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8화 (258/265)

총명침과 유구조충-2

총명침과 유구조충-2

“채 선상, 나가 부탁이 있는디.”

할머니가 윤도 손을 잡았다.

“말씀하세요.”

“나가 나 마음대로 친구를 데려와 부렀어.”

“......?”

“초등학교 친구는 아니고 내 이웃 친구인데 건강이 많이 안 좋은 데다 돈도 없어. 자식 놈들이 둘이나 있는데 한 푼도 안 도와주거든.”

“예...”

“용한 침쟁이 모르면 모를까 내가 직접 경험하고 보니 친구 생각이 나잖아. 이 친구가 굉장히 많이 아파서 운신도 잘 못하거든.”

“예...”

“그러니까 거시기 그 뭣이냐 돈은 내가 낼 테니까 침 좀 놔주면 안 될까?”

할머니가 낡은 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50만원이 들어있었다.

“할머니...”

“알아. 동사무소 사회복지사 찾아가서 말하라고? 동네 병원도 가봤고 보건소도 가봤어. 다들 큰 병원 가라는데 이 할망구가 근근이 먹고 사는 몸이라 큰 병원 갈 형편이 안 돼. 입원해도 간병해줄 사람도 없고.”

초등학생 할머니.

친구를 달고 왔다. 큰 고민 해결해준 분, 흔쾌히 친구를 받아주었다.

진맥은 안미란이 잡았다. 윤도가 다른 환자의 고질 병 좌골신경통 시침을 끝내자 안미란이 들어왔다.

“어때요?”

윤도가 물었다.

“좀 심각한데 그냥 돌려보낼까요?”

“얼마나 심각해요?”

“건선이 장난 아니에요. 게다가 뇌가 이상하고요. 뇌암 전조 증상 같기도 해요.”

“뇌암이라고요?”

“건선도 굉장히 심해요. 동네 피부과 전전하며 약 받아먹고 연고 발랐나본데 스테로이드 약재 부작용도 상당한 거 같아요.”

“그렇게 심해요?”

“이 할머니 말을 들으니 치료를 받다 말다... 요즘은 건선 가려움증에 두통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하네요.”

“모시고 오세요.”

“네.”

“아, 지금 안 바쁘죠? 이 할머니 시침은 같이 해볼까요?”

“네.”

안미란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나갔다. 윤도와의 협침이라면 밤을 새워도 좋은 그녀였다.

노덕순 할머니의 친구 이름은 장덕순이었다. 이름이 같은 사람, 만나기 어렵다. 어쩌면 둘은 이름 때문에도 친해졌을지 모른다.

“안녕하세유?”

장덕순 할머니가 허리를 숙였다. 부어오른 살에 늘어진 실핏줄들. 척 봐도 건강이 엉망이었다.

“노덕순 할머니 친구라고요?”

“예.”

“차트 보니까 건선이 심하네요. 머리도 불편하죠?”

“예.”

“어떻게 불편하세요?”

“그냥 머리 아프고, 속도 안 좋고... 그냥 사는 게 다 귀찮은데 저 놈의 노덕순이가 끌고 오는 바람에...”“오시긴 잘 오셨어요. 노화 때문에 몸도 불편한데 아픈 데라도 없어야죠.”

“그게... 병원도 많이 다녀봤어요. 하지만 쉽게 낫는 게 아니라서...”“아, 그런 말 말아. 이 선상님이 내 머리도 고쳤다니까. 이 시험지 안 보이냐?”

보호자로 온 노덕순이 100점 시험지를 흔들어댔다.

“아휴, 괜한 수고 말아. 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 조금 아프다 죽으면 자식 새끼들 돕는 거지.”

“아, 또 그 소리야?”

“이 병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고친다니까.”

장덕순 할머니의 목소리는 점점 더 가라앉았다.

진료대에 눕히고 팔을 걷었다. 몸이 아니라 건선의 바다였다. 목부터 가슴을 지나 다리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이러고도 참았다니.’

자식들은 다 뭘 할까? 둘이나 있다면서. 공연히 콧등이 시큰해졌다. 하긴 늙으면 고생이다. 웬만하면 늙어서 그러려니 하고 참아버린다. 병원에서도 진단이 아리송하면 늙어서 그렇다는 핑계를 댄다. 그러니 진통제 몇 알 먹거나 영양수액 한 병 맞으면 끝이다. 갈매도에서 어르신들 대해봐서 잘 알고 있었다. 윤도가 신침이 되기 전에 그 사람들도 그랬다.

그런데 어르신들이라고 아픈 걸 당연시하는 건 아니었다. 누가 무슨 약 먹고 좋아졌다고 하면 거기로 우르르 몰려간다. 그게 증거였다. 그 기저에는 한의사나 의사에 대한 불신이 무겁게 깔려 있는 지도 몰랐다.

늙은 환자.

이래저래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었다.

나이 먹어서 그래요.

늙으면 다 그래요.

그 두 마디가 어르신들의 기를 죽인다.

“......!”

진맥을 짚던 윤도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맥은 느렸다. 건선 환자면서 맥이 느리면 기초대사가 저하되었다는 증거였다. 일상이 피로하고 무기력하므로 허증이다. 머리 쪽 맥은 더 좋지 않았다. 음산하면서도 무겁다. 다행히 암은 아닌 것 같았다.

머리.

암이 아니어도 치명적인 질환이 한두 개가 아니다. 중요한 부위이기에 장침을 뽑았다. 간단하게 전중혈과 대릉혈에 넣었다. 화침이었다. 두 혈은 윤도가 치료혈을 찾거나 오장의 뒤틀린 기를 잡아낼 때 쓰는 명혈이었다.

‘응?’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윤도. 뭔가 있는데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뇌경색.

뇌졸중.

뇌종양.

파킨슨병.

뇌성마비...

뇌에 생기는 질환은 수십 종.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모두 답이 아니었다. 침감을 세밀하게 조절했다. 신중을 기해 디테일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손에 걸려오는 건 분명 사기였다. 그러나 기혈의 사기는 아닌 사기. 그럼에도 이렇게 사납게 반응하는 이것은?

10분.

윤도는 포기하지 않았다. 안미란은 윤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암이라고 해도 척척 찾아내던 윤도가 헤매고 있는 까닭이었다.

“......?”

한참을 집중하던 윤도가 작은 단서를 잡아냈다. 염증이었다. 뇌의 염증이라면 뇌염. 그러나 여느 뇌염과는 또 갈래가 달랐다.

‘뭐지?’

장침 하나가 관원혈로 들어갔다. 소장이 목적이었다. 할머니 뇌의 사기는 소장과 연관이 있었다. 같은 느낌의 사나움이었다. 그 침감을 추격해 머리까지 올라갔다.

‘윽.’

집중하던 윤도가 짧은 몸서리를 쳤다. 뇌염의 정체를 알았다. 뇌 안에 다른 생명체가 들어있는 것이다.

충(蟲)!

기생충의 침범이었다.

한방에서는 기생충을 삼시충과 구충, 오장충 등으로 나눈다. 뇌에 질환을 일으키는 건 삼시충이다. 이 삼시충은 형체가 없지만 도력이 높으면 볼 수 있다. 색은 푸르고 두통을 일으키거나 눈을 어둡게 만든다. 하지만 할머니의 충은 삼시충과는 달랐다.

“안 선생님.”

윤도가 진료대에서 일어섰다.

“네?”

“진맥 다시 보세요.”

“제가요?”

“좀 희귀한 케이스 같네요.”

‘희귀?’

안미란이 자리를 교대해 앉았다. 진맥을 잡았다. 뇌의 이상은 느껴지지만 더는 알 수 없었다. 윤도처럼 전중혈과 대릉혈을 찔러 오장의 사기를 추적하는 건 아직 능숙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힌트 드려요?”

“네.”

“할머니, 육회 드신 적 있죠?”

윤도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예? 예...”

“그것도 돼지고기 육회요.”

“제가 육회를 좋아해요. 그런데 소고기가 비싸서 가끔은 돼지고기 육회를...”

“이제 힌트가 되겠어요?”

윤도의 시선이 안미란에게 돌아갔다.

육회.

그것도 돼지고기.

그래도 감이 오지 않았다. 돼지고기와 뇌질환?

“충(蟲) 쪽이에요.”

“아!”

마지막 힌트에서 안미란이 격한 반응을 했다.

기생충에 돼지고기, 생식을 엮으니 질환이 떠올랐다. 갈고리촌충으로 불리는 유구조충이었다. 비슷한 조충으로 무구조충이 있다.

고작 기생충 따위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구충제를 먹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반적인 구충제로는 유구조충 무구조충을 잡지 못한다.

유구조충은 주로 돼지의 몸에 산다. 돼지고기를 덜 익히거나 생식을 하면 감염될 수 있다. 오염된 물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하다. 감염 과정은 소장 내에서 일어난다. 충란 속에 있던 유충이 소화액의 도움으로 탈각해 혈액으로 침입하면서 시작된다. 유충에게 혈액은 철도와 같다. 혈액을 따라 인체의 어느 부위라도 옮겨갈 수 있다.

대다수는 피하조직에서 검출되지만 간, 심장, 뇌, 척수 등의 주요 장기의 감염도 가능하다. 이때의 병증은 신체 마비, 발작, 실명, 혼수상태 등을 유발한다.

유충은 조직에서 약 2개월이면 완전한 낭미충이 된다. 성장하는 동안 주위에는 염증반응과 육아종이 생긴다. 무엇보다 골칫덩어리인 건 섬유조직이 낭미충을 둘러싸면서 장기간 잠복이 가능하다는 사실. 놀랍게도 인체 조직에서 5-10년 정도 생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낭미충이다.

유구조충이 뇌에 침입하면 낭미충이 번지게 된다. 낭미충은 살아있을 때도 무섭지만 죽어도 무섭다. 낭미충이 죽으면 석회화 상태로 남게 되는데 충 안에는 독소와 항원성 물질이 존재한다. 이 물질이 녹아서 나오게 되면 뇌세포에 치명적인 염증을 일으킨다. 잘 자란 낭미충은 보통 1-2cm에 달하는 까닭이다.

가장 흔한 증상이 간질발작이다. 그 외에 두통, 시각장애, 감각이상, 운동장애, 정신질환의 증상 등이 있을 수 있다. 심하면 자살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뇌실의 낭미충은 직경이 5cm까지도 이른다. 뇌 안에서도 뇌실에 있는 낭미충이 뇌실질 내의 낭미충보다 치료가 더 수월한 편으로 알려져 있다.

유구조충.

안미란은 현기증이 일었다. 진맥으로 잡아내는 뇌 안의 낭미충.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한 결과였다.

채윤도.

어떤 치료를 택할까? 양방이라면 외과적 적출이 필요한 경우였다. 윤도의 첫 침은 손목 위의 피하였다. 장침이 아니라 피침이었다. 그걸 찌르고 볼록한 부분을 누르자 희멀건 물체가 밀려나왔다.

“......?”

안미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구조충의 낭미충이었다.

“할머니.”

윤도가 환자를 불렀다.

“응?”

“할머니 몸에 이런 기생충이 생겼어요. 이게 돼지고기를 생으로 먹으면 생길 수 있는 유구조충이라는 거거든요.”

“응...”

“이게 머리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머리가 아팠던 거예요. 피부하고 머리하고 같이 치료해야겠네요.”

“응...”

할머니가 대답했다. 낭미충을 내려놓고 치료에 돌입했다. 시작은 안미란이었다. 그녀가 할머니의 사관혈을 열었다.

“면역침도 놓으세요. 신수혈과 명문혈만 빼시고.”

윤도가 환자에게 알맞은 혈자리를 일러주었다. 안미란은 차분하게 면역 강화침을 찔렀다. 합곡혈을 시작으로 상거허와 족삼리, 태충혈, 삼음교, 곡지, 대추혈까지였다.

땡!

타이머가 울었다.

“견정혈, 폐수혈에 약침.”

지시가 이어졌다. 안미란의 장침이 두 혈자리로 들어갔다. 조금 긴장하지만 무리 없는 시침이었다. 안미란의 침술도 많이 발전되어 있었다. 풍부혈 등의 고난도 혈자리만 빼면 대부분 척척이다.

“지양혈, 신도혈, 신문혈, 노궁혈.”

이번에는 청열작용과 소양증을 잡기 위한 시침이었다. 안미란의 시침은 거기까지였다. 자리를 이어받은 윤도가 장침을 뽑아들었다. 안미란이 남겨둔 신수혈과 명문혈이었다. 거기에 하나를 더해 혈해혈을 찔렀다.

“아!”

할머니는 신음과 함께 다리를 꿈틀 움직였다. 아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침감이 다리 전체로 뻗친 까닭이었다.

안미란은 보았다. 그건 혈액순환의 진수였다. 건선의 피부는 건조하다. 그 해법을 위해 동원한 혈해혈. 이는 보혈과 순환을 촉진하는 것이니 피부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신수혈과 폐수혈의 원기를 끌어올렸다. 조금 심하다싶은 건선 부위는 주변 혈자리를 함께 도모했다.

건선.

고질이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전성기에 이른다. 잠깐 잊더라도 소양증이 시작되면 참을 수 없다. 박박 긁고 싶다. 비늘이 휘날리고 피가 배어나도록 긁고 싶어진다.

“가려워.”

침묵하던 할머니가 몸을 비틀었다.

“알아요. 많이 가려울 겁니다.”

윤도의 시선은 여전히 장침 위에 있었다. 할머니는 몸을 꼬며 몸서리를 쳤다. 그러자 각질 일부가 먼지처럼 흘러내렸다. 윤도는 손 끝에 남은 침감을 마저 풀었다. 그게 신호였다. 할머니를 괴롭히던 비늘들이 옷을 벗듯 살에서 떨어져나갔다.

“아이고, 시원해라.”

할머니의 신음이 쾌재로 바뀌었다. 온몸 구석구석 흉측한 지도를 그려놓았던 비늘은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고, 아이고.”

떨어진 비늘을 집어든 할머니가 이를 드러내며 좋아했다. 그 얼굴 쪽으로 윤도가 다가섰다. 그 손에 들린 건 나노침이었다.

“이제 머리를 치료할 겁니다. 조금만 움직이지 마세요.”

한의사로서의 지시가 떨어졌다.

뇌실.

나노침이 노리는 곳이었다. 그 안에 낭미충이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구석구석 많았다.

‘후우!’

긴장의 숨은 안미란이 골랐다. 뇌로 들어가는 나노침. 그걸 보고 있자니 찌르는 윤도보다 더 긴장되는 일이었다.

사락!

첫 침이 들어갔다. 섬유조직 안의 낭미충이 목표였다. 손 끝에 낭미충의 발악이 느껴졌다. 20여 나노침은 모두 백발백중이었다. 다만 마지막 것은 감이 좀 깊었다. 찌른 상태로 침을 감았다. 낭미충을 꺼내려는 것이다. 낭미충은 이빨 모양의 두절과 갈고리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침을 넣어 뽑아내려는 것이다. 신침의 감각으로 내시경을 보듯 두절을 찾았다.

딸깍!

‘걸렸다.’

오랜 노력 끝에 감이 왔다. 조심스레 나노침을 뽑았다. 흰 실 같은 것이 딸려나왔다. 유구조충의 낭미충이었다. 그대로 두면 독소와 항원물질을 뿜어낼 일. 어떻게든 적출하는 게 옳았다. 윤도는 집중했다. 하나하나마다 심혈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후우.

낭미충이 쌓여갈수록 윤도의 날숨도 쌓여갔다.

이제 나노침은 하나가 남았다. 그런데, 이 낭미충은 다른 것과 좀 달랐다. 한 뼘 가까이 나왔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원장님.”

안미란이 긴장했다. 나노침을 잡은 채 윤도가 일어섰다. 흰 실은 1m가 넘음에도 끝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낭미충이 아니라 성충이었다.

“도와줘요.”

윤도가 SOS를 쳤다. 안미란이 줄 끝을 잡고 당겼다. 그 줄 또한 1m가 넘어도 끝나지 않았다.

뇌가 풀려서 딸려나오는 걸까?

보조하던 승주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하지만 윤도의 시침이었다. 의료사고 따위가 날리 없었다. 윤도와 안미란이 두 번씩 교대를 하고서야 흰 줄의 끝이 나왔다.

“우와!”

유구조충의 길이는 무려 4m가 넘었다. 큰 것은 8-10m짜리도 있다는 유구조충. 이런 놈이 뇌실을 차지했으니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성충까지 뽑아내자 마무리에 들어갔다. 뇌실에 남아있을 염증을 뿌리 뽑기 위해 수삼리혈과 양로혈을 찔렀다. 거기 남은 독소 찌꺼기와 기생충의 항원물질 제거를 위해 합곡혈과 삼음교혈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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