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0화 (230/265)

“우리 윈디안의 진단서예요. 그리고 각종 검사기록들요.”

승아는 말에 대한 모든 것을 꺼내놓았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승아의 몸짓마다 절박한 마음이 묻어나왔다. 자료를 보았다. 윤도에게는 생략가능한 과정이지만 매사 본질만 챙기며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말 이름이 윈디안이라고?”

“네!”

“살릴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정말요?”

“그럼. 이보다 더한 질병도 많이 치료했거든.”

“봤어요. 절대 불가의 에이즈를 고치고 나무인간도 고치고...”

“질병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환자의 의지요?”

“맞아. 하지만 다른 게 또 있지. 환자의 신뢰.”

“그거라면 문제없어요. 저 무조건 선생님 믿을게요. 윈디안에게도 그렇게 말할 게요. 너를 살려주실 분이 오셨다고. 윈디안은 내 말을 잘 들으니 걱정마세요.”

“그럼 이제 상의할 일이 있어.”

“치료비라면 걱정마세요. 제가 모아둔 용돈만 해도 5천만 원이 넘어요. 그거 다 드릴 게요.”

“돈이 아니라 네 할아버지 때문이야.”

“할아버지요?”

“승아, 게임 가끔 하니?”

“네... 훈련 없을 때 더러...”

“그럼 아이템 거래도 알겠네? 내 테크 트리에 필요 없는 걸 다른 유저에게 주고 나에게 필요한 걸 받으면 서로 좋겠지?”

“네.”

“사실 나는 네 할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 그런데 네 할아버지는 그걸 도와주는 대가로 내가 네 할아버지의 정당으로 들어오시길 바래.”

“......”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거든. 나는 한의사로 사는 게 좋아.”

“......”

“내가 네 말을 고쳐줄 테니 너는 내 편을 들어줘. 거래 가능하겠니?”

“걱정마세요. 저도 실은 정치인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할아버지 좀 모셔올래?”

“알겠어요.”

승아가 밖으로 뛰었다. 이내 정광패가 들어섰다.

“말을 치료해보겠습니다.”

“오오, 부탁하오.”

윤도의 수락이 떨어지자 정광패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대신 손녀 앞에서 약속을 해주십시오. 제 처방권 법안을 돕는 일로 입당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채 선생...”

“저는 한의사가 천직입니다.”

“그러니까 더욱 국회로 와서 큰 일을 해야죠. 그렇게 되면 한의사들을 위한 법안도 직접 발의할 수 있고...”

“승아야.”

윤도 시선이 손녀에게 건너갔다.

“네.”

“할아버지가 말이야 말 타는 거 그만 두고 조종사 시켜줄 테니 비행기를 타라면 어쩔래?”

“절대 안 하죠. 전 세상을 다 줘도 오로지 말이에요.”

승아가 잘라말했다. 정광패가 움찔거렸다. 손녀의 한 마디. 바로, 윤도가 원하던 말이었다.

손녀는 오로지 말.

윤도는 오로지 한의사.

정광패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손녀. 이 아이 앞에서 한 약속이라면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윤도였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더러워질 수 없는 거. 그게 인간이었다.

“손녀분 앞에서 약속을 해주시면 지금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

“약속하시겠습니까?”

“할아버지, 약속해주세요.”

승아가 거들고 나섰다.

“약속하마.”

긴 침묵 끝에 정광패의 약속이 떨어졌다. 윤도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스쳐갔다. 전략의 적중이었다.

윈디안.

과천의 말 관리소에서 만난 녀석은 명마가 분명했다. 발부터 달랐다. 두툼하고 안정된 발은 신뢰를 신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명마인지는 달려오는 길에 들었다. 승아의 설명 때문이었다.

승아와 윈디안의 인연.

그건 보도로 알려진 것과 비슷했다. 초등학생 시절 승아는 몸이 약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말을 타게 되었다. 이상하게 말에 끌렸다. 그때도 인연이 있었다. 아무에게나 등을 내주지 않는다는 말이 승아에게는 얌전하게 굴어준 것이다. 승아의 승마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말을 빌려 탔다. 그러다 고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면서 애마가 필요해졌다. 그러나 말은 애견과는 달랐다. 조금 욕심이 난다싶으면 10억, 20억은 예사였다.

윈디안은 외국에서 만났다. 혈통 좋은 준마들의 경연장이었다. 다만 딱 한 마리, 외면 받는 말이 있었다. 그게 윈디안이었다. 윈디안은 재발성포도막염을 앓고 있었다. 월맹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말의 홍채에 생기는 눈병이다. 영어로는 Moon blindness. 이름을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시야를 가리는 병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 질환에 걸리면 눈물을 흘리고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각막은 안개처럼 흐려지고 혈관분포도 늘어난다. 심해지면 축농도 야기되며 각막염 및 포도막염으로 이행된다. 초기에는 면역억제제의 안약으로 관리하지만 결국 불치병 쪽이다. 세계적으로도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거의 없는 까닭이었다.

“윈디안이 제게 윙크하는 거 같았어요.”

승아의 첫 소감이었다. 마주가 바람이나 쐬려고 데리고 나온 윈디안. 마주는 승아와의 인연을 범상치 않게 여겨 싼 값에 넘겨주었다. 눈에 장애가 있지만 마장마술 훈련을 충실히 받아온 윈디안. 마주가 덧붙인 옵션은 딱 하나였다.

“많이 사랑해주렴.”

승아와 윈디안은 그렇게 연결이 되었다. 운명적 만남이라 그런지 호흡을 맞추는 문제도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승아는 중등부 마술(馬術)대회를 휩쓸었고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렸다. 그렇기에 그 어떤 명마보다 승아에게 중요한 윈디안이었다.

‘올림픽.’

승아는 큰 꿈을 꾸기 시작했다. 훈련도 충실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 정광패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대견하게도 어린 몸으로 훈련과정을 즐긴 것이다. 얼마 전에는 국가대표상비군에도 선발되었다. 누구처럼 빽 내세워 체육부 간부들 조져서 만든 성과가 아니었다. 오직 승아와 윈디안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비극이 찾아왔다.

“말전염성빈혈 같습니다.”

수의사의 말이 시작이었다. 최근 들어 윈디안은 피로해 보였다. 기운도 빠지고 몸무게도 줄었다. 처음에는 훈련량 때문인가 싶었다. 승아가 훈련을 줄였다. 나아지지 않았다. 검사를 받았다. 진단결과가 청천벽력이었다. 진단명, 말전염성빈혈.

승아는 그것의 심각성을 몰랐다. 빈혈약 먹이면 되지. 제일 좋은 걸로 사줄 게. 그렇게 생각하는 승아였다. 하지만 말전염성빈혈은 승아가 아는 그런 빈혈이 아니었다.

이 병은 불치병이었다. 말이 존재하고 말파리나 흡혈곤충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병에 감염된 말을 문 말파리가 건강한 말을 물면 질병이 시작된다. 어미 말의 자궁에서 망아지에게로 수직전파도 가능하다. 혹은 감염된 종마의 정액 내에 있던 바이러스에 의해 암말이 감염되기도 한다.

감염된 말의 절반 가까이는 발병한지 2-4주 만에 죽는다. 다행히 회복된 말은 임상증상은 없지만 바이러스를 보유하면서 일생 동안 감염원의 노릇을 한다. 다른 건강한 말에게 병을 전파하는 것이다. 결국 이 병에 걸리면 안락사가 대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격한 곳에 격리해야하니 전자 쪽이 답이었다.

이 병은 바이러스가 면역체계와 관련 기관들을 손상함으로써 적혈구가 파괴되고 혈구생산을 감소시켜 심한 빈혈을 일으키는 게 특징이다. 효과적인 치료제는 없다. 그렇기에 가축전염병법에서도 제1종 전염병으로 분리한다. 최고로 심각하다는 뜻이었다.

“윈디안!”

말 관리소에 도착하자 승아가 먼저 뛰었다.

히이잉!

먼 마사에서 반응이 왔다. 소리만으로도 주인을 알아보는 말이었다.

“윈디안...”

말 머리를 안은 승아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혈통 좋은 앵글로아랍 계열의 백마였다. 말은 이미 안락사가 준비 중이었다. 그렇기에 안장과 마구를 모두 풀어놓은 상태였다. 마사에서는 악취가 풍겼다. 설사 때문이다. 그 또한 질병 증세의 하나였다.

“채윤도 선생님이야. 네 병을 고쳐주실 거야.”

승아가 윤도를 소개했다. 사연을 모르는 관리사는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마주의 가문을 알고 있었다. 원래는 승아의 접근이 금지된 상태. 빠른 시간 내에 안락사를 실시할 예정. 그러나 그 지시를 내린 정광패가 동행했으니 상황만 보고 있었다.

“우리 승아가 단식투쟁으로 나오니 치료시도라도 한 번 해보려고 그러네.”

정광패가 관리사에게 설명했다.

“저 분이 수의사십니까?”

관리사가 물었다.

“한의사시네.”

“한의사?”

“그냥 한의사가 아니고 채윤도 한의사 선생님이세요. 채-윤-도!”

윈디안 옆에 붙어선 승아가 또박또박 소리쳤다. 그 소리에는 윤도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팽팽하게 담겨 있었다.

“헤이, 윈디안.”

윤도가 말에게 다가섰다.

“우리 잘 해보자.”

손으로 이마를 쓸어주었다. 푸륵, 말이 콧김을 뿜었다. 말은 거짓말처럼 승아의 말을 잘 들었다. 불안해 보이던 말이 안정을 찾자 맥을 잡았다. 목과 가슴팍 사이의 맥을 짚고 목덜미와 앞 다리 상에 분포하는 총경동맥을 잡았다.

윈디안의 오장육부 정보가 손끝을 타고 건너오기 시작했다.

망침芒鍼으로 승부한다-1

망침芒鍼으로 승부한다-1

골수와 비장...

오장의 데미지는 백혈병이나 나무인간 증후군과 유사했다. 두 케이스를 겪으면서 면역체계 강화에 노하우를 가진 윤도. 환자가 말이기에 다른 침을 꺼내놓았다. 장침이 아니라 망침이었다. 윤도의 이번 승부수는 망침이었다.

푸룩!

침 길이에 놀란 걸까? 말이 콧김을 뿜으며 머리를 저었다.

주룩!

설사도 밀려나왔다.

“괜찮다니까.”

승아가 말을 달랬다. 더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말을 보며 맥의 정보를 정리했다. 가장 심각한 건 비장과 간, 다음으로 신장이 꼽혔다. 비장과 간의 비대는 이 병의 특징 중의 하나였다. 신장은 뼈를 주관하기에 그렇고 비장은 적혈수가 파괴되는 처리장소이기에 그런 것으로 판단했다. 양방에서는 지라를 논하지만 한방의 비장은 지라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다음으로 ‘빈혈’을 짚었다.

빈혈 역시 단순히 철분이 모자라는 상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빈혈은 그 원인에 따라 철 결핍성, 거대적아구성, 재생불량성, 용혈성 빈혈 등으로 구분된다. 그 중에서도 거대적아구성 빈혈이 악성빈혈로 불리고 있었다.

“말 좀 잡아줄래?”

치료의 길을 세운 윤도가 승아를 바라보았다.

“네.”

“오래 걸릴 지도 몰라.”

“윈디안이 살 수 있다면 한 달이 걸리고 일 년이 걸려도 괜찮아요.”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윤도가 증얼거렸다.

“네?”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맞아요. 저 포기하지 않아요.”

승아는 한껏 비장했다.

“그럼 시작한다?”

“네.”

길고 긴 망침이 윤도 손끝에서 티잉 울림을 냈다. 윤도만 아는 그 울림이 지친 말의 혈자리를 겨누기 시작했다.

말!

사람이 아니었다. 말도 생명, 그렇기에 안드로메다에서 온 혈자리일 리 없지만 감만으로 찌를 수는 없었다. 망침은 불치난치를 짚어내는 명혈로 들어갔다. 머리의 백회혈이 그 스타트였다.

말의 백회혈...

사람과 같을까? 그러면 좋으려만 같지 않았다. 혈자리가 침을 튕겨냈다. 절침이 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혈자리 주변을 풀고 시도하지만 혈자리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틀림없는 혈자리. 마음이 급한 걸까? 아니면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까?

사람과 말. 많이 다르다. 윤도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혈자리를 파악했다. 감각과 육감이라는 건 때로, 시야를 가리면 더 밝아지는 까닭이었다.

‘좋아.’

윤도가 붕대를 뽑아들었다. 그것으로 눈을 감았다.

“선생님...”

“걱정 마. 감각과 육감을 끌어올리려는 거니까.”

윤도는 승아를 안심시켰다. 눈을 가린 채 다시 백회혈을 잡았다. 미세한 변화가 왔다. 수치로 치면 0.1mm정도에 불과하지만 혈자리에서 적중과 경계를 찌르는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마침내 첫 망침이 말의 백회혈에 들어갔다. 침감으로 확인해도 완벽했다.

‘좋아.’

감을 잡은 후에야 붕대를 풀었다. 이제 손길이 빨라졌다. 양지혈자리와 족삼리혈자리, 중완과 관월혈 위치에도 망침을 넣었다. 이 다섯 혈에 오방을 이루고 기를 체크했다. 기들이 자기 경락을 찾아 이동했다. 오방혈의 장점은 질병 체크에 있었다. 병이 위중하면 기가 흐트러진다. 그렇게 되면 침감이 원하는 장기나 경락으로 가지 않고 아무데고 멋대로 들어가 버린다. 자칫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

말의 혈자리 느낌에 맞춰 신중하게, 또 신중하게 체크를 했다. 다행히 말의 혈자리도 사람과 아주 다르지 않았다. 맥의 결과 느낌이 다를 뿐이었다.

<간장, 비장, 신장>

치료 혈자리는 그대로 확정되었다.

첫 침은 독맥줄기를 목표로 삼았다.

틱!

“......!”

소리와 함께 윤도 숨이 멈췄다. 말의 근육이 침을 밀어낸 것이다. 장침 두 개를 꺼내 주변 근육에 찔렀다. 침감을 퍼트린 후에 다시 시침을 했다. 이번에는 살이 침을 받아주었다.

독맥.

말은 12간지에서 오에 해당한다. 양(陽)에 속하는 동물이었다. 독맥 역시 양맥의 바다. 말에게 필요한 양의 기운을 시작으로 삼는 윤도였다. 다음은 역시 양의 짝을 이루는 음. 음맥의 바다는 임맥이었으니 그 줄기에도 침을 넣었다. 거기서 기경팔맥으로 이어지는 전신순환을 따라갔다. 말에게 있어서는 불치의 전염성빈혈증. 그렇기에 전신경락을 여는 초강수를 두는 윤도였다.

기를 세 바퀴 돌렸다. 첫 바퀴는 굉장히 힘들었다. 사람의 기혈과 결이 다른 관계로 더 많은 침감이 필요했다. 가끔은 손끝에 불덩이가 들어온 것 같은 침감까지 동원했다. 두 바퀴를 지나 세 바퀴가 되자 기혈의 어느 정도 고르게 퍼졌다. 겨우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다.

‘골수...’

숨을 돌린 윤도 눈이 말의 복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오장육부를 돌보며 면역증강을 이룰 차례였다. 이번 치료의 핵심도 골수였다. 그러나 백혈병과 다른 점이 있었으니 적혈구의 문제라는 것. 그렇다면 골수와 동시에 지라의 회복에 방점을 두어야했다.

지라.

한방에서는 비장으로 이해한다. 한방의 비장은 췌장에 더해 지라와 골수, 모수혈관의 일부까지도 포함하는 까닭이었다. 여기서 임파구와 면역체를 만들고 적혈구와 백혈구를 생산한다. 지라에 영향을 끼치는 오장은 단연 신장이었다.

문제는 적혈구.

적혈구는 골수의 모혈조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수명은 약 120일이다. 수명을 다한 적혈구는 지라에서 파괴된다. 지라는 적혈구의 여과장소이자 정비공장으로 불린다. 적혈구는 인체순환에 있어 지라를 통과하며 검사를 받는다. 정상적이면 그대로 통과 시키고 약간의 문제가 있는 혈구는 수리한 후에 내보낸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판단되면 바로 제거한다. 제거법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적혈구 자체를 ‘삭제’하는 culling과 비정상적인 부위만 도려내는 pitting이 그것이다.

윈디안의 경우는 골수와 지라가 짝으로 문제였다. 골수의 기능도 떨어지고 지라의 정비망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곧 고난도의 침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고난도...’

서두르지 않았다. 조바심도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겪은 고난도가 한둘이었던가?

약침액을 찍은 망침이 기문혈로 들어갔다. 간과 비장의 조화를 이루어 기혈운행을 돕고 혈맥이 잘 돌게 하는 명혈. 비수혈에 하나를 더 꽂고 신장을 위해 신수혈을 잡았다. 면역증강에 더해 부종을 다스리는 시침이었다. 망침의 침감은 긴 길이만큼이나 다스리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장점도 있었으니 일단 침감이 발휘되기만 하면 깊은 혈자리나 일침다혈을 잡는데 수월하다는 점이었다.

지원을 위해 중완혈과 삼음교 자리에도 망침을 찔렀다. 부풀어 올랐던 간의 부종이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독맥의 척중혈자리에 강한 화침을 넣었다. 그제야 비장으로 인한 부종도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푸륵!

몸이 편해지자 말이 고개를 들었다.

“얌전히 있어.”

승아가 머리를 잡았다. 말은 주인의 말을 따랐다. 그때 정광패가 한 마디를 건네왔다.

“오래 걸리면 식사를 하고 하시는 게 어떻겠소?”

그 말에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린 지 오래였다.

“승아, 밥 먹고 와라.”

윤도가 말했다.

“선생님은요?”

“나는 위가 빵빵해지면 침감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그럼 저도 안 먹어요.”

“너는 안 돼. 안 먹고 오면 치료중단!”

“선생님.”

“말도 좀 쉬어야하니까 다녀와.”

“알았어요. 그럼 금방 다녀올 게요.”

승아가 나가자 윤도와 관리사만 남았다. 그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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