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my God!”
“Alas!”
여기저기서 탄식이 새어나왔다. 사망진단이 내려진 두 사람이었다. 바이오 리듬이 완전히 작살난 환자들. 그런 사람을 살려냈다. 전통을 자랑하는 메사추세츠 의료팀의 의술이 아니라 동양의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응급실을 걸어나가는 윤도에게서 차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오나가나...’
윤도의 미간이 과격하게 접혔다. 권위란 대체 무엇인가? 그게 사람 목숨보다 중하단 말인가? 이런 일은 언제 당해도 치가 떨렸다.
사람 목숨...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목을 맨 사람이 12 시간을 넘지 않았다면, 명치 아래에 온기가 있다면 살려낼 수 있었다. 물에 빠져 죽은 사람도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면 살릴 방법이 있었다. 추운 곳에서 얼어죽은 사람과 굶어죽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모든 한의사가 그런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메사추세츠 응급실에 있는 건 윤도였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한의사 채윤도.
“채 선생님!”
윤도가 돌아오자 류수완과 제임스 등이 환호를 했다. 그들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도는 뿌듯한 기색도 없이 짐을 꾸렸다.
“가시게요?”
제임스가 물었다.
“Yes!”
윤도가 한 마디로 대답했다.
“왜요? 병원에 실력을 선보였으니 이제 곧 신경정신과 닥터들이 달려올 겁니다.”
“그래서 가겠다는 겁니다.”
“예?”
“제가 만든 치매신약은 당당합니다. 하지만 이 병원은 우리를 홀대하고 있지요.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비굴하게 신약의 진료시범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채 선생님...”
윤도의 선언에 류수완과 차 이사까지 사색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류수완은 윤도를 이해했다. 윤도는 최선을 다했다. 윤도의 실력이라면 다른 병원을 찾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도 군말 없이 약품가방을 집어들었다.
“갑시다. 우리는 명약을 소개하러 왔지 형편없는 약을 사달라고 구걸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러니 채 선생님 말이 백 번 맞습니다.”
“......”
차 이사는 입을 다물었다. 제임스도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시죠.”
이번에도 류수완이 문을 열어주었다. 윤도는 당당하게 복도로 나섰다. 그 뒤로 류수완과 일행들이 따라 걸었다. 이제 윤도의 걸음은 시원시원하기만 했다.
때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 한 떼의 의료진이 보였다. 신경정신과 스태프들과 병원 원장이었다. 응급실의 소식을 전해들은 신경정신과 수석 닥터. 그길로 상황을 확인했다. 그제야 윤도의 가치를 확인한 그. 부랴부랴 스태프들을 소집해 달려오던 길이었다.
원장도 그랬다. 닥터 세 명이 사망자로 판단한 두 사람을 살린 동양의 한의사. 그 실력이 궁금해 합류하던 차에 윤도 일행을 만난 것이다.
“제임스!”
닥터 그리핀이 제임스를 반겼다. 그는 신경정신과의 치프 레지던트로 윤도 초대를 추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윤도는 이미 그들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있었다.
“늦었소.”
제임스가 대표로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What?”
“늦었다고요. 우리 닥터 채는 오라는 곳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을 어제 오늘 합쳐 11시간이나 기다리게 했어요. 당신들은 복을 차버린 겁니다.”
제임스도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문은 냉정할 정도로 정확하게 닫혀버렸다.
“이봐요, 제임스!”
그리핀이 소리치지만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하강해 버렸다.
“원장님.”
그리핀이 원장을 돌아보았다.
“관리팀에 전화해요.”
원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때앵!
소리가 나지 않았다. 1층이었다.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뭐야?”
차 이사가 버튼을 눌러댔다.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장인가 본 데요?”
차 이사가 류수완을 바라보았다. 그 손이 몇 번이고 더 버튼을 눌러대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
1층 복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윤도가 시선을 멈췄다. 거기 조금 전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원장과 스태프들이 도열한 것이다. 두 무리의 위치는 바뀌었지만 다를 게 없었다. 아니, 다른 것이 있기는 했으니 분위기가 그랬다.
윤도 앞으로 원장이 한 발 나섰다.
“어제 오늘 돌발환자가 많아 결례를 저지른 거 같습니다. 이대로 보내면 저희 병원 이미지도 있고 하니 한 번만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원장이 정중하게 청했다.
“부탁합니다.”
신경정신과 수석 닥터도 원장을 뒤따랐다.
“부탁합니다!”
그리핀과 스태프 닥터들 역시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채 선생님.”
류수완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다.
“덕분에 저희 스케줄이 다 꼬이게 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저희 일정에 맞춰주겠다고 약속하시면 한 번은 양해해 드리겠습니다.”
윤도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원장으로서 약속합니다.”
원장이 보증을 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스케줄의 진행을 요청합니다.”
“들었나?”
원장이 신경정신과 수석 닥터를 바라보았다. 그것으로 긴 줄다리기는 종지부를 찍었다.
The Korea Doctor-1
The Korea Doctor-1
화면에 혈자리가 나왔다. 인체 경혈도였다. 윤도가 신약의 작용기전을 간단히 설명했다. 한의학에는 각 질환에 따른 혈자리가 존재한다. 치매에도 당연히 치료혈자리가 있었다. 그 중에서 표준으로 정한 혈자리 다섯과 다음 빈도로 활용되는 세 개의 혈자리를 포인트로 삼았다. 신약은 혈자리 인근의 세포에 특이반응을 일으키며 침을 맞는 효과를 보게 한다. 그 원리의 중심에는 활성산소가 있었다. 그건 양방이나 한방이 다를 게 없었다.
활성산소.
이름만 보면 근사해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깽판 깡패와 다르지 않다. 원래 인체가 사용하는 산소는 두 개의 산소원자가 안정적 모양을 유지하는 무해한 구조다. 그런데 사람이 많다보면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있듯이 산소에도 두 얼굴이 있었다. 육체가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다 보면 부수적으로 아주 불량한 산소가 생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불완전연소 때 나오는 매연과도 같아 인체의 중요한 물질들을 괴롭히고 변형시키는 깽판 행태를 자행한다. 활성산소는 불안정한 자신을 안정시키려고 세포핵 속의 유전자를 비롯해 지방성분, 단백질 등을 불안정한 형태로 산화시켜버리기 때문이었다.
이런 산화가 축적되면 암이 되기도 하고 노화나 각종 성인병의 발생, 진행을 촉진하는 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활성산소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항산화물질과 효소를 갖추게 되는 방향으로 진화를 해왔다.
치매 역시 활성산소의 부작용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특히 혈관성 치매가 그렇다. 혈관성 치매의 키포인트라 할 수 있는 해마 신경세포는 활성산소에 특별히 취약하다. 활성산소는 지방과 DNA 산화를 통해 해마의 신경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혈관성 치매는 이런 기전으로 발생이 되고 있었다.
혈자리 중에서는 ‘신궐’과 ‘관원혈’이 항산화 작용에 탁월하다. 이곳을 자극하면 면역기능이 증가되어 각종 질병예방이 가능하다. 치매 신약의 혈자리는 이 두 혈을 기반으로 신문혈, 내관혈, 백회혈 등의 다섯 혈, 거기에 인체기혈의 조화를 이루는 세 혈자리를 추가해 총 10여 개 혈자리에서 반응하는 것으로 치매를 공략하는 원리를 가졌다.
전체적으로는 치매치료 뿐만 아니라 기혈의 조화로 뇌신경 활성화까지 추구하는 약효였다.
설명이 끝났지만 원장 이하 스태프들의 반응은 그리 살갑지 않았다.
10여 개의 혈자리...
윤도가 화면을 짚으며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개념으로는 뜬구름 잡기에 불과한 일이었다.
“추가 설명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의 게재문으로 대신하고 환자 치료로써 설명에 가늠할까 합니다.”
윤도가 전격 선언했다. 원장과 닥터들 앞에 주어진 건 뉴잉글랜드 저널의 기사복사문이었다.
오리엔탈 닥터 채윤도.
황당.
닥터들은 두 단어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의사에 대한 표현은 많았다. 한의사에 대한 규정은 주마다 차이가 있기도 했다. 닥터들이 아는 정식 명칭은 L.Ac였다. 이외에 Oriental Medicine Practitioner, Licensed Oriental Medicine Practitioner(L.O.M.), Diplomate of Acupuncture and Chinese Herbology 등으로도 불렸다.
동양의학.
미국 의사들의 일부는 그 의술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직접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던 메사추세츠의 신경정신과 닥터들. 응급실 사건을 보고 받고 충격에 휩싸였지만 혈자리 설명을 들으니 다시 황당해질 뿐이었다.
“이제 환자에게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윤도가 말했다. 사정이 아니라 요구였다.
“준비는?”
수석 닥터가 그리핀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설명이 되었을 겁니다.”
“가시죠.”
그리핀의 보고를 들은 수석 닥터가 대답했다.
탁!
윤도가 나가고 문이 닫혔다. 그제야 류수완과 차 이사가 긴 숨을 내쉬었다. 제임스와 여직원도 그랬다.
“채 선생님, 엄청난 내공이군요.”
제임스가 혀를 내둘렀다.
“그렇죠?”
류수완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저는 간이 다 쪼그라드는 줄 알았습니다. 간단하게 분위기를 장악해 버리다니...”
차 이사 역시 혀를 내둘렀다.
“간단하게가 아니네. 차 이사와 제임스, 이번 일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거야.”
류수완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비즈니스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지 못한 두 사람에 대한 완곡한 질책이었다.
“죄송합니다. 닥터 그리핀이 호의적이라 믿고 있었던 까닭에...”
“그렇더라도 점검하고 또 점검했어야지? 공항에서부터 이게 무슨 망신인가? 채 선생이 스스로 분투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보따리를 쌌을 판이야.”
“면목 없습니다.”
차 이사와 제임스가 고개를 숙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그들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려요. 우리만 오리지널이 아닙니다. 북미시장 개척이 그렇게 간단하면 누군들 여길 입성하지 못했을까요?”
류수완이 쐐기를 박았다.
그 시간 윤도는 첫 환자의 병실에 입실했다. 여자 환자였고 나이가 많았다. 환자는 약간 몽롱한 시선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입니다. 발병한 지는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급성 치매로 시작해 조금 심각했지만 꾸준한 약물치료와 작업치료 병행으로 많이 호전된 상태입니다. 다만 아직도 약물 기운이 떨어지면 치매증세의 발현은 여전한 환자입니다.”
그리핀이 설명을 했다. 그 뒤로 수석 닥터와 원장, 기타 스태프들이 주목하고 있었다.
“슐츠.”
윤도가 수석 닥터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름은 명찰에서 알 수 있었다.
“말씀하시죠.”
“저는 이런 경우를 여러 번 겪었습니다. 테스트 말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겠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코리아 닥터... 여러분은 오리엔탈 닥터로도 아시겠지만 그들의 치료법 음양과 기혈작용 말입니다. 현대의학과 갈래가 다르니 눈으로 직접 보셔야 믿을 것 아닙니까?”
“......”
“그러니 제가 묻겠습니다. 이 환자 말입니다. 당장 현격한 호전을 보여드릴까요? 아니면 기본부터 시작해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할까요?”
“......”
슐츠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는 윤도를 만나 진료의 안전성과 신뢰성부터 확인하려던 그였다. 그러나 일이 꼬이면서 그걸 주장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알겠습니다. 현격한 호전으로 가죠.”
“지금 당장 여기서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겁니까?”
그리핀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걸 바라는 거 아닙니까?”
“아, 아무리 그렇기로...”
“그런지 아닌지는 바로 알게 될 겁니다.”
“무리는요? 무리는 없는 겁니까?”
“저도 의술하는 사람입니다. 환자를 담보로 쑈를 하지는 않습니다.”
답변한 윤도가 환자의 진맥을 잡았다. 78세의 여자...
“......!”
오장육부를 점검하던 윤도 시선이 환자의 복부로 옮겨갔다.
“이 환자 다른 질병은 무엇이 있습니까?”
“치매에 위하수, 녹내장과 고혈압, 변비와 소화불량입니다.”
레지던트가 대답했다.
“그 외에 다른 중병은 없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췌장과 비장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럽니다. 스플렉토미(splenectomy)를 했나요?”
스플렉토미는 비장절제를 뜻한다.
“맞습니다. 이 환자, 췌장암이 있어서 절제수술을 받았습니다. 비장전이 소견으로 함께 적출했고요.”“경과는 어떻습니까?”
“완치입니다. 지난 달 관련 파트에서 실시한 확인검사에서도 유의사항 없음 소견이 나왔으니까요.”
“......?”
“문제가 있습니까?”
“나중에 말씀드리죠.”
치매.
일단 본질부터 공략을 시작했다.
“침!”
윤도가 손을 내밀었다. 정나현이 장침을 내주었다. 약침액은 신약을 원심분리 시켜 하층부를 사용했다. 신약의 효과입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세 개의 장침이 부드럽게 혈자리를 찾아갔다. 신문혈과 내관혈이었다. 또 하나의 침은 당연히, 백회혈에 넣었다.
침을 모르는 사람들이니 머리 전체에 침을 넣을 수도 있었다. 때로는 숫자가 경외감일 수도 있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환자 우선. 환자의 기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니 침은 셋으로 족했다. 백회혈에서 침을 감았다. 약침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이 순간, 윤도 마음에는 이미 사심이 없었다. 긴 기다림과 고조된 감정은 진료과정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한껏 조인 침을 한순간에 풀었다. 환자의 시선이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15분.
윤도는 타이머를 장착하지 않았다. 15분 내내 환자의 기혈을 조절했다. 상초에서 중초, 하초로 내려 보내 전체 조화를 맞췄다. 그걸 두 번 반복했다. 그렇게 회복된 기로써 심장을 달랬다.
땡!
마음 속에서 타이머가 울었다. 세 침을 가볍게 발침했다.
“끝났습니다.”
윤도가 말했다.
“벌써?”
“뇌파든 뭐든 체크해보시죠. 다만...”
잠시 좌중을 둘러본 윤도가 또렷하게 뒷말을 이었다.
“검사하는 김에 방광 검사도 같이 부탁합니다. 이 부분에 암조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기는 약 0.5mm입니다.”
윤도가 검지 손가락 끝으로 크기를 가늠해 보였다.
“방광 전이란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수석 닥터가 반응했다.
“거기까지 맞으면 다음 환자부터는 누구든 한 명만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수술이나 진료는 환자의 정서에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아까 그 방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윤도가 병실을 나갔다. 정나현도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