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선생님.”
시침이 끝나자 윤도가 추이펑의 주의를 끌었다.
“예.”
“혀의 맥을 파악해보세요. 암 덩어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겠습니다.”
추이펑이 맥을 잡았다. 첫날과 달리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습득이 매우 빨랐다. 윤도가 지적한 사납고 난폭한 의술을 내려놓은 것이다.
“모두 네 곳으로 보입니다. 앞 쪽과 중후반부의 두 곳, 그리고 혀 뿌리에 한 곳.”
“전이의 맥은 없습니까?”
윤도가 묻자 다시 맥에 집중하는 추이펑.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답했다. 윤도를 넘볼 수 없다는 인정. 그 마음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시 잡아보세요. 식도로 내려가는 림프선. 그리고 위장의 유문부. 거기 사기가 있을 겁니다.”
“아!”
추이펑 입에서 탄식이 나왔다. 약간의 지도만으로 알아듣는 추이펑. 그건 그가 허풍선이 아니라는 반증이었다.
“정 실장님, 약침 준비해주세요.”
윤도가 시침 채비에 나섰다.
“긴장 되죠?”
장침을 집어든 윤도가 환자에게 물었다.
“예.”
“마음 편안히 하세요. 여기 세 분들, 중국에서 굉장한 중의들이시거든요. 혹시 제가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해도 이 분들이 메워줄 겁니다.”
“......!”
윤도의 위로에 감격한 건 환자보다 중의들이었다. 이제는 닥치고 개무시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입장. 그런데 이렇게까지 챙겨주니 몸둘 바를 몰랐다.
윤도가 멸균거즈를 들었다. 그것으로 환자의 혀를 잡아늘였다. 첫 침은 혀뿌리 쪽으로 들어갔다. 암 덩어리의 중심을 꿰뚫자 강력한 화침으로 바꾸었다.
40.5℃
온도를 세팅했다. 정상세포를 제외하고 암의 씨앗까지 태울 생각이었다. 나머지 두 침이 혀의 측면을 공격했다. 그 또한 불덩이의 화침이었다. 마무리는 앞쪽 혀. 안 쪽의 침들이 사자(斜刺)로 들어갔기에 이 침의 각도는 20도 정도의 횡자(橫刺)가 되었다.
채칵채칵!
초침이 돌아갔다. 중의들의 시선은 환자의 혀에 걸려 있었다. 5분 쯤 지나자 색깔의 변화가 보인 것이다. 황태와 암갈색으로 생기라고는 찾아볼 길 없던 환자의 혀. 말단부부터 선홍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혀 역시 건강을 반영한다. 건강한 혀는 선홍색이다. 배출장애나 기능장애가 생기면 혀의 색이 변한다. 그 과정은 울태, 습태, 담태, 적태, 괴태 등으로 나뉜다. 환자처럼 스산한 황색에 퇴락한 갈색이면 염증과 만성체증을 의심할 수 있었다.
30분.
이제 혀의 절반 이상이 선홍빛으로 변했다. 그와 함께 환자의 안색에도 생기가 돌았다. 타이머를 따라 윤도가 발침을 했다.
환자가 숨을 돌리자 나노 침 하나가 목을 겨누었다. 전이된 암 덩어리를 노리는 약침이었다. 추이펑의 눈에 광기가 흘러갔다. 그가 갈구하던 오장직자침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장부는 아니지만 목을 관통해 들어가는 거라 더욱 난이도가 높은 침술이었다.
침은 어떻게 들어갈까? 각도는 어떻고 침법은 어떨까? 협지식 천피냐? 날기식 천피냐, 그것도 아니면 탱개식 천피냐? 추이펑은 눈은 윤도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윤도의 침은 차라리 평범했다. 멋도 과장도 기교도 섞여 있지 않았다. 들어가는 침 또한 추이펑의 침처럼 전광석화. 그러나 명백한 차이가 있었으니 윤도의 침은 환자를 우선해 부드러웠고, 추이펑의 침은 의사 중심이라 난폭했다.
내 침이 보통 침인 줄 알아,가 추이펑의 포지션이라면,
이 침, 환자를 위해,가 윤도의 자세였다.
물결...
추이펑의 머리에 물결이 일었다.
바람...
바람도 일었다.
윤도의 침은 그 짧은 찰라에도 조직과 세포, 근육과 혈관, 신경을 하나하나 헤치며 병소를 향해 나아갔다. 힘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추이펑과 근본이 다른 것이다.
침은 마침내 식도의 암 병소를 꿰었다. 또 하나가 출격했다. 중의들은 넋을 놓은 지 오래였다. 그들은 혈자리조차 찾기 어려운 고난도의 환자. 그러나 윤도의 침은 거침이 없었다.
시침이 끝났다.
추이펑은 어깨를 내리고 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따라나왔다.
“추 선생...”
기자가 추이펑을 불렀다. 추이펑은 중의의 에이스였다. 기자는 알고 있었고 취재와 촬영 또한 그를 중심으로 세팅하고 있었다.
“아까 반전을 생각해보자고 했었습니까?”
“예.”
“그 마음 여기다 내려놓으세요.”
“추 선생.”
“채 선생은 진정한 신의입니다. 내가 만났던 명의들... 제 침술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그분들의 침과 차원이 다릅니다.”
“......”
“채 선생이 있는 한 중의학은 한의학을 넘지 못할 겁니다. 제가 천재명의라면 저 분은 그 위의 신의이자 천의입니다.”
“......!”
기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야심차게 탑승했던 한국행 비행기. 그 안에서 요원하게 불타오르던 중국의 굴기와 추이펑의 야망은 간 곳이 없었다. 채윤도를 눌러 중의를 부각하려던 계획은 완패였다.
다음 날, 중의들은 중국으로 떠났다. 오래지 않아 윤도 전화로 MMS가 들어왔다. 추이펑이 보낸 인터넷판 중국기사들이었다.
<신의 손 한의 채윤도 신진 중의들의 침술 눈을 뜨게 하다.>
<차원이 다른 한의 침술, 중의들 대오각성 필요.>
기사의 끝에 추이펑의 인터뷰가 보였다.
“한의 침술 중국에 30년은 앞서 있습니다. 중의들은 분발해야 합니다.”
마지막은 추이펑의 문자였다.
<헤이싼시호 이야기는 제가 전설에서 따온 이야기입니다. 제 자신을 포장하느라고 그럴 듯하게 종종 써먹는 이야기였죠. 21세기에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만 이번 연수로 전설의 명침은 전설이 아니더라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이 준 심장폭격의 강력한 교훈, 두고 두고 갈 길로 삼아 진정한 인술을 펼치는 중의로 거듭나겠습니다. Xie Xie.>
문자를 본 윤도가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 먼 중국의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헤이싼시호의 전설이 그저 전설인 것만은 아니지요.’
장관님은 오줌싸개? 1
장관님은 오줌싸개? 1
“채 선생님!”
한정식 주차장에서 정 비서관이 손을 들어보였다. 그도 막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정 비서관은 민정을 담당하는 양 비서관과 동행이었다.
“들어가시죠.”
그들이 윤도를 안내했다. 장소는 한정식집의 구석진 내실이었다.
“여기 잡곡밥 한정식이 깔끔해서요. 김영란 법도 있고 해서 비용에 맞게 정했는데 너무 구닥다리 장소를 골랐나요?”
정 비서관이 물었다.
“별 말씀을. 한방으로 쳐도 오곡이 최고죠. 오장육부에 다 기를 전달하거든요.”
“어이쿠, 그럼 다행이군요.”
정 비서관이 너스레를 떨었다. 약속은 며칠 전에 잡혔다. 정 비서관의 요청이었다. 그의 가족을 치료해준데 대한 보답인가 싶었다.
“양 비서관입니다. 본 적 있죠?”
정 비서관이 양 비서관을 가리켰다.
“그럼요.”
가벼운 목인사로 예의를 갖춰주었다. 청와대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지난번 장모님 일은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요즘 아침 밥상이 달라졌습니다.”
“다행이네요.”
“우리 어부인께서 그러더군요. 국가가 의료정책을 바꿔야하는 거 아니냐고? 양방 병원 열 군 데도 넘게 돌아도 못 고친 병인데 채 선생님이 한 방에...”
“장모님께서 침빨을 잘 받은 덕분입니다.”
“언제나 겸손하시군요. 이제 그만하면 목에 힘을 주셔도 뭐라 할 사람 없을 텐데...”
“의학의 길은 멀고 또 멉니다. 여기가 끝이다 하면 좋은 의술 펼치기 어렵습니다.”
“아, 중국 쪽에서 연수를 다녀갔던 모양이더군요?”
“예...”
“단순한 연수였습니까?”
“예?”
“아닙니다. 굴기를 내세우는 중국이 어쩐 일로 침술연수를 다왔나 싶어서...”
“음이 있으면 양이 있는 것이니 중국도 모든 면에서 목에 힘을 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주제 넘은 말이지만 한국 역시 몇 개 분야에서 앞서간다고 방심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자면 우리도 통일이 필요한데... 아니면 최소한 남북의 적극 협력이라도 말입니다. 그게 아니면 중국을 견제하기 쉽지 않은데 서로 지척에서 왕래도 못하는 형편이니.”
“스트레스 좀 받으시겠습니다.”
“대통령께서 채 선생님 만나러간다고 하니 시원한 장침이나 한 대 맞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놔드릴까요?”
“여기서요?”
“못할 것도 없습니다.”
윤도가 장침통을 꺼내들었다.
“기왕 말 나온 거 맞아봅시다.”
정 비서관이 양 비서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양 비서관이 사진 한 장을 꺼내놓았다.
“침은 이분에게 좀 부탁드립니다.”
양 비서관이 말했다. 사진은 70여 살 쯤 먹어보이는 인물이었다.
“......?”
윤도가 주춤거렸다. 스트레스를 풀어주겠다는데 엉뚱한 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봉철기 전임 주중대사입니다. 나이는 올해 68세.”
“양 비서관님.”
“아시는지 모르지만 외교부 장관이 국장시절 여대생 인턴을 노래방에서 성추행했다는 제보가 올라와 곤혹을 치루고 있습니다. 자체 조사결과 혐의 일부가 인정되는 바람에 경질 분위기로 가고 있는데...”
여기도 미투(Me too)다.
“......”
“거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하지요.”
정 비서관이 말꼬리를 트고 들어왔다.
“방북 사건 기억하시죠?”
“그럼요.”
“그때 선생님 도움으로 특사들이 몇 번 왕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쪽에서 우리 측 특사들을 시큰둥하게 여기는 통에 큰 진전이 없는 편이지요. 해서 대통령께서도 임기 말의 내실을 고려 중이신데 최근 중국의 팽창정책에 비춰볼 때 그동안 물밑에서 공을 들여온 남북접촉이 흐지부지 끝나면 차기정권에서는 버리는 카드가 될 거라는 우려가 큽니다.”
“......”
“해서 외교 라인을 대폭 교체해 대북 성과를 가시화하려던 계획과 맞물려 외교장관 교체 카드를 뽑게 되었습니다.”“......”“그 적임자가 바로 이 분 봉철기 전임 주중대사입니다. 중국대사로 재임시 중국과의 관계도 좋았고 북한 측과의 라인도 가지고 있는 분이죠. 다만 탈북자들의 대사관 진입을 막았다는 이유로 여론이 악화되어 사직을 했지만 남북 평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분입니다.”
“그럼 어디 중병이라도 앓으시는 겁니까?”
윤도가 물었다. 중병이 아니라면 윤도에게 긴 말 할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고질병이 있습니다. 그걸 좀 고쳐주셨으면 합니다.”
“고질병?”
“요실금입니다.”
정 비서관이 또렷하게 말했다.
요실금.
한방에서는 소변불금으로 통한다.
“가능합니까? 콩팥도 조금 안 좋은 것 같습니다만...”
“그 정도라면 병원에서 수술로 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아는데요?”
요실금.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의 난치 불치는 아니었다.
“그게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취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중국 대사로 있을 때도 중국에서 수술을 시도하려고 마취를 했는데 죽을 뻔 했던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마취 알레르기?’
“침으로 되겠습니까?”
“환자를 보지 못해 장담하기는 그렇지만 길은 있을 걸로 봅니다.”
“그렇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일로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서 검증하고 있는 세 분이 있는데 이게 그만 야당과 시민단체에게 새어나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청와대라고 대통령의 사람만 있는 게 아닙니다. 보안이라는 건 어떻게든 허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다른 루트에서 샐 수도 있고요.”
“......?”
“그렇다보니 당장 야당과 시민단체에서 비공식 반발이 왔습니다. 기저귀차고 오줌이나 줄줄 흘리는 사람을 외교장관에 앉혀 국제 망신을 사려냐고요.”
‘허얼.’
“그렇잖아도 꼬투리 찾던 참에 제대로 잡은 거지요. 요실금이 중병은 아니지만 국민들 여론에 부정적 영향은 줄 수 있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북 접촉에서 이 분만큼 성과를 낼 적임자는 없습니다. 통일은 몰라도 최소한 비핵화협정에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만 재개해도 우리 경제에는 날개가 될 겁니다.”
“그럴 수는 있겠군요.”
“이렇게 부탁하는 건 문제가 하나 더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 더 있다고요?”
“봉철기 전 대사... 그 본인도 이 문제로 고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저귀 차는 심정을 아냐고 하더군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집 밖 구경한지도 오래 되었다고. 주변 말로는 다니던 병원에서도 손을 들었고, 그 의료기록이 새어나간 건지 요실금이 공개되고 말았습니다.”
“병원 의료진이 공개했단 말입니까?”
“누가 했는 지는 모릅니다. 의사일 수도 있고 간호사일 수도... 혹은 관련 직원들이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 혹은 측근 쪽 일 수도 있습니다.”
“복잡하군요.”
“정보공개 문제는 수사를 하면 나오겠지만 그러다 봉철기 대사의 요실금이 더 이슈화될까봐 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고쳐주시면 오히려 반전 카드가 될 수 있기에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
“부탁합니다.”
정 비서관은 절실했다.
“뭐 정 그렇다면 봐드릴 테니 한의원으로 나오시게 해주시죠.”
“죄송합니다. 그 의견을 드렸는데 천하의 명의라도 자기 요실금은 못 고친다고 고사를...”
“제가 가 달라는 말씀이군요?”
“죄송합니다.”
“그럼 언제까지 봐드리면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이면 더 좋습니다.”
정 비서관, 기다렸다는 듯이 눈빛을 세웠다. 번갯불에 콩을 볶는 눈빛이었다.
**
끼익!
윤도의 차가 장충동에서 멈췄다. 정 비서관과 양 비서관이 동승한 차의 뒷좌석이었다.
“여기입니다.”
정 비서관이 가리킨 곳은 2층짜리 주택이었다. 담장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 넝쿨이 인상적이었다. 벨을 누르니 파출부가 나왔다. 작은 마당은 목가적이다. 오래된 돌절구 안의 물에는 작은 연꽃이 피었고 벽을 따라 소담한 우리 꽃들이 즐비했다.
“또 오셨나?”
봉철기가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
윤도를 보더니 정 비서관에게 물었다.
“말씀드린 대통령 자문의이자 국가대표 명의 채윤도 선생님입니다.”
“고집하곤.”
봉철기는 괜한 짓을 했다는 듯 쓴 볼을 실룩거렸다.
차가 나왔다. 봉철기는 마시지 않았다. 환한 거실에서 보니 얼굴이 누렇게 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