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7화 (197/265)

“많이 먹었어요?”

“당연하죠. 제가 알고 보면 광희병원 원조 먹방이에요.”

“설마?”

“진짜라니까요? 저 마음 먹으면 삼겹살 5인분도 문제없어요. 일본에 배낭여행 갔을 때는 990엔 무한리필 초밥집에서 56접시 째 먹다가 쫓겨났다니까요.”

“......”

“그건 그렇고 모레가 저 오프인데 선생님 한의원 연수가도 돼요?”

“으음, 빡세게 굴릴지도 모르는데...”

“그럼 완전 무장하고 가죠 뭐.”

“오세요. 선생님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윤도가 환하게 웃었다. 침술에 대한 학구열과 탐구심이 넘치는 안미란. 그녀라면 말릴 게 없는 윤도였다.

“어이, 채 선생, 작업 그만하고 저쪽에 좀 가봐. SS병원 부원장님 오셨어.”

송재균이 다가와 윤도 어깨를 쳤다. 윤도는 황급히 손님을 향해 뛰었다.

“채 선생 대단하지?”

송재균이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맞아요. 실력은 최고 잘난 척은 최저... 그러면서도 카리스마와 포스는 팍팍!”

“원래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잖아?”

“그건 저도 알아요. 송 선생님이 모델이니까.”

“뭐야?”

“솔직히 처음에 굉장히 폼 잡았잖아요? 대한민국 최고 침술가인양...”“그거야...”

“저 모레 채 선생님 한의원 연수 가는 거 허락 받았어요.”

“결국 시도해 보려고?”

“네!”

안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도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한없이 비장했다. 마치 굳은 결단이라도 품고 있는 듯...

이틀 후 이슬비가 내렸다. 윤도는 업무 전부터 바빴다. 각종 매체에서 들어온 인터뷰 요청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즐기지는 않지만 내칠 수도 없었다. 덕분에 이틀 동안 근 30여 군데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윤도였다.

<현대의학을 넘보는 한방 신의 손>

<탄탄한 이론 위에 쌓아올리는 장침 신화>

<이론에 실전, 신약개발까지 아우르는 한국 의술의 미래>

다양한 찬사들이 나왔다. 덕분에 이틀 내내 실검 1-2위를 오르락거렸다. 어제는 인상적인 선물도 받았다. 갈매도 할머니들이 보낸 항공택배였다. 특히 차명균 선장이 보내준 반건조 민어가 일품이었다. 시간을 내어 하나하나 인사를 드렸다.

“여름에 놀러 와요.”

차명균 선장의 인사는 늘 그랬다.

인터뷰의 마지막 차례가 끝나자 대기실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광희한방대학병원의 안미란. 그녀가 꾸벅 인사를 해왔다.

“진짜 왔군요?”

윤도가 그녀를 맞았다.

“당연하죠. 저 실은 아침 8시부터 와 있었어요.”

“예?”

“그런데 선생님이 인터뷰 중이시길래...”

“그래도 말을 하시지... 차라도 한 잔 드셨어요?”

“네, 저기 한약사 선생님이 챙겨주셔서...”

안미란이 진경태를 가리켰다.

“저기요, 여기 잠깐 보세요.”

그 자리에서 직원들을 불러보아 소개를 시켰다.

“그 유명한 광희한방대학병원 있잖습니까? 거기서 수련의 하고 계시는 안미란 선생님입니다. 제가 연수 받을 때 제 사수셨고 논문 쓰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신 분이죠. 오늘 우리 한의원에 한 수 지도하러 오셨으니 많이들 도와주세요.”

“채 선생님!”

윤도의 소갯말에 놀란 안미란이 펄쩍 뛰었다.

“일단 제 방으로 가시죠.”

윤도가 안미란의 등을 밀었다.

“몰라요. 그렇게 소개하시면 어떡해요? 침술 배우러 온 사람에게...”

원장실에 들어선 안미란이 볼멘소리를 냈다.

“다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침술이야 뭐 같이 배우고 나누는 거지...”

“선생님.”

“가운 필요할 텐데 간호사들 가운 하나 내드려요?”

“제 것을 가져왔어요.”

안미란이 쇼핑백을 가리켰다.

“으음... 오지말라고 했으면 큰 일 날 뻔 했군요.”

“거절하시면 요 앞에서 1인 시위하려고 했거든요.”

“그럼 빡세게 이론부터 들어갑니다.”

“그럴까봐 공부도 좀 하고 왔지요.”

“술 취한 사람에게 자침하면?”

윤도가 바로 선공을 날렸다.

“선생님.”

“곧 시침 들어갈 거거든요.”

“기가 어지럽게 되어 해롭다.”

윤도의 다그침에 안미란이 답을 내놓았다.

“화난 사람에게 침을 놓으면?”

“기가 역으로 올라 실신할 수 있다.”

“영추에 나오는 거 요점만 읊어보세요.”

“섹스를 금방 끝낸 사람에게는 자침 불가요 만약 자침했으면 섹스를 금하라. 취한 사람에게 자침하지 말며 자침했으면 마시지 마라. 과로한 사람에게 자침하지 말며 자침했으면 일하지 마라. 배 고픈 사람에게 자침하지 말며 자침했으면 배 고프지 않게 하라. 목 마른 사람에게 자침하지 말며 자침했으면 목 마르지 않게 하라. 고열에 자침하지 않으며 땀이 흐를 때 침을 놓지 않으며 맥이 팔딱거릴 때 침을 찌르지 않는다...”

“그만.”

“하핫, 딱 거기까지 복습하고 왔는데 운이 좋네요.”

“그럼 나는 운이 없는 건가요?”

“뭐 그렇다고 봐야죠. 귀찮은 제자 하나 두게 되었으니까.”

“제자라고요?”

“광희에서는 다들 저보고 채 선생님 수제자라고 해요. 심지어는 과장님도 그런다니까요.”

“......”

“아무튼 시작하시죠. 저는 준비 끝났습니다.”

안미란은 어느새 가운을 두르고 있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윤도가 장침통을 잡았다.

첫 환자는 위암 환자였다.

‘위암...’

암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안미란의 표정은 굳어버렸다.

“선생님.”

환자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말씀하세요.”

“솔직히 병원에서는 완치 가능성이 10%도 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선생님의 장침으로는 얼마나 되나요?”

“그게 궁금하세요?”

“네...”

“쓸모없는 질문입니다.”

“네?”

“위암이라면 1기 생존율이 약 95%이고 4기 생존율이 약 15% 정도로 보고 있다죠? 하지만 1기라도 5%에 들면 죽고 4기라도 5%에 들어가면 살 거 아닙니까?”

“그, 그야...”

“10%를 100%처럼 생각하세요. 그럼 100% 완치될 겁니다.”

“예...”

“이 위장병의 시작은 간입니다. 간이 정상 위치에서 처짐으로써 위가 약해지는 바람에 위암의 빌미가 된 겁니다. 일단 간을 바로잡고 관련 혈자리 치료를 하게 될 겁니다.”

“예...”

“마음 편하게 하세요.”

첫 침은 비근 옆으로 들어갔다. 간을 바로잡기 위한 혈자리였다. 비근에 침을 넣으면 신장, 비장, 간장에 침감이 간다. 그 위치를 살짝 틀어 간장을 집중 공략하는 윤도였다.

두 번째는 암의 명혈 양문혈에 장침을 넣었다. 암 치료에서 윤도가 빼먹지 않는 혈자리였으니 후끈한 화침이었다. 두 개의 시침이 끝나자 장침이 본격 출격을 했다. 주요 혈자리는 신주혈, 비수혈, 신수혈, 차료혈, 중완혈, 곡지혈, 족삼리혈, 태계혈 등이었다. 전체 침감은 태계혈에서 조절을 했다.

단숨에 혈자리를 차지한 침술.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안미란은 현기증이 일었다. 하지만 그 현기증은 이제 시작이었다. 윤도가 나노 침을 꺼내든 것이다. 침 끝에 찍은 건 국산 한방약침액이었다. 이제 다양한 항암약침을 경험한 윤도. 이번 환자에게는 특별히 우황과 산약쑥의 진액을 중심으로 구성을 했다. 첫 내원 때 시침한 약침들 중에서 가장 효과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나노 침이 하얀 선율을 그리기 시작했다. 환자의 위암은 볼륨이 컸다. 위 안에 제대로 본진을 세운 것. 그나마 전이는 없는 경우라서 다행이었다.

이날 안미란 앞에서 윤도가 찌른 나노 침은 무려 22개였다. 침 하나 하나마다 약침액의 농도가 조절되었고 암 덩어리의 깊이가 조절되었다. 고질병에 당연히 권장되는 장침 찌르기도 부담스러운 안미란. 윤도의 시침을 보며 몇 번이고 마음을 다졌다.

‘안미란... 네가 갈 길이 여기야, 여기...’

땡!

그 사이에 타이머가 울렸다.

“발침하세요.”

윤도가 안미란 등을 밀었다.

“선생님.”

“어서요. 다음 환자 기다려요.”

윤도는 안미란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결국 안미란이 발침에 나섰다. 장침은 그럭저럭 뽑았지만 나노 침 앞에서는 두 손이 후들거렸다.

‘오장직자침...’

윤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오장육부의 환부를 직접 찌르는 침. 그야말로 신침으로 알고 있던 그 침을 안미란의 손으로 뽑는 것이다.

‘후우...’

숨소리를 죽이며 하나 하나 집중을 했다. 환자 앞에서는 초짜 표시를 내서는 안 된다. 마지막 나노 침을 뽑았을 때 안미란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분 어떠세요?”

때마침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주려는 배려였다.

“시원합니다. 가슴 속에 불덩이가 든 거 같더니 다 꺼진 기분이에요.”

“탕제 잘 드시고 한 달 후에 한 번 더 나오세요. 마무리 잘 하면 10%가 100%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환자는 문을 나가면서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대답 안 해요?”

윤도가 안미란을 바라보았다.

“네? 뭘요?”

“아까 물었잖아요? 기분 어떠냐고?”

“환자에게 물은 거 아니었어요?”

“두 사람 다에게 물은 거예요.”

“저는...”

“나노 침... 별 거 아니에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면 안 선생도 할 수 있는 거라고요.”

“선생님...”

“나노 침, 조 과장님도 아시죠?”

“예...”

“뭐라세요?”

“솔직히 말하면 위험한 시침이라고...”

“양방의 위암 수술 아시죠? 혹시 참관해본 적 있어요?”

“네... 우리 병원이 한방양방협진병원이다 보니 양방 이해 차...”

“집도의가 뭘로 수술하던가요?”

“전기소작기...”

“그거 언제 도입된 줄 아세요?”

“1990대 중반요.”

“그거 도입될 때 양방 외과의들도 난리가 났었어요. 소작기가 혈관에 닿아 터질 수도 있고 천공이 되면 복막염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외과의들이 쓰고 있을 걸요?”

“......”

“루틴이나 클래식도 더 좋은 치료법이 나오면 깨부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의술이 발전하겠어요.”

“......”

“안 선생님.”

“선생님 보면 저는 참 엉터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광희에 합격했을 때만 해도 대단한 능력자로 착각을 했었는데...”

안미란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솔했다.

“의술이 대단한 건 환자를 살리거나 치료할 때 뿐입니다. 한의사나 의사 자체에 무게를 두시면 안 돼요.”

“......”

“다음 환자 보러갈까요? 정신 바짝 차리세요. 어느 순간에 시침을 맡길지 모르니...”

“선생님!”

앞서 나가는 윤도 팔을 안미란이 잡았다.

“겁나요?”

“그게 아니고...”“그럼 뭔데요?”

“저 여기서 수련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예?”

뜻밖의 요청에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진심이에요. 선생님 밑에서 일하고 싶어요.”

“안 선생님, 선생님 수련의 하는 곳은 광희한방대학병원이에요. 대한민국 최고인...”

“침술은 선생님이 최고잖아요?”

“하지만 여기로 오면 레지던트 과정도 인정 받지 못하고...”“상관없어요. 과장님하고도 상의 끝냈고요.”

“......”

“부탁해요. 선생님. 저는 교과서에 나오는 거 말고 진짜 침술을 배우고 싶어요. 월급 같은 건 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안미란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승부수였다.

“안 선생님...”

“선생님 보면서 진짜 한의사가 뭔지, 진짜 침술이 뭔지 깨달았어요. 그러니 제발...”

“......”

“허락 안 하시면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안미란은 완강했다. 그때 가운 주머니 속의 윤도 전화기가 진동을 울렸다. 발신자는 류수완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아홉 번이나 걸려온 전화였다. 상황도 모면할 겸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 속...

거기서 흘러나온 소식은 안미란의 요청보다 더 큰 충격으로 윤도를 흔들었다. 그건, 분명한 쓰나미이자 광속 폭발이었다.

“사장님... 방금 하신 그 말...”

윤도는 거의 휘청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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