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요, 채윤도 선생.”
듣고 있던 문대성이 끼어들었다.
“예, 박사님.”
“요즘 큰 일을 많이 하시기는 하지만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닙니까?”
“......?”
“이빨이 난다는 거 말입니다. 대통령은 어린이가 아니고 성인입니다. 영구치가 다시 날 수는 없어요.”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한적이고 시간이 좀 걸린다고.”
“이봐요, 채 선생!”
문대성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말씀하시죠?”
“듣자듣자 하니... 대통령 앞입니다. 의술을 높여 보이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채 선생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대통령 나이에 영구치를 다시 나게 한다는 겁니까?”
“동의보감에만 해도 이빨이 새로 나는 처방이 4가지나 나옵니다만...”
“동의보감? 그게 현실하고 타당하기나 한 겁니까?”
“말씀 삼가세요. 동의보감은 수백 년 동안 검증된 의서입니다.”
“허어, 이 사람이... 한의사가 치의학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뜬 구름을 잡아요?”
“그 말은 취소하시죠.”
윤도 눈에 힘이 들어갔다. 대통령 앞이라 각을 세울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의학에 대한 폄훼나 경시만은 간과할 수 없었다. 일반적인 처방이 아니라고 해서 무시 당할 이유도 없었다. 의사들 역시 사람에 따라 특별한 시술법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증거를 보이면 백 번이라도 취소하고 사과하죠. 아니, 무릎이라도 꿇겠소. 보아하니 재주가 좋아 논문도 실리고 신약도 냈다지만 문제는 보편화요. 실험실에서 묻혀간 신기술과 신의학이 한둘인 줄 아오? 소설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내세워 환자를 현혹하는 건 절대 간과할 수 없소이다.”
“지금 현혹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현혹, 게다가 대통령을!”
“문 박사, 채 선생.”
입장이 난처해진 대통령이 중재에 나셨다.
“죄송합니다. 저는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이 젊은 친구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문대성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저는 이미 그 약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봐요, 지금 감히 어디서?!”
“좋습니다.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드리죠.”윤도가 승부수를 던졌다.
“허어! 아주 끝까지 가보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전화 한통 쓰겠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소위 명침신침이라는 한의사님!”
문대성의 비꼼은 극한까지 치달았다.
“여보세요.”
윤도는 전화 두 통을 걸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전화를 문대성에게 넘겨주었다.
“이게 뭐요?”
문대성이 각을 세우며 물었다.
“통화해 보시지요. 그럼 아시게 될 테니까.”
“여보세요.”
문대성의 목소리가 칼칼하게 이어졌다.
“나 치과의사 문대성이라는 사람이오. S대 치과대학장을 역임했고 현재 대통령 치과 자문의로 있는...”
통화 초반 문대성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
하지만 그 기세는 곧 벼락처럼 꺾였다. 핏대 만땅이던 얼굴에도 당혹스러움이 한가득 번져나갔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제는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친 듯이 무너지는 문대성...
“아닙니다. 선생님이 그렇다면 믿어야죠. 하지만...”
마침내 문대성의 손이 늘어졌다. 윤도가 그 앞에 손을 내밀었다. 문대성은 맥없이 전화기를 건네주었다.
“이제 증명이 되었습니까?”
윤도가 물었다. 위엄이 팽팽한 목소리였다.
“이, 이걸 대체...”
“흔하지 않은 일이라 해서 무조건 폄하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한의학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는 치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의들의 무시를 받은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 분의 입에서 모욕적인 말이 나오니 차마 믿을 수 없습니다.”
“......”
“대통령 앞에서 하신 말씀이니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서 사과를 요구합니다.”
윤도의 목소리는 추상과도 같았다.
“......”
“문대성 박사님!”
“면목... 없소.”
문대성의 목소리가 기어 나왔다. 정말이지 대통령 앞. 더구나 상대는 아직 약관인 한의사. 유명세 좀 탄다고 천방지축 폭주하기에 눌렀던 것인데 된서리를 맞은 건 자신이었다. 문대성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통화내용을 생각했다.
“태산전자 이태범 회장님 주치의를 하는 조한새입니다. 믿기지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생니가 거의 다 빠진 회장님이었는데 채윤도 선생이 처방한 약으로 생니가 났습니다. 말로는 믿기지 않을 수 있으니 원하시면 전후 치아사진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조한새...
그 역시 대한민국 치과의사 중에서는 한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었다. 문대성과도 친분이 있어 그의 인품을 알고 있는 문대성. 빼도 박도 못할 곳에서 증명이 되고 만 것이다.
“동의보감 모욕에 대한 사과도 요구합니다.”
“그 또한 면목이 없소.”
문대성의 어깨는 한없이 내려갔다. 관록과 권위로 눌러보려던 치과 자문의. 그러나 부메랑을 맞고 개망신을 당하는 문대성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대통령께 새 이빨이 나는 처방을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워낙 희귀약재라 시간이 걸릴 일이니 그 치료까지는 제가 대통령님의 치아 건강을 담당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이제 문대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날 윤도는 청와대 수제비를 즐겁게 먹었다. 대통령도 그랬다. 똥 씹은 얼굴로 수제비를 먹는 건 배 박사와 문대성이었다. 그들에게는 맛 있는 식사가 될 리 없었다.
새 이빨 처방비는 임플란스 비용의 세 배.
대통령에게 공식 통보를 했다.
“열 배라도 콜. 청와대 진료예산으로 안 되면 내 사비로라도 지불하겠소.”
대통령은 기대에 찬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두툼한 장도 봉투를 받아들고 청와대를 나섰다. 미국행 짐을 꾸릴 시간이었다.
현대의학의 심장부, 미국으로 가다-2
현대의학의 심장부, 미국으로 가다-2
이른 아침, 윤도는 약제실에 있었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가져갈 약침액을 골라야했다. 치매신약은 준비하지 않았다. 그건 이미 샘플로 나온 약품이 있는 까닭이었다.
‘미국...’
윤도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쪽 의사들의 가치관은 어떨까? 한의학에 대한 반감이나 불신은 없을까? 여러 생각을 하며 몇몇 약침을 집어들었다.
<중산경의 낭-먹으면 요절하지 않는 영약>
<중산경의 요초-색맹과 눈병을 고친다.>
<서산경의 웅황-나쁜 기운과 온갖 독을 물리치는 영약.>
<서산경의 복숭아 닮은 열매-심신피로해소.>
<북산경의 백야-머리가 이상해지는 병을 고치는 영약.>
<북산경의 물고기-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약침액을 보고 있을 때 진경태가 들어왔다.
“아저씨.”
“어허, 짐은 안 싸시고 약제실 비상점검입니까?”
“짐이랄 게 뭐 있어야죠? 제반 준비는 강외제약에서 다 하고 있으니...”
“비자하고 여권은요?”
“그거야 이미...”
“약침 때문에요?”
“네. 아무래도 미국까지 가는 일이다 보니...”
“뭐가 고민이세요? 그거 싹 쓸어가면 되죠.”
“그건 너무 심한 거 같고...”
“그래도 여러 개 가져가세요. 미국 의사들이라도 별 다르겠어요? 한의사라고 이것 저것 시험하려 들지 모르잖아요.”
“그거야 장침으로 해결하면 되죠.”
“그러니까 약침도 가져가시라는 얘기에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원샷에 해결하면 좋잖아요. 아, 막말로 저희들이 온갖 장비 쓰나 원장님이 약침 쓰나 무슨 차이입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예 드시고 가세요.”
진경태가 서산경의 영약을 가리켰다. 피로해소 영약이었다.
“그건 환자들을 위해...”
“지금 큰 일 하시러 가는 길이에요. 치매 신약이 북미시장에 빨리 정착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치매에서 해방될 일입니다. 그러니 원장님이 우선입니다.”
진경태가 약침액 뚜껑을 열었다. 그런 다음 활력수에 희석해 윤도 앞에 내밀었다.
“그럼 두 잔 더 만드세요.”
“두 잔이나요?”
“아저씨하고 정나현 실장님 몫... 아니면 저도 안 마십니다.”
“알겠습니다. 어련하실까요?”
진경태가 한 번 더 수고를 했다. 잠시 후에 정나현이 도착했다. 이번 미국행은 그녀가 수행하게 되었다. 세 간호사 중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덕분이었다.
“정 실장은 여행 가나? 완전 자유여행 컨셉이네?”
진경태가 영약 음료를 주며 웃었다.
“실장님이 만드신 거예요?”
“아니, 우리 원장님이 정 실장 생각해서 특별히 처방한 약침원방. 이름하여 북미시장장악 무한생기파워에너지 보충음료?”
“이거 먹고 밤마다 잠 안 오면 어쩌죠?”
정나현의 재치가 발동했다.
“그럼 그냥 가시던가?”
“아, 아뇨. 마실래요. 원장님 원방이라는데...”
정나현은 음료를 가로채 단숨에 넘겼다.
<중산경의 낭>
<서산경의 웅황>
<북산경의 백야>
윤도는 국산약침액에 더불어 세 영약 약침액을 챙겼다. 영약 약침액은 비상용이었다. 이걸로도 안 되는 돌발이 생기면 신비경과 산해경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었다. 이어 장침과 나노 침까지 넉넉하게 담았다. 비자와 여권을 확인함으로써 출발준비는 끝났다.
“채 선생님!”
류수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준비 되셨습니까? 저희가 픽업하러 갈까요?”
“아닙니다. 공항에서 만나죠.”
“알겠습니다. 그럼 2공항에서 뵙겠습니다.”
류수완이 전화를 끊었다.
제2공항...
따지고 보면 대한항공 전용공항과 다를 바 없다. 딱 한 번 이용한 윤도였지만 그리 편하지 않았다. 쥐약은 1공항과 거리가 멀다는 점. 자가용으로 갈 때는 문제가 없지만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대책없는 2공항이었다. 생짜로 왕복 1시간 가까이 버려야하는 비효율성의 극치였다.
부릉!
스포츠카 시동이 걸렸다.
“원장님, 잘 다녀오세요.”
“실장님, 파이팅.”
승주와 연재가 응원을 보냈다. 진경태와 종일에 천영희 미화원 아줌마도 배웅길에 빠지지 않았다. 약 1주일 여정의 미국행. 힘찬 시동으로 출발을 했다.
“아... 정 실장님은 좋겠다.”
연재가 맥을 놓고 말했다.
“그럼 언니가 따라가지 그랬어.”
“얘, 누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니?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불어나 독어가 아니라 영어에 올인하는 건데...”
“지금도 안 늦었걸랑.”
“아니면 일어를 하던가. 너도 원장님이랑 일본 다녀왔잖아?”
“다음에는 프랑스나 독일 가실 지도 모르잖아?”
“인간은 언제나 현재에 사는 거 아니니. 오늘이 중요하다는 말씀.”
“오늘은 예약전화 처리하는 게 더 바쁠 거 같은데?”
“얘, 나 그렇잖아도 기분 꿀꿀한데 기분 깨게 할래?”
“예, 기분 안 깨게 할 테니 가셔서 커피나 내리시죠. 내가 내리면 향 품격이 떨어진다면서요?”
승주가 접수실을 가리켰다.
“아, 나도 미국 가고 싶었는데...”
연재는 투덜투덜 접수실을 향해 걸었다.
“헤에...”
비행기에 탑승한 정나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배당된 좌석도 1등석이었다. 윤도의 팀은 모두 6명. 정나현은 통역에 총무를 겸한 여직원과 나란히 앉았다.
윤도는 류수완과 함께였다. 그 건너편에는 제임스와 차 이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컨디션 어떻습니까?”
류수완이 윤도에게 물었다.
“피로회복제 한약을 먹고 왔습니다. 사장님도 한 팩 드릴 걸 그랬네요.”“웬걸요. 저는 선생님이 배터리 충전기입니다. 선생님만 있으면 원기탱천이라죠.”
“병원 쪽 스케줄은 어떻게 잡혔죠?”
“시차가 있으니 도착하면 내일은 쉬고요 모레부터 방문일정을 잡아두었습니다.”
“특별한 요청이 있었나요?”
“일단은 신약을 중심으로 한 혈자리 시침을 선보이겠다고 했습니다. 환자는 그쪽에서 치료 중인 사람들 중에서 자원자를 정한 모양이고요.”
“예...”
“제임스는 미국인의 혈자리와 한국인의 혈자리에 대해 궁금해 하던데 어떻습니까?”
질문하는 류수완이 제임스 쪽으로 턱짓을 했다.
“혈자리는 원래 지문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죠. 원칙적으로 기본 혈자리를 중심으로 질환과 특성에 따라 비례의 법칙으로 가감하게 되므로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혈자리도 많다면서요?”
제임스가 질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