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도가 물었다.
“어깨가 또 뻣뻣해져요.”
리사가 몸을 웅크렸다.
“요즘 들어 가끔씩 저래요. 한참 그러다 차츰 펴지던데 그냥 계속하세요.”
부인이 윤도에게 말하는 동안 장침 하나가 리사의 인중으로 들어갔다.
“이제 괜찮을 거야.”
윤도가 침을 뽑았다.
“어, 진짜네?”
리사 눈이 휘둥그레졌다. 등뼈가 뻣뻣해지면서 통증이 오는 데는 인중이 최고다. 침을 놓거나 뾰족한 것으로 자극해도 좋아진다.
이제 진단은 끝났다. 리사의 면역력은 바닥. 신장과 비장, 골수의 기능도 바닥. 윤도 머리 속에 들어선 로드맵은 간단했다. 면역력 강화-피부재생력 증가-면역 정상화의 코스였다. 물론, 말로는 쉬웠다.
그러나 현실은...
“실장님.”
윤도 목소리가 담담하게 나왔다. 한국말이었다.
“네.”
“제가 전에 배를 열어 장기를 씻거나 병소를 잘라내고 이어서 몸 안에 넣어주는 유부와, 조조의 머리를 열자는 화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죠?”
“예.”
“결국 화타는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
“오늘 우리, 그에 버금가는 모험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
“이 집 보셨죠? 아마 미국 최상급 집안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치료가 잘못되면 후폭풍이 거셀 거란 말이군요?”
“예. 공항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는 깜냥도 되지 않는... 어쩌면 진짜 미국 감옥에서 평생을 썩게 될 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동의서와 각서를 미리 받아두면 되잖아요?”
“그렇게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면피가 되는 건 아니죠.”
“원장님은 어떠세요?”
“저는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다만 위험도가 따르는 건 명백합니다.”
“그럼 저는 상관없어요. 무조건 원장님 판단에 따릅니다.”
“실장님!”
“저는 원장님 믿어요. 설령 파국을 초래한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고요.”
“고맙습니다. 다행히 변호사 비용은 충분히 벌어두었으니 그건 제가 책임을 지죠.”
합의(?)를 끝낸 윤도가 부인에게 돌아섰다. 치료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윤도가 부족한 영어표현은 정나현이 거들었다.
“제 장침은 음양오행의 원리와 기혈의 순환에 입각합니다. 한의학이라는 게 양방과 달라 국부적인 치료가 아니라 몸 전체의 기혈 조화에 목적을 둡니다. 따라서 양방의 기준으로 바라보시면 안 되며...”
설명은 길지 않았다. 요점은 치료 가능성은 있지만 위험부담도 있다는 것. 그 점을 강조했다.
“그렇군요.”
설명이 끝나자 부인이 리사를 바라보았다. 어린 리사는 나무 손가락을 움직이며 부인의 시선을 끌었다. 환자지만 고작 아홉 살. 병상의 눈매였지만 천진난만함이 배어나왔다.
“실은 닥터께서 오기 전에 당신 자료를 보았습니다. 많은 기적을 행하고 다녔더군요.”
“......”
“오늘 우리 가족이 기대하는 것도 그 기적이에요. 그러나 기적은 그만한 대가가 필요하기도 하겠지요.”
“......”
“리사.”
부인이 딸에게 다가섰다.
“네, 엄마.”
“이 닥터께서 네 나무 갑옷을 벗겨주실 거야. 어쩌면 조금 아프거나 위험할 지도 몰라.”
“네...”
“닥터를 믿고 너를 맡겨보겠니?”
“엄마 아빠 생각은요?”
“엄마는 한 번 해보고 싶어.”
“그럼 저도 Yes예요.”
리사가 대답했다. 부인은 딸의 이마를 쓸어주고는 영문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그런데...
찌익!
윤도가 그 자리에서 동의서를 찢었다.
“닥터?”
놀란 부인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저를 믿어주는 마음으로 충분합니다. 자고로 의술이란 핑계에 기대면 비겁해질 수 있지요. 의술은 비겁해지면 안 됩니다. 설령 위험성이 있더라도 살릴 수 있는 환자라면 신념을 가지고 치료해야 하는 것. 그게 제 신념입니다.”
윤도가 부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부인의 동공은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닥터는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닥터와 포스 자체가 다른 닥터였다.
“그럼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윤도가 가운의 소맷깃을 걷었다. 부인은 문을 닫고 나가고 재택 간호사가 남았다.
‘후우!’
윤도가 호흡조절을 하며 나무 갑옷을 바라보았다. 인체의 거의 전부를 덮어버린 나무조각들. 얼핏 보면 방탄갑옷처럼도 보이는 나무인간 증후군의 외양.
채윤도...
눈에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정작 무서운 병은 밖으로 나오지 않아.
자기 최면을 거는 사이에 귀 소독이 끝났다. 군데군데 간신히 드러난 피부도 일단 소독을 했다. 귀 위의 주상와를 당기며 시침의 시작을 알렸다. 귀에서도 사관혈을 잡을 수 있었다. 주상와 지점에 손가락과 손목혈이 있는 까닭이었다.
합곡혈 위치에 호침을 넣었다. 평소보다 많은 주의를 기우렸다. 이건 인체의 축소판에 달린 혈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게 조율하자 침감이 기혈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나무는 뿌리를 죽여야지.’
밖으로 흉하게 삐져나온 질병의 형체. 복잡하게 생각지 않고 원칙과 기본에 따르기로 했다. 병세에 현혹되면 진단의 갈래가 복잡해질 뿐이었다.
이 건에는 그저 처음부터 결정타가 필요했다. 단 한 방에 병세를 몰아붙이고 서서히 걷어낼 수 있는 강력한 방법.
“약침액 1번 주세요.”
윤도가 손을 내밀었다. 1번은 산해경의 영약 낭이었다.
<중산경의 낭-요절하지 않는 영약>
윤도는 왜 낭을 앞세운 걸까? 정나현은 그 속내를 알 리 없었다. 그녀는 그것이 약재의 진액을 뽑은 약침으로만 알았지 산해경의 영약인 줄도 몰랐다.
윤도는 오늘따라 비장했다.
‘요절하지 않는 영약.’
이 약을 앞세운 건 소녀가 요절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나온 까닭이었다. 아니, 윤도는 지금 소녀를 요절 시킬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잠시, 아주 잠시 동안...
호침 하나가 이침혈을 뚫었다. 관원혈자리에 대비되는 곳이었다. 침감으로 확인을 했다. 관원혈에 비할만 했다. 또 하나는 머리혈이었다. 확인이 끝나자 두 곳에 낭의 약침을 찔렀다. 기도하듯 앉아 15분을 기다렸다. 그러다 소녀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소녀의 눈에는 걱정을 대신해 호기심이 찰랑거렸다.
“리사.”
“네?”
소녀가 답했다.
“혹시 동화책 좋아하니? 아니면 판타지 영화 같은 거?”
“좋아해요.”
“지금 우리가 그 주인공이야.”
“저는 비운의 공주고 선생님은 저를 구하러 온 마법사요?”
“응.”
“그럼 그 침이 마법의 지팡이겠네요?”
“응, 이거 알고 보면 굉장한 마나의 집합체거든. 마나 알지?”
“아까 입술 위 쪽에 들어갈 때부터 알았어요. 보통 침이 아니라는 거.”
“나무 갑옷 갑갑했지?”
“네.”
“우리 함께 힘을 합쳐 못된 마녀의 마법을 물리쳐보자.”
“네, 나의 마법사님.”
리사가 답했다. 긴장이 사라진 목소리였다.
요절방지의 침은 끝이 났다.
“잠깐 힘이 빠질 거야. 마법 포션이 몸에 퍼지는 거니까 무서워할 거 없어.”
윤도의 설명과 함께 새 침이 들어갔다. 오장육부의 자리에 가지런히 박혔다. 그 침의 마지막이 삼초혈자리로 들어가자 리사가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살았으되 살아있지 않은 목숨, 그런 상태가 된 것이다.
“원장님.”
정나현 목소리에 우려가 묻어났다. 리사는 정신을 잃은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윤도는 리사의 장기에서 기혈의 바닥을 훑고 있었다. 채우는 게 아니라, 가라앉은 기혈을 완전히 몰아내는 침법이었다.
<리뉴얼>
말하자면 기혈의 물갈이.
그걸 그리는 것이다.
“말했잖아요. 모험하게 될 거라고.”
윤도가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
“이 순간 저는 유부입니다.”
“......!”
정나현은 숨통이 막혔다.
유부!
오장육부에 병이 들면 배를 열어 장부를 씻고 잘라낸 후에 다시 닫아준다던 고대의 명의 유부.
채윤도.
과연 어쩔 셈일까?
기혈 리뉴얼-2
기혈 리뉴얼-2
후웅!
오장의 기혈이 한바탕 몸부림을 토했다. 그러더니 차례 차례 기혈의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장이 고요해지고, 간장이 고요해지더니 폐장과 심장도 그 뒤를 이었다. 단 하나 남은 건 신장... 동시에 모든 혈문 역시 소리 없이 닫혔다.
철컥!
철컥!
샛문이나마 열린 건 단 두 개였다. 생명의 터전으로 불리는 하단전 관원과 상단전 뇌. 단 두 개의 혈자리만이 샛문을 연 채 리사의 목숨끈을 잡아주고 있었다.
그러나 윤도는 사실, 신장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것은 리사의 목숨이 걸린 일대 모험이었다. 자칫 침감을 잘못 조율해 신장 정기의 마지막 줄마저 끊어버린다면 리사는 진짜 ‘다프네’가 되는 것이다.
정(精).
윤도의 호침이 붙잡은 건 그것이었다. 목숨이 나올 때 처음으로 생긴 정. 출생 이후에는 신장에 똬리를 틀고 목숨을 좌우하는 그 정... 그렇기에 한방에서는 신장이 원기를 주관하며 생명을 좌우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명문(命門)이라고도 말하고 있었다.
한 올.
또 한 올.
윤도는 정의 한 줄기가 남을 때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이마와 어깨를 타고 내린 땀이 가운을 적셨지만 그건, 정나현조차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재택 간호사가 윤도를 가리키자 ‘쉬잇’ 하고 주의를 주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윤도가 자신의 모든 것을 퍼붓고 있다는 걸. 이럴 때는 바람조차도 윤도를 건드릴 수 없었다.
‘다 왔다...’
윤도는 스스로를 치열하게 제어했다. 사기로 가득한 리사의 기혈이었다. 면역체계가 무너지며 잡것들의 놀이터가 된 오장육부였다. 오염되고 너덜거리는 면역계였다. 이 안에 든 건 모조리 밀어내야했다. 최후의 한 올까지도 끊어내야 했다.
꿈틀.
기혈이 빠져나가자 리사의 몸 곳곳에서 불규칙한 경련이 일었다. 팔 다리의 근육이, 복부의 위장이, 그리고 목과 얼굴근육들까지.
‘아홉...’
마침내 윤도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제 윤도가 붙잡고 있는 명문의 목숨 가닥은, 숫자로 환산하면 딱 열 줄이었다.
‘여덟...’
한 환자의 목숨을 좌우하는 카운트 다운. 우주를 향한 첫 우주선의 발사 때가 이토록 비장했을까?
‘일곱...’
한 올 한 올 골라 떠나보내는 윤도는 이미 리사의 몸과 하나였다. 그 손 자체가 그녀의 신장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여섯...’
거기서 턱선에 걸린 땀이 손등에 떨어졌다. 윤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바람 한 줄기의 방해도 위태로울 수 있는 일. 미동으로 인해 세 줄기가 빠져나가버렸다.
‘셋...’
호흡이 얼어붙어버렸다. 조금만 더 움직였어도 목숨줄 전부를 놓을 뻔한 일이었다.
둘...
하나...
윤도 손이 멈췄다. 침감을 멈추고 그대로 침끝을 밀어넣었다. 귀는 얇다. 밀어 넣을 부분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그건 보통 한의사의 일이었다. 윤도의 신침에게 귀의 부피는 호수도 되고 강물도 되었다. 어렵긴 하지만 세밀한 조절까지 가능했다.
환자의 목숨 줄기는 이제 한 올이 남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미 운명했을 일. 그러나 요절을 막는 산해경의 영약 덕분에 한 올의 생명줄로 버텨내는 육신이었다.
그렇다고 끝은 아니었다. 이제는 전지적 시점으로 바꾸었다. 신장을 마지막으로 떠난 정의 줄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이 정의 줄기가 인체의 경락을 한 바퀴 돌아 빠져나가는 순간, 그때가 바로 윤도의 본격 치료가 되는 시점이었다.
14분 22초...
마침내 경락이 리사 몸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이 순간 리사의 몸은 완벽하게 비어 있는 셈이었다.
윤도가 다른 침을 받아들었다. 차 이사가 공수해온 노화세포 제거물질 RIG001이었다. 약침 11개가 오장육부의 위치를 찔렀다. 화침으로 들어간 호침이 불 꺼진 오장에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한 올의 생명줄도 놓아버렸다.
이 생명줄이 경락을 나가기 전.
새로운 기혈이 시작되어야했다.
후끈 달아오른 윤도는 쉴 새도 없이 움직였다.
화악화악!
오장에 불이 들어왔다. 사기가 다 빠져나간 탓인지 생기가 오롯하게 느껴졌다. 화침들은 맹렬했다. 오장의 온도를 높이는 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안정을 위한 조치였다. 이건 암의 치료와도 같아 심부의 온도가 40도 정도로 올라가면 면역력의 상승에 박차가 될 일이었다.
신장-비장-간장-심장-폐장.
다섯 장부의 기혈을 고르게 조절했다. 그러나 신장의 조절은 쉽지 않았다. 별 수 없이 호침을 하나 더 박았다. 그제야 신장이 오장과 같은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윤도의 손은 더욱 빨라졌다. 몇 번의 시침으로 상세 파악한 이침 혈자리에 호침이 들어갔다. 일반적인 사마귀라면 혈해혈과 곡지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사의 사마귀는 그 정도로 만만한 병소가 아니었다.
면역증강!
이제 절대명제가 남았다. 유부처럼 배를 가르지는 않았지만 침으로써 오장의 기혈을 씻어냈다. 윤도의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면 리사의 기혈은 통째로 교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 기혈에 면역 파워를 채워줄 타임이었다.
이 역시 신장부터 시작했다. 신수혈 자리에 호침을 넣었다. 다음으로 중완혈을 잡았다. 합곡혈과 대추혈과 승산혈과 삼음교에도 침을 꽂았다. 용천혈을 찌르고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 머리는 사신총혈과 백회혈이었다. 누가 귀가 작다고 했을까? 가지런히 이침으로 찔러대는 윤도를 보면 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윤도가 다스려가는 혈자리의 공통점은 면역력을 높이는 혈이었다. 그 침감의 온기를 전체 경락으로 퍼트렸다. 면역력을 강화하는 침감으로 오장을 푹 적시려는 것이다.
잘 젖지않았다. 오래 전에 파괴된 기혈의 조화였다. 그렇기에 침감을 올려도 올라가지 않고 내려도 내려가지 않는 혈자리들이 많았다. 반복되는 시도 속에서 이유를 찾았다. 리사의 면역력은 인체를 대칭으로 봤을 때 우측이 더 치명적이었다. 좌측은 기에 속하고 우측은 혈에 속한다. 좌는 양에 속하고 우는 음에 속하기에 정기의 확신이 어려운 것이다.
‘중완혈...’
귀의 중심으로 시야를 옮겼다. 위장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장침으로 주세요.”
윤도가 호침을 밀어냈다. 처음으로 장침을 동원하는 윤도였다. 정나현은 주춤거렸다. 이침의 어디에 장침이 들어갈 수 있을까? 자칫 귀를 천공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반대편 귀 쪽으로 옮겨가 장침을 밀어넣은 윤도는 중완혈의 위치에서 강력한 침감을 행사했다.
중완혈...
하늘의 신기가 인간의 몸에 들어간다는 혈자리다. 그렇기에 중완혈은 놀라운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침 끝을 어느 방향으로 놓느냐에 따라 침감이 달라졌다. 윤도가 기댄 건 그것이었다.
‘후웁!’
장침 끝을 후끈한 화침으로 바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안 되면 될 때까지 반복했다. 면역증강 혈자리에 꽂힌 침들은 마치 수동 발전기들처럼 불이 들어오다 허무하게 꺼지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