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출생할 때 울음소리를 냈고 뇌초음파와 기타 검사에 큰 이상이 없어서 회복을 기대하던 아이입니다. 문제는 2주일 쯤 후부터 고환에 부종이 오면서 탈장을 의심하게 되었는데...”
설명하던 닥터 민의 목소리가 살짝 불안해졌다.
이 닥터 마음이 여린가?
윤도 혼자 생각했다. 한의사나 의사들은 인정사정 없다고 하는 환자들이 많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수는 감성적이다. 지금 이 닥터 민처럼.
“진단결과 서혜부 탈장 판정이 났어요. 하지만 미숙아들은 원래 탈장 케이스가 많거든요. 큰 문제가 아니면 몸무게가 늘어난 후에 간단한 수술로 끝날 일이라 좀 더 지켜보기로 했지요.”
“......”
“그 중간에 아기가 힘들어하는 거 같아 진통제 용량을 좀 늘렸어요. 담당교수님이랑 이학적 검사 후에 탈장을 밀어올렸고요. 그때까지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았는데 이틀 후에 장에 문제가 생겼어요. 장천공이 의심되어 급하게 소아외과랑 수술일정 잡아서 수술을 했지요. 인큐베이터 뚜껑을 열고 몇 시간 가량 진행했는데 복부에 이미 대변이 많이 나와 있었고 고환에도 흘러들어 닦아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그런 다음 장루에 탈장수술, 개복하여 천공된 장을 봉합하는 수술까지 무난하게 끝났습니다.”
“......”
“그 삼일 후부터 상태가 악화되었어요. 급성 신부전이 오면서 온몸에 부종이 오기 시작한 겁니다. 스태프들이 모여 숙의를 하던 중, 투석기 돌리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우선은 아기가 너무 미숙한 데다 설상가상 카테터가 들어갈 혈관도 확보하기 어려워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중심 정맥관을 잡아 목에 카테터를 꼽을까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아기가 사망할 수도 있기에...”
“......”
“게다가 우리 교수님 방침도 2kg 미만의 미숙아들에게는 신장투석기를 돌리지 않거든요. 자칫하면 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설명하는 닥터 민의 안면근육이 계속 떨렸다. 이해했다. 주치의라지만 그래봤자 수련의. 담당교수의 메신저 역할이나 하는 것이니 마음만 아플 수도 있었다.
“담당교수님은요?”
“아까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고 다른 수술 들어가셨습니다.”
“설명이라면?”
“포기하라는 말씀이죠, 뭐.”
‘포기?’
“숨이 붙어있을 때 한 번 안아보라는 배려였어요. 교수님도 마음 아파하고 계십니다.”
“제가 온다는 건 이야기가 된 건가요?”
“말씀은 드렸습니다.”
“일단 맥을 한 번 보겠습니다.”
“아니다싶으면 그냥 가셔도 괜찮습니다. 보호자에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아직은 숨이 붙어 있잖습니까? 기왕에 왔는데 그냥 돌아서는 것도 의료인의 자세가 아니겠죠.”
“하지만 보시다시피...”
닥터 민이 라인을 바라보았다. 2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주렁주렁 달린 라인들. 차마 허망해 보였다. 저렇게 감아쥐고도 이 어린 생명을 붙잡지 못한다니.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흑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
한 번 더 황망했다. 아기는 옷을 벗고 있지만 맥을 잡을 데가 없었다. 손과 발, 심지어는 목에도 라인이 연결된 까닭이었다.
왼손의 검지를 들었다. 영아기의 아이들은 손가락으로도 맥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손가락이 너무 작아 실핏줄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준서야, 진맥 좀 볼게.’
인사로 진맥을 알렸다. 이름은 인큐베이터에 있었다. 가는 호침을 양 손목에 넣었다. 검지와 중지, 약지를 번갈아대며 아기의 맥을 찾아갔다.
불편했다.
연결된 라인과 의료기기들. 그 간섭이 너무 큰 까닭이었다. 눈을 감았다. 목숨이 있다면 맥도 있는 법. 어떻게든 읽어내는 건 한의사의 몫이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수차례 집중한 끝에 아기의 맥을 찾아냈다. 실낱같지만 어지러웠다. 맥은 맥이되 맥이 아니었다.
눈을 뜨자 아기 고환부터 보였다. 얼굴만큼 부은 상태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기의 신장도 참혹했다. 삼초도 명문도, 나아가 폐와 간도.
목숨의 시간은 길어야 두 시간.
담당교수의 배려로 부모와 작별까지 마친 아기.
생각이 많아졌지만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
그렇다면 살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지구상 모든 의료인들의 숭고한 사명이었다.
“민 선생님.”
진단을 마친 윤도가 고개를 들었다.
“예?”
“보호자를 좀 만나게 해주시죠.”
“왜요?”
닥터 민의 눈동자가 출렁거렸다. 개의치 않고 신념대로 밀어붙였다.
“이 아기, 살릴 확률이 1할은 됩니다.”
“1할이라고요?”
닥터 민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걸 본 윤도가 설명을 바꾸었다.
“아니, 10%로군요. 무려 10%.”
10이라는 숫자에 윤도의 힘이 실렸다.
인큐베이터 Emergency-2
인큐베이터 Emergency-2
“우리 아기 살려주세요!”
상담실에서 만난 준서 부모는 두 손부터 모았다. 명의에 신의로 불리는 채윤도. 주저하고 말 것도 없었다.
“담당교수님은 늘 장애부터 거론하시던데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요. 어떤 장애를 갖게 되더라도 좋으니 살려만 주세요. 우리는 준서를 키울 준비가 되어있어요.”
부부 눈에 피눈물이 맺혔다. 그들은 과연 어머니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었다.
“그럼 여기 동의서 사인해주세요.”
닥터 민이 서류를 내밀었다. 병원의 요식행위는 보호자들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병원으로서는 빼놓을 수도 없는 절차였다.
“선생님!”
먼저 나온 윤도를 부부가 따라나왔다.
“이거요. 저희 어머니가 저 마시고 힘내라고 주신 건데 선생님이 드시고 우리 준서 좀 부탁해요.”
준서 어머니가 내민 건 홍삼추출액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두 분이 마시고...”
“아니에요. 더 좋은 거 못 드려서 죄송해요.”
어머니가 모서리를 잘랐다. 별 수 없이 받아마셨다.
“이렇게 와주셔서 고마워요. 설령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선생님 원망 않을 겁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
부부가 다시 허리를 접었다. 그걸 두고 돌아섰다. 감격만으로 살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A셀 인큐베이터 앞에 앉았다. 준서의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숨이 넘어간대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아이. 장루와 소변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장루는 비었고 소변주머니에는 초콜릿색 오줌이 소량 나와 있다.
부푼 고환과 비교하면 허망한 풍경이었다. 윤도가 할 일은 저걸 반대로 바꾸는 일이었다. 아이가 살려면 장루로 변이 나와야한다. 초콜릿 색깔 소변도 밀짚색으로 바뀌어야한다. 그건 곧 아기의 장이 장운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된다. 아울러 고환의 부종제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NICU 간호사 교대시간이 되었다. 인수인계로 인해 병실이 잠시 소란스러웠다. 마음을 다잡은 윤도의 두 손이 인큐베이터의 양쪽 문으로 나뉘어 들어갔다.
첫 침은 곡지혈에 호침이었다. 미숙아인데다 최악의 상황. 그렇기에 침의 부작용부터 방지하는 예방침법으로 조심을 했다. 침을 넣는 순간에도 아기의 데이터를 더 다운되었다. 본격 침술을 위해 곡지혈에 넣은 침을 발침했다.
그런데.
침이 뽑히지 않았다.
‘응?’
작디작은 몸체의 미숙아 준서. 어찌 보면 침 넣을 곳도 없기에 호침을 넣었건만 이 조차 이상반응이었다. 응급조치로 곡지혈 주변에 호침 두 개를 더 넣었다. 그래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고민만 늘어난 꼴이 되었다.
‘후우!’
호흡을 골랐다. 아기도 문제지만 윤도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윤도는 침의 기본을 되뇌었다.
[심불잡의-마음을 비워 잡념을 없애고]
[지신좌정-몸가짐을 바로하고]
다시 침을 꺼내들었다. 양릉천혈을 찔렀다. 침이 안 빠질 때의 응급혈이었다. 이 혈자리도 통하지 않았다. 당황하지 않고 양릉천에 들어간 침 끝을 잡았다. 맥으로 안 될 때는 혈자리로 상태를 봐야했다.
“......!”
상태를 파악하던 윤도, 등골이 오싹해왔다. 이 아기, 맥이 발딱 뒤집혀 있었다. 음맥이 양맥으로 흐르고 양맥이 음맥으로 흐르는 것이다. 아니, 그것도 완전히 뒤집힌 건 아니었다. 때로는 정상으로 또 때로는 엇갈려 흘렀다. 그야말로 카오스의 기혈. 4대 기혈이니 8대 기혈이니 하는 것보다 더 힘들 혈자리였다.
‘젠장!’
침통을 다 꺼내놓았다. 이제는 사생결단의 혈투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민 선생님.”
옆에 있는 닥터 민을 불렀다.
“예?”
“인큐베이터 문 좀 열어야겠습니다.”
“예?”
“부탁합니다.”
윤도가 청했다. 이 상태로는 기동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윤도 편하자는 건 아니었다. 인큐베이터의 뚜껑을 열고 수술을 받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간호사가 달려와 문을 개방했다. 손놀림이 훨씬 쉬워졌다.
서둘러 관원혈을 잡았다. 임맥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혈자리였다. 다음 침은 수구혈이었다. 수구혈은 독맥에 속한다. 이 혈자리는 모든 구멍을 잘 열어주는 명혈로 꼽혔다. 두 혈에서 음양의 안정을 시도했다. 몇 곳 더 찌르고도 싶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침감이 먹히지 않았다. 돌려도 돌지 않고 움직여도 흔들리지 않았다.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에 여러 시도도 할 수 없는 상황. 관월혈을 놓고 수구혈에 집중했다. 윤도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치를 고치고, 화려한 수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윤도는 그저 이 순간에 살았다.
‘돌아라.’
화침을 넣었다. 침은 흡사 콘크리트 속에서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억지로 돌릴 수야 있지만 그건 카오스에 기름을 붓는 격. 자칫 무리한 침감이 들어가면 즉사로 이어질 일이었다. 윤도와 준서, 그 둘을 이어놓은 호침은 마치 절벽에 매달린 아이를 머리카락 하나로 이어놓은 위태로움과도 같았다. 무리한 힘을 가하면 추락할 일이오, 끌어올리지 못해도 죽을 일이었다.
준서야.
윤도가 속삭였다.
포기하면 안 돼.
밖에 네 엄마 아빠가 계셔.
네가 살아나기만 하면 뭐든 다 해줄 엄마 아빠.
여지까지 잘 버텼는데 이제 포기하면 슬프지 않겠니?
속삭이는 중에도 음양의 교체는 미친 듯 목숨줄기를 오갔다. 바로 그때, 윤도 망막에 지진이 일었다. 어떤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음양이 교차하는 그 순간이었다. 너무나 불규칙해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순간. 숨을 참은 채 다시 그 순간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손에 마비라도 올 것 같은 순간에 마침내 교차의 신호가 왔다. 윤도의 손이 재빨리 침을 감았다.
‘돌았다.’
윤도 얼굴에 희망이 스쳐갔다. 전광석화처럼 감았던 침을 풀었다.
푸슛!
사기가 미량 끌려나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침은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
닥터 민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준서의 목숨이 한 올 씩 꺼지고 있었다. 윤도는 듣지 못했다. 모든 신경이 준서의 음양 교체 타이밍에 맞춰진 까닭이었다. 윤도는 또 한 번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파앗!
미친 듯이 침을 감았다. 조금 전의 경험 때문인지 제대로 감겼다. 그 상태로 아기 몸에 꽂힌 침들을 바라보았다. 곡지혈과 관월혈, 그리고 양릉천혈...
‘부디...’
소망과 함께 침감을 풀었다.
‘웃.’
윤도 눈에 생기가 들어왔다. 아기 몸에 들어간 호침들이 흔들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양릉천의 침을 잡았다. 움직였다.
‘빙고!’
침감이 먹히는 걸 확인하자 조치에 들어갔다. 관월과 수구를 조절해 임맥과 독맥을 다그쳤다. 음양이 뒤집히고서야 침빨이 받을 리 없었다. 음은 음으로, 양은 양으로. 본래의 자리에 밀어 넣고 안정화시켰다. 그 걸 확인한 후에야 관월과 수구혈의 침을뽑았다.
“선생님, 이제 그만 하시는 게...”
닥터 민은 청진기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준서는 사망이었다.
“죄송합니다만 제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Shut the mouth.
돌아보는 윤도의 표정은 딱 그랬다. 윤도 손에 맡겨진 한 포기 또한 윤도의 몫. 닥터 민을 바라보는 윤도의 눈은 그걸 주지시키고 있었다.
장침이 출격했다.
길이에 놀란 닥터 민이 기겁을 하며 물러섰다. 그렇잖아도 긴 장침, 미숙아에 비하니 절반 가까운 길이가 되었다. 신주혈과 명문혈에 넣었다. 둘 다 독맥혈이었다. 이제는 양맥으로서의 느낌이 제대로 왔다.
‘신주와 명문.’
어린이의 명혈이다. 준서의 경우에는 폐와 간, 탈장과 장천공, 신부전 등의 병명이 이어지지만 두 혈만으로 승부를 낼 참이었다. 침감을 부드럽게 조였다. 원기로서의 정(精)을 자극했다. 준서의 정은 통곡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침감으로 그 추락을 잡았다.
명문혈 역시 지원군으로 나섰다. 신장 곳곳에 흩어진 정을 모으고 또 모았다. 그것은 마치 다 삭은 잿더미를 합쳐 불씨를 만드는 일과도 같았다. 준서는, 현대의학으로는 이미 사망이었다. 이따금 곁눈질을 하던 담당 간호사도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보기에 윤도의 진료는 시간낭비이자 망자에 대한 결례일 뿐이었다. 그 사이에 담당교수도 들어왔다. 그의 입가에는 냉소까지 맺혔다.
니가 명의?
명의면 다 되는 줄 알아?
냉소가 저 홀로 속삭였다.
윤도의 진단은 달랐다. 준서는 아직 요단강을 건너지 않았다. 침감이 그랬다. 맥을 잡는다면 신장경락의 태계혈에 맥이 남아있을 일이었다.
불 꺼진 신장을 얼마나 보살폈을까? 허무한 그 자리에 얼마나 기를 채워 넣었을까? 침감을 더하는 윤도의 손마디에서 증기까지 피어올랐다.
거기까지였다. 혼신의 힘으로 온기를 만들었지만 신장에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승부수.’
윤도의 시선이 간으로 옮겨갔다. 성인이라면 신장을 Off 시켰다가 On 해보는 초강수라도 둬볼 판. 하지만 미숙아이니 그조차 시도할 수 없었다. 윤도가 택한 마지막 승부는 간접 활성이었다. 간은 심장에 힘이 될 수 있다. 심장은 비장에 그렇다. 비장은 폐를 돕고 폐는 신장을 돕는 법. 오행의 활성을 몰아 마지막 시도를 하는 윤도였다.
신주와 명문혈의 기를 간으로 돌렸다. 간의 기가 최대치에 이르자 심장으로 보냈다. 심장에서 비장, 비장에서 폐. 폐에 모아진 마지막 진기가 신장으로 집중되었다. 동시에 신주혈과 명문혈의 침감 역시 신장을 향해 퍼부었다.
제발.
제발.
윤도의 혼신은 오직 한 단어를 품고 날아갔다. 오장의 진기와 윤도 침의 기가 신장으로 들어갔다. 허무한 잿더미에 녹아들었다. 잿더미들은 슬쩍 부유하더니 속절없이 내려앉았다. 그 기세가 허무했다.
‘틀렸군.’
윤도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침이라도 빼줘야겠어. 침조차 무거울 테니. 마음이 손가락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발침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손끝으로 아련한 반응이 전해왔다.
‘응?’
발침을 멈추고 집중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신장에 온기가 들어선 것이다.
‘해냈다!’
윤도는 저도 몰래 왼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그만 하시는 게...”
닥터 민이 윤도 어깨를 두드렸다.
“미안하지만 지금부터입니다.”
윤도의 손이 다시 바빠지기 시작했다. 신주혈과 명문혈에 활력이 보였다. 서광은 선천 원기를 관장하는 오른쪽 신장부터 휘돌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왼쪽 신장에도 생기가 돌았다. 왼쪽은 몸의 수분을 조절하는 곳. 그 사이에 고환의 크기도 살짝 줄어있었다.
“바이탈 사인이 돌아와요.”
간호사가 소리쳤다.
“뇌파도 돌아와요.”
소리가 이어졌다.
“맙소사, 유린(Urine) 좀 보세요.”
간호사의 비명은 속속 이어졌다.
윤도는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바이탈 사인과 소변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피어난 신장의 불씨를 살려 오장을 깨워야하는 것이다. 신주와 명문혈이 침빨을 받기 시작했다. 신장의 회복. 그것은 곧 생명의 원천을 확보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겁날 게 없었다.
담당교수의 눈자위가 구겨졌다.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도는 침감을 조절했다. 신들린 모습이 거기 있었다. 뒤쪽이 시끌벅적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직 신장에의 집중, 그리고 또 집중. 마침내 오장을 돌볼만 한 수준이 되었다 싶을 때 신주와 명문혈의 방향을 병소 쪽으로 돌렸다. 이제는 아기 내부의 질병에 대한 반격이었다. 99.9% 아기의 목숨을 장악했던 질병과 통증들이 혼비백산을 했다.
금식으로 인해 악화되었던 간기능이 자리를 잡았다. 가냘프던 폐기능도 회복이 되었다. 부종까지 잡히자 증거가 소변으로 나왔다. 소변이 밀짚색으로 변한 것이다. 독소를 몰아내는 축빈혈도, 몸속 잉여물을 정리하는 합곡혈과 삼음교혈도 필요없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밖에 안 되는 미숙아. 신주혈과 명문혈이면 되었다. 신주와 명문, 윤도의 신침으로 몰아치는 생명의 귀환은 가히 신묘함의 절정이었다.
“세상에!”
간호사의 비명은 쉴 새도 없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고환이었다. 다른 장기는 내부에 있어 보이지 않지만 고환은 달랐다. 마치 야구공을 넣어둔 듯 부풀었던 크기가 속속 줄어든 것이다. 마무리는 장루였다. 허전하게 비어있던 그곳에도 손님이 찾아왔다. 배변을 본 것이다. 장은 장기들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기능이 돌아오는 곳. 변이 나왔다는 건 장도 제자리를 찾았다는 뜻이었다.
“악!”
멸균복을 입고 들어온 부부가 비명을 질렀다. 거의 포기했던 아기였다. 의료진들이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보기나 하라고 했던 아기였다. 시뻘겋다 못해 거무퇴퇴하던 아기. 머리보다 크게 부푼 고환에 장천공까지 있어 보는 것조차 고통스럽던 아기. 그 아기가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의 혈투.
윤도의 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