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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김상팔-13화 (13/250)

013화

013화

노구는 자세를 낮추며 드래건의 목 아래로 파고들었고, 다른 헌터들은 양쪽으로 흩어져 드래건의 긴 몸통을 노렸다.

“으아아아!”

기합과 함께 노구의 전기톱이 드래건의 목덜미에 접촉, 회전하는 비늘 톱날 사이로 체인을 박았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는지 전기톱으로 인해 드래건의 살점과 피가 튀었다.

“역시 대장!”

다른 헌터들도 노구의 활약에 반응해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했다.

반면에 의외의 충격을 받은 드래건은 황급히 머리를 거둬 노구를 확인, 즉시 보복에 들어갔다.

“크윽!”

노구는 자신에게 휘둘러진 드래건의 머리를 전기톱으로 방어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완력의 차이를 뛰어넘은 무게의 논리.

그야말로 진짜 힘의 차이였다.

육각형의 모서리에 닿는 순간 전기톱이 장난감처럼 박살 났다. 노구 자신도 전기톱처럼 드래건에 의해 양팔이 분리, 피를 흩날리며 날아갔다.

“대장!”

“날 보지 마!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다!”

노구는 날아가면서도 팀원들을 다그쳤다.

하이퍼맨 헌터들은 팀장의 지시에 충실히 복종, 드래건의 몸통을 집요히 공격했다.

빙신연맹은 하이퍼맨 옆에 서서 함께 비늘을 공략했다. 빙신연맹이 비늘을 얼리면 하이퍼맨이 산탄총과 전기톱으로 파괴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드래건은 비늘 톱날의 손실에 즉각 머리를 휘둘렀다.

비늘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거대한 덩치와 단단한 머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조금씩 흐름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으아아악!”

거대한 철퇴가 바닥을 쓸며 흙먼지를 일었다. 그리고 쓰레기에 낙엽이 쓸리듯 머리의 움직임에서 일어난 바람에 헌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가자!”

하이퍼맨과 빙신연맹이 무너지자마자, 뒤에 대기 중이던 검은 과부들이 튀어나갔다.

드래건은 무방비인 상태.

검은 과부들은 연약해진 몸통 부분을 노렸다.

“집중 공격해! 아예 절단 내는 거야!”

최향자의 대검, 장마리의 발차기, 박유화의 주먹이 한 점에 집중됐다.

머리 쪽을 공격할 수 없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

몸통을 토막 내는 것.

드래건은 검은 과부들의 공격을 허용, 고통에 머리를 흔들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머리를 따라 몸 전체가 물결처럼 출렁이며 토막 난 단면이 훤히 드러났다.

“좋았어!”

몸을 추스른 다른 헌터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최고의 최고 덕분에 중상과 경상이던 헌터들이 대부분 회복, 헌터들은 안정적으로 드래건을 둘러쌀 수 있었다.

“이제 끝내자고.”

검은 과부들이 물러섰고, 다시 하이퍼맨과 빙신연맹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됐다.

몸이 반 토막 난 드래건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쇠구슬과 빙결술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사냥은 거의 막바지.

내가 나설 필요도 없어 보였다.

사실 보조 헌터인 내가 나설 정도가 된다면 그게 비정상.

팀이 벼랑 끝에 몰리지 않은 이상 보조가 싸울 일은 없다.

드래건에게서 노구에게로 캠코더를 돌렸다.

다행히 노구는 다른 헌터에 의해 방벽으로 이송 중.

잘린 팔이야 치료술로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이곳은 6급 사냥 구역. 죽어도 이상할 게 없고, 도망쳐도 부끄러울 게 없다.

일단 이곳에 들어선다면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다.

단, 방심은 금물. 안일한 생각 한 번에 한 사람의 목숨이 날아간다.

“크아아악!”

“놈이 미처 날뛴다!”

“제기랄!”

드래건의 발악.

황급히 캠코더를 되돌렸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드래건을 포위했던 헌터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검은 과부들이 뭔가와 대치하고 있었다.

“엥?”

드래건의 하반신.

잘려 나간 몸통의 반쪽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직 신경이 살아 있는 건가?

경악스럽다.

몸통 반쪽의 단면은 근육으로 인해 조여져 움츠러든 상태였고, 그 움직임은 거의 개별적인 개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역시 6급 괴물은 우습게 볼 수 없어!

머리가 붙은 상반신과 토막 난 하반신이 역으로 검은 과부들을 앞뒤로 포위했다.

다른 헌터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다. 도움을 받기보단 오히려 도와줘야 한다.

총을 들고 머리 쪽으로 접근.

쓰러진 헌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섰다.

드래건은 아직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노구의 총으로 녀석의 오른쪽 눈을 조준!

최향자와 정마리가 토막 난 쪽을, 박유화가 머리 쪽을 맡았다.

박유화의 역할은 시간 벌기.

다른 두 사람이 확실하게 반쪽을 끝장내는 동안 머리의 공격을 버텨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총을 쏘기 더욱 유리하다.

캠코더를 통해 드래건의 눈을 바라본다.

지금만큼은 한 점 망설임이 없다. 어쩌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무섭지 않다. 살육에 최적화된 기계.

여기서 결착을 짓지 않으면 전멸할 게 분명하다.

드래건의 머리가 입을 벌려 박유화를 덮쳤다.

드래건에게 박유화는 한 입 거리.

한순간에 박유화의 몸을 바닥과 함께 삼키려 했다. 쫙 벌려진 입이 함정처럼 박유화를 옭아매려 했다.

지금이야!

박유화가 팔다리로 드래건의 입이 다물어지지 못하게 저항하는 사이, 드디어 방아쇠를 당겼다.

예비군 훈련 이후로 처음 쏴 보는 총의 반동, 화약의 매운 냄새, 그리고 얼굴 전체로 퍼지는 화약 재.

그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총알이 드래건에게 날아갔다.

총알은 드래건의 눈을 빗나가 눈 바로 옆에 명중, 단단한 드래건의 머리에 총알이 튕겨 나갔다.

젠장.

아주 조금이었는데……. 역시 영점을 안 잡은 총이라 그런 건가.

다음엔 실수하지 않는다.

곧바로 방아쇠를 또 당겼다. 아직 드래건은 나한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놈의 목적은 오로지 박유화를 집어삼키는 것.

명중!

눈동자 한가운데 슬러그 탄이 박혔다. 그러나 눈동자 속으로 파고들어 치명상을 입히는 것에는 실패.

총알이 눈알에 박힌 게 보였다.

도대체 얼마나 튼튼한 거야?

제길, 얼른 총알 상자에서 산탄을 재장전.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쏴도 과연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너……!”

총성을 들은 박유화가 가장 먼저 날 발견했다. 그리고 드래건 역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드래건은 눈의 통증으로 박유화를 포기, 대신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죽었다.

이건 확실하게 사망 각이다!

주, 죽은 척을 해야 하나? 뱀한테도 그런 게 통하나? 그전에 저 녀석이 과연 뱀이 맞는 걸까?

세 개의 눈이 번뜩이며 날 내려다봤다.

날 먹으려고 벌린 입.

드래건의 목구멍이 어둠 속에서도 확 눈에 띈다.

“으아아아!”

입을 벌린 채 돌진하는 녀석의 입을 향해 산탄을 발사.

쇠구슬이 드래건의 입안을 휘젓는다. 그러나 쇠구슬 역시 슬러그 탄처럼 살 속 깊이 파고들진 못한다.

드래건은 입을 닫아 입안의 이물질을 모두 삼켜 버렸다.

역시 총으로 상대하기엔 너무 강한 상대인 걸까?

드래건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또 입을 벌리며 다가왔다.

다시 재장전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이얍!”

뜻밖의 도움.

박유화가 드래건의 뒤통수에 매달렸다.

드래건은 고개를 흔들며 박유화를 떨어뜨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비늘 톱날이 없는 이상 고갯짓만으로 박유화를 떨쳐내기엔 어림도 없었다.

그야말로 로데오의 카우걸!

“야호!”

이런 상황에서도 ‘야호!’가 나오는구나.

그래도 덕분에 살았다.

재장전. 그리고 드래건의 눈에 총구를 겨눈다.

네 개의 눈 중 목표는 슬러그 탄이 박힌 쪽.

어떻게든 저 슬러그 탄을 깊숙이 박아 넣어야 한다!

드래건과의 거리는 약 5m.

산탄의 집약을 최대한으로 하려면 더 가까이 가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캠코더로 비치는 드래건의 몸집이 점점 크게 보였다.

이런 괴물을 상대로 다른 헌터들은 그렇게 열심히 싸웠던 건가?

이제껏 내가 만난 그 어떤 괴물보다 크다.

나도 헌터야.

나도 엄연히 이 사냥의 일원이야!

우렁찬 기합과 함께 드래건을 향해 달렸다.

박유화는 내 돌진에 맞춰 드래건에게서 탈출! 빙그르르 돌아 멀찍이 떨어진다.

드래건은 박유화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던 바. 녀석의 고개가 움직이지 않았다.

눈알에 박힌 슬러그 탄을 향해 산탄을 연속 발사!

쇠구슬이 뭉텅이로 날아가 슬러그 탄을 밀었다. 드래건의 눈 부분도 타격, 이번에는 무사하지 못했다.

쇠구슬에 밀려 슬러그 탄이 기어코 눈알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드래건의 눈알이 사과처럼 반으로 쪼개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체액이 쏟아졌고, 드래건은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됐다!”

드래건은 눈알 속으로 들어간 슬러그 탄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우리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반쯤 남은 몸이 비비 꼬인다.

몸이 반으로 토막 난 것보다 눈알에 박힌 납덩이 하나가 더 고통스러운 건가?

우리가 머리 쪽을 상대하는 동안 다른 헌터들은 토막 난 쪽을 공격.

완전히 피 떡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이런 참상이 또 없다.

둥근 원기둥이 타원형도 아니고, 그냥 쥐포가 되어 있다.

사람의 것과 드래건의 것이 얽혀 언 땅을 녹인다. 피와 살, 그리고 다른 무언가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동굴은 어느새 빙판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젠 정말 끝내야 하는 때.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드래건을 완전히 끝내요!”

머리를 가리키니 모두가 수긍했다. 우리는 그렇게 드래건에게 총공격을 가했다.

연속으로 쏟아지는 산탄과 빙결술. 심지어 방벽 뒤에 있던 최고의 최고까지 나와 공격에 가담했다.

드래건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했다.

거대한 몸이 공격에 깎여 나갈 지경에 이르렀지만, 포기하지 않는 건 녀석도 마찬가지.

양측 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크윽!”

아무리 공격해도 드래건은 쓰러지지 않았다. 검은 과부들, 하이퍼맨, 빙신연맹. 모두가 한계가 다다랐다.

한 번만 더, 한 대만 더, 한 방만 더.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다독였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잔혹한 법.

흥분 때문인지 숨이 차오른다. 장전, 사격만 하는데도 이렇게 체력 소모가 큰지 처음 알았다. 계속된 사격 반동에 손가락 끝이 얼얼하다.

잠시 뒤로 물러나 한숨 돌렸다.

드래건은 공격을 받으면서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그리고 헌터들은 그것을 방어를 위한 거라 착각하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그것은 방어자세가 아니었다.

한계까지 감긴 드래건의 몸은 원반처럼 매끄러웠다.

녀석과 헌터들의 거리는 정확히 1m 내외. 참으로 어리석은 방심, 지켜보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원반에서 뭔가 줄 하나가 툭 끊어지듯 드래건의 단단한 머리가 갑작스러운 탄력에 의해 휘둘러졌다.

고무줄이 풀린 태엽 장난감.

딱 그런 움직임이었다. 원심력에 의해 일시적으로 드래건의 몸이 늘어지며 근처의 모든 헌터들을 쓸어버렸다.

모두 볼링 핀처럼 튕겨 나가고, 내 앞으로 최향자가 떨어졌다.

최향자는 정신을 잃었는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 와중에 손에서 검을 놓지 않은 것은 정말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최악의 상황.

일행이 전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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