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265)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요?”

“환자에게 약간 무리지만 피부 치료로 오장을 잡았으니 할 만합니다. 빨리 치매에서 벗어나야 고쳐진 자기 얼굴을 볼 것 아닙니까? 마음에 희망이 들어오면 회복도 가속화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정 실장님, 준비하세요.”

윤도의 지시가 떨어졌다.

딸깍!

이번에는 보호자가 나갔다. 윤도의 장침을 믿는 것이다.

몇 분만에 병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는 불안이나 의심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의 분위기였다. 닥터도 피부과 주치의에서 신경정신과의 그리핀으로 교체되었다.

침이 들어갔다. 이제는 치매약침이었다.

21명 환자의 마지막 차례...

거기 의미를 두었다. 윤도의 침은 거침없는 마무리를 지었다.

짜라락!

정나현이 타이머를 세팅했다.

“좀 쉬세요.”

그녀가 물을 내밀었다.

“내 걱정은 마세요.”

물을 받아들고 창으로 걸었다. 닥터 그리핀이 따라왔다.

“Are you OK?”

그가 물었다.

“Sure.”

윤도가 웃었다.

“손 좀 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윤도가 손을 건네주었다. 그리핀은 성배라도 받아든 양 조심스레 윤도 손을 만졌다.

“이 손에 말입니다. 청진기부터 뇌파검사기, 심전도기, CT와 MRI까지 다 들어있는 것만 같습니다. 신적인 AI 프로그램과 함께 말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옛날 편작과 화타, 유부 같은 분들은 보기만 해도 질환을 알았다고 하니까요.”

“그런 건 동양의 판타지에나 나오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판타지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니...”

레지던트의 손에는 치매신약이 들려있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하나의 호기심에 불과했을 한국의 신약.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호기심으로 그칠 수 없게 되었다. 대화하는 사이에 타이머가 벼락을 쳤다.

땡!

윤도가 발침을 했다. 환자는 다행히 잠들어 있었다.

“깨울까요?”

정나현이 물었다.

“아뇨. 중환자였는 걸요. 꿀잠보다 더한 보약이 없을 테니 우리가 기다리는 게 옳아요.”

“보호자는요?”

“모셔오세요. 우리보다 더 초조하실 테니까.”

윤도가 문을 바라보았다.

보호자를 입실 시킨 윤도는 복도에서 성수혁을 만났다. 하루 늦게 미국에 도착한 성수혁은 병원 곳곳을 누비며 윤도의 흔적을 취재했다. 그렇기에 그도 이 마지막 환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기분 어떻습니까? 미국 착륙은 그리 살갑지 않았다고 하던데...”

“시쳇말에 첫 끝발 개 끝발이라는 말이 있다더군요.”

“낙관하시는군요?”

“기자님까지 왔는데 망신을 당할 수야 없으니까요.”

“시간은 언제 됩니까? 이국에서 만났으니 저녁 정도는 같이 먹어줘야죠?”

“곧 일이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시간을 잡죠.”

“으음, 그럼 저는 독도 표기 건이나 추진하고 있어야겠군요.”

“아, 독도 표기 제보가 있었다고 했죠?”

“한인회 제보인데 여기 시청과 의회 지도에 독도가 빠졌다더군요. 한인회장단 등이 의견을 냈는데 여기 부시장이 일본계 미국인이라더니 씨도 안 먹힌다네요. 그러니 몇 번 쑤셔보고 안 먹히면 장기전이라도 펼쳐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게 기자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멋진 생각이군요.”

“아, 그게 질병이라면 채 선생님 장침 솜씨라도 좀 빌리는 건데...”

“원장님.”

성수혁이 아쉬워하는 사이에 정나현이 병실 문을 열고 윤도를 불렀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인사를 남긴 윤도가 병실로 들어섰다. 엘리자베스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허공을 더듬었다. 지향이 없던 눈이 조금씩 자리를 찾았다. 치매 약침을 맞기 전보다 맑은 눈동자였다.

“엄마.”

엄마를 알아보는 엘리자베스. 보호자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엄마 알아보네?”

“당연하지. 누구 엄만데? 그런데 여긴 어디야?”

“병원...”

“저 분들은?”

“네 병 고쳐주신 닥터.”보호자가 윤도를 돌아보았다.

“내 병?”

그녀의 손이 얼굴로 올라갔다. 그 손은 보호자가 막았다.

“잠깐만 기다려. 아직은 손대면 안 돼.”

보호자가 손거울을 꺼내 엘리자베스에게 보여주었다. 엘리자베스가 시선을 가다듬었다. 거울 안에 얼굴이 들어왔다. 피부과에서 수독포로 조치하는 드랩(Drap)을 했지만 투명 거즈이기에 얼굴 형체는 고스란히 보였다.

“엄마?”

“네 얼굴이야. 저기 코리아에서 오신 닥터께서 네 저주를 날려버렸어.”

“엄마...”

“꿈 아니야. 엄마가 몇 번이나 확인했거든. 이건 현실이야.”

“그럼 내 얼굴 피부병이?”

“그래. 이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어. 네 치매도 저 닥터께서 한 방에 날려버렸고.”

“맙소사. 이게 내 얼굴... 그리고 꿈이 아니라고?”

“그래... 네 얼굴...”

“엄마...”

“엘리자베스.”

“......!”

엘리자베스. 그녀는 격정적인 침묵으로 감격을 누렸다. 소리나 비명을 대신하는 건 굵은 눈물이었다. 그 눈물이 멎고 또 멎을 때까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절망이 사라진 자리를 보고 또 보았다.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서 선생님께 인사해. 백 번을 해도 모자랄 거야.”

보호자가 엘리자베스 등을 부축해 주었다.

“선생님...”

상체를 세운 엘리자베스가 윤도를 바라보았다.

“아직 100%는 아닙니다.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침을 맞아야하고 한국에서 오는 탕약도 당분간 드셔야합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뭐라도... 뭐라도 시키는 대로 할 겁니다.”

“오래 고생하셨어요.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고맙죠. 한의사든 의사든 환자의 쾌유만한 에너지가 없으니까요.”

윤도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예를 갖추었다.

다음 날, 얼굴 피부갑착증에 대한 추가 시침이 끝났다. 정나현이 엘리자베스 얼굴 상처에 붙었던 거즈를 떼어냈다. 수줍은 새살이 그녀를 맞이했다.

“미러클!”

그녀는 다시 한 번 감격에 떨었다.

그 감격의 꼬리를 물고 보도진이 들이닥쳤다. 주치의가 윤도에게 기자회견 허락의 의견을 묻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을 고쳐준 건 윤도이기 때문이었다.

“감염방지원칙만 지킨다면 허락합니다.”

윤도가 정리를 했다. 일반적인 치료라면 외부 인사들과의 접촉이 좋을 리 없었다. 감염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도가 쓴 건 그래도 영약이었다. 놀라운 세포 회복력이기에 약간의 주의만 기울이면 되었다. 그렇다면 보도진을 맞이하는 게 좋았다.

첫째는 엘리자베스에게 좋았다.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던 보도진과 연예전문기자들. 그녀가 왕년의 스타로 회생 가능함을 선포해야 했다. 팬들의 관심이야 말로 엘리자베스에게는 제2의 목숨이었다. 그건 왕성한 생기가 되어 얼굴회복을 도울 일. 윤도가 막을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는 윤도 자신이었다. 응급실의 개가와 치매환자의 개가는 병원에 연기처럼 번지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큰 병원이기에 모든 사람이 알지는 못했다. 그런 차에 엘리자베스가 화제에 오른다면? 그 또한 굉장한 반향이 될 수 있었다.

딸깍!

윤도를 바라본 보호자가 병실 문을 열었다. 미리 순번을 정한 보도진 20여 명이 들어왔다. 모두 멸균복을 입은 차림이었다. 플래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질문과 카메라, 멸균캡을 씌운 마이크가 엘리자베스 앞에서 춤을 추었다. 엘리자베스가 웃었다.

“원장님.”

정나현이 검색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한참 나갈 때 사진이었다. 지금 카메라 앞에서 행복한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살아있는 인간 조각상 ‘다프네’-1

살아있는 인간 조각상 ‘다프네’-1

“한국에서 온 한의사 채윤도입니다.”

윤도도 포토 라인에 섰다. 당연한 일이었다.

“불과 하루 만에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원리로 치료를 하신 겁니까?”

질문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인간의 몸에 발생하는 질병은 오장육부의 기혈부조화로 발생됩니다. 이 오장육부의 기를 북돋아 면역을 증강하고 활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새 세포의 성장촉진을 유도한 것입니다.”

“기라고 하면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그 기 말입니까? 하늘을 날고 장풍으로 거목을 쓰러뜨리는?”

“그것도 기에 속합니다만 제 기는 혈자리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혈자리?”

“인간에게는 누구나 기의 통로인 경락이 있습니다. 경락은 경맥과 낙맥으로 나뉘고 다시 12경맥과 기경8맥, 12경근 등으로 나뉩니다. 이러한 기의 통로에는 경혈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장육부와 경락의 기혈이 모이는 곳으로써 인체 각 기관의 정보를 알 수 있으니 침의 자극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번 엘리자베스의 피부 질환은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그녀의 얼굴 피부 질환 원인은 폐 기능 저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체 각부의 기관은 홀로 서는 게 아니니 폐가 나빠질 때는 신장과 비장 역시 높은 확률로 기능이 떨어집니다. 나아가 그녀는 심장의 기혈까지 부조화를 이루었기에 오장의 조화를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약침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침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높지만 혈자리에 특이하게 반응하는 약침을 사용하면 더 빠른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경우에는 오장의 기혈조화와 약침의 반응조화가 최적의 조건으로 이루어졌기에 최상의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얼굴의 흉측한 피부염 뿐만 아니라 치매까지도 함께 치료한 것으로 아는 데요?”

“치매 역시 특히 혈자리에 약침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시침을 했습니다.”

“약침의 원료가 본인이 직접 개발한 신약이라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그 약 샘플을 원심분리해서 농축액으로 사용했습니다.”

“우!”

보도진 속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거침없이 폭주하는 윤도. 뒷줄에서 지켜보는 정나현과 류수완 등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기자회견장의 윤도는 치료하는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치료하는 모습이 정중동의 호수 같다면 이제는 활력으로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았다.

“그 신약으로 이 병원 신경정신과 치매 환자 전부를 치료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이 질문의 주인공은 한국인 성수혁이었다. 유창한 영어 속에서 다소 다른 악센트로 튀어나온 질문. 그렇기에 모든 기자들이 성수혁을 바라보았다.

“전부는 아니고 21명 중의 18명입니다. 나머지 두 명은 특별한 이유로 시침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이유란 무엇입니까?”

“그건 제가 대답할 성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윤도의 시선이 배석한 신경정신과 수석 닥터에게 옮겨갔다. 답변을 넘긴 것이다. 기자들의 시선도 함께 움직였다. 원장의 눈짓을 받은 수석 닥터가 일어섰다.

“침 치료를 받지 않은 두 사람은 종교상의 신념이었고 대다수 환자는 완치에 가까운 회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머지 환자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어 고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완치에 가까운 회복이라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성수혁의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현재 우리 의료진의 판단으로는 완치지만 판정에 신중하느라 진단을 확정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 결과를 도출한 건 전적으로 닥터 채윤도의 신약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성수혁이 질문을 끝내고 앉았다. 감추고 있지만, 흡족한 표정이었다. 기자회견은 놀라운 반응 속에 끝이 났다. 하지만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가 가져온 꽃이 그 연결선이었다.

“......!”

그걸 받는 순간, 윤도는 꽃의 바다를 보았다. 꽃의 행렬이 복도까지 늘어선 것이다.

“엘리자베스의 컴백을 바라며 보내온 팬들의 성원입니다. 이 꽃의 주인은 동양에서 온 닥터 채윤도가 되는 게 맞을 거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다.

펑펑!

다시 기자들의 카메라가 불꽃을 뿜었다. 꽃은 수만 송이에 달했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우려한 병원 측이 방문을 막자 병원 담장에 쌓았다. 어머니가 가져온 건 엘리자베스의 팬클럽이 보낸 꽃일 뿐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기자들의 카메라가 잠시 숨을 고르자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다시 연기를 하게 된다면 닥터 채윤도가 만든 신약 CF를 무상으로 찍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무보수로 말입니다. 그게 닥터 채윤도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며...”

펑펑!

카메라가 다시 폭발했다. 윤도에게도 엘리자베스에게도 초대박 멘트였다.

“두 분 함께 서주세요.”

기자들이 어머니를 윤도 쪽으로 밀었다. 윤도와 어머니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병실에서는 엘리자베스와, 기자회견장에서는 어머니와, 그때마다 모녀의 시선에는 고마움이 출렁거렸다.

기자들이 떠나고서야 겨우 휴식을 취했다. 겨우 숨을 돌린 순간에 병원장의 호출이 들어왔다.

“가보세요.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봅니다.”

류수완과 제임스가 등을 밀었다.

똑똑!

병원장실에서 노크를 했다.

“어서 와요.”

문은 병원장이 직접 열었다. 소파에는 중년의 남자 손님이 한 사람 와 있었다.

“인사하세요. 여긴 카터입니다.”

병원장이 손님을 가리켰다. 서로 인사를 나누자 홍차가 나왔다.

“완전히 센세이션이군요.”

원장이 웃었다. 흡족함이 깃든 미소였다.

“초대해주신 덕분입니다.”

“이 분은 우리 병원의 후원을 맡고 계신 분의 책임 집사입니다.”

원장이 손님을 소개했다.

“예...”

“좀 먼 곳에 계시는데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간청하시길래...”

“......”

“직접 말씀드리시죠? 카터. 저는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원장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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