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265)

“원장님...”

정나현이 슬쩍 신호를 보내왔다. 리사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군데군데 드러난 혈색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운명했을 수도 있는 리사. 그 목숨을 잡고 있는 건 영약 ‘낭’의 위력이었다. 그러나 영약이라고 불사는 아니었다. 어느 순간, 그 약빨이 떨어지기 전에 윤도의 시도가 먹혀야했다.

다시 한 번 침감을 감았다 풀었을 때였다. 손끝으로 봄날의 생기가 들어왔다. 동토의 땅을 풀어주는 다사로운 햇살의 느낌이었다.

“......!”

윤도가 파뜩 고개를 들었다. 한순간 리사의 나무 갑옷이 환상처럼 흔들렸다 멈췄다. 꿈인가?

멍한 시선으로 정나현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실장님, 봤어요?”

“네.”

“나무 갑옷이 따로 움직였어요.”

“알았어요. 계속 주목하세요.”

윤도가 다시 침을 감았다 풀었다. 이번에도 나무 갑옷이 흔들 반응을 했다.

“원장님!”

“잠깐만요.”

장침 옆으로 또 두 개의 장침이 더 꽂혔다. 신장과 비장 자리였다.

면역에 관계하는 림프구는 골수와 비장에서 생성된다. 골수는 신장의 영향을 받으니 면역증강을 위한 지원이었다.

후웅!

두 침은 들어가기 무섭게 맑은 기운으로 물들었다. 그게 신호였다. 리사 몸의 나무 갑옷 전체가 부르르 진동을 시작했다.

“원장님!”

“닥터!”

이제는 재택 간호사까지 시선을 집중 시켰다. 윤도의 두 손은 신장과 비장혈에 꽂은 장침 위에 있었다. 두 침에 혼신의 화침을 밀어넣었다.

면역증강.

그 과제에는 건강한 백혈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백혈구는 무한정 많아서도 안 될 일이었다. 백혈구 또한 과량으로 생산되면 엄청난 비극을 발생한다. 치명적인 백혈병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치료가 힘들었다. 기혈의 조화에 더해 면역 증강. 나아가 백혈구를 이상적인 수준으로 콘트롤 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번쩍!

거기서 리사가 눈을 떴다.

“조금만 참아. 이제 마법의 끝자락이야.”

윤도가 찡긋 윙크를 날렸다.

“선생님.”

“조금만...”

“아니... 다리가 너무 가려워요.”

“알았어. 그러니까 조금만...”

윤도는 오직 침감의 조율에만 집중했다. 신장의 정기가 자리를 찾는 게 느껴졌다. 건강한 아이들의 정과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제 비장도 그 무렵에 가까웠다. 마지막 조율을 마친 윤도가 두 손을 놓았다.

그러자!

“악!”

리사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리사!”

재택 간호사가 입을 쩌억 벌렸다.

“원장님!”

정나현도 그랬다. 윤도의 시선이 두 사람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옮겨갔다. 다리였다. 손보다도 더 흉측한 나무 갑옷이 무성하게 자란 발. 그 발에 달린 갑옷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윤도가 그걸 잡았다. 나무 피부에는 신경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당기거나 부러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손이 닿자 나무 갑옷이 저절로 밀려나 버렸다.

“......!”

윤도가 숨을 멈췄다. 나무 갑옷 사이로 엿보이는 신생아 같은 새살. 아까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었다. 윤도가 조심스레 나무 갑옷을 들어올렸다. 갑옷은 아무 저항도 없이 불쑥 따라올 라왔다.

“악!”

이번 비명은 재택 간호사의 것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리사의 손 쪽에 있었다. 손에도 발과 같은 현상이 이렁나고 있었다. 치렁치렁 매달렸던 나무 갑옷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리사의 흰 손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원장님!”

정나현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

“미국 감옥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데요?”

윤도가 웃었다.

“원장님은 정말...”

정나현은 밀려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나무조각 제거하세요. 절대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사모님!”

그 사이에 재택 간호사가 문으로 뛰었다. 윤도가 그녀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아직 아닙니다.”

윤도의 눈빛은 엄숙했다. 간호사는 감히 그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손을 씻고 멸균장갑을 꼈다. 윤도도 나무 갑옷을 걷어내기에 동참했다. 갑옷들은 베일을 벗겨내듯 얌전하게 제거되었다. 목과 얼굴의 갑옷까지 걷어내자 비로소 리사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나무로 변한 강의 님프 다프네가 원상복구된 것이다.

“너무 시원해요.”

리사가 말했다.

“리사...”

재택 간호사는 감격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혹시 작은 슬라이드 있나요?”

윤도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혈액도말용 슬라이드 몇 개를 가져왔다. 리사의 손끝을 조심스레 천자해 피 한 방울을 슬라이드 위에 떨구었다. 다른 슬라이드를 집어 대각으로 대고 밀었다. 혈액도말이었다. 도말이 마르자 그 위에 커버 슬라이드를 덮었다.

현미경 재물대에 올렸다. 400배로 확인하고 다시 1000배로 확인했다. 윤도가 보는 건 백혈구였다. 그 중에서도 림프구였다. 전체 분포가 좋았다. 몰포로지(Morphology), 즉 혈구의 모양도 좋았다.

오케이.

윤도가 손가락으로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정나현과 간호사가 피부보호 조치를 시작했다. 갑옷을 밀어내고 돋아난 새살이라 감염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끝났습니다.”

정나현이 보고를 해왔다. 그때까지도 윤도는 리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돌발에 대한 만반의 대비였다.

“내 마법 어때?”

윤도가 리사에게 물었다.

“최고예요.”

“고생했어요. 공주님.”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그새 공감이 형성된 두 사람이었다.

“이제 부모님을 모셔 오셔도 됩니다.”

윤도가 비로소 간호사에게 허락을 내렸다. 머잖아 대저택이 무너질 듯한 비명이 울린 건 묘사할 필요도 없었다.

“여보, 여보, 빨리 좀 와보세요. 우리 리사가... 리사가...”

부인의 목소리는 윤도가 나와 있는 정원까지 흔들어댔다.

“정원수가 괜히 더 푸짐해 진 거 같지 않아요?”

윤도가 정나현에게 말했다.

“정말 그런 거 같네요. 리사에게 매달렸던 나무껍질들이 다 여기로 날아와 붙었나 봐요.”

“고생했어요. 실장님, 그리고 믿어줘서 고마워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원장님의 침술. 리사 말처럼 정말 한 편의 마법이었어요.”

정나현의 눈에는 감동이 가득했다. 저택을 넘어온 햇살이 윤도의 두 손을 위로하려는 듯 손등 위에서 찰랑거렸다.

노벨상 후보 앤드류 박사의 공동연구 제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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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윤도는 쉬임없이 치료에 전념했다. 리사의 새 정기를 조절하며 전체 장부과 경락에 기혈의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제부터는 장침사용도 가능해졌다. 주무기의 회복. 이제는 거칠 게 없는 윤도였다.

신장.

알고 보면 신장이 마법사였다. 윤도는 리사의 신장에 담긴 마법의 마나(?)를 백 배 활용했다. 신장의 마나는 비장을 조화롭게 만들었고 폐를 윤택하게 해주었다. 부러진 톱니바퀴로 돌아가던 오장의 톱니는 이제 완전해졌다. 모든 것은 신장에서 올라온 맑은 생기 때문이었다. 원수가 맑아지니 혈자리의 기운도 함께 맑아졌다. 그러나 약간의 부조화는 있었다. 수 많은 혈자리들의 상태가 고르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 혈자리 역시 꼼꼼하게 짚어주었다.

리사는 매시간 다프네를 닮아갔다. 지켜보던 부인의 입에서는 ‘God’이라는 단어가 멈추지 않았다.

“원장님!”

24시간 체온 체크를 끝낸 정나현이 달려왔다.

“정상?”“네, 시간대별 체온이 거의 균등해졌어요.”

정나현이 외쳤다.

“면역검사 보낸 혈청은요?”

“그것도 정상치에 가깝다고 하네요.”

정나현이 재택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그 결과는 그녀가 알아온 것이었다. 윤도는 비로소 마무리 시침으로 꽂았던 장침을 뽑아냈다.

“치료가 끝났습니다. 공주님.”

윤도가 허리를 조아렸다. 영화에서 보던 마법사 같은 인사였다.

“이제 다시는 제 몸에서 나무가 자라지 않는 건가요?”

“그럼요.”

“신기해요. 자르고 또 잘라도 불사신처럼 다시 나던 나무였는데...”

리사는 자신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제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하얀 손등. 여전히 믿기지 않는 기적이었다.

“리사.”

대형 지도 앞에 선 윤도가 리사를 돌아보았다.

“네, 마법사님.”

“마법사가 천리안을 가졌다는 건 알고 있지?”

“네.”

“여기 말이야. 이 지도... 여기 뭔가가 하나 빠졌거든. 리사의 치료 기념으로 내가 그려 넣어도 될까?”

“그럼요. 뭘 그려 넣을 건데요?”

리사가 호기심을 보였다.

“여기 말이야. 여기가 마법사의 나라거든. 그런데 여기 작고 아름다운 섬이 빠졌어. 이름은 독도.”

윤도가 울릉도 옆에 작은 점을 찍었다.

“나중에 가보고 싶어요.”

“그러렴. 아마 반하게 될 거야.”

윤도가 웃었다.

“리사의 아빠가 선생님 뵙기를 원하고 있어요.”

부인이 윤도를 재촉했다. 그녀는 진작부터 치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윤도가 부인의 뒤를 따랐다. 리사의 아빠 리처드슨은 웅장한 거실에 있었다.

“닥터 채.”

윤도가 모습을 드러내자 한달음에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우리 리사의 은인입니다.”

“리사가 잘 견뎌준 덕분입니다.”

윤도의 대답은 겸허했다.

“리사는 언제부터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새살이 연약하니 일주일 정도면 되고 야외활동은 한 달 정도 후부터 하면 될 거 같습니다.”

“일주일...”

리처드슨은 들떠 있었다. 그 사이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확인하셨습니까?”

리처드슨의 목소리가 바로 높아졌다.

“그렇죠? 저도 차마 믿기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미국 의료진이 아니라 한국에서 온 닥터입니다. 그 있잖습니까? 이번에 왕년의 톱스타 엘리자베스의 악성 피부염과 치매를 고쳤다고 보도된... 네, 바로 그 닥터가 리사를 살렸습니다.”

리처드슨이 통화하는 사람은 리사의 전 주치의 앤드류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미국 내에서도 세포암과 바이러스학의 대가였다. 어느 정도냐 하면 노벨상 후보로 두 번 올랐고 3년 안에 수상이 유력한 의사이자 과학자였다.

“사진 그대로입니다. 나무 피부가 탈피라도 하듯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포토샵이 아니라고요.”

리처드슨은 행복한 목소리로 통화를 끝냈다.

“리사의 전 주치의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분인데 믿을 수 없다고 하는군요. 아마 조만간 달려와서 확인할 듯 합니다.”리처드슨의 목소리는 여전히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여보, 그만 흥분하고 선생님을...”

부인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제야 리처드슨이 윤도에게 소파를 권했다.

“이거 제 명함입니다.”

리처드슨이 명함을 내밀었다. 무심코 받아든 윤도가 소리 없이 소스라쳤다.

‘로빈손 회장?’

명함 든 손이 파르르 떨렸다. ‘로빈손’이라면 세계 최대의 AI업체였다. 로빈손은 그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군수회사와 항공사, 패션회사까지 거느린 어마무시한 글로벌 기업이었다.

하지만 윤도의 놀람은 시작에 불과했다. 대화 중에 도착한 리무진 때문이었다. 정원 앞에 흰 리무진이 도착하자 리처드슨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건강하게 마른 70대 후반의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냥 노인이 아니었다. 노련함이 배인 풍체와 걸음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인물 또한 로빈손이라는 회사 만큼이나 기시감이 있었다.

‘어디서 봤을까?’

골똘하는 사이에 노인이 리사를 만나고 거실로 나왔다.

“닥터!”

그가 윤도를 보며 웃었다. 그제야 기억력이 윤도 머리를 후려쳤다.

‘전임 미국 부통령 로날드?’

윤도 정신줄이 휘청거렸다. 가까이 다가오니 더욱 분명해졌다. 전직 미국 부통령으로 미국 행정부의 대표적인 비밀특사이자 상하원과 유대자본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그 인물이었다.

“고맙소. 나 리사의 할애비되는 사람이라오.”

로날드는 두 손으로 윤도 손을 잡았다. 손녀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손길이었다.

“리사 말이 진짜 마법사라고?”

소파에 앉은 로날드가 물었다. 리처드슨 부부는 그 앞에 함께 자리를 잡았다.

“코리아 닥터입니다.”

윤도가 정체(?)를 밝혔다.

“바늘 몇 개로 리사의 불치병을 고쳤다고 하던데?”

“침은 한의학에서 중요시 하는 치료도구입니다. 일침이구삼약이라고 침이 우선이지요.”

“믿기지 않는구려. 차기 노벨상 감으로 꼽히는 앤드류도 이 병은 이 세기에는 결코 정복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불치라 함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혈의 차이가 극악에 이른 상태를 말합니다. 다행히 리사가 저를 믿어주어 리사 안에서 찌들어가던 면역 기운을 교체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니 마법사가 아니오?”

“과찬입니다. 그저 한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 우연이 최선이 도쿄에서도, 베이징에서도?”

“하핫.”

윤도가 계면쩍게 웃어넘겼다. 로날드는 윤도의 정보를 머리에 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 마법사에게 어떻게 보답을 한다?”

로날드가 리처드슨 부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생각은 어떠십니까?”

“글쎄다. 리사를 구해준 대마법사에게 손 때 묻은 세속의 돈다발이나 건넬 수도 없고...”

“저희 아버님, 리사를 위해 아낄 게 없는 분이십니다. 닥터께서 원하는 게 있으면 마음대로 요구하세요. 돈이라면 액수 같은 건 상관없고 보석이나 요트라도 상관없습니다.”

부인이 윤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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