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화 (249/265)

테이블에는 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윤도와 함께 나오자 아들이 달려와 손을 잡았다. 통닭은 구대홍 아버지의 솜씨였다. 기왕에 온 출장구이. 직원들에게도 한 마리씩 돌렸다.

“키햐, 이 냄새.”

이영철은 자지러지기 직전이었다. 통풍이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맥주 마니아였던 그. 그렇기에 목 매이도록 그리던 치맥이었다.

“정말 드셔도 됩니까?”아들이 윤도에게 물었다. 윤도는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에라!”

아들이 닭다리를 찢었다.

꼴꼴꼴!

찬 맥주도 잔 가득 따랐다.

“드세요. 치료를 축하드립니다.”

아들이 맥주잔을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든 이영철, 목울대가 벌렁거리도록 침을 삼키더니 원샷으로 해치워버렸다.

“캬아!”

감탄사와 함께 통닭다리가 들어갔다. 그렇잖아도 갓 구워낸 장작통닭.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그래. 이 맛이야, 이 맛...”

눈을 감은 이영철의 표정에서 회한이 사무쳤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산다는 것. 그건 중병에 못지않은 고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통풍에 시달렸던 이영철. 그 자리에서 베네첵을 가동시켰다. 본능 발동이었다.

“우워어!”

결과는 쾌재로 나왔다. 이번에도 4.0mg/dl이었다.

“야, 너 아버지 등짝 좀 때려봐라.”

이영철이 아들에게 등을 내밀었다. 아들은 때리는 시늉만 했다. 손만 닿아도 자지러지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얌마, 그러지 말고 강 스매싱으로.”

철썩!

이영철이 아들 등에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요?”

퍽!

이영철의 등짝에 불꽃 스매싱이 작렬했다. 그는 비명대신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핫,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퍽!

다시 한 번 작렬하는 아들의 스매싱. 이번에는 이영철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야, 너 감정 있지? 이건 아예 폭행이잖아?”

이영철은 인상을 쓰면서도 웃었다. 통풍의 고통이 아니라 일반적인 통증인 까닭이었다.

“채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거 내 생애 최고의 치맥이었어요. 인생 치맥입니다.”

검증에 재검증까지 마친 이영철이 소리쳤다.

“이제부터 몸 관리 잘 하세요.”

윤도가 답했다.

“당연하죠. 그런데 이 치맥 값은 얼마를 치러야합니까?”

“저기 구 사장님께 알아서 드리시면 됩니다.”

“알아서라?”

이영철이 지갑을 뽑아들었다.

“에라, 기분이다. 최고의 치맥을 위해 받아주세요.”

이영철은 지갑에 든 돈을 몽땅 꺼내 구대홍의 아버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떠났다.

“선생님, 이거 돈이 너무 많은 데요?”

돈을 확인한 구대홍의 아버지가 울상을 지었다.

“제가 보기에는 대략 맞는 거 같은 데요?”

“예?”

“대한민국 최고의 장작 바비큐 세프시잖아요? 방금 그 분, 황제거든요. 황제 신분에 최고의 세프를 불렀으면 그 정도는 지불해야죠.”

윤도가 웃었다. 통풍은 황제의 병. 황제가 주고 간 돈은 200만원이 넘었으니 치맥값 만큼은 황제다운 지불이었다.

아비규환 속의 두 명의-1

이 날, 치맥 파티는 조금 더 이어졌다. 이영철이 간 후에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때문이었다. 기가 막히는 희소식이었다.

“채 원장.”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맹세코 태어난 후로 처음 듣는 자신감이었다.

‘공진단 때문인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분투하는 아버지를 위해 비법 공진단을 선물했던 윤도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보다 더 높이 날아올랐다.

“나 코스닥 먹었다.”

아버지가 비밀의 봉인을 풀었다. 처음에는 뭐 코스 요리를 먹었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거 먹었다고 자랑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뭐라고요?”

다시 묻자 경천동지할 소식이 귀를 뚫고 들어왔다.

“아버지 회사가 마침내 코스닥 벤처기업 상장요건을 갖췄다고.”

“예?”

“아버지도 이제 상장회사 대표가 된다. 그동안 밀어줘서 고맙다.”

“아버지.”

“아아, 네 활약에 비하면 깜냥도 못되지만 그래도 이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회사니까. 중국 쪽 하고도 핫 라인 연결되어서 매출도 더 늘어날 것 같다.”

“축하드립니다. 정말 잘 됐네요.”

“시원한 치맥으로 한 잔 할까? 오늘은 좀 마셔야겠다.”

“그럼 제 한의원으로 오세요. 제가 대한민국 최고의 장작구이 세프를 초빙해 두었습니다.”

“오케이, 윤철이도 부르고 네 엄마도 모셔라. 나 서류 정리하고 바로 날아간다.”

“알겠습니다.”

윤도가 전화를 끊었다 .

“뭐 좋은 일 생겼습니까?”

옆에 있던 진경태가 물었다.

“아버지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되려나봅니다. 한길만 파더니 기어이 일 내시네요.”

“여기서 회식하시게요?”

“장작 치맥 죽이잖아요? 같이 하세요.”

“무슨 말씀을. 그런 자리에 제가 끼면 분위기 깨집니다.”

“무슨 소리예요? 아저씨랑 저랑은 한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아, 이러면 눈치 없다는 소리 들을 텐데...”

“괜한 말씀 마시고 앉으세요. 이 것도 업무지시입니다.”

“허어.”

“구 사장님, 저희 가족이 온다네요. 죄송하지만 통닭구이 좀 넉넉하게 더 부탁드립니다.”

윤도가 구대성의 아버지를 향해 외쳤다.

창!

잔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코스닥 상장회사 채혁수 사장님의 1조 클럽을 위하여!”

윤철이 일어나 바람을 잡았다.

“야, 너무 오버 아니냐? 1조 클럽이면 40대 대기업 안에 들어야하는데.”

아버지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버지는 하실 수 있어요. 솔직히 구멍가게 가지고 코스닥까지 왔는데 1조 클럽이야 껌이죠.”

“짜식이 터진 입이라고 말은. 나 이제 늙어서 현상유지도 버겁다.”

“걱정마세요. 제가 지금 회사에서 실무 쌓아가지고 가서 도와드릴 게요.”

“얼쑤? 내 기업 날로 접수하려고?”

“에이, 속 보였네.”

윤철이 뒷목을 긁으며 장단을 맞추었다.

“중국 쪽 거래도 늘어날 거라고요?”

윤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국제 추세가 그렇지 않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사업가가 중국 제끼고 사업하기는 어려워.”

“다행히 연결이 잘 되었나보군요.”“내가 채 원장 이름 좀 팔았다. 그쪽 거래처에서 족보도 없는 기업이라고 무시하길래 한 마디 해줬지. 당신들 베이징 독감의 비극을 막아준 명의가 누군 줄 아냐고. 너희가 고맙다고 훈장까지 준 명의가 내 아들인데 어디서 감히 족보 타령이냐고.”

“그게 통해요?”

“당연하지. 인터넷 검색하고 너랑 찍은 내 사진 보여줬더니 바로 꿇더라.”

“아버지도 그거 써먹었어요? 저도 써먹었는데.”

듣고 있던 윤철이 끼어들었다.

“너는 왜?”

“저도 중국 조인트 파트너랑 트러블이 생겼거든요. 우리 제품 제끼고 일본으로 구매처 옮긴다기에 형 이름 팔았죠. 그랬더니 바로 꼬리 내리고 재협상 날짜 잡자고 하던데요.”

“흐음, 어쩐지 요즘 귀가 간지럽다했더니...”

윤도 목에 힘이 들어갔다.

“자,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쭉쭉 진격하세요.”윤도가 잔을 들었다. 허공에서 부딪치고 시원하게 한 모금 넘겼을 때였다. 전화기가 울었다.

“아, 이럴 때 또 누가...”

전화기를 끄려고 집어들었을 때였다. 발신인 이름이 또렷하게 눈을 차고 들어왔다.

<손석구 선생님.>

손석구?

중증외상의 명의 손석구였다. 그라면 허튼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닌 것. 테이블에서 떨어져 목청을 고르며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웬일이세요?”

“채 선생님, 혹시 지금 시간 좀 됩니까?”

손석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왜 그러시죠?”

“뉴스 못 보셨군요? 서해에서 엄청난 사건이 터졌습니다.”

‘서해?’

“불법 어업에 나선 중국 선단을 쫓아내던 우리 해경 함정이 중국 어선과 실랑이를 벌이다 충돌하면서 양측에 엄청난 사상자가 났어요. 지원 나간 다른 함정이 피아 식별없이 구조해 싣고 오고 있다는데 총상에 화상에 익사자까지 뒤섞여있어 선생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

윤도의 숨소리가 멈췄다. 전화기에서 나오는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 때문이었다. 손석구는 이미 현장으로 날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야죠. 어떻게 하면 됩니까?”

“일단 저희 병원으로 가 주십시오. 현장 파악하는 대로 상황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손석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서해?’

윤도가 대기실로 뛰었다. 뉴스를 틀었다. 긴급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조금 전 서해 해상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해 불법어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이 퇴거를 명령하는 우리 해경 함정을 들이박아 함정이 전소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중국 어선들은 30여 척이 떼를 지어 불법조업을 하다가 경고방송조차 무시하고, 공포탄을 쏘는 우리 함정을 무력으로 협공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인근 지역의 해군과 해경이 지원에 나서자 달아나던 중국 어선들이 높은 파도로 인해 서로 충돌하면서 화재까지 발생해 세 척이 불 타는 등 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해군과 해경은 선체 불을 끄며 구조에 나섰지만 최소한 여섯 명이 죽고 2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한편 정부는 확보된 증거를 토대로 중국 어선의 폭거에 대해 중국 당국에 엄중 항의하는 한편 나포한 여섯 척의 어선에 대해 일벌백계로 다스릴 것을 천명...”

“형.”

뉴스가 진행되는 가운데 윤철이 들어왔다.

“쉿!”

“왜? 응? 서해 대형사고?”

“사람이 많이 죽고 다친 모양이야. 손석구 교수님이 SOS를 날려 왔어.”

“손석구?”

“우리나라 중증외상치료의 1인자. 나 뒤로 좀 나갈 테니까 아버지한테는 나중에 말씀드려. 분위기는 네가 좀 잘 살리고.”

“알았어. 운전 조심해.”

직장 물을 먹어서인가? 윤철은 금세 상황을 인식했다. 서둘러 침을 챙겼다. 약침도 넉넉하게 넣었다. 다행이었다. 한두 시간만 늦었어도 술에 취했을 일. 그러나 아직은 맥주 한 잔에 불과한 윤도였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청송대학병원>

네비게이터를 찍으며 떠들썩한 테이블 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쾌거는 축하할 일이지만 의료인에게는 사람 생명이 먼저였다. 축하주는 나중에 또 마시면 되었다.

띠뽀띠뽀!

해경차가 앞서 길을 열었다. 한의원을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받은 연락이었다. 국가재난처를 통해 상황지시를 받은 해경에서 윤도에게 순찰차를 붙여준 것이다. 그건 손석구의 조치였다.

<비상상황, 채윤도 한의사가 필요함.>

손석구의 요청은 바로 접수되었다. 해경책임자는 선조치를 취하며 국가안전처와 청와대에 보고를 했다. 손석구가 요청한 의료인. 동시에 국민적 신망을 받는 채윤도. 그를 안전하게 인도하라는 특명이 떨어진 것이다.

윤도는 쉬지 않았다. 때로는 순찰차를 앞서 달렸다. 몇 번이고 속도위반에 걸렸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속도위반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채윤도 선생님?”

청송병원에 도착하자 수련이 한 사람이 달려왔다. 병원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헬기장에는 헬기들이 부산하게 뜨고 내리고 있었다. 중증외상센터는 물론 병원 의료인력에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태. 해경 가족과 기자들까지 장사진을 이루며 지옥의 한 장면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채윤도다!”

병원입구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동시에 수십 명 가족을의 시선이 윤도에게 겨눠졌다.

“와아!”

인파들이 환호했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채윤도의 등장.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힘이 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을 살려주세요.”

“우리 오빠 잘 부탁해요.”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가족들의 염원이 윤도 어깨에 무겁게 걸렸다. 그 옆으로 치명상을 입은 해경이 실려가고 있었다. 중국 어민들도 보였다. 몇 몇은 이미 시트로 얼굴을 가렸고 몇 몇은 차마 똑바로 볼 수 없는 중증외상이었다.

“젠장!”

수련의를 따라가던 윤도가 폭발했다.

“왜 그러십니까?”

수련의가 돌아보았다.

“뛰어요.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걸을 때입니까? 일이 분 사이에도 몇 명이 죽어나가 자빠질지 모르잖아요?”

“죄송합니다.”

“말하지 말고 뛰라고요. 중환자들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이쪽으로.”

수련의가 앞서 뛰었다.

“우어어!”

“아아아아!”

앞쪽에 밀린 침상에서 중증 외상자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 안 쪽이 중증외상센터 병동이었다. 일반환자를 비우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병동.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지옥이었다.

아비규환.

그 단어가 거기 있었다.

“손 선생님은요?”

상의를 벗으며 물었다.

“지금 초응급환자와 함께 날아오고 계시답니다.”

“소독약 좀 주세요.”

“예?”

“소독약요? 손 선생님 오실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리란 말입니까?”

멀뚱거리던 수련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소독약을 받아들고 손부터 씻었다. 가운을 걸치고 가까운 환자에게 출격했다. 의료진들이 몰려들어 AED, 즉 제세동기로 사투를 벌이는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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