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7화 (247/265)

“죄송하지만 준서 부모님께 가는 길인데 함께 가주시겠어요?”

“제가 왜요?”

“평생 씻지 못할 제 무거움을 씻어주신 분이잖아요? 선생님 앞에서 그 부모님께 사과드리고 싶어요. 준서에게도.”

“가봐.”

옆에 있던 창승이 윤도 등을 밀었다. 못 이기는 척 상담실로 따라갔다. 만약 윤도의 얼굴을 팔아 어물쩡 넘어갈 태세라면 따귀라도 갈겨줄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기우였다. 상담실에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준서 부모님이 보였다. 닥터 민은 부부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용서를 빕니다.”

닥터 민을 바라보던 어머니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민세라 선생님.”

“어머니...”

닥터 민은 차마 준서 어머니를 마주 보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아기가 그 지경이 되었을 때는, 담당교수가 체온이 있을 때 안아나보라고 했을 때는 교수와 당신까지 다 찢어죽이고 싶었어요.”

“......”

“채 선생님이 아기를 살렸을 때도 그랬어요. 그건 당신들의 공이 아니니까요. 오직 채 선생님이 혼신의 침으로 이룬 기적이니까요.”

“......”

“그런데, 알고 보니 채 선생님을 모시자고 한 게 당신이더군요. 이창승이라고 다른 환자 주치의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건...”

“병 주고 약 준 셈이네요. 우리 준서를 지옥 문턱까지 보냈다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려놓다니.”

“어머니, 죄송합니다. 저는...”

“탈장 얘기도 들었어요. 담당교수가 해야 할 일을 당신에게 시키다 일어난 일이라는 거.”

“그 일은 할 말이 없습니다. 어쨌든 제 잘못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 게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어요. 우리 아기가 살았으니까.”

“어머니...”

“다음부터는 꼭 좋은 의사가 되세요. NICU가 힘든 건 알지만 그 안에 아기를 맡겨둔 부모 만큼 힘들겠어요? 당신들은 그래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알잖아요? 우리는, 우리 부모들은 그저 당신들 얼굴만 쳐다보며 하루를 산다고요.”

“어머니.”

닥터 민이 한 번 더 무너졌다. 윤도는 그쯤에서 슬그머니 발을 돌려 복도로 나왔다.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

쉽지 않다. 하지만 닥터 민은 이제 좋은 의사가 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는 이번 미숙아 사건이 헤이싼시호가 될 것만 같았다. 거듭날 기회가 된 것이다.

준서에게 가서 침을 놓았다. 그새 부쩍 자란 것 같았다. 윤도의 손길을 아는지 입꼬리도 올라갔다. 기혈을 고르게 해주고 황달을 조절해주었다. 그리고, 슬쩍 그 부위도 체크했다. 준서의 고환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발침을 할 때 간호사가 다가왔다.

“준서는 지정의, 주치의 모두 바뀌게 된대요. 지정의 되실 교수님이 아까 와서 보더니 굉장히 좋아졌다고 C셀로 보내자고 하더라고요. A셀에서 C셀로 직행하는 케이스는 준서가 처음일 거예요. 우리 NICU 기록이에요. 기록.”

간호사는 제 일처럼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준서에게 연결되어 있던 라인도 절반 정도로 줄었다. 시원한 마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미숙아 왕진은 이렇게 해피엔딩이었다.

황제의 병-1

황제의 병-1

“어때요?”

윤도가 침구실의 어르신 환자에게 물었다. 속이 쓰리다고 해서 바르는 탕약을 발라준 것이다. 그것도 복부가 아니고 손과 손목이었다.

며칠 소홀한 신약에 대한 확인이었다. 고혈압, 당뇨, 위장병 등의 타입이 나오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건 없었다.

“다른 거 발라볼 게요.”

두 번째 실험 탕약을 발랐다. 탕약재의 분자량이 다른 약이었다. 할머니의 피부각질을 고려할 때 조금 더 나을 것으로 보였다.

“나은 건가?”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도가 맥을 잡았다. 말은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를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윤도를 신뢰하는 까닭이었다. 이렇게 되면 플라시보 효과라고 위약효과가 성립할 수 있었다.

‘위장...’

관맥에 집중했다. 약간의 차도는 보이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까 고혈압 환자도 그랬다. 장침을 집었다. 아시혈로 들어갔다.

“아이고, 시원한 거.”

할머니가 반색을 했다.

‘12경맥의 유주...’

원장실 책상에 앉아 의서를 펼쳤다. 인체의 피부는 12구역으로 나누었다. 24구역으로 늘일까하다가 오히려 절반으로 줄였다. 6구역이었다.

머리, 양 팔, 양 다리, 복부, 등, 손발.

갈 길이 멀어서 좋았다. 손대는 대로 뚝딱 신약을 만들어낸다면 무슨 보람을 느낄 것인가? 강외제약에서 보내준 참고자료를 펼쳤다. 바르는 파스부터 동안 팩까지 다양했다. 그것들에 대한 원리를 놓고 하나씩 점검해나갔다. 원리를 생각하니 혈자리가 떠올랐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원장님, 검사님 오셨는데요?”

정나현의 목소리였다.

“아, 모시세요.”

윤도가 답했다. 그러고 보니 용천규 부장검사와 약속한 시간이었다.

‘또 어디가 아프신 건가?’

의서를 밀어두고 용천규를 맞았다.

“이어, 원장님.”

“오셨습니까?”

“신수가 원하시네?”

“하핫,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앉으시죠.”

윤도가 자리를 권했다.

“어디 불편해서 오신 겁니까?”

“불편하지.”

차를 마시던 용천규가 답했다.

“또 허리가 도지셨나요?”

“허리가 아니고 여기.”

용천규가 가리킨 건 머리였다.

“머리가 아프십니까?”

“아파, 그것도 미치도록.”

“얼굴색 보아하니 질병은 아니고 스트레스인 모양이군요.”

“맞아. 스트레스.”

“골 아픈 사건이 배당되었군요?”

“아이고, 족집게. 우리 원장님, 이제 돗자리도 같이 펴도 되겠네.”

“머리 맑아지는 침 좀 놔드려요?”

“아니, 나 때문에 온 게 아니고 소환할 사람 때문에 온 거라네.”

‘소환?’

“전직 대통령 관련 사건인데 굉장히 중요한 고리가 되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 양반 엄살이 국가대표급이시네.”

“엄살이라고요?”

“수사관들 하는 말이 손만 닿아도 자지러진다는 거야. 장난인 줄 알고 강제 소환할까 싶었는데 그것도 병이라나?”

“엄살로 보였다면 암 같은 중병은 없다는 거고, 손만 닿아도 자지러진다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으로 불리는 CRPS(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일까요?”

“응? 그건 또 뭔가?”

“외상 후 특정 부위에 생기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과 거기에 동반된 자율신경계 기능 이상, 피부 변화, 기능성 장애를 특징으로 하는 질환인데요, 바람이 불거나 살짝 닿기만 해도 무지막지하게 아프고, 칼로 찌르는 듯 한 통증이 시작된다고 하더군요. 저도 아직 환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양반은 통풍이라고 하던데?”

“아, 통풍요? 그것도 만만치 않지요.”

“그거 채 원장이 좀 고칠 수 있나?”

“그거 고치면 부장님 스트레스가 사라집니까?”

“이 사람이 중요한 증거를 알고 있는 눈치거든. 불러다놓고 사박사박 조져야할 판인데 손도 못 댈 형편이니 어쩌겠나?”

“그렇다고 강제로 치료할 수도 없을 거 아닙니까?”

“아니야, 내가 낮에 찾아갔는데 콜을 받더라고.”

“네?”

“사실 정권에서 협력하던 사람치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많겠나? 이 양반은 자기 아들을 공기업에 불법취업을 시켜 중견간부로 만들었고 외가 쪽으로도 두 명이나.”“알차게 해먹었군요.”

“그건 문제 삼지 않을 테니 큰 건이나 협조해달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기왕 딜 할 거면 통풍이나 고쳐주지 그래, 라고 하지 않겠어?”

“그래요?”

“처음에는 빈정인 줄 알았는데 말하는 걸 보니 아니더라고. 이 양반이 40대 초반부터 통풍을 앓았는데 하필이면 맥주광에 고기 마니아라지 뭔가? 지금도 냉동실에 시원하게 재운 맥주 한 잔에 닭다리 하나 뜯었으면 소원이 없다고 하더군.”

“공감이 가네요. 사람이란 뭔가를 금하면 더 하고 싶어지거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양반이 채 선생을 몰라요. 워낙 한의원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길래 내가 진짜 명의가 있다고 고치도록 알선해줄 테니 협조해달라고 했지.”

“콜을 받았다고요?”

“그까짓 한의사, 하더니 그러자고 하더군. 만약 통풍 못 잡으면 더 괴롭히지 말라면서.”

“위험부담이 있는 딜인데요?”

“그렇긴 하네. 신뢰 있는 사람은 아니지.”

“치료가 되면 변심할 수도 있겠군요?”

“아들 불법취업이 아킬레스건이니 그러지는 못할 거야.”

“......”

“아무튼 나 한 번 더 살려주실 수 있을까?”

“치료비는 어쩌실 겁니까?”

“그 쪽에서 안 내면 내가 수사비 아껴서라도 치루겠네.”

용천규의 눈빛은 절실했다.

“그럼 콜입니다.”

윤도가 웃었다.

삐뽀삐뽀!

퇴근 시간이 지난 후에 119 구급차가 마당에 멈췄다. 윤도는 진경태와 연재를 거느리고 나와 있었다.

“채 원장.”

뒤따라온 차에서 용천규와 수사관이 내렸다.

“아이고!”

구급차에서는 사람보다 비명이 먼저 나왔다.

“조심하세요. 닿기만 해도 아파 죽는다고요.”

동승하고 온 아들이 구급대원들을 닦아세웠다. 주인공이 보이기 시작했다.

71세 이영철.

머리가 살짝 벗겨진 주인공이 한의원으로 들어왔다. 바로 침구실로 옮겨졌다.

“아, 진짜 수사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아들이 수사관들을 향해 핏대를 올렸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의 부정 취업에 대한 정보를 검찰이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아이고!”

침대를 바꾸는 동안에도 이영철의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선생님이 우리 아버지 치료하신다고요?”

아들이 윤도에게 다가왔다.

“예.”

“진짜 한의학으로 됩니까? 자신 없으면 아예 말씀하세요. 괜히 아버지 힘들게 하면 가만 안 있을 겁니다.”

“일단 나가계시죠. 아시겠지만 통풍은 건드리기만 해도 비명이 나올 수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참고?”

“진료가 끝났다고 말씀드릴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입니다.”

“아, 이 놈의 개한민국...”

아들은 양복을 펄럭이며 침구실을 나갔다.

“당신이 나를 치료하는 건가?”

침대의 이영철이 물었다.

“예.”

“침 놓으려고?”

“예.”

“스치기만 해도 아픈데 무슨 침? 한약으로 가자고.”

이영철, 환자로 온 주제에 멋대로 방향을 정하고 있었다.

“제 침은 아프지 않습니다. 치료문제는 진맥 후에 결정하겠습니다.”

“진맥은 무슨 진맥? 내 몸에 손대지 마.”

이영철이 소리쳤다.

“이영철 님.”

“용 부장 말이 명의라며? 그럼 그냥 한약 지어. 내 병은 통풍이라고 통풍. 진맥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환자의 각은 점점 더 뾰족해졌다.

“그건 안 됩니다. 진맥도 안 잡고 처방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억!”

윤도가 손목을 잡자 환자가 자지러졌다. 놀란 윤도가 손을 놓았다.

“이 사람이 미쳤나? 아프다고 했잖아? 스치기만 해도 바늘로 찌르는 거 같다고.”

이영철이 목청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침으로 하죠.”

“뭐야? 손대는 것도 아픈데 침?”

“병원에서 주사 맞거나 채혈해보셨죠?”

“그거야...”

“어떨 때는 피 뽑을 때 하나도 안 아픈데 어떤 사람이 뽑을 때는 아프죠?”

“맞아.”

“제 침이 바로 그렇습니다. 보시죠.”

윤도가 환자 팔뚝에 쌀알 하나를 떨어뜨렸다.

“아!”

환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곧 그쳤다. 쌀알 다음에 들어간 장침 때문이었다. 언제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느낌이 없었다.

“제 말이 맞죠?”

“......!”

윤도 말에 이영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손목에 수직으로 꽂혀있는 장침 때문이었다.

“응? 이게 언제?”

“이것 좀 보시겠습니까?”연재가 내민 풍선을 받아 쥔 윤도가 장침으로 찔렀다. 풍선은 터지지 않았다. 천천히 잡아 뺐다. 그래도 문제가 없었다.

“응?”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 침은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니 긴장하지 마시고 편하게 계세요. 아셨죠?”

“거 참.”

이영철은 입맛을 다시며 긴장을 풀었다.

장침으로 진맥의 정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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