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1화 (201/265)

끼익!

윤도 차가 SN 빌딩 앞에 멈췄다. 장현서가 앞서 걸었다.

“여기에요.”

연습실 앞에서 그녀가 멈췄다. 다급히 문을 열던 윤도, 그 자리에서 굳었다.

뻥뻐벙!

축포가 터졌다. 꽃술도 날아올랐다.

“축하합니다. 채윤도 선생님!”

합창의 주인공은 해피 프레지던트와 빙빙빙의 멤버들이었다. 그녀들 말고도 대여섯 명의 가수들이 더 보였다.

“누가 다쳤다더니...”

“저요!”

윤도가 울상을 짓자 미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안무를 익히다 어깨가 빠졌단다. 하지만 윤도가 보기에는 별 것 아니었다.

“대표님이 압력 넣었어요?”

사태를 짐작한 윤도가 물었다.

“아뇨. 이건 우리가 작당한 거예요. 대표님 없을 때 오붓하게 축하드리고 싶어서요.”

해피 프레지던트 멤버들이 달려들어 윤도를 당겼다. 윤도는 찍 소리도 못하고 의자에 앉았다. “대표님에게는 비밀이에요. 우리도 선생님하고 좀 친하고 싶어요.”

“맞아요. 대표님이 있으면 눈치 보여요.”

“선생님 사랑해요.”

걸그룹들이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한 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박연하가 보이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에프티에이에 합격하신 선생님께 축하선물 증정식이 있겠습니다.”

미우가 나서 소리쳤다.

“야, 에프티에이가 아니라 에프디에이야.”

“그래, 무식 뽀록난다.”

걸그룹들은 또 한 번 깔깔거리며 실내를 들었다 놓았다.

“야, 그게 뭐 중요해? 선생님 축하하는 게 중요하지. 빨리 선물이나 가져와.”

미우가 눈총 레이저를 쏘며 멤버들을 다그쳤다.

다르륵!

잠시 후, 윤도 앞에 끌려온 건 커다란 종이박스였다. 작은 냉장고가 들어갈 정도로 컸다. 걸그룹들, 팬들이 보내준 선물이라도 담아서온 걸까? 난감한 사이에 박스가 개봉되었다.

“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선물은 박연하였다. 요정 콘셉트의 그녀가 내민 건 생산삼 한 뿌리였다.

“축하합니다. 저희가 용돈 모아서 준비했어요. 베이징 공연 성사시켜주셔서 고맙고요, 무슨 잉글랜드 저널과 에프디에이에서 신약 승인 받은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선물 산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딴에는 윤도에게 맞춘다고 고심한 걸그룹들이었다. 그 사이에 부용에게 전화가 들어왔다.

“......!”

난감한 윤도가 받지 못하자 거푸 다시 걸려왔다.

“우왕, 대표님이셔.”

윤도 전화기를 엿본 박연하가 몸서리를 쳤다. 윤도, 별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어디세요?”

부용이 물었다.

“그, 그게 여기가 지금...”

“어디 아프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좀 피곤해서요.”

“어머, 그럼 일찍 쉬세요. 미국도 가셔야하잖아요?”

“네...”

“다녀와서 한 번 만나요. 저도 여기 마무리 되는 대로 들어갈 게요.”

“알겠습니다.”

윤도가 전화를 끊기 무섭게 박연하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자 그녀의 비명도 함께 울렸다.

“으악, 대표님이셔!”

“대표님?”

“어떡하지?”

“야야, 다들 조용!”

미우가 멤버들에게 쉿하는 동작을 취했다.

“여보세요...”

목청을 가다듬은 박연하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부용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흘러나왔다.

“너희들 채 선생님 납치해왔지?”

“악!”

“다 알고 있으니까 빨리 돌려보내드려. 알았어?”

“아악!”

박연하는 비명만 지르다 핸드폰을 놓치고 말았다.

재기발랄한 걸그룹의 배웅을 받으며 도로에 올라섰다. 잠시 정지신호를 틈타 하늘을 보았다. 어둠을 뚫고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미국...

현대의학의 심장부.

이제 윤도의 지향은 그곳에 있었다.

현대의학의 심장부, 미국으로 가다-1

현대의학의 심장부, 미국으로 가다-1

<채윤도>

<강외제약>

<치매신약>

<북미시장>

<신침장침>

다섯 가지 검색어가 3일 동안 실검 1위부터 5위까지를 휩쓸었다. 윤도의 이름은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도 미국 방문 추진은 신의 한 수였다. 수많은 전화와 만나자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한의원 앞에는 아예 사설 경호직원 둘을 세워 통제를 할 정도였으니 미국을 다녀오면 폭풍이 잠잠해질 일이었다.

강외제약의 주식은 3일 연속 불기둥 상한가를 쳤다. 오늘은 상한가가 풀리며 26.2%의 상승에 그쳤지만 그것만 해도 어마무시한 주가돌풍이었다.

미국 출발을 하루 앞둔 오전 11시, 윤도의 스포츠카가 청와대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통령의 요청이었다.

“채 선생!”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반겼다.

“안녕하셨습니까?”

윤도가 인사를 했다.

“장합니다. 굉장한 쾌거였어요.”

“별 말씀을...”

“우리 비서관들도 전부 고무되어 있습니다. 이러다가 채 선생님이 세계 신약시장의 맹주가 되는 거 아니냐고...”

“겨우 두 걸음을 떼었을 뿐입니다.”

“그래, 다음 신약은 또 뭡니까?”

“당장은 대통령님을 먼저 챙겨야할 것 같은데요?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하핫, 뭐 그렇기도 하고... 워낙 국위선양을 하고 계시니 맛깔스러운 수제비 한 그릇 대접할까 해서요.”

“그럼 진료부터 하시죠.”

“그러세요. 식사는 그 다음에 합시다. 우 비서관, 배 박사님 오셨나?”

대통령이 여 비서관에게 물었다.

“의무실에 도착하셨습니다.”

배 박사라면 배병수 박사다. 대통령의 내과 자문의 역을 맡은 사람이다. 우 비서가 앞서고 대통령과 윤도가 뒤를 따랐다. 의무실에 들어서자 배 박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셨군요. 여기 채윤도 선생도 왔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함께 윤도가 배 박사에게 맞인사를 했다.

“실은 대통령께서 요즘 돌연 위가 좀 나빠진 것 같아서요.”

배 박사가 말문을 열었다.

“해서 엊그제 우리 병원에 내원해서 여러 검사를 하고 내시경도 보았는데 특별한 이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으로는 위마비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침을 맞고 싶다는 의견을 주시네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배 박사의 설명은 친절했다.

“진맥을 좀 해도 될까요?”윤도가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대통령은 흔쾌히 손목을 내주었다.

“위의 이상이 맞군요. 사기가 위 구석에서 제대로 뭉쳐 연동운동을 막습니다. 위마비입니다.”

윤도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위마비.

이 또한 고질병의 하나다. 위염이나 위궤양보다 더 큰 통증이 올 수도 있지만 내시경에서는 ‘소견 없음’으로 나온다. 따라서 주의 깊게 진단하지 않으면 신경성 처방이 나올 수도 있었다.

증세는 말 그대로다. 위 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아 음식이 위에 정체된다. 소장으로 내려가지 않으니 늘 더부룩하고 구토에다 복통까지 부록으로 붙는다. 위마비는 당뇨병이나 위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대통령의 경우에는 과거, 위궤양이 심해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마비 초기에는 위장관운동제를 처방하지만 마비가 심하면 이조차 소용이 없다.

“제 진단으로는 소장과 연결되는 유문에 보톡스를 놓을까했는데 대통령께서 일단 침을 한 번 맞아본 후에 결정하자기에...”

배 박사의 설명이 그쳤다.

“그럼 점심 식사 하시기도 어렵겠군요?”

윤도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래도 먹어봐야죠. 이렇게 좋은 분들이 오셨는데...”

“기왕 드실 거라면 맛나게 드실 수 있도록 조치해보겠습니다.”

윤도가 장침을 뽑았다.

‘화생토(火生土)...’

머리에 시침의 길을 세웠다. 위장은 토(土)의 성질이다. 그렇다면 화(火)의 성질을 갖는 심장과 소장의 도움이 필요했다. 심수혈과 소장수혈에 침을 넣어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런 다음 다시 근축혈과 거궐혈, 양릉천혈에 장침을 넣었다. 세 혈자리의 침감으로 마비된 위 부위를 겨누어 경련과 이완을 반복했다. 3회를 반복하자 대통령의 배에서 비둘기 소리가 들려왔다.

꾸륵!

꾸르륵!

정체된 음식물이 소장으로 내려가는 소리였다.

“어떠십니까?”

윤도가 물었다.

“속이 시원한데요?”

대통령이 얼굴이 시원하게 펴졌다.

“혹시 채소주스를 만드실 수 있습니까?”

윤도가 의무실 간호사에게 물었다.

“가능합니다.”

대답한 그녀가 즉시 채소주스를 만들어왔다. 윤도가 대통령에게 시음으로 권했다.

“어이쿠, 잘 내려가는 데요?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거 쳐다만 봐도 배가 더부룩했는데...”

“위에 뭉친 기혈이 풀렸습니다. 심장과 소장을 짝 지어 풀은 것이니 큰 무리는 없을 겁니다. 다만 당분간은 기름진 음식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수제비는 먹어도 된다는 겁니까?”

“그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만...”

“배 박사님.”

대통령이 배 박사를 바라보았다. 배 박사가 청진기를 들이댔다. 대통령의 위장 부위를 몇 번이고 체크하지만 그의 진단은 엊그제와 달랐다.

“기가 막히군요. 직접 봐도 믿기가 힘듭니다.”

배 박사의 미간은 과격하게 구겨지더니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윤도는 알았다. 경외감이 아니라 불편함이었다. 윤도는 내색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채 선생. 역시 명침이시군요.”

대통령은 기꺼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채 선생...”

“예.”

“아직 자세한 보고는 받지 못했지만 이번에 개발한 치매 신약이 어떻습니까? 개발자 입장에서 말입니다.”

“약효 말씀입니까?”

“예.”

“아직 시장의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제 생각에는 초기 치매는 물론이고 심각한 만성 치매의 일부까지도 치료가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요?”

“왜 그러시는지?”

“아, 아닙니다. 내가 비서관들과 구상 중인 게 있는데 아직 마무리된 게 아니라서...”

대통령이 말끝을 흐렸다. 뉘앙스로 보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밖에서 전갈이 들어왔다.

“치과 자문의께서 오셨다는데요?”

우 비서관이었다.

“아, 모시게.”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치과 자문의가 의무실로 들어왔다. 윤도와 배 박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물러났다. 그때 대통령이 윤도의 걸음을 잡았다.

“채 선생은 잠깐만...”

윤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치과 자문의 문대성의 진료가 시작되었다.

“아아!”

치과도구로 긁어댈 때마다 대통령의 신음도 간간히 새어나왔다.

“어금니 임플란트와 송곳니 임플란트가 몇 개 흔들립니다. 잇몸에 염증도 엿보이니 병원에 나오셔서 전반적인 교체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치과의사가 말했다. 대통령은 양쪽 어금니와 송곳니 등이 임플란트였다. 본연의 자연 생니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럼 또 전처럼 긴 시간을 고생해야 하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때보다도 더...”

“허어, 그 이후로 신기술이 나오지 않은 모양이군요?”

“기술은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의치다 보니...”

“채 선생은 어때요? 혹시 이빨 새로 나는 명약 같은 거는 개발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반 농담으로 윤도를 바라보았다.

“가능하기는합니다만...”

윤도가 답했다. 단순히 묻기에 답한 것 뿐이었다. 그러자 문대성의 돌연 각을 세우고 나섰다.

“한의사도 의료인인데 하기 좋은 농담이라고 막 하는 게 아닙니다. 이빨이 나는 약이라뇨?”

“농담은 아닙니다만.”

“정말 이빨이 나는 명약이라는 게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대통령이 관심을 기우렸다.

“동의보감에도 그런 처방이 나옵니다. 그 처방을 구현하기는 조금 힘들지만... 조금 다른 제 처방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제한적이고 시간이 제법 걸려서 대중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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