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gative.
Negative.
결과지는 두 개나 되었다. 첫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확인을 위해 한 번 더 검사를 한 것이다. 워낙 믿기지 않는 일이기에 연구원 측에서 먼저 한 제의였다.
전화를 받고 단숨에 달려온 정광패. 며칠 만에 일대 반전을 일으킨 말을 보고 넋을 놓았다. 오죽하면 팔뚝을 꼬집었을 정도였다. 3일전 그때... 어쩔 수 없이 안락사를 결정했을 때와는 천지 차이였다. 설사똥물을 쏟아내며 비실거리던 윈디안은 당장 대회에 나가도 될 정도로 활기차 보였다.
하지만 그건 경악의 끝이 아니었다. 또 하나의 불치로 불리던 눈의 장애. 그것까지 치료에 들어간 윤도였다.
“할아버지!”
승아가 한 번 더 주의를 환기시켰다. 윤도가 윈디안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신의(神醫)를 알아보는 윈디안이 얌전하게 몸을 움직였다. 윤도 손이 눈으로 갔다.
“할아버지...”
승아의 목소리가 좀 더 떨렸다. 옆에 있던 엄마가 그녀를 당겨 안아주었다.
푸륵!
윈디안의 콧김과 함께 눈을 덮었던 영약이 분리되었다.
“눈 떠보렴.”
윤도가 말했다.
푸륵!
윈디안은 눈을 뜨지 않았다.
“윈디안, 선생님 말 들어.”
승아가 외쳤다. 그제야 윈디안이 꿈벅 아픈 눈을 떴다.
“까악!”
승아의 비명이 터졌다.
“세상에!”
엄마의 비병도 함께 터졌다.
“허어!”
정광패 역시 깊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저었다.
윈디안!
안개처럼, 혹은 성애처럼 뿌옇게 달고 살던 월맹증세가 보이지 않았다. 멀쩡한 다른 한 눈처럼 맑고 초롱한 눈으로 돌아온 것이다.
“눈 감았다 떠 보렴.”
윤도가 말했다. 이번에는 윤도 말대로 하는 윈디안이었다.
“몇 번 더.”
윤도가 이마를 쓸었다. 윈디안은 꿈벅꿈벅 잘도 지시를 따랐다. 성애는 다시 피지 않았다. 안개도 다시 끼지 않았다.
“치료 끝났습니다.”
정광패에게 종료를 알렸다. 두 개의 불치병을 동시에 해결한 윤도였다.
“이야, 역시 그렇다니까. 제가 안락사 시키기엔 아깝다고 했었죠?”
관리사가 윈디안의 머리를 두드리며 윤도 공로에 밥 수저를 올렸다.
푸륵!
윈디안이 머리로 관리사를 밀었다. 관리사는 구석의 양동이 위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채 선생...”
정광패의 입은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그저 경련이었다. 손이 떨리고 어깨가 떨리고 척추가 무너질 듯 떨렸다.
“선생님!”
승아가 윤도를 불렀다. 윈디안에 타라는 것이다.
“나는 괜찮아. 네가 타보렴.”
“아뇨, 윈디안이 선생님을 태우고 싶대요.”
“나는 말을 못 타거든.”
“걱정마세요. 그건 윈디안이 알아서 해요. 선생님은 그저 윈디안에게 몸을 맡기면 돼요.”
“승아야...”
“어서요. 윈디안이 숨 넘어가겠어요.”
승아가 윤도를 끌었다. 별 수 없이 말 등에 올랐다. 윈디안은 몇 번 발을 구르더니 유연하게 런닝을 시작했다.
히히힝!
말이 속도를 올렸다. 승아도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잔디의 끝까지 와서야 윈디안이 멈췄다.
“선생님!”
승아가 곧 도착했다. 윤도는 말에서 내렸다.
“고마워요.”
승아가 말했다.
히히힝!
말도 거들고 나섰다.
“그렇게 좋냐?”
“그럼요. 세상을 다 가진 거 같아요.”
“그럼 올림픽 금메달 한 번 노려봐야지.”
“당연하죠. 저 윈디안하고 최고의 자리에 도전할 거예요.”
“넌 해낼 거다.”
“저 혼자가 아니고 윈디안이랑 둘이에요. 우린 하나 같은 팀이니까요.”
“팀?”
“네, 팀. 나중에 윈디안이 혹시 또 아프면 선생님이 또 돌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선생님 목에 꼭 금메달 걸어드릴 게요.”
“그래.”
“약속해주세요.”
승아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윤도도 손가락을 걸었다. 서산을 넘어가는 노을이 거기 내려앉았다. 한 편의 수채화 같은 풍경이었다.
“채 선생.”
마무리가 끝나고 돌아갈 때였다. 정광패가 다가왔다.
“고맙소.”
“별 말씀을...”
“약속하는데 한약 원리로 만든 약품처방권은 적극 협력해 드리겠소. 채 선생이 원하는 대로 잘 해결이 될 거요.”
“고맙습니다.”
“부끄럽소. 채 선생 같은 명의가 하는 당연한 부탁에 옵션이나 걸다니...”
“아닙니다. 저도 승아에게 많이 배웠는 걸요.”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니 뭐 다른 거 해드릴 건 없겠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요?”
“말 관리사 말입니다. 주제 넘은 의견이지만 바꾸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저 관리사는 국내 최고로 평가 받는 사람인데?”
“말 관리 자체는 최고인지 모르겠지만 말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푸룩!
듣고 있던 윈디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요. 채 선생 말이라면 수용하지요. 대신 나도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이건 그냥 기우인데, 만에 하나 여당 쪽으로도 가면 안 됩니다. 그쪽도 채 선생을 잡으려고 혈안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법안 문제로 손을 쓴 우리 의원들에게 내가 우습게 됩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정치 안 합니다. 제가 잘 하는 건 한의학이고 이것만 해도 충분히 바쁘니까요.”
윤도가 위엄을 뿜었다. 그 위엄은 특별히 긴 망침의 길이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보였다.
정광패의 약속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증거는 성수혁 기자가 가져왔다.
“소관상임위에서 절충이 되었다고요?”
시침을 마치고 새 장침을 점검하던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제 동기가 정치부 차장 아닙니까? 제가 따로 부탁을 해뒀는데 상임위 임시 소집에서 잘 정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의학 원리에 따른 한방생약은 일반의약품이든 전문의약품이든 한의사도 처방권을 가진다?”
“일단 의사협회에서 반대의견은 나왔고 상임위원 중에 두 명이 의사출신이라 긴장감도 있었지만 대의가 좋다보니 대세를 꺾지 못했다고 합니다.”
“야당 쪽에서 반대하지 않았군요?”
“아니, 반대가 나오긴 했답니다. 그것도 굉장히 세게.”
“예?”
성수혁의 말에 윤도가 반응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 의원이 바로 의사출신 의원입니다. 책상을 내려치고 고함을 지르며 반대의견을 냈다네요. 그런데 막판에는 침묵하면서 사전협의 분위기에 묻어갔다는 후문이...”
“......?”
“이야기가 좀 엉기죠? 하지만 그 의원이 누구 라인인 줄 알면 의문이 풀립니다. 바로 정광패 전 총재의 총재비서실장을 하던 사람입니다. 정광패가 고도의 전략을 쓴 거죠.”
“고도의 전략...?”
“다른 의원들이 반발하기 전에 초강수로 분위기를 잡은 겁니다. 정치판에서는 이따금 있는 일이라더군요. 일종의 선수(先手)랄까요?”
“아...”
“축하합니다. 아직 법안 자체가 통과된 건 아니지만 내부 조율이 이루어졌으니 땅땅땅 망치질만 남은 셈입니다.”
“여러 모로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다른 좋은 일도 있어서 뛰어왔는데...”
“뭐죠?”
“구대홍 씨 말입니다. 지금 SS병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아, 많이 좋아졌죠?”
“좋아진 정도가 아니라 퇴원이라더군요. 얼굴도 초중증 화상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병원비는요?”
“SS병원 측에서 무료로 해준다고 합니다. 뭐 그게 아니어도 소방본부에서 준비를 한 것으로 압니다만...”
“이야, 잘 됐네요. 그런 줄 알았으면 저도 가보는 건데...”
“안 가 봐도 될 걸요.”
“예?”
“어쩌면 지금쯤 도착할 지도... 선생님 만나러 한의원 간다고 하더군요. 뭐 지켜야할 약속이 있다나?”
‘약속?’
그때 인터폰이 들어왔다. 정나현이었다.
“원장님, 그 분이 오셨어요. 우리 한의원을 화마로부터 구해준 소방관...”
“......!”
인터폰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윤도가 뛰었다. 구대홍이 들어서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였다.
“원장님!”
구대홍은 거수경례부터 올렸다.
“방금 퇴원했다고요? 몸은 어때요?”
“보시다시피 상큼합니다.”
“이리 오세요. 잠깐 보자고요.”
윤도가 구대홍을 끌었다. 침구실로 들어가 옷을 벗게 했다. 몸의 흉터도 나쁘지 않았다. 약간의 얼룩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질 일이었다.
“고생했어요.”
윤도가 웃었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만나서 반갑긴한데 퇴원했으면 집에 가서 쉬지 그랬어요?”
“그럴까했는데 발이 여기로 오더라고요. 지정의 선생님께 맥주 한두 잔 정도는 마셔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고...”
“그럼 치맥 약속 지키려고?”
“나가시죠. 계룡산 아랫마을에서 사온 토종닭이 오는 동안 노릇하게 익었습니다. 괜찮으면 여기로 가져다 드리고요.”
“대홍 씨...”
“아버지가 그제부터 준비하셨어요. 선생님 드릴 거라며 나무도 참나무로 준비하셨고...”
“허얼.”
윤도가 주저하자 구대홍이 등을 밀었다. 마당에 즉석 치맥 테이블이 설치되었다. 그 또한 구대홍 아버지의 준비였다.
“많이 드십시오. 닭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소하게 익은 토종닭 장작구이가 나왔다. 냄새만 맡아도 천하일미였다.
“와아!”
옹기종기 모인 직원들이 몸서리를 치며 좋아했다. 성수혁도 한 자리 끼었다.
“자, 이건 우리 채윤도 선생님...” 구대홍의 아버지가 굵은 뒷다리를 찢어 내밀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은 차라리 맛의 테러에 가까웠다.
“고맙습니다.”
사양하지 않았다. 사양한다고 그냥 갈 사람들도 아니었다.
“아버님도 함께 드세요.”
윤도가 구대홍 아버지를 당겼다.
“저는 서빙해야죠. 게다가 음주운전 문제도...”
“서빙은 저희가 해도 됩니다. 음주운전도 대리 부르면 되고요. 뭐하세요? 최고의 치맥을 준비해주신 세프님에게 박수!”
“와아아!”
윤도가 제창하자 일동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장작트럭의 갓 구워낸 토종닭 맛은 기가 막혔다.
“최고, 최고!”
“제 인생 치맥이에요.”
“미슐랭 별 다섯 개 레스토랑보다도 더 맛난 거 같아요.”
맛에 취한 간호사들이 몸서리를 쳤다.
“어허, 미슐랭 별은 3개가 만땅이네요. 어디서 구라를...”
종일이 슬쩍 조크를 날렸다.
“어머, 난 별점은 죄다 다섯 개인 줄 알았는데...”
실수한 승주가 얼굴을 붉혔다.
“하핳하핳!”
마당 즉석 치맥 테이블의 웃음꽃은 점점 더 맛나게 피어올랐다.
노벨의학상을 향한 진군-1
노벨의학상을 향한 진군-1
햇살을 받으며 일어났다. 달력을 보았다. 그 날이다. 오늘은 중요한 별표가 두 개나 붙어있었다. 그 첫째는 청와대였다.
“채 원장, 나 괜찮아?”
어머니가 두 팔을 벌리며 물었다. 벌써 다섯 번째 묻는 어머니였다.
“그만하면 됐어. 지금 패션쇼 가?”
넥타이를 고르던 아버지, 괜한 핀잔 작렬이다.
“그러는 당신은요? 넥타이만 여덟 번 째?”
“아, 나야 맨날 점퍼에 작업복만 입다보니 감이 떨어져서 그렇지.”
“똥배 때문에 핏이 없는 건 아니고요?”
“핏 같은 소리하네. 이 나이에 이 정도 인격 없이 어떻게 살아?”
부부의 소소한 대결이 재개되었다. 토닥거리는 맛에 살아가는 두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