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으음...”
“......”
“치료는 어떤가? 채 실장 의술로...”
“이 치료는 회장님이 먼저 시작하셔야합니다.”
윤도 입에서 엉뚱한 처방이 나왔다.
“나?”
“예.”
“채 실장... 그게 무슨 말인가? 나라니?”
“두 환자는 기가 심하게 상했습니다. 특히 칠기(七氣)와 구기(九氣)가 그런데 이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한에 이르렀다는 증거입니다. 그 상한 마음으로 인해 중기(中氣)도 성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간, 쓸개, 콩팥, 삼초에 만리장성 같은 화가 쌓여 강철의 상화(相火)를 이뤘으니 그걸 풀지 않고는 제 침이 들어간들 소용이 없을 일입니다.”
“......”
“따라서 두 환자의 백혈병 치료는 회장님의 결단에 달린 것 같습니다.”
윤도의 쐐기를 박았다. 이 회장은 뜨악한 자세로 굳어버렸다.
두 근로자.
회장과의 만남을 원했었다. 회장을 만나 직접 하소연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임원들이 막았다. 거대 기업에서 근로자는 하나의 부속품. 회장이 일일이 나서지 않는 상례였다.
그러나 거듭 문제가 되기에 윤도에게 진료를 부탁했던 것. 윤도라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한의사였으니 치료가 된다면 직업병보다 ‘기적’ 쪽으로 몰고 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손이 느닷없는 제의를 던져놓았다.
“으음...”
이 회장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윤도의 진단이기에 100% 신뢰하는 이 회장.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윤도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기의 손상.
만리장성처럼 쌓인 강철의 상화.
그 두 가지 명제는 단순히 그들을 만나 악수를 나누고 위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채 실장, 그런 문제라면 내가...”
“안 됩니다.”
김 전무가 나서자 윤도가 커트했다.
“채 실장...”
“지난번에 제 한의원에 데려온 직원 생각나십니까? 모유를 먹이고 싶어 하던...”
“그야...”
“그때 그 직원이 아내의 젖 몽오리를 빨았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유축기가 할 수도 있었지만 아주 다릅니다. 지금이 그렇습니다.”
“......!”
김 전무는 더 이상 끼어들지 못했다.
인정.
사과.
보상.
몇 가지 단어들이 이 회장의 뇌리를 스쳐갔다.
“주제 넘은 말씀이지만 TS가 뭐라고 하든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직업병 쪽으로 굳어진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회장님께서 저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제가 병을 치료해준다면 더 확장되지는 않을 겁니다. 저는 병을 고치고 회장님은 두 직원의 마음과 회사 이미지를 구하는 거죠. 그렇기에 이 치료는 회장님의 몫이 저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환자들을 만나겠네.”
신음하던 이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윤도는 지금 기회를 주고 있었다. 회장은 그걸 감지했다.
“회장님!”
김 전무가 전격적으로 반응했다.
“채 실장 말이 옳네.”
이 회장이 일축했다.
“그럼 가시죠.”
윤도가 문을 가리켰다.
딸깍!
의무실 문이 열렸다. 윤도가 이 회장과 함께 들어섰다. 두 환자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들의 반응 또한 전격적이었다. 이 회장 역시 손부터 씻었다. 마스크도 착용했다. 환자의 안전 앞에서는 이 회장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나를 보자고 했다고?”
“회장님.”
“우리 채 실장이 그러더군요. 두 사람의 응어리가 나를 만나야 풀린다고.”
“회장님.”
두 환자는 눈물부터 쏟아냈다. 현장책임자를 비롯해 본사의 담당 중역까지 소귀에 경읽기였던 그들의 호소였다. 그렇기에 다 차지하고 회장을 만나고 싶었다. 회장이라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까 싶은 기대였다. 그러나 그들로서는 닿을 수 없었던 TS전자의 회장. 믿기지 않게도 그가 눈앞에 와있었다.
“그럼 말씀들 나누십시오.”
윤도가 돌아서려는 순간 연장자 나수연이 그 걸음을 막았다.
“가지마세요. 여기 함께 있어주세요.”
“......?”
“이 안에 우리 편은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시면 저희를 끌어낼 지도 몰라요.”
“제가 알기로 우리 회장님은 그렇게 신의가 없는 분이 아닙니다. 또 만약 그렇게 신의가 없다면 만난들 무엇하겠습니까?”
“......”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 저는 복도에 있을 겁니다.”
환자들을 달랜 윤도가 문을 열고 나갔다.
“허헛, 이거 내가 직원들에게 인기가 바닥이로군.”
이 회장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자, 이제 얘기 시작할까요?”
“저희가 할 말은 오직 한 가지 뿐입니다. 저희 백혈병은 개인적이나 유전적으로 발병한 게 아니라는 사실.”
“회사에 근무하면서 생긴 직업병이라는 사실.”
옆에 있던 공선희가 한 번 더 강조를 했다.
“또 뭐가 있죠?”
“합당한 보상과 치료비요.”
“그게 다인가요?”
“네, 저희는 개인적인 병을 가지고 떼를 쓰는 게 아닙니다.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상태였고 집안에도 유사 병력자가 없습니다.”
“내 생각은 좀 다릅니다만.”
“회장님.”
“두 사람, 우리 채윤도 실장을 아세요?”
“방송과 기사로만...”
“두 사람의 병을 고치는 문제는요?”
“고쳐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어요?”
“네.”
“그럼 한 가지가 빠졌잖아요? 두 사람의 복직!”
“회장님!”
경계하던 여직원들의 눈에 생기가 들어왔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두 사람의 희생으로 회사의 시설개선이 좋아진 측면도 있어요. 그 후로 그쪽 공정을 자동화해서 로봇이 맡고 있으니까요. 회장으로서 약속하죠. 그동안 치료 받은 치료비에 더불어 그 기간의 임금 보상, 나아가 향후의 치료비용과 함께 백혈병이 치료되면 복직을 보장하는 동시에 한 직급씩 올려주도록 조칙하겠습니다. 물론 차별 같은 불이익도 없을 거고요.”
“예?”
“다시 말해줄까요? 치료비에 더불어 임금보상, 복직에 한 직급 승진...”
“회장님...”
두 환자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오직 회사를 위해 일하다 생긴 직업병. 그러나 마치 돈이나 바라는 것처럼 악질 근로자로 호도되었던 그동안의 사정. 그 억울함이 눈 녹듯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은 사과겠죠? 저간의 과정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회장님...”
“허헛, 이거 각서로 써줘야 두 사람 마음이 놓이겠지?”
“예? 예...”
“채 실장, 밖에 계신가?”
이 회장이 복도에 대고 외쳤다. 윤도가 들어오자 이 회장은 두 환자에게 한 약속을 한 번 더 구술해 주었다.
“이만하면 각서에 가늠할 수 있겠지?”
이 회장이 두 환자를 바라보았다.
“예.”
두 환자가 활짝 웃었다.
“이제 내 역할은 끝난 건가?”
이 회장이 윤도에게 물었다.
“예.”
“그럼 이 두 친구의 백혈병 치료에 들어가시는 거지?”
“제 입으로 한 말이니 책임을 져야죠.”
“얼마나 걸리나?”
“회장님 퇴근하기 전에 끝내보겠습니다. 시간 되시면 마음 고생한 이 두 분에게 식사나 한 끼 내시면...”
“좋지.”
“큰 결단으로 환자의 뭉친 기를 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할 말이네. 그럼 뒷일을 부탁하네.”
이 회장은 윤도의 어깨를 쳐주고 나갔다.
“선생님...”
두 환자가 울먹거렸다.
“어허, 그렇게 활기 다운이면 침빨 안 받습니다. 이제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빨리 회복해서 복직해야죠.”
“선생님.”
“두 분, 침대에 누우세요. 나란히!”
윤도가 명령했다. 두 환자는 눈물을 쏟으며 지시에 따랐다. 침은 술술 들어갔다. 환자들의 마음이 열린 탓이었다. 이 회장이 마음을 연 까닭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다시 생각해도 지상 최강의 처방이었다.
‘이만하면 편작의 처방에 견줄 수 있을까?’
침술이 즐거운 날이었다.
상황을 리드하라-1
상황을 리드하라-1
비가 내렸다. 일주일 내내 내렸다. 그나마 강수량이 많지 않기에 다행이었다. 습기 가득하니 커피 맛은 좋았다. 하지만 노인 환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특히나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분들이 그랬다.
관절과 류머티스, 요통이 대표적이다. 안질환 또한 노령의 고질병이다. 근시는 물론이고 백내장과 녹내장, 심지어는 눈을 찌르는 눈썹까지도 노년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눈썹...
오늘은 그 환자를 치료하게 되었다. 노년이 되면 눈꺼풀의 탄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눈썹이 안구를 찌를 때가 많았다. 슬픈 건 그걸 잘 자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만성적으로 접촉 되다 보니 각막의 반응이 떨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염증을 달고 살아야한다.
눈썹을 주관하는 장기는 간이다. 방광과 삼초 경락도 참견을 한다. 이들의 기혈이 고르고 왕성하면 눈썹이 길고 윤기가 난다. 그 반대가 되면 짧아지고 윤기가 짐 싸들고 가출을 한다.
장침이 들어갔다. 다른 장기와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간과 삼초의 생기를 북돋아주었다.
탱탱!
할머니의 눈썹에 힘이 들어갔다. 안으로 휘며 눈을 찌르던 각도를 벗어난 것이다.
“아유, 이제 괜찮네.”
할머니가 대문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세월 따라 떠나간 생니 자리에 들여앉힌 틀니가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원장님.”
잠시 후에 승주가 검사통지서 하나를 가져왔다. 윤도의 것이었다.
안에서 나온 제목이었다. 검체주인의 이름은 채윤도. 그러니까 윤도가 HIV, 즉 에이즈 검사를 받은 것이다.
중국의 거부 바이징팅 때문이었다. 그때 그를 치료하다 약간의 사고를 당했던 윤도. 그를 치료했지만 혹시나 싶은 마음에 확인검사를 실시한 것이다.
Negative!
결과지 안에서 만족스러운 단어가 나왔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안 선생님.”
윤도가 안미란을 호출했다.
“네, 원장님.”
환자 상담을 마친 안미란이 들어왔다.
“급한 환자 있나요?”
“아, 오늘 국회의원 분들 예약이 있다고 하셨죠?”
“오실 시간이 가까운 것 같아서 준비 좀 하려고요.”
“염려마시고 진료하세요. 뒤는 제가 받치겠습니다.”
안미란이 웃었다. 그녀는 한의원 일에 너무 적응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약속시간은 20분 정도 남았다. 머리도 식힐 겸 커피 잔을 챙겨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불에 탄 목조건물 자리는 시원하게 비어 있었다. 토닥토닥 내리는 빗줄기들만 가득하다. 저 땅은 이제 윤도의 소유가 되었다. 건물이 전소하자 땅주인이 매물로 내놓았고, 윤도가 거둬들였다. 나중에 한의원을 증축하거나 다른 용도로 요긴하리란 판단이었다.
<정광패>
빗소리에 이름 하나가 묻어왔다. 야당의 전임 총재... 20분 쯤 후에 올 예약손님이었다.
다리는 류수완이 놓았다. 60대 중반이니 흔한 병 한두 개는 달고 있었다. 정광패는 심한 오십견이었다. 언젠가 골프회동 때부터 시작된 격통은 비 오는 날에 더 심했다. 그렇기에 오늘이 디데이가 된 것이다.
한 주일 동안 윤도도 분주했다. 한의사협회 회장단을 만났고 장백교와 길상구, 조수황, 김남우 등의 중진 한의사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그들의 중지도 윤도와 다르지 않았다.
<한의학 원리에 의한 약이라면 당연히 한의사도 처방권을 가져야지.>
한 목소리로 윤도의 짐을 덜어주었다. 더구나 치매신약은 윤도가 개발한 것이었다. 최상으로 한의사들에게 처방권, 차선으로 윤도(개발자)에게만이라도 처방권을 줘야한다는데 뜻을 같이해 주었다.
그러나 길은 멀었다. 사람을 만날수록 그랬다. 윤도가 모르는 문제점들이 솔솔 부각된 것이다. 우려의 줄기가 하나로 모여졌다.
<정치꾼들에게 이용 당하지 말 것.>
특히 장백교의 경험담이 유용했다. 그는 이미 서울한방의료원 설립 문제로 여야의 정치권과 교류하고 있었다. 탕약의 대가답게 양 진영에 단골환자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정치판의 이전투구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조언은 윤도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예약 10분 전.
중국 주석부터 글로벌 스타, 북한의 주석과 일본 수상까지 대한 윤도였지만 살짝 긴장이 되었다. 단순히 치료만 하는 예약이 아닌 까닭이었다.
정광패...
그가 온다고 하니 ‘말(馬)’ 생각이 났다. 그의 중학생 손녀가 탄다는 말. 원장실로 돌아와 산해경을 펼쳤다. 산해경에는 사람의 영약만 있지 않았다.
서산경이었다. 부우산의 문경이 나왔다. 관수와 우수가 보인다. 이 속에 흘러다니는 붉은 흙이 소와 말을 만병통치하는 영약이었다. 발라주기만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일부 채집을 했다. 윤도의 자동분석기가 돌았다.
[원산] 산해경 적영토(赤靈土)
[약재수령] 202년
[약성함유등급] 上中품
[중금속함유] 무
[곰팡이독소] 무
[약재사용유무] 가능
[용법용량] 항아리에 담아두고 상지수로 촉촉이 개어 소나 말의 환부에 바른다. 오장육부의 경우에는 장부 위치의 표면에 바른다. 습기가 가시지 않게 해주면 약효가 더욱 좋아진다. 사람에게는 사용을 금한다.
[약효기대치] 上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