부용이었다.

“선생님, 세계 최고 학술지 게재를 축하드려요!”

부용이 선수를 치고 나왔다. 이심전심이 따로 없다.

“어, 어떻게 알았어요? 설마 우리 한의원에 CCTV를?”

“모르셨어요? 제가 선생님 심장에다 최신 버전 몰카 설치한 거?”

“부용 씨.”

“농담이고요, 인터넷 보세요. 벌써 기사가 쫙 떴어요.”

놀란 윤도가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열었다.

“......!”

부용의 말은 사실이었다. 성수혁 기자의 1보였다. 뒤를 이어 다른 유력 일간지와 통신사들의 뉴스도 줄줄이 이어졌다. 총알처럼 빠른 인터넷 시대를 실감하는 윤도였다.

“이제 누명 벗었으니 다시 정식 인사드릴 게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채윤도 선생님!”

부용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한의원에는 축하화환과 꽃다발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파죽지세의 쾌거-2

파죽지세의 쾌거-2

“원장님!”

두 명의 암 환자를 시침하고 왼 다리를 못 쓰는 환자를 걸어서 내보냈을 때 승주가 뛰어 들어왔다.

“왜 그래?”

“전화요, 전화.”

승주가 헐떡이고 있었다.

“무슨 전화? 숨 넘어 가겠네?”

“청, 청와대...”

“청와대?”

그 한 마디에 윤도도 동공이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채윤도 선생.”

수화기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통령님.”

“방금 쾌거 보도를 보았습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논문이 게재된 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거 요즘은 채 선생이 나보다 더 애국을 하는 것 같군요. 일본에 중국에, 이제는 세계적인 학술지까지.”

“대통령님의 관심과 격려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비서관에게 듣자니 이게 굉장한 학술지라고요?”

“의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은 게재되고 싶은 학술지이기는 합니다.”

“장하십니다. 더구나 우리 고유의 침술을 주제로 한 거라니 더욱.”

“고맙습니다.”

“곧 자문의님들에게 식사 한 번 낼 예정이니 오셔서 수제비라도 같이 드시고 침도 한 번 부탁드립니다. 새로 오신 주방장이 수제비를 기가 막히게 잘 빚어냅니다.”

“불편한 데가 생기셨습니까?”

“허헛, 이 나이 쯤 되면 여기저기가 다 부실하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도가 전화를 끊었다.

“뭐래요?”

승주가 귀를 세우고 물었다.

“김 샘이 엿듣는다고 나중에 얘기하시자는데?”

“원장님!”

“하핫, 조크... 언제 한 번 들어오시라네. 침 좀 맞고 싶으신 모양이야.”

“와아...”

“지금 그렇게 넋 놓을 때야? 환자 밀렸다면서?”

“어머, 내 정신.”

승주는 자기 머리를 쥐어박고는 복도로 뛰어나갔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보고 또 봐도 뿌듯했다.

‘고마워.’

화면에 이메일 통보를 보며 두 손을 모았다.

가만히 신비경과 두 손을 바라보았다. 산해경의 영약을 꺼내올 수 있는 신비경. 그러나 매사에 신비경에 의지하지 않았다. 이제는 신비경이 없어도 모든 질병에 도전할 수 있는 윤도였다. 차이는 단지 신속성, 즉 쾌유의 시차일 뿐이었다. 영약이 있으면 치료효과가 빠르다. 하지만 영약이 없어도 치료는 가능했다. 단지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신침을 놓는 손가락과 영약.

그 두 가지는 줄기차게 협력하며 윤도의 의술 성취를 높여가고 있었다. 난치병과 불치병, 유행병을 고치며 치료법과 자신감을 안겨주었고 그 경험을 신약개발로 이어놓았다. 이제는 가지런히 정립한 치료법으로 세계 최고의 학술지까지 등정한 윤도. 가만히 눈을 감고 헤이산시호의 흰 빛을 생각했다. 그걸 생각하면 조금도 자만하지 않았다. 이 축복은 윤도 한 인간의 욕망을 위해 허락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질병, 세상의 모든 가난한 사람,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환자들...

감격을 내려놓고 가운을 여미었다. 승주에게 말한 대로 시침은 끝나지 않았다.

“눈이 제대로 보여요!”

난시에 이은 녹내장 발병으로 시력상실을 코앞에 둔 환자가 감격으로 환호했다. 풍지혈과 합곡혈에 침을 넣어 녹내장을 극복하게 해준 윤도였다. 40대 초반의 남자 환자. 시력이 떨어지면서 직장에 사표를 낼 지경이었다. 녹내장에는 약도 없다는 말에 좌절하다가 윤도를 찾아와 희망을 찾은 것이다.

“제 평생의 은인입니다.”

환자는 허리를 숙인 채 일어설 줄을 몰랐다. 오늘의 치료가 끝나자 윤도가 접수실로 나왔다. 접수실은 꽃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정 실장님.”

윤도가 정나현을 불렀다.

“네, 원장님.”

“오늘 같은 날 회식 한 번 해야죠? 어디 쿨한 데로 예약하세요. 오늘은 가족들까지 모셔 오셔도 됩니다.”

“와아!”

승주와 연재가 반색을 했다.

이날의 회식장은 작은 연회가 되었다. 윤도의 가족은 물론이고 부용과 그 오빠 이진웅, 김전무에 이어 스떼빤과 뤄샤오이까지 참석을 했다. 류수완과 복지부 차관에 노래하는 아들 노정명도 왔다. 거기에 더해 길상구 부원장, 조수황, 송재균과 안미란, 고양이 명의 노윤병에 손석구까지... 하객은 자꾸자꾸 밀려들었고 윤도는 그만큼 더 행복해졌다.

“선생님.”

겨우 숨을 돌릴 때 안미란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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