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경찰이 다가와 운전자에게 뭐라고 말을 전했다.
“사고라는데요? 전방에서 기름탱크차가 전복되면서 관광버스와 추돌했답니다. 화재 위험 때문에 차량이 통제되면서 앞쪽으로 2킬로미터 가까이 밀렸답니다.”
기사가 통역을 건네왔다.
“맙소사!”
그 말을 들은 부친, 하얗게 질리며 넘어갔다. 한 시가 모자란 판에 교통사고라니. 이렇게 되면 경기시간 안에 가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이었다.
“지하철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윤도가 기사에게 물었다.
“있기는 한데 이쪽 방향이 아닙니다. 걸어가려면 30분도 넘게 걸릴 겁니다.”
“......”
진퇴양난이다. 차에서 내려 차도를 보니 한숨만 나왔다. 앞뒤로 막혀 오도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러다가는 경기가 끝나고서야 스타디움에 도착할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
참담한 귓전에 헬기소리가 들렸다. 길 건너편에 헬기장이 있었다. 저걸 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이라면 청와대에 전화라도 해보련만 인도네시아는 초행이니 손 쓸 길이 없었다. 타기만 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일.
그러나 그림의 떡.
‘응?’
윤도의 눈이 착륙하는 헬기의 로고에서 멈췄다. 어디서 많이 본 로고였다.
‘맞아. 중국의 바이징팅.’
HIV의 중국 재벌기업가가 뇌리를 스쳐갔다. 그 회사의 로고였다. 중국 재벌이기에 동남아에도 그의 기업이 진출해 있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 등은 중국의 입김이 제대로 먹히는 곳. 윤도가 서둘러 핸드폰을 뽑아들었다.
“채윤도 선생님.”
전화기에서 바이징팅 회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옥의 불바다에 내려온 동앗줄을 잡는 느낌이었다.
극적인 금메달-2
극적인 금메달-2
투타타다!
프로펠러가 꺼지기도 전에 윤도와 박성국의 부친이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그 뒤를 이어 인도네시아 경찰도 내렸다.
“회장님께 감사 인사 전해주세요.”
윤도가 조종사에게 소리쳤다. 스타디움은 멀지 않았다. 뛰어서 5분이면 되었다.
겔로라 붕 카르노 스타디움. 간단하게 GBK 스타디움으로 불린다.
그 위용은 어마무시했다. 인도네시아 축구장이라기에 과소평가했던 윤도의 상상이 낱낱이 깨져나갔다. 수용인원 88,000여명을 자랑하는 스타디움은 웅장 그 자체였다.
“이쪽입니다.”
부친이 경기장 안으로 뛰었다. 길은 인도네시아 경찰이 뚫어주었다.
“와아아!”
운동장이 보이자 함성이 귓전을 때렸다.
“이 선생님.”
전화를 받은 트레이너가 달려왔다.
“성국이는요?”
“이쪽입니다.”
트레이너가 대기실을 알려주었다. 이제 출전시간 15분 전이었다.
“아버님!”
부친이 들어서자 감독과 코치가 벌떡 일어섰다.
“채윤도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부친이 외쳤다. 박성국은 구석의자에 있었다. 당연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선수들이 환호했지만 반길 여유도 없었다.
“좀 도와줘요. 시간이 없으니 박 선수를 편안한 곳에 눕혀주세요.”
윤도가 소리쳤다. 선수들이 달려들어 매트를 만들었다. 박성국은 거기 누웠다. 인사 나눌 시간도 없이 맥을 잡았다. 남은 시간은 13분. 피가 마르는 윤도였다.
맥은 불규칙하게 팔딱거렸다. 불의의 부상 때문이다. 비장의 맥이 엉클어졌고 간장과 신장도 그랬다. 뼈에는 골열이 심각했다. 그래서 신장의 맥이 풀렸다. 근육과 근막이 상하면서 간장의 맥도 엉망이다. 따라서 뼈와 근육에 인접한 살을 주관하는 비장의 맥도 무질서했다.
“어떻습니까?”
감독이 물었다.
“일단 침을 넣어보겠습니다.”
윤도가 장침을 꺼내들었다. 잘 하면 기혈을 한 바퀴는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경기력을 갖출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코칭스태프는 초조했다. 경기개시 15분 전에 십자인대 부상과 아킬레스 이상을 고친다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한국에서 날아온 의료인이 채윤도였다.
채윤도.
코칭스태프라고 그 이름을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버릴 수 없는 부동의 에이스 박성국. 윤도 카드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기에 교체선수 명단에 박성국을 올려둔 감독이었다.
윤도가 침을 뽑았다.
대한민국 부동의 에이스 박성국.
그의 축구운명은 이제 윤도의 장침 끝에 달려있었다.
무릎 관절...
2개의 십자인대로 안전성을 보장 받는다. 전방십자인대와 후방십자인대가 바로 그들이다. 무릎 위 아래의 뼈를 움직이게 해주는 동시에 무릎과 하체를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역할이다.
전방십자인대의 주요 기능은 정강뼈가 앞으로 이동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이다. 나아가 과도한 움직임과 정강뼈의 회전을 제한해준다. 그러나 십자인대는, 강력한 인대임에도 외상에 의해 쉽게 파열이 될 수 있었다.
축구, 농구, 배구처럼 흔한 스포츠 활동을 하면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면 처음에는 극심한 고통이 수반된다. 나아가 관절 내에 혈액이 고이는 혈관절증이 뒤따른다. 피가 고이면 무릎이 부어오르거나 압통으로 인해 관절을 사용하는 기능의 제한이 뒤따른다.
부분 파열의 경우에는 몇 주정도 부목을 대고 안정하면 회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치할 경우, 만성적인 무릎 불안과 더불어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관절연골의 손상, 외상성 관절염도 유의사항이었다.
한방의 측면에서 보면 슬통, 슬부굴신 곤란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 슬부를 경유하는 경맥은 족양명위경, 족태음비경, 족소양담경 등이니 그쪽 혈자리를 치료에 이용한다. 관절의 변형 정도나 통증의 특이성에 따라 학슬풍, 풍한습비, 골비 등으로 나누지만 대개는 비증의 범주에서 이해하면 되었다.
맥과 함께 치료과정을 빠르게 복기했다. 무릎 쪽의 손상은 전방십자인대가 가장 심각했다. 인대의 결이 하나하나 흩어지며 걸레의 느낌을 주었다. 그로 인해 반원상연골도 문제가 생겼다.
터진 인대의 결을 결합시키고 연골파열도 제 자리로 돌려야했다. 그 다음이 힘줄로도 불리는 아킬레스건의 회복이었다.
근원치료는 신장-비장-간장 순으로 기혈의 조화가 필요했다. 박성국은 건강한 남자. 오장의 부실로 온 질병이 아니라 갑작스런 데미지로 오장의 기혈이 흐트러진 경우였다. 그렇다면 경기입장 직전에 기혈의 조화를 이뤄 극적으로 무릎을 살려볼 수 있었다.
일단 무릎연골과 반월상연골 사이에 봉침을 넣어 사혈부터 빼냈다. 그런 다음 무릎 주변의 아시혈을 따라 첫 침을 넣었다.
‘웃!’
침이 들어가기 무섭게 벽이 느껴졌다. 장막처럼 혈자리를 막아서는 사나움이었다. 뭘까? 사기의 뭉침이 이토록 강한 건가? 침을 멈추고 차분히 반응을 살폈다.
‘젠장!’
정체를 파악하자 윤도의 미간이 확 일그러졌다. 찢어진 인대 사이에 뼈조각이 있었다.
“인대파열 부위에 뼈조각이 떠다니는 것 같습니다.”
윤도가 말했다. 감독과 부친이 동시에 소스라쳤다. 병원 영상촬영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작기에 그랬다. 어쩌면 인도네시아 영상판독의의 간과일 수도 있었다.
뼈조각.
부상 부위에 쌓인 피로누적 때문이었다. 무릎뼛조각의 제거수술은 그리 어렵지 않다. 수술 후 3-4주 정도면 회복이 된다. 문제는 시간. 또 하나의 복병을 만나는 윤도였다.
사혈부위를 옮겼다. 뼈조각 부근이었다. 호침 두 개를 넣어 뼈조각의 이동을 막았다. 그런 다음 삼각침 모양의 삼릉침을 찔러 피를 뽑아냈다. 양쪽 호침을 조절해 자극을 가하자 혈액을 따라 작은 뼈조각이 나왔다.
“나왔습니다.”
윤도가 뼈조각을 들어보였다.
“아!”
안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지만 윤도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뼈조각은 인대파열과 상관없는 일. 그만큼 시간을 소모한 셈이었다.
“입장 준비해주세요.”
대회진행요원 둘이 달려와 통보를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5분이었다. 무릎의 아시혈에 들어간 장침으로 기혈을 체크했다. 매끄럽지 않았다. 박성국 때문이었다. 마음이 앞서 있다. 크게 놀랐다. 좌절과 초조감이 크다. 그런 이유로 기혈이 불규칙하게 돌아 침빨이 제대로 받지 않았다.
박성국.
오늘 대기자 명단에 들어있다. 대기자는 벤치에 있어야 했다.
선택...
그 순간이 왔다. 결정을 내려야하는 건 윤도였다.
“감독님.”
윤도가 감독을 바라보았다.
“예?”
“박성국 선수, 전반은 못 뜁니다.”
선언과 동시에 윤도의 손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신장과 비장, 간장의 혈자리를 장악하고 치료혈로 파악된 내슬안과 외슬안, 슬양관, 양구, 혈해, 양릉천혈에 화침을 넣었다. 화침은 통증을 내리고 인대와 힘줄의 구조를 단단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침감은 느리게 넣었다. 윤도가 팀 닥터로 등록된 것이 아니기에 벤치에 따라갈 수 없는 까닭이었다. 마무리로 족삼리와 위중혈, 아시혈 몇 곳을 잡았다. 아시혈은 근육이나 관절 치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각 혈자리에서 침감을 조절했다. 그 중에서도 간장의 지배를 받는 종근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기에 임하려면 12개의 경근을 다 돌봐야했다. 무릎과 발꿈치를 주관하는 방광경근이 키포인트였다.
‘번침.’
윤도의 결정이었다. 번침은 화타의 제자로 불리는 번아가 최고로 꼽힌다. 불에 달군 침이다. 방광경근으로 무릎을 고치려할 때는 번침이 유용했다. 윤도 손 끝에 불덩이가 일었다. 불덩이를 장침에 실어보냈다. 염증이 가라앉는 한 편 통증은 줄어들고 경혈의 자극은 상승했다. 침감을 조금 더 보태 인대와 힘줄의 생기형성을 도왔다. 터진 인대가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합이 끝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할 수 없지.’
일반인라면 당장 걷게 할 수도 있었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축구선수다. 급하다고 바늘을 허리에 매어 쓸 수는 없었다. 무리하다 쓰러지면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다. 침을 찔러둔 채 그대로 테이핑을 했다. 전반 종료 후에 매조지할 생각이었다.
“박성국 선수.”
“예.”
“한 가지만 명심하세요. 당신은 전반에는 환자이고 후반에만 선수입니다. 내 말 어기고 흥분하거나 초조하게 서두르면 기혈이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아시안게임은 바로 끝이라고요. 알았어요?”
“예.”
“무릎 상태가 좋아지는 것 같더라도 그대로 벤치에만.”
“예.”
박성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와아아!”
선수입장이 시작되었다. 박성국은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섰다. 선수명단을 보고 기대감에 차있던 한국 응원단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박성국은 도무지 뛸 수 없는 상태로 보였다.
윤도와 부친은 벤치 뒤쪽의 VIP석에 자리를 잡았다.
삐익!
주심의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한국 VS 우즈베키스탄.
세상이 변했다. 그에 따라 축구도 변했다. 한일 월드컵 이후로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이었지만 영광은 길지 못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의 전력은 상승일로에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후보 0순위였다. 그들은 폭주했고 한국 팀은 막지 못했다. 전반 시작 2분 만에 첫골을 내주었다. 기습적인 중거리슛 한 방에 당한 것이다.
전반 20여 분까지 한국은 일방적으로 밀렸다. 첫골을 빨리 내준 후유증이었다. 전반 30분이 지나면서 겨우 안정이 되나싶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의 클래시컬 윙어에게 통한의 추가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수비수 네 명을 무력화 시키는 화려한 골이었다.
2대 0.
전반전이 끝나자 박성국은 다시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대기실로 나왔다.
“우우!”
한국 응원단의 야유가 쏟아졌다. 감독에 대한 야유였다. 걷지도 못하는 선수를 대기자 명단에 올린 것에 대한 비난이었다.
박성국이 다시 매트에 누웠다. 혈자리의 테이핑을 떼고 기혈을 체크했다. 나쁘지 않았다. 박성국이 윤도의 지시에 잘 따른 것이다. 그는 과연 대선수답게 인내할 줄 알았다.
“어떻습니까?”
감독이 물었다.
“잠깐만요.”
대답대신 신장에 침감을 더했다. 무릎과 발목뼈에 남은 열을 사하기 위함이었다. 다음으로 간의 혈을 골라 방광경근에 화침을 더했다.
8분.
마음으로 타이머로 세팅하고 아시혈을 달래주었다.
“선생님, 이제 후반입니다. 된다 안 된다 가부를 말씀하세요. 그래야 후반 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감독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가 흥분한다고 해서 침빨이 변할 것도 아니었다.
땡!
마음 속의 타이머가 울렸다.
“아, 나참.”
감독이 콧김을 뿜을 때 윤도는 침을 뽑아냈다.
“끝났습니다. 일어나보세요.”
윤도가 선언했다. 박성국이 매트에서 일어섰다. 선수들의 시선이 박성국에게 쏠렸다.
“가볍게 걸으세요. 무리하지 말고요.”
윤도의 지시를 따라 박성국이 움직였다. 부축 받지 않아도 되었다.
“안 아픈데요?”
무릎을 움직여본 박성국이 윤도를 돌아보았다.
“성국이 형이 뛸 수 있는 겁니까?”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윤도는 대답대신 박성국의 맥을 잡았다. 아쉽게도 1%의 부조화가 남아있었다. 파열된 인대의 결합력이 100%가 아닌 것이다.
“누워요.”
박성국을 눕히고 다시 장침을 꽂았다. 활력의 약수를 베이스로 한 약침이었다. 안 되는 거야? 감독과 선수들의 시선에 실망감이 스쳐갔다.
“후반 시작 10분 후, 그때 침을 뽑고 출전하세요.”
마침내 윤도가 확정 선언을 했다.
“우와아!”
“성국이 형.”
선수들이 박성국 주변에 모여들어 환호했다. 혼자 힘으로 우뚝한 박성국이었다. 코칭스태프들의 입가에도 안도의 미소가 스쳐갔다.
후반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또 한골을 먹었지만 다행히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었다. 이어진 코너킥에서도 골키퍼가 놓친 공을 수비수가 골대 앞에서 걷어내는 불안이 계속되었다.
후반 10분. 박성국이 벤치 뒤쪽의 윤도를 바라보았다. 윤도가 박성국을 불렀다. 즉석에서 맥을 잡았다. 이제는 문제가 없었다.
“가요!”
윤도가 경기장을 가리켰다. 장침 테이핑을 뜯어낸 박성국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무릎이 올라갔다. 괜찮았다. 몸 동작이 커졌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걸 본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건 상대방 벤치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 전에 입장할 때는 분명 부축 받아서 들어온 박성국. 그가 몸풀기 런닝을 시작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부친이 윤도의 손을 잡았다.
마침내 선수교체가 단행되었다. 박성국의 투입이었다. 관중들은 어리둥절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차피 지는 거 감독의 무리수인가? 저러다 박성국의 선수생명이 끝나는 건 아닌가?
박성국은 경기장 잔디에 키스를 하고 그라운드를 밟았다. 윤도를 향해 거수경례를 한 그가 최전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반 15분.
한국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박성국의 침투능력과 돌파력이 빛을 발하자 우즈베키스탄 감독은 지키는 작전으로 돌아섰다. 거기서 박성국의 킬러본능이 터져 나왔다. 하프 라인 가까이에서 공을 넘겨받은 박성국. 무려 30미터가 넘는 거리를 치고 들어가 수비수 셋을 제끼고 골망을 가르는 그림 같은 골을 넣은 것이다.
“와아!”
한국 응원단들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골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성국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부상 전에 펄펄 날던 에이스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다시 4분 뒤, 이번에는 박성국의 절묘한 도움이 빛을 발했다. 페널티 박스 안까지 돌파한 박성국이 뛰어들던 동료에게 볼을 띄웠다. 동료의 이마를 맞은 공이 우즈베키스탄의 골망을 갈라버렸다.
“와아아!”
관중석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분위기상 3대 0 정도로 처발릴 것 같던 경기였다. 하지만 박성국의 투입으로 단숨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대표팀이었다.
우즈베키스탄도 만만치 않았다. 다시 진용을 가다듬고 총공세에 나섰다. 박성국은 수비까지 가담했다. 이 과정에서 볼을 경합하다 파울을 당했다. 박성국이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저...”
부친이 벌떡 일어섰다. 선수들도 박성국에게 달려갔다. 몇 바퀴를 뒹굴던 박성국. 무릎을 만지며 일어섰다. 부상의 재발은 아니었다.
“휴우!”
윤도와 부친이 합창하듯 안도의 숨을 쉬었다.
결국 두 팀은 전후반 90분을 소모해버렸다. 추가시간이 주어졌다. 인저리 타임은 2분이었다. 거기서 박성국이 폭발했다. 한국 골키퍼가 롱킥한 공이 상대선수의 머리를 맞고 떨어졌다. 한국 선수가 잡아 질주하는 박성국에게 로빙 볼로 넘겨주었다. 박성국이 몸을 띄우며 발리킥을 날렸다. 공은 골키퍼의 손을 스쳐 그대로 그물망을 흔들었다.
3대 2.
한국의 대역전승이었다. 간을 졸인 끝에 결승에 올라가는 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