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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0화 (10/250)

010화

010화

정문의 폭은 약 10m.

완전히 열리기까지 2분이나 걸린다. 즉, 적당히 틈이 벌어지면 그때부터 들어가도 상관없다.

“들어가자!”

노구의 외침과 함께 선두에 설 하이퍼맨이 우르르 문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여러 괴물이 서식하는 각각의 동굴이 뚫린 동굴 산.

하이퍼맨은 너비가 약 3m 정도 되는 동굴 앞에 멈췄다.

“이상 무!”

손에는 전기톱, 등에는 산탄총.

미식축구복처럼 생긴 보호복을 입은 하이퍼맨이 군대처럼 2열 종대로 서서 다른 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퍼맨 뒤로 빙신연맹, 검은 과부들, 최고의 최고가 섰다.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암흑천지.

다들 휴대용 랜턴이나 작은 손전등을 들었다.

하이퍼맨을 따라 다들 2열로 선 상태.

검은 과부들의 경우 무기를 든 최향자와 맨손인 박유화가 앞, 나와 장마리가 뒤.

장마리는 별다른 무기 없이 여전히 옆에 멘 작은 손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난 가방 4개를 한꺼번에 짊어져서 손전등을 이마에 매달았다.

“지금 우리가 뭘 사냥하러 가는 거죠?”

장마리는 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살짝 아리송한 표정.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알면 안 되는 거야? 그렇지만 팀장들은 다 뭘 사냥하는지 아는 눈치였고…….

아님 정말 날 사람 취급 안 하는 건가?

“이번 녀석만 잡으면 드디어 빚 청산이다. 하하하!”

맨 앞에서 노구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뭘 잡으러 가는 거야?

누가 좀 알려 줘!

이번엔 뒤쪽에서 수다가 들렸다.

“그렇지만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던데……. 자칫 전멸할 수도 있잖아?”

“하긴, 30명이나 돼도 랭킹에 든 헌터가 하나도 없으니 좀 불안하네.”

“검은 곰이 있긴 하지만…… 100위 안에 못 들어갔으니 좀…….”

야, 너넨 적어도 헌터잖아!

난 그냥 일반인 A라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멋지게 활약할 때 배경으로 지나가는 시체 B 같은 거란 말이야!

답답해 죽을 것 같다.

물리적으로는 가방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사냥감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그때 장마리가 내 귀에 속삭였다.

“드, 래, 건.”

“드래곤? 용?”

야, 이 미친 연놈들아!

고작 이 인원으로 용을 잡겠다고? 용이 뉘 집 똥강아지인 줄 아냐!

한반도에 사는 용은 다른 지역의 것보다 약한 개체. 하지만 그래도 용은 용이다. 토종 용 중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민머리용’을 상대하려고 해도 100명이 넘는 숫자가 필요하다.

“잠깐…….”

현실 부정을 하고 싶은 것인지, 장마리가 한 말을 곱씹었다.

분명 드래‘곤’이 아니라 ‘건’이라고 한 것 같았는데…….

“드래건이죠? 드래곤이 아니라?”

질문이 끝난 직후 머리 위를 무거운 것이 내려찍었다.

둔탁한 물체.

종유석이라도 떨어진 건가 싶었지만, 앞서가던 최향자의 대검이었다.

대검의 옆면이 내 머리에서 떨어지며 최향자의 눈이 날 돌아봤다.

“닥쳐. 소리 내지 마.”

나만 떠든 게 아닌데요?

크윽, 젠장…….

가방을 너무 많이 들어서 맞은 곳을 쓰다듬을 수 없다.

처량한 내 신세.

이놈의 짐꾼 취급은 언제쯤 끝나려나.

장마리를 한 번 더 바라봤다. 장마리는 내가 자길 왜 보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만세!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최향자는 미친 게 아니라 그냥 성질머리가 더러운 거야!

냉정히 생각하면 그 대단한 용이 6급 사냥 구역에서 서식할 리가 없다.

용은 국가에서 특별 취급당해 개체마다 감시하고 있는 실정. 사냥하려면 보통 깐깐한 절차가 필요한 게 아니다.

드래건.

보조 헌터로 꽤 여러 괴물을 만난 나로서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놈이다.

드래곤 짝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용과는 완전히 다른 생물. 공통점이라곤 아마 파충류라는 것 정도다.

대부분의 용이 높은 고도에 있는 동굴을 둥지로 삼는다면 이 녀석은 반대로 지하에 있는 동굴에 서식한다.

아마 이 동굴도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일 것이다.

동굴에 들어온 지 30분 경과.

슬슬 바닥에서 경사가 느껴졌다. 그리고 점점 폭이 넓어졌다.

처음엔 폭이 3m 정도였는데, 지금은 4m까지 벌어져 여유가 생겼다.

만약 이 동굴의 크기가 드래건의 몸에 영향을 받아 넓어진 것이라면 놈은 성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뱀의 형상을 한 드래건은 갓 부화한 새끼가 다 자란 아나콘다와 비슷한 크기, 다 자란 성체는 몸통 너비가 4m에 육박한다.

이 동굴의 폭은 4m, 그렇다면 우리가 만날 놈은 그보단 몸통 너비가 작을 것이다.

우리는 통로와 같은 구역을 지나 넓은 공터에 다다랐다. 탁 트인 공간에 다다르자마자 짐승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제 정말로 놈의 영역에 들어온 것이다.

우리는 통로를 뒤에 두고 진형을 짰다.

전방 하이퍼맨은 2열 종대에서 1열 횡대로 변경. 인간 울타리를 치며 통로를 빙 둘렀다.

통로는 비상구이자 외부와의 유일한 창구. 이곳에서 시작해 서식공간을 조사할 예정이었다.

후방 최고의 최고는 통로 입구를 지붕 삼아 그 아래 부상자를 치료할 매트와 갖가지 용품들을 내려놓았다.

통로는 서식 공간보다 상대적으로 매끈한 편. 종유석이나 낙석으로부터 도구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용이했다.

내가 멘 가방들도 여기에 함께 내려놓았다.

빙신연맹은 최고의 최고가 있는 통로 입구부터 하이퍼맨이 경계 중인 곳까지 바닥과 벽을 얼렸다.

빙신연맹 9명의 손에서 나오는 푸른 형광 같은 빛. 빙신연맹은 얼음을 얼려 벽과 천장, 그리고 바닥에 튼튼한 버팀판을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괴물의 몸부림에 동굴이 무너져도 탈출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첫인상과는 달리 여기 모인 헌터들은 상당히 숙련된 실력자인 것 같다.

검은 과부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 팀의 미흡한 점을 점검했다.

최향자는 하이퍼맨 팀원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방심하는 태도를 꾸짖었고, 장마리는 나와 함께 최고의 최고가 치료 준비하는 것을 도왔다.

“야호!”

박유화는 빙신연맹이 만든 빙판 위에서 미끄럼을 즐겼다.

제 딴엔 빙신연맹의 실력을 확인하는 거란다.

내가 보기엔 최향자가 엉덩이를 차 줘야 할 사람은 하이퍼맨 팀원이 아니라 박유화다!

다음으로 검은 과부들의 배낭들을 하나씩 열었다.

길쭉한 것에는 쇠말뚝과 철심, 뭉툭한 것에는 판자와 잡동사니, 일반 배낭엔 갖가지 공구가 있었다. 캐리어는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그건 열면 안 돼요. 언니한테 혼나요.”

장마리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최향자한테 맞을 생각을 하니 뒷목이 서늘해진다.

우리는 배낭에서 나온 것들을 조립해 타원형의 방벽을 만들었다.

말뚝은 얼음 바닥에 박아 기둥으로, 철심은 교차한 후 노끈으로 묶어 뼈대로, 판자는 뼈대 위에 공업용 접착제로 붙여 살로 삼았다.

통로 전체를 가릴 정도로 크게 만들어서 방어는 물론, 부상자와 물품을 가려 주는 역할까지 가능하고, 방벽 옆에는 공간을 뚫어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했다.

“서둘러! 놈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하이퍼맨의 점검을 마친 최향자가 빙신연맹을 재촉했다. 빙신연맹이 얼린 얼음판은 점점 두께가 두꺼워져 손가락 한 마디를 넘어갔다. 덕분에 방벽 주변과 나머지 서식 공간이 완전히 다른 지형처럼 보일 정도가 되었다.

랜턴의 빛이 닿지 않는 서식 공간의 저 먼 곳.

인간의 시력으로는 볼 수 없는 어둠.

소리와 진동이 벽과 바닥을 타고 전해져 왔다.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은 떨림.

일행의 눈빛이 달라졌다.

“왔다!”

노구가 손전등으로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다른 사람들 표정으로 봐선 H세포를 지닌 사람 눈엔 뭔가가 보이는 모양이다.

다들 경악한 가운데 장마리는 혼자 평온한 얼굴. 하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게 보인다.

분명 뭔가가 나타났다.

“하이퍼맨! 놈의 주위를 확실히 끌어! 못 끌면 발가벗겨서 개 먹이로 만들어 주겠어!”

최향자의 고함에 거구의 하이퍼맨 팀원들이 각자 전기톱에 시동을 걸었다.

쇠와 기름이 미끄러지며 사정없이 돌아가는 칼날.

모터에서 뿜어지는 연기. 하지만 정작 모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정도로 소음과 떨림이 심했다.

기껏 만든 방벽이 무너질까 걱정이 된다.

“팀장은 나인데…….”

노구는 툴툴거리며 계속 손전등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하이퍼맨의 다른 팀원들도 최향자의 지시가 못마땅한지 미간을 찌푸렸다.

“어?”

노구가 가리킨 곳을 뚫어지게 보니, 뭔가가 어둠 속에서 윤곽을 나타냈다.

꿈틀거리는 형상.

물결치는 움직임.

내 눈에 보일 정도니 상당히 근접한 게 분명했다.

“준비!”

이번엔 노구가 외쳤다.

하이퍼맨은 노구의 구령에 맞춰 움직이는 대상을 향해 전진, 대상의 전방을 반원으로 포위하며 전기톱을 들이댔다.

하이퍼맨이 대상을 상대하는 사이 나머지 일행도 처음 계획대로 움직였다.

빙신연맹은 하이퍼맨 뒤에 위치, 방벽 주변을 얼렸듯이 대상의 주변을 얼렸다.

나와 검은 과부들은 빙신연맹 뒤에 위치, 빙신연맹의 작업이 끝나면 곧바로 하이퍼맨을 지원하러 갈 태세를 취했다.

나도 모르게 손전등의 불빛을 최대로 맞췄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충분하지 않은 조명에도 대상의 모습이 보였지만, 내 눈에는 전체적인 윤곽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앗!”

손전등을 천천히 움직여 드래건의 모습을 살폈다.

전체적인 형상은 뱀이나 지렁이.

몸 주변을 육각형의 거대한 비늘이 둘러싸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삼각형의 머리다.

뾰족하게 끝을 세운 머리에는 일반적인 감각기관으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

오직 전투만을 위한 형태인 건가?

그야말로 괴물.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족속이다.

“이건…… 찍을 수밖에 없어!”

서둘러 주머니에서 원통형 캠코더를 꺼냈다.

작은 손전등 크기의 장비.

드래건이란 괴물 자체도 처음 들어 봤고, 이런 사냥도 처음이다. 그러니 나중을 위해 기록을 남겨 둘 필요가 있다.

본래 사냥의 촬영은 해당 헌터팀의 허락 없이 하면 불법. 하지만 난 엄연히 당사자! 그렇기에 이건 절대 도촬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기록. 게다가 적외선 촬영 모드를 통해 보면 손전등으로 비추는 것보다 훨씬 잘 보이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드래건은 비늘을 일정 간격씩 수직으로 세워, 여러 개의 톱니바퀴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각개의 톱니바퀴를 독자적으로 회전, 몸을 움직였다.

마치 여러 개의 원형 톱날을 꿴 것 같은 모양새.

참으로 독특하다.

일반적인 뱀이 물결처럼 부드럽게 몸을 움직인다면, 드래건의 것은 직각. 원형톱날의 회전방향을 개별적으로 조절해 전후좌우 자유롭게 움직였다.

“어림없다!”

하이퍼맨 팀원들은 전기톱을 이용해 드래건의 비늘 톱날을 막아 내는 한편, 다른 팀이 공격을 받지 않도록 라인을 유지했다. 하지만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

애초에 사이즈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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