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225/265)

“기존의 방식대로 정상 피부를 이식하는 게 아니라 줄기세포를 뿌리는 방식입니다. 환부의 감염도 방지되고 치료기간을 단기간으로 줄일 수 있지요. 보통 화상에 의한 피부 재생이 몇 달씩 걸리는 것에 비해 5-6일이면 새로운 피부가 재생되는...”

“흉터는요?”

“이식이 아니라서 흉터의 부작용도 최소화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 좀 처치해 줄 수 있습니까? 기혈은 제가 불어넣어 기간을 더 당겨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샘플약 수준이라...”

“샘플약?”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거든요. 우리 실장님이 미국에 연수 받고 구해오셨는데 지난번 요양병원 화재 환자의 안면부위에 써보고 남은 게 거의 없습니다.”

“효과는요?”

“5-6일까지는 아니어도 기존방법보다는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미량이 남았다고요?”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의 국소적인 상처라면 몰라도 이 환자의 경우에는 턱도 없습니다.”

“그걸 좀 가져다주십시오.”

“선생님. 그 스킨머신은 환자의 미량 피부를 떼어내 초고속 배양을 해야 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면 되지만 현재 남은 배양액으로는...”

“시간 없습니다. 제가 실장님께 직접 말씀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레지던트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이미 실장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실장에게 떨어진 부원장 이철중의 특명 때문이었다.

<닥치고 전력 지원>

이철중의 한 마디였다.

10여 분 후에 레지던트가 샘플을 가져왔다. 배양액은 정말 한 방울 정도가 남았다. 그러나 비관적인 건 아니었다. 약침으로 쓴다면 몇 번이고 사용이 가능한 양이었다.

‘봉독요법...’

윤도는 한방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봉독요법이라는 게 그랬다. 그 또한 세포 증식 및 세포활성을 위한 침술이었다. 피부진피층을 자극해 콜라겐 형성을 돕는 원리였다.

‘피부는 폐, 살은 비장...’

배양액을 묻힌 후에 폐수혈자리를 찔렀다. 침감을 조절하며 반응을 살폈다. 아무 반응도 오지 않았다. 윤도 귓전에 레지던트의 말이 스쳐갔다.

<한 시간 남짓>

세포활성이 일어나는 시간이었다. 콜라겐 형성을 자극하는 시간이었다. 한 시간은 길고 또 길었다. 윤도가 아니라 구대홍 쪽이었다. 그러다 40분 정도 경과했을 때, 윤도 눈에 들어온 수포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원장님.”

진경태도 반응을 했다. 마침내 반응하는 약침이었다. 다섯 약침이 전격 출격했다. 폐의 수혈과 모혈, 비장의 모혈과 수혈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디일까?

‘백회혈?’

진경태의 짐작은 머리에 있었다. 하지만 윤도의 침은 발의 족태음비경 은백혈로 들어갔다. 피부 깊숙이 침투한 화상. 그 살덩어리를 관장하는 게 비장이기에 그랬고, 은백혈 또한 백회혈이나 용천혈 못지않은 회생혈인 까닭이었다.

“으음...”

구대홍의 입에서 첫 신음이 나왔다. 지옥역 앞에서 돌아서는 신호였다. 놀란 레지던트가 격하게 반응하자 윤도가 막았다.

이제 윤도의 침은 환부 자체를 노렸다. 상처가 심한 환부의 아시혈을 중심으로 빼곡하게 장침을 박은 것이다. 산해경의 영약에 더불어 양방의 줄기세포배양액, 신침 장침까지 총동원하는 윤도였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경과되면서 환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처참한 상처들이 눈에 뜨게 가라앉았다. 작은 화상은 주변이 아물면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였다. 일반적인 화상 환자라면 치료 2주 차에나 볼 수 있는 상황들이었다.

“으음...”

은백혈에 자극을 더하자 신음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구대홍이 눈을 뜨게 되었다.

“원장님!”

다시 진경태가 외쳤다.

“구대홍 씨.”

윤도는 시침자세로 입을 열었다. 냉혹할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내 목소리 들리죠? 나 채윤도입니다.”

“......”

“아무 생각도 말고 편하게 있으세요. 이제 구대홍 씨는 화마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

“하지만 갈 길이 좀 멀어요. 보아하니 공무 중 부상이라 짤릴 것도 아니니 참을 수 있죠?”

“......”

“이번만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일 하면 안 돼요. 사람 목숨도 아닌 일에 목숨 걸지 마세요.”

“......”

“고맙다는 말은 나중에 할 테니 편하게 쉬어요. 아버지도 밖에 와 계십니다. 빨리 나아서 아버지 장작 통닭으로 치맥 한 잔 때리자고요.”

마지막 말에 구대홍이 반응을 했다. 그의 입꼬리가 살포시 위를 향한 것이다.

아침!

어쩌면 다시는 올 것 같지 않던 그 아침이 왔다. 커튼 밖으로 햇살이 찰랑거릴 때도 윤도는 시침이었다. 그 햇살이 병원의 중천에 걸릴 때도 그랬다. 그동안 먹은 건 물 몇 잔. 그야말로 초인적인 사투였다.

위대한 대장정은 저녁 무렵에야 끝이 났다. 다른 장부와 조화를 이루어, 폐와 비장을 지원하던 침술이 끝난 것이다.

윤도가 침에서 손을 떼었을 때 구대홍의 바이탈 사인은 거의 정상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던 전방위 부전도 흔적 뿐이었다. 광범위하던 화상들 또한 거의 절반 이상이나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신의 손길이 스쳐간 듯한 치유였다.

“구대홍 씨.”

손을 놓은 윤도가 구대홍의 귓전에 속삭였다. 구대홍은 그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이제 됐어요. 이제 내가 좀 쉬어야겠네요.”

윤도가 일어서려할 때였다. 눈 감은 구대홍의 입술이 거짓말처럼 움직였다.

“역시 선생님...”

느리지만 또렷했다.

“......!”

병실 안의 세 남자가 소스라쳤다. 처음으로 말을 하는 구대홍이었다.

“푹 잤어요?”

“네...”

구대홍이 대답했다. 눈은 여전히 감고 있었다.

“아까만큼 뜨겁지 않죠?”

“네.”

“고마워요. 달리 할 말이 없네요.”

“아뇨. 저는 사실 겁나지 않았어요.”

“예?”

“불덩이가 쏟아지고 몸이 용광로처럼 끓어도... 선생님 생각을 하면 두렵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저를 살려주실 걸 믿었었기에...”

“구대홍 씨...”

“저, 선생님 많이 힘들게 하지 않았죠?”

“그럼요. 너무 잘 버텨줘서 하나도 안 힘들었어요.”

“고맙습니다.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선생님 말이라면 다 믿는 분이니까요.”

“그래요.”

그나마 멀쩡한 팔뚝 부위를 두드려주고 일어설 때였다. 윤도는 병원이 뒤집혀지는 듯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탈진이었다.

“원장님!”

놀란 진경태가 윤도를 부축했다.

“쉿, 환자가 놀라요.”

윤도가 속삭였다.

“환자에게 기본 처치를 부탁합니다. 좀 쉬고 와서 계속할 게요.”윤도가 레지던트에게 말했다. 레지던트는 와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었다. 24시간 수술. 그런 기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더 긴 수술도 많았다.

하지만 이건 여느 수술과도 달랐다.

윤도가 쓴 의료장비는 침 하나. 그 침으로 이룬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건 수술이 아니었다. 침술도 아니었다. 윤도가 행한 의술의 궁극을 보여주는 위대함이었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화상환자의 목숨을 침 하나로 기워 마침내 회복세로 돌려놓은 것.

‘아아...’

레지던트는 윤도보다 더 맹렬한 현기증을 참지 못해 주저앉고 말았다.

“나옵니다.”

클리닉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부원장 이철중도 있고 이창승도 있었다. 화상 실장에 더불어 피부과장과 호흡기 내과과장도 보였다. 퇴근 시간 이후라 그런지 안미란과 승주 등도 보였고, 그 뒤로는 성수혁 기자도 보였다.

“채 선생님.”

이철중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그들은 레지던트의 문자보고를 받고 있었다. 간간히 사진도 첨부되었다. 그러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윤도의 치료에 방해가 될까봐 내려진 이철중의 엄명이었다.

“결국 해내셨군요.”

이철중은 감격을 참지 못했다.

“부원장님 덕분에...”

“내가 뭘요. 우리가 못한 걸 결국 또 채 선생이 해낸 겁니다.”

“아닙니다. SS병원의 시설과 지원이 아니었다면 저도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특히 그 줄기세포 용액...”

윤도가 실장을 바라보았다. 실장은 끄덕 고갯짓으로 답했다. 사실은 그도 기대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기에 면목이 없는 실장이었다.

“채 선생...”

틈새의 창승도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뭡니까? 사수답지 않게.”

“그까짓 사수... 그때 내가 운이 좋았지. 명의 채윤도의 사수였다니... 공보의 가기가 죽도록 싫었지만 채 선생을 만나는 바람에 최고의 보람이 되었잖아.”

“오늘도 뒤에서 많이 애써주신 거 다 압니다.”

“몸은?”

“대충...”

고개 돌리는 윤도 눈에 엄청난 꽃 다발이 보였다. 복도를 따라 놓인 꽃의 행렬은 클리닉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보도 때문이었다. 성수혁의 기사였다. 소방대원의 숭고한 천직의식에 더불어 윤도와 엮인 아름다운 사연. 지방에서 지진 이재민을 돕고 와 기진맥진이었지만 현대의학이 포기한 소방대원을 살리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인 명침명의 채윤도.

그 기사가 나가자 전국이 들끓었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 미국에서도 꽃이 답지했다. 그곳에서도 윤도의 소식을 접했으니 윤도로 인해 새 삶을 찾은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신침 채윤도,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구대홍 소방관을 꼭 살려주세요.>

<채윤도 파이팅, 구대홍 파이팅.>

<채윤도 한의사님, 다시 한 번 기적을 일으켜 주세요.>

벽에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이 보였다. 너무 고운 마음들이 알록달록 붙어있어 그 또한 꽃으로 보였다.

“아저씨, 저 좀 저 분에게 데려다 주세요. 저 분 아시죠?”

윤도가 진경태를 재촉해 걸었다. 뒷줄에 선 구대홍의 아버지 쪽이었다.

“선생님...”

구대홍의 아버지는 소리없이 경련하고 있었다.

“아드님은 살았습니다.”

“우워억!”

윤도 말을 듣기 무섭게 그의 입에서 야수의 신음이 나왔다. 의사들을 통해 병실 안의 상황은 전달 받은 그였다. 하지만 그는 오직 윤도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윤도의 말을 들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말을 들은 지금, 통곡을 토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울지마세요. 아드님이 듣습니다. 지금 깨어있거든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구대홍의 아버지가 윤도 품에 안길 때 복도 쪽에서 박수와 함성이 작렬했다. 윤도와 구대홍을 응원하던 시민들이었다. 윤도는 그 박수를 들으며 까무룩 기울었다.

“원장님!”

“선생님!”

사람들의 외침이 박수와 함께 어지럽게 섞이고 있었다.

극적 회생-2

극적 회생-2

불이야!

윤도가 외쳤다. 불이었다. 한의원에 불길이 치솟았다. 윤도는 원장실에 갇히고 말았다. 몸부림을 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온 연기가 폐포를 찔렀다.

콜록콜록!

목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연기는 몬스터가 되었다. 끔찍한 몬스터가 훌쩍 다가섰다. 지옥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몬스터가 윤도 목을 조였다. 기관지가 폭발할 정도로 아팠다. 이대로 죽나싶을 때 도끼 하나가 몬스터의 손을 찍었다. 하지만 빗나갔다. 도끼에 찍힌 건 윤도의 손이었다. 장침을 놓는 손이었다. 손목에서 잘린 손이 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렸다. 혈관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았다. 하필이면 그 피가 윤도 얼굴을 적셨다. 얼굴을 거울에 비췄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 자체가 날아가버린 것이다.

으헉!

놀란 윤도가 잠에서 깨었다.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시선을 가다듬자 부용이 망막에 들어왔다.

“부용 씨...”

“괜찮아요?”

묻는 윤도의 귀에 더 많은 목소리가 들어왔다.

“선생님, 우리도 왔어요.”

장현서였다. 이가인이었다. 해피 프레지던트 멤버들도 있고 미우도 있었다. 한 번쯤의 윤도의 긴요한 치료를 받은 연예인들의 총출동이었다.

“형.”

그 뒤에서 윤철이 어머니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어머니...”

윤도가 몸을 일으켰다.

“더 자시지...”

귀에 들린 건 진경태의 목소리였다. 그는 문을 지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한낮이었다. 설마 하루를 넘게 잔 걸까?

“고작 네 시간을 자고 일어나시는군. 푹 좀 자지...”

이철중이 들어섰다. 클리닉 실장과 함께였다.

“환자는요?”

“물어볼 거 뭐 있나? 그 성격에 당장 달려갈 거 같은데?”

이철중이 웃었다. 윤도가 일어서자 박연하가 쪼르르 가운을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뭘요. 선생님, 최고.”

연하가 엄지를 세워보였다. 부러질 듯 힘이 들어간 엄지였다.

“와아!”

복도로 나오자 함성이 들렸다. 이번에도 복도 끝이었다. 여학생들을 비롯해 수십 명의 시민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심지어는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있었다.

“채윤도, 채윤도!”

그들이 윤도를 연호했다. 머쓱하지만 손을 들어 답했다. 무리 중에서 두 어린이가 손나팔로 윤도를 불렀다.

“채윤도 선생님, 소방관 아저씨를 꼭 살려주세요.”

둘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화마 속에서 구대홍이 구한 아이들이었다.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달려와 응원하는 모습이 좋았다. 얼핏 내다본 창밖으로도 꽃의 행렬이 보였다. 그야말로 산더미였다. 취재진이 따라붙었다.

“겨우 눈 붙이고 다시 진료 가는 중입니다.”

진경태와 수련의 둘이 그들을 막았다.

구대홍은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그 앞에는 소방대원 대여섯 명이 나와 있었다. 윤도를 알아보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해왔다.

“수고 하셨습니다.”

한 소방관은 오래 손을 내리지 않았다. 구대홍을 업고 나온 소방관이었다. 도열한 소방관들의 눈빛에 동료애가 가득했다. 비번임에도 구대홍을 염려해 달려온 사람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콧날이 시큰해왔다.

“구대홍 씨는 다시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윤도가 답했다.

“와아아!”

소방관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윤도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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